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소식(누가복음 24:1-6)
유성종목사
(눅 24: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눅 24: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눅 24: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눅 24:4) 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눅 24: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눅 24: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한 독실한 교인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해 있는 어떤 건설회사와 용역계약을 맺고 출장 근무를 갔더랍니다. 거기서 일하면서 같은 직장에 있는 '모슬렘교도'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모슬렘교도는 자기가 믿는 회교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며, 엄한 규율대로 살아야 하고, 메카를 순례해야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우리 회교의 큰 자랑거리는 메카에 있는 모하멧의 무덤이야. 너희 기독교의 교주인 예수의 무덤은 비어 있지만 우리 교주의 무덤은 아주 웅장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모하멧의 아름다운 분묘, 이것이 우리 회교의 유일한 자랑거리야." 이 말을 듣고 있던 교인이 얼른 대답했습니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와 회교의 차이점이다. 모하멧이나 다른 종교의 교주는 모두 죽어 무덤에 묻혀 썩어 버렸지만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무덤을 깨뜨리고 부활하셨다.”라고 당당하게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남겨진 빈 무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에 가면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게 되는데, 많은 성지순례자들이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감격을 합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다른 종교 교주들 모양 무덤 속에서 썩고 있었더라면 어찌되었을까요? 그저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 버린다면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 그야말로 별 볼일 없을 뻔했는데, 주님께서는 자신이 약속하신 대로 무덤에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무덤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이것은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성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와 부활은 이해되어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어져야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도저히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머리 문제가 아닌 철저하게 가슴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셔야 하고, 우리는 성경과 역사적 사실을 가슴을 열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길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인류의 기원문제도 역시 믿음의 문제인 것처럼. 말입니다. 성경은 <부활에 대해서 신약성경에는 204회>씩이나 언급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땅에 살고 있는 60억의 인구가운데 약 3분지 1 이상이 부활을 믿고 있으며, 60억 인구의 대부분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일요일)을 공휴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웅변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의 역사적인 부활에 대해서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인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느냐가 중요할 따름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한국 6.25 전쟁 당시 1951년 압록강 강변까지 진격했던 유엔군에 속하는 미 해병대의 군인들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부득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퇴하는 과정에서 많은 군인들이 희생되었고 또한 포위당하는 절대위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비참한 모습을 본 한 종군기자가 물었습니다. "What can I do for you?,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럴 때 미 해병은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Give me tomorrow, 내일을 주십시오." 그 이후로 아주 유명한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필요한 것은 돈과 명예가 아닙니다. 내일입니다. 내일! 즉 미래의 문제요. 소망의 문제입니다. 전도서 9:4절에 "모든 산 자 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천국과 지옥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전적으로 소망의 문제입니다. 단테의「신곡」에 보면, “이곳에서는 일체 소망을 버려라.”는 말로 지옥을 표현합니다. 소망이 없는 삶이야말로 바로 지옥입니다. 오늘 여기서 얼마든지 천국과 지옥의 삶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3절에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런던의 랍비인 '휴고 그린'씨는 제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집단 수용소에서 겪었던 뼈아픈 고난의 체험담을 전후 독일의 [데르 모르겐] 잡지에 이렇게 기고했습니다. “그 날은 1944년 몹시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사실 집단 수용소에 달력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와 함께 감금되어 있었던 저의 아버지께서 저와 몇 친구 분들을 데리고 수용소 건물 한 구석으로 모이게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그 날이 유대인의 명절인 ‘하누카의 저녁’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우습게 생긴 진흙 주발을 내어놓으시더니 수용소에서는 좀처럼 구하기 힘든 버터기름을 녹여서 심지를 적셔 촛불을 대신했습니다. 아버지가 송축 기원을 말씀하시기 전, 저는 아버지께 그 귀한 버터기름을 먹지 않고 낭비하는데 대하여 항의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가만히 보시더니 다음과 같이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알고 내가 알듯이 사람은 밥을 먹지 않고도 3주간을 살수가 있어, 우리는 한때 물을 먹지 않고 3일 동안 살아 있었다. 그러나 너와 내가 알다시피 사람은 소망이 없이는 하루도 살수가 없어!’라고 말입니다.” 결국 집단 수용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생존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였는지 아십니까? 절망 중에서도 소망의 밧줄을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신심리학자 가운데 '빅터 프랭클'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나치 수용소에서 말할 수 없이 잔인한 고문과 무서운 형벌과 비인간적인 학대 속에서 나를 생존하게 만든 것은 소망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망은 우리 인간에게 생존의 이유, 생존의 능력을 제공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그 어떤 절망적인 환경 가운데서도 소망을 찾아 몸부림치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의 가슴속에 소망이 있으면 어떠한 역경과 고난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소망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에게 영원한 소망을 가져다 준 사건이었습니다. 그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시므로 우리 소망의 보증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다음 열매들이 된 것입니다. 그 부활의 소망을 간직하며 오늘을 살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죽을 때에도 남들과는 달리 평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는 있습니다. 바로 이런 부활의 믿음, 이런 궁극적인 소망이 남아 있기에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고, 평안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부활은 '최종적인 소망의 내용'이요. 궁극적인 소망입니다. 이 부활 소망, 부활 신앙만 붙잡고 있으면 이 땅에 사는 동안이나 죽음 앞에서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영국의 한 젊은 변호사 프랭크 모리슨이라고 하는 사람이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반박하는 글을 쓰기 위하여 세밀한 조사와 연구 끝에 놀랄만한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는 연구를 종합하여 책을 썼는데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을 송두리째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책이 "Who moved the stone" "누가 돌을 옮겼나?"라는 유명한 책이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을 이론적으로 따져 본다고 하여도 그것은 확실한 사실인 것이다. 예수 부활이 사실 무근이라면 십자가에 죽인 바리새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셨기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나도 역시 마지막때에 부활한다는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셨기에 또한 죽음의 문제, 죄의 문제를 해결함 받아 자유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부활주일 부활의 기쁨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합심기도 1.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믿음을 더해 주세요. 2. 부활의 주님을 만나 변화되는 삶이 되게 해주세요. 3. 부활의 기쁜 소식을 널리 전하게 도와 주세요.
결단송 : 주하나님 독생자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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