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여호와께 부르짖으라.
성경: 시20:1-9절
은혜교회 한호석목사.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셀라)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바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하시리로다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왕은 응낙하소서
오늘 나오는 본문의 시는 왕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의 ‘시’입니다. 시편 21편은 전쟁에서 승리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감사의 시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들에 배경이 되고 있는 그 당시에 배경이 되고 있는 전쟁은 어떠한 전쟁이었는가? 본‘시’들의 저작 시기에 대한 견해는 다윗 당시로부터 하스모니안 왕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우리는 본시에서 다윗 저작을 의심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윗 당대로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본‘시’에서는 ‘여호와의 이름’크게 강조되었는데 이는 언약궤의 정착과 무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아람 연합군과의 전투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전투에서 다윗왕은 경이적인 대승을 거두는데 이러한 사실도 21편의 내용과 일치합니다.
1.환난 날에 응답하십니다.
다윗은 아람연합군대와의 전쟁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아람군대는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이와 달리 이스라엘은 말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주로 산지로 형성되어 말을 사용할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신정 국가에(오직 하나님만 왕으로 모시고 사는 나라) 왕에 대한 하나님의 계명에서 ‘말’의 사용을 금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말은 자신의 국력에 힘이 될 수도 있고, 경제력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말이 많이 있으므로 전쟁에서 여호와를 의지 하지 않고 오직 말을 의지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왕으로 모시고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환난날에 도우십니다.
“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신17:16절) 물론 다윗 이후에 솔로몬은 전쟁에서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말을 의지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 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21:31절)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성공적인 삶을 살기보다는 실패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의지 하는 것이 개인의 삶이 완전할 수 없지만, 모든 것을 자신이 해결하려고 한다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더욱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또한 우리의 삶이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인생이 끝난 것처럼 우울한 삶을 살아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지으신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욱 힘을 내어 하나님께 기도하고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속히 응답하여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라고 (렘33: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절)
시 81:10절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필요와 요구를 대신하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출애굽 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광야 긴 여정과 가나안 정복 및 정착 과정에서도 필요한 모든 것을 적시에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럼으로 이스라엘백성들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게끔 되었습니다. 그것은 구원을 받은 백성으로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에는 축복을 그리고 불순종에는 징벌을 주신다는 너무나 선명하고도 알기 쉬운 역사적 체험에 근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는 불순종을 거듭하는 데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약4:2-3절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2.성소(교회)에서 도와주십니다.
성소는 성막과 성전의 지성소 앞 향단이 있는 곳(출15:17절). 벧엘, 실로, 예루살렘 등에 있었습니다.(삿20:27; 삼상3:3; 상하6:16절)
성소는 분명히 다윗이 시온 산에 세운 성막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곳에 언약궤를 안치시켰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이스라엘의 승리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수4:7,11,18; 삼상4:3-5절). 이 언약궤가 시온의 성막에 모셔졌으니 이 성막으로부터 하나님의 도우심이 왕과 함께 하기를 백성들은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치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렘 3:16절)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말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본인들이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면 성소(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개인이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크고 작은 문제라 해도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크고 어려운 문제가 우리에게 닥쳐다해도 우리들이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을 때에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민 8:19)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 할 때에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오늘 날 교회가 교회로서 본질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는 듯 한 느낌을 갖습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마22:37-38절) 하신 말씀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듯 주님께서 맡긴 사명을 감당하지 않은 채 오직 자신들만을 위하여 외형적인 것에 더욱 많은 것을 투자하고 심취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이며, 오직 영혼구원에 전심전력을 쏟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위로를 받고, 교회를 통하여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 진로에 있어서 모든 것이 교회를 통하여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성소는 구약시대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여주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수님께서 희생의 대가로 사신, 피로 사신 교회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 빛을 주셨고, 가르치시고, 치유하시고, 전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예수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주님의 말씀을 남기어 놓았습니다. 오직 교회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가정문제와 사업문제 그리고 남편과 부인 자녀문제를 자신들이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더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욱 교회에 나와 믿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위로를 받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야 합니다.
시73:3-19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살짐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하도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詭譎)을 행하였으리이다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그러나 사16:12절에, “모압 사람이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무효하리로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긴다하면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 우상숭배를 하며 하나님보다 더욱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께 축복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응답받지 못할 것입니다.
3.소제와 번제를 받으십니다.(재물과 봉사)
이 제사는 전쟁에 나가기 직전에 드린 것으로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제는 번제를 드린 후에 반드시 드리는 곡물제사로 번제와 거의 동시적으로 드려졌습니다.
소제는:(볶은 곡식의 이삭과 기름으로 드리는 제사. 순종하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생축을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땅의 소산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임).
소제는 내가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소중한 물질을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입니다. 자신의 목숨과 같은 물질을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자원함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막 12: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눅 21:2-3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하나님께서는 부자의 많은 재물을 바치는 것도 받으시지만, 가난한 자에 두 렙돈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부자는 일부를 하나님께 드렸고,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전 재산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고후9:6절)
렙돈은 팔레스타인에서 통용되던 화폐중 가장 작은 단위의 동전으로, 일 렙돈의 가치는 일 데나리온의 1/16에 해당되었다. '호리'로 번역되기도 한다.
번제는:, 번제((히)'올라'.'올라간다'는 뜻을 지닌 동사 '알라'에서 나온 말이다. (제물을 불태움으로써 그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번제'라는 것은 제물의 전부를 다 불태워서 드리는 제사로서, 완전한 헌신을 다짐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제물을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이 제사 없이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장 비근한 예를 들어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인이 드리는 제사는 소제인데 반해서 아벨이 드리는 제사는 번제였습니다. 그래서 가인의 제사는 열납 되지 않았으나 아벨의 제사는 열납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번제는 나아가서 자신의 희생을 뜻하기도 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행 7:42 하나님이 돌이키사 저희를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사십 년을 광야에서 너희가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주님은 자신을 단번에 드림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희생의 제사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 모두에게,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주님을 향한 재능과 달란트를 아낌없이 모두 감사함으로 자원함으로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 수 록 주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큰 축복을 받아 누리기 원합니다. 그러나 불순종의 결과는 징계만 있는 것입니다. 환경에 어려운 시점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감사하며, 감사의 조건을 찾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4.마음에 소원을 허락하십니다.
다윗은 임박한 전투에서의 승리를 꿈꿨습니다. 다윗은 이 소원을 기도로써 하나님께 아룄고,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하여 무던히 주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은 말을 의지 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전쟁에서 개가를 부르며,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잠21:31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꿈이 있는 백성은 성공하지만, 꿈이 없는 백성은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망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원주에 있는 예수사관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예수 사관학교 교장인, 변충구목사님께서는 약학 박사이었습니다. 맨 처음에는 자신도 돈을 많이 벌어서 인생을 남부럽지 않게 살려고 했지만, 약사를 하면서 남들이 고치지 못하는 병을 고치므로 돈을 많이 벌었답니다. 그러나 돈만 많이 번다고 자신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하고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오직 복음을 전하는 것에 신경을 썼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외국으로 나가서 공부하는 시간이 많을 때에는 자녀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답니다. 그럴 때에는 자녀 교육은 목사님과 사모님을 대신하여 교회에 권사님께서 신경써주셨답니다. 입학식과 졸업식 그리고 아침에 도시락도 챙겨주시는 것은 목사님과 사모님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헌신하지 못했어도 주님께서는 주님의 일을 하는 자를 대신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맨 처음 하시는 말씀이 ‘자신의 꿈을 종이 위에 쓰면 그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다’ 는 말이었습니다. 그 꿈을 향하여 ‘미치면’ ‘미친다’ (목적이 성취). 된다 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미치도록 열중하고 노력하고 앞만 보고 나가면 자신의 꿈과 목적이 성취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미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선한 꿈을 위하여 미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먼저 시작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을 하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올바른 기도와 올바른 소원은 하나님께서 곧 속히 응답하여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 말미암는니라”(잠언29:25-26절)
예화: 서울대 목적을 하고 공부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서울대에 분명히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만 떨어져버렸습니다. 너무나 기가막힌 현실이었습니다. 부모님들은 시험에 떨어져 고개가 팍 숙여진 아들을 잘 달래서 교회에 데리고 나왔습니다.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재수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아들은 지난 날 가지고 있던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공부하는 자세도 달라져 있었습니다. 겸손한 예수님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후 1년이 지나서 다시 시험을 치러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1년 동안의 연단과 신앙생활을 통하여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희망을 갖고 소망을 위해 나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에는 대학입시 발표로 인하여 부모님들이 대학에 들어가게 되어서 좋아 하기도하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학부형과 자녀들은 그것으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분들 중에서 이번에 대학교 입시와 물질 문제로 인하여 부모님들이 노심초사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모들이 자신들이 희생을 하더라도 자신의 자녀들에게만큼은 더욱 좋은 것으로 나은 것으로 인도하기 위한 부모들의 진심의 마음입니다.
저의 교회에도 입시생이 둘이 있습니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수시에 합격했고 한 사람은 재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합격한 사람이나 떨어진 사람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특별한 배려였습니다. 불합격했다 해도 그것은 인생 전부가 실패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인생을 쉽게 포기한다면 이것보다 더욱 큰 일이 닥치면 절대로 극복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목적하는 대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해도 올해 다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가면 됩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단 한번 좌절로 우리의 인생이 모두 끝나버린 것 같이 생각하고 좌절하는 것은 옳은 것은 아닙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한두 번 또는 적지 않은 부딪침은 본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만, 이것을 잘 극복한다면 더욱 좋은 것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은 어려운 환경이지만, 기도와 믿음으로 잘 극복해서 더욱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8절) 우리의 삶이 현재의 고난처럼 계속되어진다면 우리 모두는 소망이 끊어지고 미래가 불확실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심으로 우리들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 문 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이 복 주시는 자 (0) | 2013.01.26 |
---|---|
형통한 삶 (시 1:1-3) (0) | 2011.12.18 |
말씀으로 충만할 때 (잠 4:20-27) (0) | 2010.12.04 |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시 1:1-6) (0) | 2010.12.04 |
지혜가 제일입니다 (잠 4:7-9) (0) | 2010.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