▣사 복음서

세상에서 믿음을 보이라 (눅 18:1-8)

공 상희 2010. 11. 5. 13:48

세상에서 믿음을 보이라 (눅 18:1-8)


이 시간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믿음 갖고 살기가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일반 사회생활을 많이 해본 사람일수록 불신자들 틈바구니에서 믿음 갖고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경직된 조직생활 속에서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이나 이슬람권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 북한에는 10만명의 기독교인들이 단순히 신앙을 이유로 수용소에서 인간 아닌 대접을 받으며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주일도 범하고 거짓말도 하고 범죄도 하게 됩니다. 우리 믿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그것이 우리 성도의 눈물이며 성도의 탄식이며 성도의 한입니다. 세상에서 믿음 갖고 산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우리 성도들을 보면 존경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어려움을 이기고 믿음으로 승리해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승리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그래야 바벨론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바벨론 왕으로 엎드리게 만든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바로 그 반열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큰 영광을 가지고 얼마나 많이 다가오셨습니까? 그런 성도에게 주님은 지금도 그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다가오시는데 문제는 그런 믿음 가진 성도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본문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단들이 얼마나 이용해 먹었는지 모르지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말세에 주님 오시는 날에 대한 말씀도 되겠고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권고하러 오시는 바로 그 날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벧전2:12에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그럼 세상에서 믿음 지키고 영광 나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것을 예수님 말씀하신 원수에 대해 원한을 가진 한 억울한 과부의 이야기에서 해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믿음 지키고 영광 나타내려면?


1. 낙망치 말고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1절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그랬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원수에 대한 원한 가진 과부와 같이 날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낙심치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조직된 세상 속에 들어와 보면 그 속에서 믿음 지킨다는 것은 낙심할 수밖에 없이 어려운 일이지만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그랬습니다. 왕을 섬겨 받드는 자가 되도록 욍립학교에서 공부할 때 거기 규칙을 어겨가며 산다는 것은 죽음만큼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왕의 진미를 먹지 않고 포도주로 더럽히지 않기로 작정하고 책임 맡은 환관장에게 구할 때 하나님께서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뜻을 세우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움을 주십니다. 환관장이 다니엘을 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환관장이 도우려고 하지만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먹지 않아 얼굴이 초췌한 것을 왕이 보면 그의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는 열흘 동안 채식과 물로만 시험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다른 소년들의 얼굴과 비교하여 보아서 보이는 대로 처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좇아 열흘을 시험해보니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윤택한지라 그들에게 분정된 진미와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게 했습니다.


3년이 지나 모든 학생들이 왕 앞에 나아갔을 때 왕이 그들과 대화해 보더니 다니엘과 세 친구의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열 배나 나은 줄을 알고 그들을 왕 앞에 모시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첫 번째 기적입니다. 이처럼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 피할 길을 열어주십니다. 기도하면 피할 길을 열어주십니다.


2. 영혼의 소원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3절을 보세요. 한 과부의 소원이 보통 소원이었는가 말입니다.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원수에 대한 원한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재산을 빼앗아갔는지, 혈육을 죽였는지, 어떤 누명과 고통을 주었는지 알 수 없지만 반드시 해결해 해야 할 원한 맺힌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같이 박대를 받으면서도 재판관에게 가서 호소하고 또 가가서 호소하기를 계속합니다. 구박을 받아도 소용 없고, 쫓겨나도 소용이 없습니다. 재판관도 현명한 사람인지라 여인을 보니 구박 준다고 안 올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 더 괴로움을 당치 않기 위해 속히 그 원한을 들어주었습니다.


기도를 이렇게 하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원수 마귀에게 끌려 다니며 세상에서 범죄하는 우리의 가련한 처지를 하나님 앞에 하소연하면서 원한 맺힌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영혼의 소원입니다. 세상길에 방황할 때 우리 영혼은 하나님 앞에 탄식합니다.


우리 속에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롬8:26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했습니다.


기도가 안 됩니까? 진짜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럽니다. 발등에 불 떨어지면 엎드려 뒹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도만 하려고 하면 잠이 오고 눕고만 싶습니까? 원한 맺힌 간절한 소원이 없어서 그럽니다. 이 기도의 소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한이 맺힐 만큼의 강한 소원을 가지면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므로 성도는 사람 원수에 대해 한을 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원수가 많습니다. 죄도 원수입니다. 사탄 마귀도 원수입니다. 마음의 악함도 원수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습관도 원수입니다. 불신앙의 세상 환경도 원수가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살면서 믿음 지키고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는 한이 맺힌 간절한 소원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가오셔서 놀라운 일을 행해 주십니다.


그래서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하셨습니다.


이런 믿음 가지면 우리 영혼이 세상에 겁탈 당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겁탈만이 아닙니다. 믿음 못 지키는 영혼의 겁탈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세상에 속하여 믿음 못 지키고 범죄할 수밖에 없는 것 이것이 우리 영혼이 당하는 겁탈입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부르짖지 않으면 그 책임은 우리가 집니다.


구약 율법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22:25-27에 “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만나서 강간하였거든 그 강간한 남자만 죽일 것이요”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남자가 처녀를 들에서 만난 까닭에 그 처녀가 소리 질러도 구원할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당한 것은 처녀에게 책임이 없어요.


그렇지만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통간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 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읍 중에 있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신22:23) 소리 지르면 성읍이라 도울 자가 많은데 소리치지 않았으므로 여자에게도 죄가 있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세상에 살 때 악의 구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말씀을 범할 수밖에 없을 때라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도와주시지만 부르짖지 않으면 내 잘못이란 말입니다. 그 땐 내 심령이 죽어도 하나님 탓할 수 없어요.
예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자라고 한 것 기억하세요. 이때는 밤이고 낮이고 기도해야 합니다. 높은 사람의 말이라 거역하기도 그렇고 입장이 곤란할 때 이번만큼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밤낮 부르짖으란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그의 영광을 나타내주시려고 다가오실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다가오셔도 아무도 믿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영광을 나타내주실 수 없습니다. 우리 영혼의 한 맺힌 갈망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승리하신 예수님 뒤따라 세상 어느 곳에 어떤 일에 처하든지 낙심하지 말고 부르짖어 온전히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