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부활절

부활의 신비

공 상희 2010. 4. 2. 14:41

부활의 신비
부활주일 설교 (해남 계곡면 연합회 설교)
본문: 마가복음 16장 1-16절
설교자: 최 승 목사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우리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로 부활 하셨으며,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 영광스런 부활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활" 그러면 왠지 기쁘고, 새 힘이 솟습니다.

 

그런데요 정작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사람들의 심정이 오늘 우리와 같은 심정이었는가!!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 부활이란 말이 무슨 말입니까?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쉽게 부활이라고 말은 하지만, 직접 마음에 와 닫지가 않습니다.

 

왜입니까? 우리 사람의 몸으로 직접 경험 할 수 없고, 사람의 지식이나 상식으로 가능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아울러 주님의 부활이 신비스럽기만 합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은 신비입니다. (1-6절)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4복음서에 모두 기록 되어있습니다. 4복음서에 모두가 안식 후 첫날에 여인들이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무덤이 비어 있었고, 천사가 증거 하는 예수의 부활의 소식을 듣습니다.

 

무엇이 신비입니까? 빈 무덤이 신비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 것이 신비요, 천사의 증언이 신비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신비스러운 일들로 가득합니다. 그 중에서 예수의 관하여만 보아도 그의 탄생이 신비요, 그의 사역이 신비요, 그의 죽음과 부활이 신비요, 그의 승천과 재림이 신비입니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앞에,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과 행하시는 일 앞에 그저 놀랄 따름입니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신이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우리에게는 신비스러울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신비가 저와 여러분을 위한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일이요, 구원과 생명이 되는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그런데 신비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입니다. (8-11절)

 

오늘 본문과 4복음서에 또 하나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부활을 목격한 그들은 심히 두려워했다는 것과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 도무지 믿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도망하기도하고, 할 말을 잃기까지 했습니다.

(8절)말씀을 보세요.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고 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의 부활이 두려움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자!!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적인 부활의 현장에 참여했던 여인들, 그들은 이 놀라운 현장을 보고서 왜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까? 어째서 이들은 이 환희에 찬 부활의 소식을 전해듣고 무서워하며 두려워하였을까요?

인간은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과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나,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 생겨나면 두려움을 느낍니다. 믿을 수 없는 일 앞에 두려워합니다. 예를 들어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데, 원숭이가 나온다든지 아니면, 수도꼭지를 틀었는데 피가 쏟아져 나온다면 두려움입니다.

 

우리의 지식과 상식으로 마땅한 결과를 기대하고 있는데, 전혀 다른 엉뚱한 결과가 나타나면 두려워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여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상식이 무엇이오, 그들의 기대가 무엇입니까? 예수의 무덤에서 예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는 것입니다.

 

무덤안에 예수의 시신이 있는 것이 상식이요 기대입니다. 이 상식과 기대에 맞으면 비록 시신 앞에 있을 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슬퍼하며 예수의 시신에 향품을 발랐겠죠!! 이것이 사람들의 지식이요, 경험이요, 상식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부활은 이런 상식을 벗어나고, 초월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가 부활했음을 목격하고는 두려워했습니다.

 

어렸을 적에 '전설의 고향'이란 TV 프로를 보며 두려워했던 적이 있습니다. 오늘 죽은 사람을 매장했는데, 그 날 밤에 죽은 자가 일어나는 그 장면이 나를 심히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화장실에도 못 가곤 했습니다.

 

분명히 예수의 부활은 신비이며 사람의 지식과 상식을 넘어선 두려운 일입니다. 제가 만약 그 때 예수님의 부활의 현장에 있었다면 두려워했을 것이고, 도망했을 것이며, 할 말을 잃었을 것입니다. 분명 예수의 부활은 사람으로는 경험할 수도 없고 이 해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바로 그 일을 행하는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오,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오, 한번 약속하시면 반드시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사람에게는 두려운 일이나 이 신비는 복음입니다. (14-15절)

 

 죽은 지 3일이 지난 예수님이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요? 우리네 인간의 역사에서 이 예수님의 부활은 무슨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까?

'죽음'!!, 여기까지가 우리 사람들이 경험하는 역사입니다. 그 너머는 우리의 역사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 사람들이 죽음 너머의 세계까지 우리가 좌지우지하고파서 제사 잘 지내라, 장례 잘 치러라, 명당을 써라, 어쩌라 하지만, 사실 죽음 직전까지가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해볼 수 있는 세계 아닙니까!!

 

병원에서 숨이 희미하게라도 붙어있다면 온 의사들이 다 달라붙어 어떡해든 살려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일단 숨이 넘어가면, 그 어떠한 큰 병원, 큰 의사라 할지라도 손을 놓습니다. 왜입니까? 죽음의 문턱까지가 우리의 영역이고, 그 너머는 우리네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요? 새로운 역사가 인류의 역사 속에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끝나던 비극적인 인류의 역사에 새 역사의 지평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우리에게 이루어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죽음으로 사람의 소망과 세상의 소망은 끝이 나지만, 그 죽음 너머의 소망이 생겨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아니라 창조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에 새롭게 개입하시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비극으로 끝나는 인간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소망과 희망을 주시기 위해 개입하셨다는 뜻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신비로운 일을 계획하시고 행하셨습니다. 예수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을 통해서 그 신비로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비극과 절망을 소망과 희망으로 바꾸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껏 열심히 살아봐야 70-80년, 요즘엔 100년을 넘어가지만, 결국 죽습니다. 이 죽음 앞에 부딪힌 비극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끝내셨습니다. 이젠 더 이상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부활을 처음 대할 때 인간은 두려움에 할 말을 잃었지만, 이제 우리는 그 의미를 압니다.

 

본문 (15절)을 보세요. 예수님은 이 사실을 복음이라 했습니다. 기쁘고 복된 소식이라 했고, 천하 만민에게 다니며 증거 해야 될 복음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게 새로 쓰게 하신 역사의 시작입니다. 생명력이 넘쳐나는 생기의 역사입니다. '망했다' 라고 포기하는 인생에게 생각지 못한 역전 극을 일으키는 역사입니다. 예수의 부활이 저와 여러분의 부활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가장 은혜로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신비가 아니면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없는 은혜의 일이요, 구원과 생명의 일입니다. 이제 더 이상 부활은 우리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이요, 소망이요, 감사의 제목인 것입니다.

 

4. 신비를 보는 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16절)

 

분명히 부활의 역사는 신비스런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인간의 관점이나 논리로 보면 경이로울 뿐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부활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신비한 것이지만, 하나님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요, 자연스러운 일에 불과합니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면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도 신비한 일이며, 그 생명체가 자라서 한 인간으로 성숙하게 되는 것도 다 신비한 일이며,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고 내세의 소망을 가지는 모든 일들이 다 신비하기만 합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일이란 우리에게는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정말 신비한 일이지만,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우리에게 복 주시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세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사건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내 생각으로는 안 되고,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한 일로 받아드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하다' 여기며 맡기고 따라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일어난 모든 신비스런 일을 하나님이 이미 하신 일이요, 앞으로 이루실 일로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세상을 창조하셨어요, 나를 구원의 자녀로 택하셨어요, 나를 위해 예수를 보냈어요, 날 대신해 피흘려 죽게 했어요, 그리고 날 위해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케 하셨고, 또한 하늘로 불러 올리사 하나님 우편보좌에 앉히신 일, 이 일을 하나님이 이미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이 앞으로 이루실 일이 무엇입니까? 하늘의 보좌에 앉은 예수를 이 땅에 다시 보내십니다. 왕의 권세와 심판의 권세를 가졌습니다. 믿음 안에 죽은 자를 부활케 하십니다. 믿음 안에 있는 산 자와 부활한 자를 예비한 천국,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불러 올리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을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영안이 열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일을 보는 눈, 하나님이 앞으로 이루실 일을 보는 눈, 죽음 너머의 영적인 세계를 보는 눈,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하나님이 역사 하신 신비를 보는 눈, 이 눈을 통하여 보고, 이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신비를 보면 이제는 그 신비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와 감격과 찬송이 될 것입니다.

 

우리 (14-16절)을 읽읍시다. 여기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서 증거한 사람들의 말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 신비를 보고서 두려워했던 제자들을 꾸짖으며,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하시며, (1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부활의 축복, 세상이 믿지 못할 영생의 축복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그 부활에 동참하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죽임이 두려움이 아니요,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도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닙니다. 부활의 확실한 믿음과 영생에 확실한 믿음이 있는 자는 두려움을 이길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세요. 부활에 확실한 믿음이 없을 때에는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이 죽자, 모두들 두려워하고 문을 꼭 잠그고 숨어 있었고, 각기 예수를 잊으려고 제 삶의 터전을 찾아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가 보낸 성령을 통해서 부활을 믿게되고 확신하게 되었을 때에는 그들이 변하였습니다.

 

부활을 믿음으로 죽음을 두려워 안 했습니다. 사람들 앞에 드러내어서 예수의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잡혀간 법정에서도 "내가 사람에게 좋게하랴!!, 하나님께 좋게하랴"라고 담대하게 하나님 편에 서서 일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부활과 천국 영생의 확실한 믿음과 소망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순교한 것을 봅니다.

 

 이제 주님의 부활의 신비는 여러분의 믿음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새로운 소망이 되고, 새 힘이 되고, 구원이 됩니다. 부활과 영생의 확실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으로 신앙을 흔드는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아니하고 새로운 소망을 얻기를 원합니다.

 

 이 부활의 믿음으로 여러분의 신앙의 양심을 흔드는 슬픔과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새로운 위로를 얻고, 용기를 얻기를 바랍니다. 이 부활의 신앙으로 여러분을 저주와 고통으로 끌고 가는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과감하게 벗어나고 구원함을 얻기를 부활이요 생명이 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