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서신

신앙생활의 제 2요소 소망, 고전 13:13

공 상희 2022. 8. 27. 10:16

신앙생활의 제 2요소 소망 / 고전 13:13

 

이 시간에는 신앙생활의 제2요소인 소망에 대해서 함께 은혜받겠습니다.
소망이라는 말은, 소원이나 꿈과 환상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비전도 소망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믿음과 사랑이 중요한 것처럼, 소망도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고 가르쳐줍니다. 심지어 성경은 비전이 없는 백성들, 꿈과 환상을 잃어버린 백성들은 망한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비전이 없이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눈을 감고 길을 가려는 사람과 같습니다. 눈 감고 길을 가면 아주 위험합니다. 무슨 사고가 날지 모르는 것입니다. 길을 가려면 눈을 떠야 하는 것처럼, 건강한 믿음 생활을 위해서는 반드시 비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망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면 완전한 절망 속에서도 회복의 비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환경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주신 소망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행 20:24에서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백합니다. 바울은 로마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하겠다는 확실한 비전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일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감옥에도 갇히고, 여러 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목숨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전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그 일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인류 구원의 비전에 사로잡히셨습니다. 그 비전을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셨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온갖 고난을 감내하셨습니다. 비전 성취를 위하여 심지어 죄인의 모습으로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은 인류 구원의 비전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럼 소망의 원칙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1. 위대한 비전을 가지십시오.
위대한 비전은 몇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 위대한 비전은 큰 비전입니다.
람은 꿈을 가져도 자기 수준에 맞는 꿈을 꾸게 됩니다. 어찌 보면 그 꿈이 진실한 것 같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자신의 능력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여 사는 생활입니다. 그렇다면 내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 수준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미래를 바라보면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꿈꿀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자기를 의뢰하는 자들을 도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81:10에 보면 나는 너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입을 넓게 열라는 말은, 큰 것을 구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큰 것을 구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는 것은, 그 당시 상황으로 보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상할 수 없는 기적들을 행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 놀라운 일을 행하셨던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백성들에게 입을 넓게 열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고, 기적으로 도우시는 하나님이시니, 쩨쩨하게 구하지 말고 크게 구하라는 말입니다.
2:8에서는 내게 구하라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크게 구할 것을 명하십니다.
성경에 나온 믿음의 사람들은, 큰 꿈을 가졌고, 그들의 꿈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꿈이 아니라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큰 꿈을 꾸십시오.

 

2) 위대한 비전은 주님의 비전과 같은 비전입니다.
주님의 비전은 이 땅에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는 비전입니다. 주님의 비전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비전입니다. 주님의 비전은 땅 끝 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비전입니다. 주님의 비전은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세계비전입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목사로서 선교사역을 했는데, 그가 가진 비전은 주님의 비전이 자신을 통해서 성취되는 것이었기에, 그의 비전은 주님과 같은 비전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역시 동일한 비전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인 사도 바울을 도와서 로마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일을 하는데 자신들의 직업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비전은 주님의 비전이었습니다.

우리가 품는 비전도 주님의 비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비전이 성취되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비전이 단지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주님의 비전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비전이 어떤 자리에 오르기 위한 비전이라면 그것도 주님의 비전이 아닙니다. 나에게 주신 직업이나 능력, 제정이나 재능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확실한 목적의식을 갖는다면 그것이 바로주님의 비전입니다.

2. 꿈과 환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십시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막연히 집을 짓는다는 생각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분명한 청사진이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꿈과 환상도 두루뭉술하면 안 됩니다. 분명한 그림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집중력도 더 생기게 되고, 기도도 분명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도,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아이가 건강한 모습을 상상하시고,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을 상상하시고, 아이가 훌륭하게 자랄 것을 상상하면서 기도하십시오. 아이가 국가의 지도자가 될 것을 상상하시고, 아이가 교회의 기둥이 될 것을 상상하시고, 아이가 세계적인 인물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을 상상하시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안되고 망할 것을 상상하며 기도한다면 현실이 안 되고 망하는 쪽으로 기울어질 것입니다. 일이 되어지고 성공할 것을 상상하면서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바라보는 대로 될 것입니다.

 

3. 꿈이 성취되도록 위대한 대가를 지불하십시오.
위대한 꿈이 현실이 되려면, 반드시 위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꿈이 큰 만큼 대가도 큰 것입니다. 대가지불을 두려워하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큰 꿈을 꾸어도 꿈이 현실이 될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꿈에 불과한 것입니다.
꿈만 꾸고 앉아있지 마시고, 작은 일부터 시작하십시오. 씨앗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숨어있습니다. 한 알의 콩을 심으면 몇 십 배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가능성이 많은 콩도 심지 않고 그대로 나두면 10년이 가도 100년이 가도 그냥 한 알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고 가꾸는 대가를 지불해야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전을 받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낮 꿈에 불과합니다. 그 이유는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3:4에 보면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으니라고 말합니다. 게으른 사람 즉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에 원하는 것, 다시 말해서 꿈꾸는 것, 소망하는 것이 있어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지런한 사람 즉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은 마음의 풍족함, 다시 말해서 마음에 원하는 것, 소망이 실제가 된다는 말입니다.

 

4. 언제나 하나님 안에 거하십시오.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말은, 성령 충만 하라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들에게 소망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15:13에 보면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십니다. 39:7에서는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합니다.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때로는 멀리 보게 하시고 때로는 가까운 곳을 보게 하시면서 인도하십니다.
  

멀리 보는 비전이 약하다고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분과 함께 가기만 하면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예를들어 “사람들이 장님을 혹여 인도하게되면, 100미터 전방에 뭐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바로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고 하고, 층계가 있으니 발을 올려놓으라고 합니다. 장님은 인도하시는 분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인도하시는 분이 성실할 때 장님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달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때, 10년 후 20년 후의 일을 말씀해주지 않으셔도, 당장에 할 일들만 지시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그분은 신실한 분이시기 때문에 가장 합당하게 목적지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내용과는 반대로, 어디로 가는지 최종 목적지는 아는데 지금 어떤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지 잘 몰라도 하나님을 유일한 소망으로 삼으면 괜찮습니다. 목적지를 아시는 하나님이 과정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아이들과 여행을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설악산까지 자가용으로 이동합니다. 아이들은 설악산으로 가는 것은 알아도, 중간 과정은 몰라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운전대를 잡은 아빠가 알아서 설악산 까지 데리고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얼마나 멀리 보느냐 얼마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느냐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하나님 안에 거하느냐 입니다. 비록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정확하게 몰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합당한 장소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5. 적극적으로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큰 꿈을 꾸고 열심히 노력 할지라도 반드시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꿈이 확실하고 초인적인 노력을 하지만 꿈을 성취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시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를 원한다면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기도하는 우리들을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지구촌 교회가 120일간 특별 새벽기도를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게 하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의 씨앗을 뿌려봅시다. 시간이 지나면 응답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될 것입니다.
기도를 하다보면, 기도응답이 확 믿어질 때가 있습니다. 환경적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마음으로 확 믿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확신이 올 때까지는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확실하게 믿어지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천사들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어지면 감사하십시오. 그렇게 믿어지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하십시오. 응답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미 역사는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는 시간의 문제입니다. 믿는 것이 이루어지기 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이루어집니다. 예를들어 풀을 뽑아 놓으면 뿌리가 뽑혔으니 죽었지만, 바싹 마르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이처럼 이미 믿은 것은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나타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해, 주님의 비젼과 같은 위대한 비젼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바라며 비젼에 맞는 대가를 치루시고 말씀 붙들고 부르짖어 기도 하시므로 반드시 품고 기도하는 비젼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