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부활절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라 고전15:12-19

공 상희 2010. 4. 2. 14:42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라 고전15:12-19

본문은 부활장인 고전15장의 둘째 문단으로 1-11에서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역사적 확실성에 언급한 후 12-19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기독교신앙의 절대적 근거가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자랑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우리 주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므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우리 주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지옥에 내려가셔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셨기에 우리 모두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먼저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모든 상황과 여건을 먼저 만드신 것입니다.

특별히 에덴동산은 어떤 불편이나 부족함이 없도록 살 수 있도록 만든 낙원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은 마귀의 꾐에 빠져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금하신 금단의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낙원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불순종이 죽을 죄였습니다.

불순종의 죄가 하나님의 축복을 잃게 만들었고 저주가운데 살다가 죽어야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범죄한 사람들의 지옥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시사 한 분 뿐이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 모든 죄 짐을 지고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대못이 손발에 박힌 채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대로 무덤에서 그대로 계시지 않고 유골로 보관되지 않고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시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이 성도의 부활의 근거가 됩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속죄를 위해 십자가 죽음을 친히 감당하셨고, 인간의 칭의를 위해 부활하신 줄 믿습니다. (롬4:25)

성도된 자가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부활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기 위해서

첫째로 부활신앙이 기독신앙의 기초임을 믿으라. (12-16)

우리는 흔히 예수님의 십자가가 성도들의 신앙의 근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보다 정확히 신앙의 기초가 무엇인가하면 그것은 다름 아닌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냐구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다음 바로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까? 아니면 금식하며 기도 했습니까?

아니면 전 재산을 팔아 교회를 세웠습니까?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뿔뿔히 흩어져 버렸습니다.

두 제자는 엠마오로 내려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고기 잡으러 갈릴리로 내려갔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조반을 만들어 놓고 와서 조반을 먹으라는 말씀대로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조찬을 하고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아침을 잘 먹어야 합니다.

든든히 먹고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용기를 얻고 소망 중에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죽기까지 순교하기 까지 목숨 사리지 않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지금 고린도 교인들은 성령의 강림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성령이 강림하셨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에 전혀 힘쓸 때 성령이 임하신줄 확실히 믿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십자가만을 전했습니까?

제자들은 십자가와 함께 부활을 전했습니다.

행2:23-24“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분명히 제자들은 부활 없는 십자가는 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전할 때는 반드시 부활을 포함한 십자가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기독교 혹은 기독교 신앙과 관련된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통해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권면하고자 하는 것은 부활 신앙을 튼튼히 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처럼 성령의 은사도 중요하고, 열심 있는 신앙도 중요하지만 귀중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거기에 부활 신앙이 기초되지 않으면 바로 모래위에 지은 집같이 홍수나고 바람 불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부활신앙은 위대하고 중요한 믿음의 핵심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남과 같이 자랑할 성령의 은사가 없어도 좋습니다.

능력이 없어도 좋습니다. 이 부활의 신앙만은 확실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부활 신앙이 확실히 자리잡은 사람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복음을 전합니다.

부활신앙은 어떤 박해나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을 줍니다.

부활신앙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쁨으로 순교할 만큼 성숙한 기독인이 되게 합니다.

부활신앙은 성도를 일당백 일당천의 용사가 되게 합니다.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있습니다.

예화)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부활절에 생긴 일입니다.

독재자 이디 아민이 케파 생땅기 목사가 정부의 불의를 비판한다는 설교를 한다고 부활 설교를 마치고 내려오는 목사를 비밀경찰이 현장에서 살해하려고 총을 겨눕니다. 그때 케파 생땅기 목사님이 [형제들 나에게 2분만 시간을 주시면 안 되겠느냐 요청합니다. “하나님 우간다의 통치자 아민대통령을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우간다 국민에게 자유를 주십시오. 내 사랑하는 조국이 의의땅, 사랑의 땅이 되게 하소서. 나의 죽음이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이 땅에 되풀이 되지 않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기도를 마친 후 눈을 떠보니 비밀경찰책임자가 “우리가 큰 실수를 저지를 뻔 했습니다. 어서 여기를 피하십시오. 이미 피하여 계시지 않았다고 보고하겠습니다.” 말을 남기고 떠났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어떤 위협이나 협박 고난과 핍박에서도 담대할 수 있고 용기를 가지고 소망 가운데 거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부활신앙인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예배하던 전통이 안식일에서 주일 예배로 바뀌게 된 근거입니다.

기독교의 기원과 교리의 중심이 바로 부활인줄 믿습니다.

 

부활 신앙을 체험하기 위해서

둘째로 부활은 재창조 역사임을 믿어야 합니다. (17)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부활은 자연현상도 , 생명의 과정도 아니며, 분명히 하나의 큰 재창조 역사입니다.

흔히 말하듯 부활은 계란에서 병아리가 되어 생명이 태어나거나 유충이 나비가 되는 자연현상과 같은 생명의 과정이 아닙니다.

옛 것이 완전히 죽고 신기원적인 새로운 생명을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회생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지만 다시 죽습니다. 회생한 자는 다시 죽습니다.

그러나 부활한자는 다시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고 합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예수께서 우리를 죄의 굴레에서 해방 시키셨음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고 해도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그 소리는 공허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고 맙니다.

아무도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이는 우리가 부활하여 사망권세를 꺽었음을 증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활이 있음으로만 믿음이 가능하고 부활이 있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의 과정이 아닌 전혀 새로운 주기를 갖는 새창조를 이루어졌음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벧전1:3-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에서 의인으로 , 불순종의 자녀에서 순종의 자녀로 어둠의 자녀에서 빛의 자녀로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났다는 말은 재창조되었다는 말입니다.

본질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거듭남으로 영원한 저주가 이제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돈 명예 지위 권력등 썩어질 것들의 영향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산 소망 중에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성도는 영원한 소망에 절대 가치를 두며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로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성도는 목표가 달라지고 생활이 달라지고 말하는 것이 달라지고 일하는 것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제 부활성도는 땅에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목표삼지 않고 하늘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에 하늘을 품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늘을 유업으로 받은 자답게 풍성한 여유로운 넉넉한 나눔의 삶을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부활신앙을 체험하기 위해

셋째로 죄 문제가 완전히 처리된 줄 믿으라(17-19)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죄를 대속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이 헛될 뿐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십자가에 달리셔서 물과 피를 다 쏟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으셨더라도 부활하지 않았다면 죄는 여전히 처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를 알려면 죄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죄가 이 땅에 가져온 결과가 무엇입니까?

세상에 죄가 들어올 때 치명적인 것이 같이 들어왔는데 그것이 무엇이죠?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렇게 죄가 같이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본문 18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는 결코 사망에 이른 것이 아니라 성도의 죽음은 잠자는 것이라 합니다.

성도의 죽음이 사망이 아닌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장차 다시 깨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전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성도가 죽음에서 깨어나는 것은 생명의 부활입니다. 마지막 때 부활한 성도에게는 더 이상 심판이나 정죄나 죽음이나 슬픔이 없습니다.

이에 반해서 불신 악인의 경우에는 성도와 같이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되 심판의 부활로 나와 영원한 멸망에 처해지기 위해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모든 수고를 그친 안식입니다.

그러나 자살은 아닙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생명을 죽인 것이므로 지옥 불 영원한 사망의 불 못에 떨어지게 됩니다.

계14:13“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이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셔서 아담 안에서 모든 자들이 죽은 것처럼 예수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었고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의 약속이요 보증이 된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성도 부활의 확실한 증거가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죽은 자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고 받아 들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장차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부활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과 성도들이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이란 사실을 열심히 가르쳤지만 이들이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교회의 가르침 , 목회자의 가르침을 소홀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즉 성도는 어떤 경우에든지 교회의 가르침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토라 즉 말씀의 가르침을 율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법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위반하면 처벌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와 목회자가 베푸는 가르침을 가벼이 여기면 안됩니다.

 

결론

이제까지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부활신앙이 기독신앙의 기초임을 믿으라. (12-16)

둘째로 부활은 재창조 역사임을 믿어야 합니다. (17)

셋째로 부활로 죄 문제가 완전히 처리된 줄 믿으라(17-19)

는 세 가지 멧세지를 선포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즉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해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을 가진 성도는 몸도 드리고 시간도 드리고 정성도 드리고 물질도 아낌없이 주를 위해 드림으로 놀라운 축복의 근원이 됩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거듭난 사람은 신령한 부활, 생명의 부활인줄 믿습니다.

이러한 부활의 능력을 체험함으로 부활 신앙이 기독신앙의 기초요 부활이 재창조 역사이며 부활로 죄 문제가 완전히 처리된 줄 믿음으로 소망 가운데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