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설교

구유 속에 누운 두 아기(눅2:1-7)

공 상희 2006. 12. 21. 11:32
구유 속에 누운 두 아기(눅2:1-7)  

 

구유 속에 누운 두 아기(눅2:1-7)


1994년 두 명의 미국인이 러시아 교육부의 초청을 받아서 러시아로 갔습니다. 이들은 러시아에 머무르면서 교도소나 사업장, 소방서나 경찰서, 심지어 큰 고아원을 방문하면서 윤리 도덕을 가르쳤습니다. 러시아 정부가 신앙적인 관점에서 가르쳐도 된다는 허락을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자주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성탄절이 가까워져 왔을 때 큰 고아원을 방문해서 원생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었습니다. 고아원에는 100 여명의 남녀 어린이들이 있었는데 모두 가족들로부터 버림을 받았거나 학대를 받고서는 정부가 운영하는 고아원에 들어온 아이들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 조사를 하기 위해 고향인 베들레헴 땅에 왔지만 비어있는 여인숙이 없어서 짐승들이 잠자는 축사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며, 만삭이 된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낳아서 구유에 놓았다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주었습니다. 고아들은 물론이고 고아들을 돌보는 직원들까지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경청했습니다.


이제 예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다 마친 다음에 두 사람은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탄생 모습을 공작으로 재현해볼 것을 주문했습니다. 그래서 마분지 세 개를 나누어주면서 예수님께서 누우셨던 구유, 즉 여물통을 만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 동네에서는 색종이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노란 냅킨에서 잘라낸 조그마한 정사각형 종이도 아이들에게 한 장씩 나누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지시를 따라서 종이를 찢어서 지푸라기처럼 보이게 하기 위하여 그 조각들을 구유 안에 흩어 놓았습니다. 또 어떤 미국 여자가 러시아를 떠나면서 버린, 다 낡아빠진 나이트 가운에서 잘라낸 작은 헝겊조각들을 아기 예수를 감싸는 강보, 즉 담요처럼 쓰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는 두 사람이 미국에서 가져온 어떤 가죽제품을 오려서 인형처럼 만들어 쓰게 했습니다.


아이들은 두 사람의 미국 선생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열심히 구유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미샤(Misha)라는 이름을 가진 여섯 살 먹은 아이가 만든 구유는 이상했습니다. 구유 안에 아기 예수 혼자 누운 것이 아니고 두 아이가 함께 누워있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미국 선생 하나가 물었습니다. "아니, 너는 구유에 왜 아기를 둘씩이나 뉘여 놓았니?" 미샤의 대답은 무척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구유에 뉘였을 때 갑자기 예수님이 저를 쳐다보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머무를 빈방이 있는지 물으셨어요. 저는 예수님께 아빠도 엄마도 아무 일가친척도 없는 제가 무슨 빈방이 있어서 예수님을 모실 수 있겠느냐고 대답했지요.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아, 네가 그렇다면 오히려 내가 너와 함께 있는 것이 좋겠구나' 하시면서 저와 함께 있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깜짝 놀라서 '예수님, 그건 안됩니다. 저는 다른 아이들처럼 돈이나 있어서 예수님께 사 드릴 선물이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 어떻게 저와 함께 있겠다는 말씀이세요?' 하면서 만류했답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과 꼭 함께 있고 싶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저와 함께 계실 수만 있다면 제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요.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추운 날씨에 구유에 누워 계시니 얼마나 추우실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만들어 드릴 수는 없을까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예수님께 또 여쭈었지요. '예수님, 제가 예수님을 따뜻하게 만들어드리고 싶은데, 그것이 예수님께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을까요?'"


"그 때 예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미샤야, 네가 나를 따뜻하게만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것은 일찍이 내가 받을 수 있었던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란다.'--'Misha, if you keep me warm, that will be the best gift anybody ever gave me.' 그래서 저는 주저하지 않고서 예수님께서 누워 계신 말구유에 들어가서 함께 누웠지요. 둘이 함께 누워 있으면 온기로 따뜻해질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그렇게 한 것이지요. 제가 구유에 들어가 예수님 곁에 누웠더니 예수님께서 저를 쳐다보시면서 '미샤야, 고맙구나. 이제는 내가 너와 항상 함께 있어주마' 하고 말씀해주셨어요."


어린 미샤가 이 말을 끝냈을 때 그 미국 선생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 고아 소년은 그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학대를 받았기 때문에 다시는 자기를 버리지도 않고 학대도 하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미샤는 바로 그런 사람을 구유에 누워 있는 예수님께서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유 속에 들어가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은 생각에서 구유 안에 인형 두 개를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한 아기는 예수님이고 또 다른 아이는 바로 자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추위에 떨 아기 예수님을 자기 체온으로 녹여주어서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은 반대로 이 고아 소년을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해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구중궁궐에서 나지 않으시고 마구간의 구유에서 나셨다고 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 조사를 하기 위하여 나사렛에서 선조의 고향인 베들레헴까지 80 마일 정도를 달려갔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던 로마 정부는 주기적으로 인구조사를 했는데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그랬습니다. 첫째는 세금 문제 때문이었고, 둘째는 병역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징집 면제가 되었기 때문에 순전히 세금을 부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호적 조사, 즉 인구 조사를 실시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인구 조사 문제 때문에 먼 길을 달려갔던 마리아는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문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베들레헴 땅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에 빈방이 없었습니다. 아기를 자유롭게 해산할 수 있는 아늑한 여인숙 방 하나를 구하기 어려웠다는 말입니다. 결국 본문 7절에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아기 예수님을 낳아서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여인숙의 방들은 큰 공중 마당을 마주보면서 여러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짐승의 축사처럼 생겼습니다. 대개 손님들은 자기가 먹을 음식을 가져오는데 여인숙 주인이 제공하는 것은 짐승들 먹일 사료와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땔감 정도였다고 합니다.


결국 오늘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여인숙 방도 사람들이 차고 넘쳐서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여인숙 방들이 바라다 보이는 공중 마당, 아니면 여인숙 뒤편 어딘가에 짐승들을 위해 파놓았던 작은 동굴 안에서 아기 예수님을 해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말이나 낙타에게 사료를 먹이는 구유에 아기 예수님을 뉘어 놓게 된 것입니다.


마 1: 23에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불치의 병에 걸려서 의사 선생도 희망이 없다고 고개를 저을 때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은 학생들이 시험을 치렀는데 엉망이 되어서 F학점을 받는 그 순간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나갈 때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가장 외롭고 힘들어하는 순간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사업에 실패하고 좌절할 때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자식들이 속을 썩이고 가정에 큰 위기가 닥치는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는 임마누엘이 되셔서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 예수님을 따뜻하게 만들어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의 고아 소년 미샤가 그랬던 것처럼 구유에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과 떨어지지 않고 주님 역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 어떤 순간에도 임마누엘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아기 예수님과 함께 구유에 있기를 거부합니까?


첫째로, 엉뚱한 곳에서 기쁨과 위로와 희망을 찾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술집이나 나이트 클럽, 파티나 샵핑 몰 등에서 기쁨을 찾고 위로를 찾고 희망을 찾습니다. 물론 그런 곳들이 우리에게 일시적인 기쁨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참 기쁨은 주지 못합니다. 잠시 잠깐 동안의 위로를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지속되는 위로는 주지 못합니다. 금방 있다가 사라질 희망은 안겨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궁극적인 희망은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된 곳에서 기쁨과 위로와 희망을 찾았다면 오늘 성탄절을 기점으로 해서 올바른 곳에서 찾아야 하겠습니다. 마구간의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기쁨과 위로와 희망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여러분 모두 그 구유 안에 아기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때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따뜻하게 만들어드릴 수 있고, 예수님 역시 여러분들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참 기쁨과 위로와 희망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사람들은 세상일에 너무 바빠서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님께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아기 예수님께서 누워 계신 구유에 관심을 쓸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바쁜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서 빈둥거리며 노는 사람들에 비해서는 훨씬 복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을 놓칠 정도로 바쁜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바빠서 ∼을 하지 못한다"고 핑계를 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느냐 죽느냐 하는 영적 문제에도 바빠서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것은 그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장차 예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때 우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바쁘게 살았느냐에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분주하게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던 날 여인숙 주인들을 비롯하여 세상 사람들은 전부다 세상일에 바빴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손님을 받아서 대목을 챙기겠다는 열심 하나로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아니,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마 나중에 땅을 치며 최고로 후회했던 사람이 있었다면 베들레헴의 여인숙 주인들이었을 것입니다.


만삭이 된 마리아가 빈방을 찾아 헤맬 때 "빈방 없어요!" 하고 방문을 꽝 하고 소리가 나도록 닫았을 주인들을 생각해보세요. 돈버는 일에 대목 잡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 메시아, 그리스도를 외면했습니다. 그리하여 일생일대의 최고의 축복된 일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쳐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 놈에 바쁜 것 때문에 구세주, 그리스도, 주님께서 편안하게 태어날 따뜻한 방 하나 제공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천추의 한을 남겼던 것입니다!


이제 오늘 우리는 성탄절을 맞아 차분히 구유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 구유에 들어가 예수님과 함께 거하고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사람들은 의심하기 때문에 구유에 누운 아기를 보지 않습니다. 테러의 위협이 끊어지지 않고, 미국과 이라크 사이의 전쟁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지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는 세상에 과연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가 해결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의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2천년 동안 총칼로 도저히 해결하지 못했던 일들을 평화의 왕 예수님은 단숨에 해결하셨다는 사실을! 로마는 칼로서 세계를 정복했지만 칼 때문에 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칼도 없이 총도 없이 오직 사랑과 용서 하나로 세계를 간단히 정복해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야말로 세상의 빛이시요, 소망이시요, 생명이십니다! 폭력으로 무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어딘가 누워 있는 핵무기나 미사일이 세계 평화를 보장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오직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 그 예수님이 주시는 사랑과 평화와 용서와 정의와 자유만이 진정한 세계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여러분들을 마구간의 구유로 초대하십니다. 세상의 어떤 화려하고 안전하고 영광스러운 곳이 아닌, 가장 초라한 곳 마구간으로 여러분들을 인도하십니다. 겨울 추위에 떨고 계신 아기 예수님은 여러분의 따뜻한 체온을 그리워하십니다. 여러분들이 구유에 함께 있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루만이라도 예수님께서 누우셨던 그 구유에 함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 예수님 역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영원히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