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복음서

용서할 절대 이유 (막 11:25)

공 상희 2016. 9. 25. 06:33

용서할 절대 이유 (11:25)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이 시간에 용서해야할 절대 이유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이 길을 지나갈 때, 한 소녀가 달려와 무릎을 꿇고 간청 합니다. "폐하 제 아버지를 용서해주소서" 그러자 무슨 사연이 있느냐고 나폴레옹이 묻자, 소녀는 "아버지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법을 어겼으니 어쩔 수가 없구나." 그러자, 소녀가 흐느끼며 호소했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황제폐하의 자비를 탄원하는 것입니다."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던 나폴레옹이 말했습니다. "네 말대로 자비를 베풀어 네 아버지를 용서하니 돌아가라."했습니다. 이처럼 용서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지만, 용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우리가 서로 용서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22:39-40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하십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이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사상인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들을 용서할 뿐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용서에 해당하는 단어가 카파르인데, 그 의미는 덮다, 속죄하다, 용서하다, 지워버리다, 자비롭다. 관용하다. 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용서는, 하나님의 계명인 사랑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신앙인이라면, 하나님 말씀대로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해, 그 영혼이 실족하여, 지옥 불에 떨어진다면, 나 자신이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낫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싫어도 하나님의 말씀이니 용서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해야 합니다.

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습니다.4:32에서도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억만 가지 죄악에 빠진 우리를 용서하셨는데, 우리가 작은 감정 문제 같은, 그 정도의 보잘 것 없는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 용서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만약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실 때도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하십니다. 그러시면서 마6:14-15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하십니다.

 

2:13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하십니다. 긍휼을 베푼 자만이, 긍휼을 받을 권리가 있고, 긍휼을 베풀지 못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긍휼 없는 심판이 있다는 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그 비유로 금 일만 달란트 빚 진자가,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임금에게 사정 했더니, 임금이 긍휼히 여겨 탕감해 주었습니다.

금 일만 달란트면 수천억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그런 큰 은혜를 받고도, 자기는 동료가 100데나리온의 빚을 갚지 않는다고, 조금만 참아 달라 하는데도, 그는 거절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100데나리온은, 100일 품삯으로 자기가 탕감 받은 액수에 비교 할 수 없는 적은 액수입니다.

 

이것을 지켜본 사람들이, 민망해서 그 소식을 임금에게 알렸더니, 임금이 그를 잡아다가, 내가 너를 불쌍히 여겨 네 빚을 다 탕감해 준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하고 그 빚을 다 갚도록 옥졸들에게 넘겼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셉은 자기를 판 형 들에게 창45:5"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갚아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자비로 용서 받았으니, 이웃을 용서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3.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하십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해서, 용서의 기도를 드리시는 모습입니다.

 

주님은 당신 모함하고 죽이려는 원수를 대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12:19-21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하십니다. 주님은 온유하셔서 소리가 없었습니다. 원수들이 하는 대로 받아쳤다면, 왁자지껄할 텐데 그들과 맞서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그대로 본받은 사람이 바로 스데반 집사였습니다.

스데반이 공회 앞에서 말씀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돌 로 치는 자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7:59-60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합니다.

 

스데반 집사는 그 얼굴이 천사와 같았습니다. 용서의 신앙을 가지면 그렇게 빛이 납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많은 상처 가운데 괴로워하기 때문에, 얼굴이 어둡습니다. 다 잊고 다 용서하고, 다 사랑함으로, 우리의 얼굴도 스데반의 얼굴과 같이 더욱 빛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용서할 때 범사가 형통하기 때문입니다.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하십니다. 하늘에서 매이고 풀리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지만, 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입니다.

 

하버드대학교의 미틀만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자주 분노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심장마비를 일으킬 위험이 두 배 이상 높다고 발표했습니다. 또 듀크대학교의 레드퍼드 윌리엄스 박사는, 100여명의 변호사를 대상으로 분노와 생명단축과의 관계를 조사해보니, 분노를 잘 일으킨 변호사들은, 그렇지 않는 변호사에 비해 50대의 사망률이 다섯 배나 높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처럼 용서하지 못하면, 가장 피해 보는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기도의 문이 닫힙니다. 하늘의 문이 닫힙니다. 하늘의 은혜가 임하지 못합니다. 형통의 문이 닫힙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끝까지 용서하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한 기도도 원문으로 보면, 현재 진행형으로 되어있습니다. 계속되는 고통의 순간에도 계속하여 용서하셨습니다.

만약 요셉이 형들을 용서하지 못했다면, 죽는 것은 형들이 아니라 요셉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했기에 요셉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형통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요, 용서입니다.

 

만일 인류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지식이요. 정보였다면, 하나님은 메시아를 위대한 교육자로 보냈을 것입니다. 그것이 기술이었다면 하나님은 구세주를 위대한 과학자로서 보냈을 것입니다. 혹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라면, 하나님은 메시아를 위대한 경제학자로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용서라는 것을 아시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풀어야 삽니다. 용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다 용서하심과 같이,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드린 용서의 기도처럼, 우리들도 용서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계명이요, 하나님의 은혜 받았다는 증거이며, 용서 없이는 용서가 없고, 용서 없이는 형통하지 못하며, 용서 없이는 내가 죽는다는 용서의 절대 공식을 깨달으십시다. 혹시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용서하고 있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는 영을 부어 주사 용서하고 화해의 손을 잡게 해 주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육 간의 온전한 은혜를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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