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언 강해

새벽 잠언 강해16장

공 상희 2018. 11. 16. 06:28

75,경영자의 성공수칙 (16:1-3)

 

이 시간에 경영자의 성공수칙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모든 일에 성공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산업에도, 신앙에도 영육간에 성공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성공 자는 꼭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타 우리가 성공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공하는 사람은 무언가 이유가 있고, 뭔가 남다른 데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에 대한 책들이 서점가에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부분이든 적용하기만 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수칙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경영자의 성공수칙은 무엇일까요?

 

1. 모든 일을 기도로서 하시기 바랍니다.

1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하십니다. 여기서 '경영'(마아르)은 원어상 '제어하다', '다스리다'란 뜻을 가리고 있는데,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 등, 모든 것을 동원하여 생각하고, 꾸미는 계획이나, 사상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경영은 궁구(깊이 파고들어가 연구)와 번뇌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성공자는, 자기 뜻대로 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을 응답 받고 결정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 것으로 경영 이론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하라 하시면 나도 하고, 하나님이 진행하시면 나도 진행하고, 하나님이 막으시면 진행하다가도 멈춰야 합니다.

 

46장을 보면 야곱은, 요셉이 애굽으로 오라는 말을 듣고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아들 요셉이 애굽의 총리니 더 이상 뭘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야곱은 브엘세바에 가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며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고 애굽으로 내려가라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올라 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이것이 바로 야곱의 아름다운 믿음입니다.

또 행 16장을 보면 바울이 아시아에서 선교사역을 할 때 아시아에는 사람도 많고 복음의 열매도 커서 아시아에 뜻을 품고 있었는데 마음에 성령께서 자꾸 막으십니다. 그러나 내 생각인지 모르겠다 하면서 진행하는데 자꾸만 예수의 영이 역시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대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합니다. 바울은 자기 생각을 버리고 성령에 감동에 순종 합니다. 이처럼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결과가 좋습니다. 혹시 실수해도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2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하십니다. 깨끗한 심령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는 거울이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로서 생각하고 자기로서 판단하기 때문에 대단히 주관적인 것이고 편협한 지혜롭지 못한 것이 됩니다. 어느 누가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여기 '감찰하시느니라.'(타칸)는 원어상 '무게를 달다', '공평하게 평가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만이 인간의 외적 행위는 물론, 그 내면의 숨긴 부분까지도 보시고,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진정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바벨론에 멸망했습니다. 사업을 하든 결혼을 하든 목회를 하든 무엇을 하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잘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깨끗하게 해보세요. 진정한 성공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또 자기를 깨끗하게 해보세요. 사업의 성공자가 되게 합니다. 요셉을 보세요.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성공합니다. 자기를 깨끗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형들에게 배신당했어도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 같아서는 원한 때문에 상심하여 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보디발의 처가 유혹했어도 옷을 뺏기면서라도 도망쳤습니다. 이것이 성공의 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만이 진정한 성공자가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나의 경영의 주인으로 삼아야 합니다.

3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하십니다. 여기 '맡기라'는 동사 원어로 '''굴리다', '던지다' 등의 의미로서 '전폭적인 의뢰와 위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까?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나의 사장으로 삼고 계획도 방법도 과정도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과 원하시는 뜻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와 같이 하나님을 하인으로 전락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얄팍한 마음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복 내려 주시겠습니까?

A. W. 토저의 [이것이 성공이다]라는 책에 하나님을 상대로 흥정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흥정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면, 제가 얼마를 드리겠다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이런 서원을 할 수도 있지만 큰 헌신을 위한 서원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것이라면 포기해야 합니다. 매사에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아갈 때 진정한 성공자가 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영원한 경영의 성공자이십니다. 끝없는 우주와 그 만물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경영하시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이미 성공자입니다. 이 복음을 믿고 하나님을 나의 경영의 주인으로 삼고, 하는 일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결정하고, 회개하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고, 계획도 방법도 과정도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여 진정한 성공자가 다 되시기 바랍니다.

76,악에서 떠나는 길 (16:4-6)

 

이 시간에 악에서 떠나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사랑을 받는 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 악에서 떠나는 길입니다.

그래서 요엘 선지자는 요엘2:12-13에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십니다.

 

진실로 악에서 떠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4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하십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저마다의 목적과 용도를 가지고 피조 되었다는(for his own ends, NIV)뜻입니다. 심지어는 악인도 악한 날에 쓰기 위하여 적당하게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악인들이 더 잘 될 수도 있고, 더 강성할 수도 있고, 더 형통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목적이 있어 놔두신 것입니다.

 

어떤 목적일까요?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여기 악한 날은 심판 날을 의미합니다. 심판 날에 쓰시기 위해서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지금 인간이 잘못 나간다면, 몇 번이고, 몇 천 번이고, 멸망시킬 모든 것들이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9:43-49에 예수님의 두려운 경고가 있습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뻬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하십니다.

 

악한 환경을 없애주세요.” “악인을 없애주세요.” 부르짖어도 내가 변화되지 않는 한 철회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만 알면 악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니까 함부로 행합니다.

 

2. 자기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5무룻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내 잘못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나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함께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교만입니다. 교만해서도 교만이지만, 알지 못해서 교만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월권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나쁜 사람은 멀리하고 좋은 사람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육신과 육신의 생각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나를 쳐서 낮추면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은혜가 임합니다.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3. 복음 진리에 서야 합니다.

복음이 무엇일까요?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교통하심이 복음입니다. 복음으로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6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하시는데, 여기서 인자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진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예수의 복음 외에는, 죄에서 떠나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희생적 사랑으로 죄를 용납해 주신 것을 믿고, 자기를 용납하고, 예수님께서 내 죄를 십자가에서 못 박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입니다. 이 복음 진리에 잘 서야 합니다.

그래서 갈5: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하십니다. 이미 못 박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갈등하지 말고 이건 해결된 건데,, 해결될 건데하시기 바랍니다. 해결하려고 하니까 안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미 해결된 것이다. 해결 되었다는 진리에 서시기 바랍니다.

 

4. 그리고 늘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6절 하 반절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하십니다. 여기 '떠나게 된다'(수르)는 원어적 의미는 '떠나다'란 의미 외에 '쫓아버리다'란 적극적인 의미도 함축되어 있는 낱말입니다. 악에서 돌이켜 떠날 정도가 아니라 악을 쫓아낼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악이 나에게서 도망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자신에게서 악을 떼어내기 얼마나 힘듭니까? 그런데 떼어낼 정도가 아니라 도망치게 만드는 법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하십니다.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사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예배하면 나에게서 악이 도망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성령이 강하게 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임하셔야 죄가 떠납니다. 연약함도 떠납니다. 부족함도 떠납니다. 왜 다윗이 위대합니까? 늘 하나님을 찬양했기 때문입니다. 왜 초대교회가 위대합니까? 늘 하나님께 예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면 악이 달아납니다. 슬픔과 탄식도 달아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지만 영원토록 영원토록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는 분이셨지만 죄가 없으십니다. 온전히 악에서 떠나 계셨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자기 교만을 깨닫고 복음 진리에 서고 늘 하나님을 경외하심으로 온전히 악에서 떠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77,진정한 성공 (16:7-9)

 

이 시간에 진정한 성공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성공[成功]이 무엇일까요? 사전적인 뜻은 목적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 성공입니다. 과연 많이 갖고 원하는 것을 다 이뤄야 성공일까요?

 

랄프 왈도 에머슨은 <'성공'에 대한 정의>라는 책에서, 성공을 몇 가지로 말했습니다. 요약해 말씀드리면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총명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 아이들의 애정을 받는 것, 솔직한 비평가들의 칭찬을 받는 것, 거짓 친구들의 배신을 참고 견디는 것,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 한 평의 정원. 그대가 있었기에 한 생명이라도 좀 더 수월하게 숨을 쉬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이런 것이 성공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럼 잠언이 말하는 성공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7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결과가 이렇게 위대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명령을 따라 순전하게 산다는 의미입니다. 제사보다 순종이 낫다고 했지요? 하나님은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함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런 분이셨습니다. 8:29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이것이 성공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노력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신다면 성공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약속이 그것입니다.

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신다면 다른 나머지는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8:32) 하셨습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 교회가 가장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가 기뻐할 온갖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결론은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입니다.

 

2. 범사에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8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하십니다. 여기서 공의”(체데크)'도덕적, 법적 의미에서의 깨끗함'을 가리킵니다. 죄를 버리고 의를 붙드는 것이 성공입니다. 죄에 속한 자는 어리석습니다.

그래서 골3:5-6"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했습니다. 죄를 붙들면 진노가 오고 죄를 버리면 복이 옵니다.

사람들은 많이 가져야 성공인 줄 알지만, 어떻게 물질을 획득했고,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 때문입니다. 범죄하여 얻은 재물은 내 인생은 물론 자손의 인생과 많은 사람들까지도 망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어느 부자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술을 만드는 양조장을 건축했습니다. 그래도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했는지 준공식을 할 때 유명한 부흥사 무디를 초청해 축복해주시기를 요청했습니다. 무디가 온다고는 했지만 너무나 바쁜 분이어서 참으로 올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감사하게도 무디가 준공식에 왔습니다.

준공식을 위해 무디가 성경을 읽고 설교하고 기도를 하는데, 글쎄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 아버지, 이 양조장 당장 망하게 해주세요. 이곳이 술을 만들어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장소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집이 되게 해 주옵소서." 모두들 놀라서 양조장 주인의 얼굴을 조심스레 살펴보았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라면 무디를 향해 서운한 감정을 가졌을 텐데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하나님께 묻지 않고 양조장을 열었던 것에 대해 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즉시 양조장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예배당을 건축했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가 운영하던 사업장에 놀라운 형통을 부어주셨다고 합니다. 술 팔아서 돈 벌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딤전6:17-19에서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제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하십니다. 죄를 멀리하고 의를 취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과 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성공입니다.

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하십니다. 이 구절 잘 해석해야 합니다. 이 구절은 이렇게 해석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람이 계획하지만 그 걸음을 확고히 해주시는 분은 여호와시다.’ 그러나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하늘과 땅의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바른 의미는 사람이 여러 가지 자기 길을 계획하지만,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걸음을 결정하시고, 지시하시며, 인도하신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계획하지만 성령께서 그 걸음을 막으시고 유럽으로 돌리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꾸만 막으시면 진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법궤가 진행하면 이스라엘도 진행하고 법궤가 멈추면 이스라엘도 멈췁습니다. 인도한 대로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불순종하면 고통이 따라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막으시는데도 갔다가 적에게 얼마나 크게 당했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성공입니다. 자기 주관이 너무 강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는 것이 가장 편하고 형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1:8"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관적인 일에는 늘 여쭈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성공은 늘 하나님의 뜻대로 했고, 하나님께 늘 물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인류 구원을 이루신 최고의 성공자이십니다. 주님은 아버지를 가장 기쁘시게 해드렸고, 언제나 의로우셨고, 아버지의 인도하심대로 사셨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고, 의로운 길을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아, 살아가는 가장 성공적인 삶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78,권능의 사람 (16:10-12)

 

이 시간에는 권능의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왕은 권능의 상징입니다. 왕에게는 권세도 있고 능력도 있습니다. 부럽습니까? 부러워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에게도 왕적 권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왕이라고 다 같진 않습니다. 다윗과 같은 강력한 왕이 있는가 하면, 미약한 왕이 있어요. 우리 영적 권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어떻게 강력한 권능의 사람이 될까요?

 

1. 진리에 서시기 바랍니다.

10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의 입이 그르치지 아니하리라하십니다. 솔로몬이 재판을 잘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고 말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하나님의 말씀'(케셈)은 원어상 '신탁적 예언이나 결정'을 가리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중요한 하나는 신탁입니다. 신탁이란 하나님이 맡기셨다는 뜻입니다.

 

곧 신정국가에서의 왕은 절대적인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통치권을 위임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권위나 말도 보통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세웠다는 확신은, 왕의 위치를 견고히 하는데, 가장 기본이 된 이념입니다.

이걸 확대해석해서 풍년만 되어도 하나님이 이 정부를 받으시고 복을 주셨다고 합니다. 재난만 비켜가도 하나님께서 이 정부를 특별히 사랑해서 비켜가게 해 주셨다. 반대로 재난이 생기면 통치자를 잘못 뽑아서 그런 것이다 그렇게 옭아 씌우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통치자는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13:1-2"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삼상2:7-8에도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하십니다.

 

우리의 영적 권능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권능을 신탁하셨습니다. 16:17-20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이 진리에 서야 합니다. 이 진리를 주장해야 합니다. 이 진리를 거듭거듭 주장해야 합니다. 나에게도 권능을 주셨다. 나도 예수 이름으로 명령할 수 있다. 이 진리에 서서 행할 때 영적 권능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샤머니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능력 없다고 의기소침하지 말고 우리는 예수 믿는 자이기 때문에 나에게도 능력을 주셨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서기기 바랍니다.

 

2. 질서를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11공평한 저울과 접시저울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다 그가 지으신 것이니라.”하십니다. 공평한 저울(펠레스), 일반적으로 무게를 달 때 쓰는 저울이고, ‘접시저울’(모젠)은 두 개의 접시를 가진 '천칭'(balance)을 가리킵니다. 본 절은 고대사회에서 속임수가 횡행하던 비도덕적인 상행위를 염두에 둔 교훈으로, 이런 공정한 상행위는 하나님의 엄중한 율법에 속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저울은 속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내신 것이요, 하나님의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0절부터 15절까지 왕에 대한 교훈인데 갑자기 11절의 상행위가 삽입된 이유가 뭘까요? 왕도 질서를 존중하라. 질서를 존중할 때 비로소 거기에서 권능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율법을 존중했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헌법입니다. 왕이 헌법을 범하면 그의 권세는 크게 반감합니다. 정치란 필요한 때는 초법적일 필요가 있다 해서 법을 악용한 일들이 많은데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게 되면 그 권위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법과 원칙을 존중한다는 것은, 알고 보면 무서울 정도로 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반론하거나 대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 서두르지 말고, 법과 원칙대로 풀어나가면 거기서 상상할 수 없는 힘이 나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존중해야 합니다. 겸손의 질서를 존중하세요. 하나님 나라는, 크고자 하면 낮아지고, 섬기고자 하면 높아집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큰 은혜를 주십니다. 절대 하나님에게 순종하시고 월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를 존중하세요. 벧전5:5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능력 받았다고 뭘 안다고, 교회 무시하고 하나님의 종들 무시하면, 잘못 받았거나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진정 성령을 받았다면 질서를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정확해서 이 질서를 위배하면서까지 그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3. 성결함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12악을 행하는 것은 왕들이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하십니다. 이 구절은 통치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구절입니다. 통치자가 뇌물이나 도덕적 윤리적으로 약점 잡히면, 힘을 쓰지 못합니다. 하늘을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 위치에 있어도, 윤리적인 범죄가 드러나는 순간, 그 권세는 땅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약점은 물론 누구의 뇌물도 받지 않았다, 더욱 그 권좌는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 눈치 볼 이유가 있습니까? 자기 하고 싶은 일 다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성결해야 합니다. 늘 자기를 말씀과 성령으로 씻고 새롭게 하면 하늘의 권능이 임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기도문도 하지 않고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기도를 하지 않는답니다. 보혈로 말미암는 완전한 속죄의 시대를 살면서 무슨 그런 기도냐고, 하지만 속죄에는 영원한 속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했으면 용서를 구해야 하는 면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몸은 이미 씻었으니 발 밖에는 씻을 데가 없다고 하시면서 발을 씻기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발 즉 현재 내 심령도 씻어야 합니다.

 

영원한 속죄를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믿는다면 구원파입니다. 구원파식으로 믿으면, 야고보서 4장이 들어갈 틈이 없어요. 4:8-10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하셨습니다.

 

법적인 의로움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 성령으로 말미암은 변화까지 믿으시기 바랍니다. 항상 성결함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범죄했으면 은혜의 해가 지기 전에 깨닫는 즉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철저히 죄와 나를 분리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슬퍼할 뿐 아니라, 미워하는 데까지 나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고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주신 영적 권세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고 행해야 권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겸손하고 사랑하고 경배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늘 세속과 분리 되어 성결함에 거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영권이 더욱 강하게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79, 은혜가 임하는 기도 (16:13-15)

 

이 시간에 은혜가 임하는 기도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우리가 잘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기도입니다. 기도를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의 응답이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기도자의 자세입니다.

 

본문이 교훈하듯 올바른 신하와 같이 해야 합니다. 왕정 하에서 왕은 신하나 백성에게 절대적인 것입니다. 왕이 선정을 하면 나라가 평안하지만, 왕이 악정을 베풀면 백성들이 큰 어려움에 처합니다. 그런데 왕이 선정을 잘하려면, 신하의 역할이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럼 어떤 기도여야 은혜가 임할까요?

 

1. 진실한 기도입니다.

13의로운 입술은 왕들이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하게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리라하십니다. 여기 의롭고 정직한 입술은, 충신의 입술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공의롭고 합당한 진언을 올리는 신하를 말합니다. 참으로 귀한 신하입니다.

 

충신과 간신의 다른 점이 그것인데, 간신은 왕이 듣기 좋은 것만 골라서 말하지만, 충신은 왕이 올바로 판단하도록, 사실대로 진언하여 그것을 듣는 왕으로 하여금 올바른 판단과 치리를 행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신하가 어떻게 보고하느냐에 따라 왕은 현명한 자가 되기도 하고, 바보가 되기도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을 왕만 모르게 됩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왕에게 욕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하의 역할이 지대합니다.

 

이처럼 은혜로운 기도자는 진실한 기도를 드리는 자입니다. 진실한 기도는 먼저 마음의 기도입니다. 마음에서 나온 기도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눈물의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만 마음 없는 기도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바리새인과 같이 외식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사람을 의식한 기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용이 무슨 소리인지 자기도 모를 중언부언의 기도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 아시지만, 우리 입장에서도 상황을 자세하고 소상하게 아뢰는 기도여야 합니다.

 

2. 회개하는 기도입니다.

14왕의 진노는 죽음의 사자들과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쉬게 하리라하십니다. 왕을 화나게 만들면 안 됩니다. 왕의 진노는 살육의 사자와 같습니다. '사자'(말르아케)는 복수형으로, 여기서는 여러 집행관을 의미합니다. 즉 왕의 진노를 유발시킨 죄인은, 용서란 있을 수 없고, 형의 집행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혜로운 죄수는, 잘못을 깨닫고 왕께 잘못을 빌어 왕의 진노를 쉬게 합니다. 여기 '쉬게 하리라'(예카 프레나)는 원어상 '덮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왕의 진노를 유발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일어난 진노도 지혜롭게 가라앉히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은혜로운 기도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회개의 기도입니다. 3:5-6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하시 니다. 이 진노를 잠재울 방법은 회개밖에 없습니다.

 

28:13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하십니다. 회개하면 긍휼히 여기시고, 회개하면 사랑해주시고, 회개하면 치료해 주시고, 회개하면 유쾌한 은혜를 주시고, 회개하면 가장 기뻐하시고, 자녀의 권리를 회복하시고, 하늘의 상을 주십니다.

 

3. 기쁘시게 하는 기도입니다.

15왕의 희색은 생명을 뜻하나니 그의 은택이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하십니다. 왕의 희색’(페네)이란 '얼굴의 빛'이란 뜻입니다. 얼굴이 그 사람의 내면을 대변한다는 왕의 마음이 지극히 평화롭고 충족해 있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왕이 기쁘게 할 때 어떤 일이 있습니까? 그의 은택이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합니다. 여기 '늦은 비'는 팔레스틴 지방에서 3,4월경에 내리는 비로 추수기의 곡식을 여물게 하는 복된 비입니다. 이와 같이 왕의 생명을 구한다든지, 왕을 기쁘게 하면, 왕이 할 수 있는 모든 은혜와 혜택을 베풀어줍니다. 바벨론왕이 다니엘을 존귀하게 함과 같이, 아하수에로 왕이 모르드개를 온갖 존귀로 높임 같이 하해와 같은 사랑을 베풀어 줍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기쁘심이 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기뻐하시는 기도는 사랑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한 기도입니다. 구원하는 기도입니다. 축복하는 기도입니다. 희생하는 기도입니다. 악의 세력과 싸우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사역을 감당하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여기 늦은 비는 성령의 상징입니다. 그런 기쁨의 기도를 드릴 때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십니다. 내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기도가 아니라,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기도할 때, 진정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모범대로 기도한 초대교회는 은혜로운 교회가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방법도 좋지만 먼저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진실한 기도, 회개의 기도, 기쁘시게 하는 은혜가 임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80,완전한 복 (16:16-17)

 

이 시간에 완전한 복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어떤 것이 완전한 복일까요? 예를 들면 요한 32절 같은 복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과 육체와 모든 삶이 복을 받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서 극대 극의 인생을 발견합니다. 부자는 육신만 잘 되었지, 영혼의 복은 없습니다. 반대로 나사로는 영의 복은 받았으나 육신의 복은 받지 못했습니다. 극대 극입니다.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거지 나사로 편을 택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완전한 복은 아닙니다.

 

그럼 완전하고 균형 잡힌 복은 어떻게 올까요?

 

1.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자에게 옵니다.

16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하십니다. 금이나 은보다 지혜와 명철을 얻는 것이 더 낫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혜와 명철이 얼마나 좋고 그리고 더욱 나으면 이렇게 감탄형으로 표현했을까요? 이것을 체험한 사람이 본문의 잠언을 지은 솔로몬입니다.

 

왕상3:10-14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하십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구한 지혜란 무엇입니까? 단순한 지혜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솔로몬이 말하는 지혜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왕 직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는 사명에 대한 간구였습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그 사명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택한 나라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백성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잘 다스리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관계된 기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6: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육신에 속한 것보다, 영에 속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영혼은 물론 육신에 속한 것까지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17: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하십니다. 예수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영접할 때 천국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또 성령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성령의 은혜 속에 사는 것이, 천국을 더욱 풍성히 누리는 것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북미와, 남미를 비교해보면, 남미가 지하자원도 풍부하지만 북미에 비해 가난하기 짝이 없습니다. 북미는 미국 캐나다 등 세계적인 초강대국이지만, 남미는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남미에 황금을 구하려 왔지만 그들은 신앙도 황금도 다 잃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청교도들은 북미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왔지만, 그들은 신앙도 얻,고 황금도 얻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했더니 다 주시더란 말입니다. 예수 잘 믿고 하나님 잘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완전한 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2. 완전한 복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옵니다.

17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이니 자기의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하십니다. 간략히 말하면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면, 하나님께서 그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 대로는 그냥 큰 길이 아닙니다. “대로”(메실라)'격찬하다'란 뜻의 '살랄'에서 나온 말로 '(특별하게 잘 포장된) 넓은 길'을 가리킵니다. 얼마나 길이 좋으면 격찬하다는 단어에서 이 말이 나왔을까요.

대리석으로 포장되었는지 화강석으로 포장되었는지 모르지만, 특별하게 포장되어 사람들이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호랑이 여우나 다니던 산에, 고속도로가 나서 씽씽 달리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처럼 악을 떠나면 큰 길이 열립니다. 인생이 달라집니다. 하늘과 땅의 형통의 문이 열립니다. 그러나 죄를 버리지 못하면 앞길이 막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볼 때 의로운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즉 칭의와 성화(성결)입니다. 즉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예수 안에 은혜일뿐 아니라, 말씀과 성령 안에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경의 거울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완전한 복을 받는 길입니다. 그래서 요일3:3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하십니다.

 

솔로몬의 아쉬운 점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복을 주시고 추가적인 복을 부언하셨습니다. 왕상3:1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그러므로 이것을 계속하여 구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잘 나가다가 하나님의 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왕국이 쇠퇴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버지 안에, 예수 안에, 성령 안에 완전한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완전한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완전한 복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자에게 옵니다. 완전한 복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 잘 경외할 뿐 아니라. 말씀과 성령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져, 하나님께서 우리와 온전히 함께 하시는 가장 복된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1,겸손의 중요성 (16:18-20)

 

이 시간에 겸손의 중요성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성자라고 칭함을 받는 어거스틴이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신앙에서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어거스틴이 410년경에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스코루스(Dioscorus)가 교황이 되었을 때 쓴 편지에 했던 말입니다. 겸손이 얼마나 중요하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을까요?

 

겸손이 중요한 이유는?

 

1. 겸손하면 실족하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18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하십니다. 여기 교만이 나오는데 교만[驕慢]의 사전적인 의미는 잘난 체하며 겸손함이 없이 건방짐입니다.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우쭐대는 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자신이 한 것처럼 영광을 받으려고 하거나, 제 맘대로 월권하는 것도 교만입니다. 스스로 심판주가 되어 남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것도 교만입니다.

 

겸손은 이와 반대입니다. 그리고 결과도 반대입니다. 그래서 잠18:12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18절을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겸손은 성공의 선봉이요 낮추는 마음은 일어남의 앞잡이니라놀라운 말씀입니다. 성공하고 싶으면 겸손부터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겸손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실족하지 않습니다. 시험이 그 마음에 파고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17장에 예수님께서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2) 하시자, 사도들이 놀라 예수님께 믿음을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겸손을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말씀을 하셨습니까?

17:7-10을 보면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하십니다. 겸손하면 영원히 실족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2. 겸손하면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19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하십니다. 여기 '겸손한 자'(아나임)의 원문의 의미는 '가난한 자'란 뜻으로 가난하고 천대받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낮추는'(솨팔)'내리누르다', '가라앉히다'란 뜻으로, 자기를 낮추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겸손은, 자기를 낮춰 존재감 없는 자들과 자신을 동류로 여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를 높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요즘 자기 PR시대라고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이 자기를 자랑하고 높입니다. 또 그래야 알아주기 때문입니다. 성공하려면 튀어나야 한다고 엉뚱한 사건을 저질러 세인의 관심을 받으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 노력해도 겸손한 사람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그 결과를 탈취물을 나누는 자에 비교합니다. 탈취물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참여한 군인들이 패전국의 부요를 나누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병사들이 나누는 탈취물은 의식주에 필요한 정도는 아주 하찮고, 보통 금 은 보석을 비롯해 온갖 아름다운 보물들을 취하게 됩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생명을 담보로 한 그 멀고 험한 전쟁터에 자원하여 나갔습니다. 겸손하면 그것보다 더 풍성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를 위해 예비하신 복은 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4:6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하셨습니다. 29:23에도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147:6에도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겸손에 대한 말씀은 많아 다 소개할 수 없습니다. 100% 은혜와 복을 받는 길은 겸손입니다. 겸손할 때 받는 은혜와 복은 셀 수가 없습니다.

 

3. 겸손하면 좋은 것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20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하십니다. 20절은 말씀에 관한 것이지만, 겸손으로도 분류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겸손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가 성경에 있습니다. 2:3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여호와의 규례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겸손입니다. 이런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일까요?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지혜도 되겠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 했으니 하늘의 신령한 복이며, 11:13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하셨기 때문에 성령이기도 합니다. 겸손하면 가장 귀한 것을 한량없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면서도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가장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무릎을 그 앞에 꿇게 하시고 주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성령은 겸손의 영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그렇게 겸손해질 수가 없어요. 우리 모두 실족하지 않고, 큰 은혜를 받으며, 온갖 좋은 것으로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 진실로 겸손을 구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82,경외함이란? (16:20-21)

 

이 시간에 경외함이란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애들러' 박사는 그에게 찾아온 우울증 환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두 주간만 나의 처방을 따른다면, 당신은 건강하게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매일매일 어떻게 하면 남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를 궁리해서 그걸 실천하면 됩니다.'

 

값비싼 약이나 까다로운 처방을 내릴 것을 기대하고 찾아온 많은 환자들은 그들 대부분 이 싱거운 처방에 크게 실망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처방을 따른 사람에게는 당장 특효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남을 돕고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전했더니 우울증이 없어졌습니다. 사람을 사랑해도 복이 오는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면 그 결과가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엇일까요?

 

1. 경외함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하는 것입니다.

20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하십니다. 여기서 '말씀'(다바르), 곧 하나님의 율례와 계명을 가리키며, '주의'(마스킬)한다는 것은 '신중하게 행동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경외함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귀히 여겨 삼가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씀 경외가 하나님 경외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 두 낱말을 자주 혼용하거나 동격으로 취급했습니다. 112:1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라 했습니다. 그리고 시119:161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말씀을 경외하는 이유가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말씀 영접이 하나님과 그 아들을 영접함입니다. 1:12 말씀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그래서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했을 때 경외한다 했습니다. 22:12입니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른을 섬길 때 말을 무시하면서 경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여러 면에서 잘해 줘도, 말을 무시하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늘 사모하시고, 읽으시고, 마음에 깊이 두시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2. 경외함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20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하십니다.

여기 또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라 했습니다. 믿어야 경외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노아가 하나님을 경외했고, 그 말씀에 순종했는데, 이것을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11:7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하십니다. 경외함과 믿음은 이렇게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쉽게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을 얼마나 무시하면 그 말씀을 무시할까요? 믿느냐 못 믿느냐 이것은 단지 확신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목이 아프게 말씀하셔도 듣는 둥 마는 둥 한다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13:13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하십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고, 떠시기 바랍니다. 마귀도 믿고 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말씀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십시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사랑하는 것이요, 의롭다 인정함을 받는 것입니다(4:5).

지금 이 시간에 다시 한 번 결심하세요. “성경은 100% 믿는다.”이성으로 이해가 안돼도, “그래도 믿습니다.”로 결심하시고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이길 힘은 믿음입니다. 표적만 구하면 믿음이 아닙니다. 표적은 있을 때도 있지만 없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 손에 잡히는 것 없고, 막막해도 하나님이 계시고 말씀이 변함없으니 믿습니다 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고 우리 앞에 산도 무너지고 홍해도 갈라질 것입니다.

 

3. 경외함이란 입술에서 말씀만 오는 것입니다.

21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철하다 일컬음을 받고 입이 선한 자는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하느니라하십니다. 여기 '학식'('레카흐')'받아들여진 교훈', '가르침'이란 뜻으로, 입에서 진리가 나오는 자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세상 말을 절제하는 자입니다.

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예외는 있습니다. 거짓입술입니다. 15:8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거짓입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입술을 제어하고 항상 말씀에 입각해서 말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벧전3:10-11에서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했습니다

 

그리고 벧전4:11-12에서는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이처럼 입술을 새롭게 함이 하나님을 경외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매일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것도 경외이지만 말씀을 사모하고 삼가 듣고 귀히 여기고, 그 말씀을 믿고 행하며, 입술로 말씀을 말하고 믿음을 말하는 것이 경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잘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은혜 받고 복 받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83,건강의 비결 (16:22-24)

 

이 시간에 건강의 비결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거고, 명예를 잃으면 더 많이 잃는 거고,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조금도 틀리지 않는 말입니다. 그만큼 건강이 중요합니다. 믿음보다 귀한 것은 아니지만, 건강을 잃으면 보이는 이 세상에서는, 그것이 끝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회개하여 죄를 피해야 합니다.

22명철한 자에게는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되거니와, 미련한 자에게는 그 미련한 것이 징계가 되느니라하십니다. 여기 징계가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징계합니까? 미련한 사람입니다. 미련이 무엇일까요?

미련이라는 용어가 두 번 나오는데, 용어는 같지만, 앞의 미련과, 뒤의 미련의 의미가 다릅니다.

 

앞의 미련은 죄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미련한 자란 죄인입니다. 그러나 뒤의 미련은 지능 아이큐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살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미련퉁이처럼 실수를 저질러, 엉뚱한 일을 저지르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잘못인 것 같아도 하나님의 채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징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2:15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하십니다. 죄가 미련입니다. 천하의 미련한 것이 죄 짓는 것입니다. 평안하려면 죄를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을 온전케 하시기 위하여 채찍질하십니다.

그래서 약5:16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하십니다.

별 수단 방법 많아도 하나님께서 치시면 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돌이켜 명철하게 사십시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세요. 주를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몸까지도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2. 지혜와 지식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23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의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의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하십니다. 이 구절에 대한 주석적인 해석은,지혜를 그 내면 깊이 새기고 수용한 자는 자신의 말을 때와 장소에 맞도록 신중하게 숙고하여 시의 적절하게 구사함으로써 타인에게 덕을 끼친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좋은 지혜와 지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몰라서 도움 받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건강에 유익을 주는 지혜로운 말과 지식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는 다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쉽습니다. 문제는 알지 못해서 그렇지 알고 나면 쉽습니다.

 

요즘은 의사를 하나님 삼고 의사만 바라보고 있는데 의사가 잘하는 것도 있지만 못하는 것도 많습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을 오진하여 수술해 절단하고 가벼운 증상도 약 투여해서 영구 환자 만들기도 합니다. 건강한 사람을 암환자로 오인해서 항암제 맞히면 살 사람도 죽습니다. 세상을 평안하게 살려면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121:7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하십니다. 정말 도움이 되는 지혜와 지식을 소유하고 사랑할 때, 우리의 앞날에 환란이 많이 감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마음을 열어놓고 배우고. 아주 모르겠으면 하나님께 여쭈어 보시기 바랍니다..

 

3. 늘 말씀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24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하십니다. 여기 선한 말”(이므레 노암), 문자적으로 '유쾌한(즐거운) '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양약”(마르페)은 원어 상 치료하여 건강을 회복시키는 것뿐 아니라, 그 건강을 지속적으로 보존하는 것까지를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곧 선한 말은 듣는 이의 영혼과 육체에 약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늘 긍정적이고 유쾌하게 살아야 합니다. 세계 3대 장수촌이 있지요? 코카서스 산맥 흑해 동쪽 연안에 자리 잡고 있는 압하지아, 전체 인구가 15만 명밖에 안 되는데, 백세 이상 노인이 2천명이나 됩니다. 다음에는 티베트 히말라야 인근 파미르 고원 아래에 있는 훈자공화국, 훈자는 평균 연령이 백세가 넘고 남자는 90, 여자는 70세에도 임신이 가능하다고 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에콰도르의 빌카 밤바가 장수촌입니다. 이런 마을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고산지대의 깨끗한 공기, 풍부한 비타민과 미네랄 물질을 함유한 좋은 물, 그리고 해가 뜨면 노동하고 해가 지면 곧바로 잠드는 규칙적인 노동. 식사는 가공하지 않는 천연재료, 때문에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가 없답니다. 장수마을의 대부분은 대가족제도에다 노인의 권위를 인정하는 문화가 발견되는데 가족들은 노인들을 존경하고 노인들은 가족들을 사랑하고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웃고 늘 낙천적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가 있더라도 스트레스를 피하시기 바랍니다. 젊을 때는 스트레스 받아도 이겨내지만 나이 들면 스트레스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스트레스 받지 않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다시 24절을 보십시다. 24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하시는데. 선한 말이 뭘까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모든 신앙과 삶의 기초가 됩니다. 그러므로 늘 성경을 보고 늘 성경에서 은혜를 받으면 스트레스 받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의 질고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도 육체도 강건하길 원합니다. 최고의 약은 회개입니다. 최고의 약은 지혜입니다. 최고의 약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회개하여 죄를 피하시고, 지혜와 지식의 건강의 비결을 배우시고, 늘 선한 말씀으로 충만하여 스트레스 받지 않고 기쁨으로 살아 영육 간에 평안하고 강건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4,사망의 길 (16:25-27)

 

이 시간에 사망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사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는 좋은 사망과 나쁜 사망이 있습니다.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은 사망은 좋은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와 함께 죽었고, 예수 안에서 새 사람이라는 믿음 가지고,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그런데 본문이 경고하는 사망은 나쁜 사망입니다. 그것도 바른 길 같이 그럴듯하면서도, 사망의 길로 인도하는 아주 교묘하고 간사한, 자세히 보고 결코 속아서는 안 될 사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하십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조심하고 분별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럼 어떤 것이 사망의 길이 됩니까?

 

1. 하나님 없는 근면은 사망의 길입니다.

25고되게 일하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근면한 사람입니다. 근면[勤勉]이란, 부지런히 일하며 힘쓰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근면 속에도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근면에 대해서 나쁘게 평하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노동은 신성하다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제주도 속담에 손이 놀면 입도 논다.” 프랑스 속담에는 근면은 행운의 어머니다.”라는 말이 있고, 독일 속담에는 어려움이 근면을 만든다.” 연단 받아 일군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성경에도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게 하라.” 잠언 31장에 현숙한 여인은 부지런한 여인이라, 게으름에 대해서 책망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24:33-34 “네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열심히 일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겠습니까?

그러나 근면 속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근면입니다. 주일성수할 시간이 없고, 예배할 시간이 없고, 기도할 시간이 없는 근면은, 사망의 근면입니다. 근면이 지나치면 육신도 망가질 뿐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할 시간이 없다면, 그 심령은 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잠을 자지 못할 만큼 일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부지런하면 어느 정도 발전하다가 멈춥니다. 연구하고 준비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감을 받을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길이 사람이 보기에 바르지만 필경은 사망의 길입니다.

 

2. 절제 없는 본능도 사망의 길입니다.

다시 25식욕으로 말미암아 애쓰나니 이는 그의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하십니다. 일하면 밥맛이 좋지요? 시장이 반찬입니다. 이것은 본능을 말씀한 것입니다. 본능이 활발하다면 좋은 일입니다.

 

인간에게는 식욕 성욕 명예욕 권세욕 등 여러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능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본능이 없다면 어떻게 생존하고 어떻게 종족이 보전되고 누가 나서서 일하겠습니까?

무조건 배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와 명예도 나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명예를 걸고 노력하는 모습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범주를 넘어서서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벗어난 것입니다. 범주를 넘어서 월권할 때 잘못이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범주를 벗어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준비를 해야지 죄 지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롬8: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했고. 3:5-10에도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경고하고 있습니다.

젊음도 죄가 아니고 본능도 죄가 아니되 조심하지 못하면 사망의 길인 것입니다.

3. 잘못 관리하는 양심도 사망의 길입니다.

27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같은 것이 있느니라하십니다. 불량이란 양심 불량을 의미합니다. 양심이 불량해서 남을 해하려고 거짓으로 모해하는 그 입술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불의 위력처럼 타인은 물론 자신에게까지 해를 입히게 될 것이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주신 하늘의 선물은 양심인데 양심관리 잘해야 합니다. 양심은 마음의 율법이요,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에 양심을 거슬리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슬리는 것입니다.

 

양심은 너무 무뎌서도 안 되지만 너무 예민해서도 안 됩니다. 너무 무디어 죄가 죄인 줄 알지 못하거나, 너무 예민해서 죄 아닌데도 죄로 여기면 심히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롬14:22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하십니다.

 

죄 아닌 것도 죄로 여기게 되면 우리 심령이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무척 양심적인 것 같지만 사망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우리 양심이 무디기를 원하지만 반대로 예민하기도 원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정죄감에 빠져 사망 가운데 살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사탄의 일입니다. 12:10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라고 했습니다. 선한 양심 속에 믿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잘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살되 잘 분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없는 근면은 사망의 길입니다. 절제 없는 본능도 사망의 길입니다. 관리 잘못하는 양심도 사망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하여 오직 한 길, 오직 예수, 오직 말씀의 정도로만 걸어가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85,사탄이 하는 일 (16:28-30)

 

이 시간에 사탄이 하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17세기 중반에 로버트 훅과 레벤후크 등에 의해 미생물의 존재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세균의 존재조차도 몰랐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피해를 당했겠습니까? 페스트나 천연두나 각종 열병으로 수백 수천 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러다가 1928년 스코틀랜드 생물학자였던 알렉산더 플레밍에 의해 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이라는 항생제를 발견하게 되고, 세균 치료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처럼 세균에 비할 수 없이 악한 자 사탄은 존재하며 이 사탄의 존재와 활동과 대비책을 우리가 더 빨리, 더 잘 알수록 좋습니다.

 

그럼 사탄은 어떤 일을 할까요?

 

1. 사탄은 거짓말을 일삼습니다.

28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여기 패역이란 주석에 보면 진리를 감추고 거짓을 일삼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탄이 하는 일도 이와 같습니다. 8:44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하십니다. 유대인들이 양심을 거슬려 거짓말을 많이 했는데, 아비 사탄을 닮아서 그런 것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사탄은 닮지 마시기 바랍니다.

 

11:2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여기 모략이 나오는데 그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11:2의 모략은 히브리어로 에짜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충고, 계획, 신중함, 방책, 조언, 계획, 사려, 분별, 고문 등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지혜를 제공하고 상담하는 카운슬러를 가리킵니다. 제갈공명 같은 보혜사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성령이 예수님께 임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이단에서는, 영적전쟁이므로 모략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면서, 온갖 거짓과 위장술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양심과 상관이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짓이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2. 사탄은 이간하는 일을 합니다.

28말장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하십니다. 여기 말장이”(니르간)'수다장이', '중상모략하는 자', '남의 말을 하는 자'란 뜻입니다. 화평케 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이를 이간시킵니다. 이것이 사탄이 하는 대표적인 짓입니다.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욥을 이간하는 것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하시니까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하면서 이래저래 복을 주시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까? 하면서 이간시킵니다.

 

손자병법에서 상대를 가장 쉽고 크게 이기는 방법은 이간계(離間計)라고 했습니다. 이간계란 같은 편끼리 이간시켜 서로 싸우게 하여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계략을 말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이간질하는 자는 사탄의 자식입니다. 마음에 악이 있고 미움 시기 질투가 있기 때문에 이간합니다. 거짓말 하나 하지 않고도 남을 해칠 수 있어요. 그것은 좋은 일은 모두 빼고 나쁜 일만 말하는 것입니다. 진실된 말만 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남을 해치는 일입니다.

 

그것이 말세의 현상입니다. 사랑이 식어 분쟁합니다. 그래서 성도끼리 분쟁하고, 직분끼리 분쟁하고, 교회끼리 분쟁하고, 교단끼리 분쟁하고 싸웁니다. 분쟁하고 갈라지고 미워하고 여기다 모든 것을 소비하고 더 큰 영적 전쟁을 알지 못하고 여기다 여력을 상실한다면 사탄에게 속은 것입니다. 이렇게 사탄은 이간하는 일을 합니다.

3. 사탄은 미혹하는 일을 합니다.

29강포한 사람은 그 이웃을 꾀어 좋지 아니한 길로 인도하느니라하십니다. 꾀어서 좋지 않는 길로 인도하는 것을 미혹이라고 합니다. 12:9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온 천하를 꾀는 자가 사탄입니다.

 

얼마나 미혹하는 힘이 강하든지 논리면 논리로 압도하려고 하고, 체험이면 체험으로 압도하려 하고, 쾌락이면 쾌락으로, 무력이면 무력으로 압도해서 사람을 꾑니다. 주님이 붙드시지 않으면 여기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신학자들이 더 학문적인 것 같고 더 논리적인 것 같고 더 논문도 많고 학위도 더 많습니다. 이단들이 더 성경을 많이 이야기해 성경적인 것 같지만 문제는 결론이 나쁩니다. 속된 말로 삼천포로 빠져버립니다. 꼬리 즉 결론이 잘못된 것이 이단입니다.

 

고후11:14-15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이건 사탄과 사탄의 일꾼들이 보통 하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WCC의 문제점도 여러 종교나 샤마니즘 같은 우상과 혼합 외에도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가담했다는 것입니다. 1948WCC 1차 암스텔담 총회 때 공산주의자 60-70명이 참석했습니다. 공산주의를 용납할 수 없다고 속이면서 가입했기 때문에 모두 그런 줄 알았지요. 그러나 19542차 미국 에반스톤 총회에서부터 공산주의 옹호론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1961년 인도 뉴델리 총회에서 소련의 위성국가 대표가 더 증원되고 소련 KGB에서 16명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1968년 스웨덴의 웁살라 총회 때 19, 그래서 WCC 안에서 활동하는 공산팀만 해도 120명이나 되어 각종 요직을 차지하면서 용공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부산 총회 때도 모두 북한의 주장대로 결의해 놓고 회의를 끝냈습니다. 이번 WCC 평화통일성명서는 소위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북한정권에 대한 경제제재 금융제재 해제, 외세(外勢)의 한반도에서의 모든 군사훈련 중단, 韓美군사동맹 철회, 미군철수 등 북한정권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요구를 그대로 수용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공개처형, 탈북자 강제송환, 20만이 수감돼 있다는 정치범수용소 등에서 자행돼 온 고문 감금 학살 등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교묘한 사탄의 미혹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4. 사탄은 온갖 악한 일을 만들어내고 이룹니다.

30눈짓을 하는 자는 패역한 일을 도모하며 입술을 닫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느니라하십니다. 여기 눈짓은 몰래 몰래 자신의 멤버들을 지휘하여 악한 일을 진행해가는 것을 의미하고, “입술을 닫는 자는 원어상 입술을 깨물다란 뜻으로 악한 궤계에 대한 결연한 실행 의지를 다짐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탄이 무서운 것이 배후에 숨어서 모든 일을 은밀하게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사탄이 점점 더 가까이 압박해 옵니다. 그런데 미련한 인간은, 무슨 일이 있으면 사탄의 시험인 줄 알아야 하는데 사탄이 얼마나 가까이 온 줄도 모르고 다투고 싸우다 멸망합니다. 시시때때로 하나님께서 도우시니까 살지, 그대로 놔두면 아주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이 때 시험입니다. 우리 기도합시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신령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누구보다 사탄을 잘 아셨고, 그리고 사탄의 온갖 시험을 다 이기셨습니다. 사탄을 아십시다. 사탄은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이간하는 자입니다. 미혹하는 자입니다. 온갖 악한 일을 생산해내고 이루는 자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과 기도로, 항상 깨어 사탄의 시험을 다 이기는 승리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86,조화로운 복 (16:31-33)

 

이 시간에 조화로운 복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요한삼서 12절을 보면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쓴 편지 구절에 이런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여러 면에서 구색이 잘 갖추어진 축복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축복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성취할 구체적인 방법까지 아울러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발견되는 조화로운 복은 무엇일까요?

 

1. 육신의 강건한 복입니다.

31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하십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노년이 그렇게 좋은 것인가 이해하기 어렵고 동의하기 어려운 구절입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란 무슨 뜻일까요?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의 풍습을 알아야 합니다.

 

19:32에 보면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했듯이, 이스라엘에는 노인을 존경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공경하듯이 노인을 공경했습니다. 모두가 공경하고, 모두가 대접하고, 모두가 보물 같이 귀히 여긴다면, 이보다 더 영화로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단서가 있습니다. 노년이 되도록 공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우러러 볼만큼 공의롭다면 좋겠지만, 실수만 하지 않아도 존경 받을 나이입니다. 하지만 올바르게 살지 않고, 모범적이지 못하면, 나이 먹어도 그 영광에 편승할 수 없습니다.

 

사실 노인들은 그만큼 몫을 합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돛을 달고 닻을 올리는 것은 젊은이들이 능사지만, 키를 잡는 것은 노인이다라고 했습니다.

나라도 잘되려면 노인들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들은 만고풍성을 다 겪었기 때문입니다. 르호보암이 노인들 말을 듣지 않다가 망했지요? 요즘 북한 속보 뜨지요? 주변의 노인들 다 숙청하고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혈기 방장한 젊은이들과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고 실패하여 곧 무너질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백발이란 말씀 속에서 축복을 발견합니다. 건강과 장수의 축복입니다. 아무나 장수의 복을 받나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받는 복입니다. 그래서 잠3:1-2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하셨습니다.

 

91:16에도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여기 구원은 영혼만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의 구원입니다. 우리 삶의 어려운 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도우시고 저렇게 도우셔서 장수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영혼이 잘된 자에게 주시는 복은 육신의 강건한 복입니다.

 

2. 마음이 평안한 복입니다.

32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하십니다. 여기 마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루아흐'가 여기서는 보편적 의미로서 ''이나 '영혼'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특별히 용도에 따라서는 내면적인 감정의 동요나 흥분, 충동 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마음을 다스리는 자,그러한 모든 내적 감정상태의 동요 없이 온전히 냉철한 판단력과, 평안을 유지하는 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승리의 복음과 성령의 지배하심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수용한다면 자기 마음 다스리는 일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사탄이 주는 생각을 물리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품어야 합니다. 늘 은혜를 받아서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사람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태어나면서 부족한 것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족해도 겸손하면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관해 주시고 부족을 덮을 은혜를 주십니다.

 

그렇지 않고 부족한데다 교만까지 하면 답이 없습니다. 교만하여 분수를 모르고 온갖 일을 다 간섭하고 천방지축 휘젓고 다니면 하나님께서 물리치십니다. 물리치시기 때문에 믿으려고 해도 믿음이 오지 않습니다. 교만하면 믿음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힐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 잘 경외하면서 겸손한 영혼에게 진정한 평안의 복이 주어집니다.

 

3. 일에 형통의 복이 있습니다.

33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하십니다. 여기 제비뽑기가 나옵니다.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에 있어 '제비'는 하나님의 신탁이 나타내어지는 도구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믿어졌기에 모세 당시부터 여호수아 시대의 기업분배 때, 또한 초대교회에서도 행해졌었습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습니다. 그러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여기서 일의 작정”(미쉬파트)은 원어상 '법률적인 판결', '법적 선언'을 가리키는 말로서 제비에 나타난 결과를 최종적인 하나님의 판결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제비는 인간의 영역에서는 해결할 수 없거나 인위적인 사항이 포함되어서는 안 될 예민한 상황에서 행해졌다는 점에 미루어 곧 모든 우연처럼 보이는 인간사의 배면에는 어느 곳이나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이 역동적으로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제비를 통해서도 역사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33절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주장해 주셔서 형통함을 주신다는 메시지도 담겨 있습니다. 사람의 어리석음대로 버려두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혼이 잘된 자가 받는 형통의 복입니다. 그가 형통의 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항상 하나님의 지도와 인도하심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왜 위대합니까? 하나님의 지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왜 그렇게 지혜로웠습니까? 하나님께 영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에디슨이 왜 위대합니까? 역시 하나님께 영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내 뜻대로 하려 하니까 안 되고, 내 방식대로 하려고 하니까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하나님의 지도를 받으십시다.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요, 형통의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십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잘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존경 받을 수 있도록 공의롭게 살고, 주의 은혜로 마음을 잘 다스리고, 만사에 여쭈어 형통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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