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문 서

형통한 삶 (시 1:1-3)

공 상희 2011. 12. 18. 06:19

형통한 삶 (시 1:1-3)


이 시간에 “형통한 삶”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누구나 형통한 인생을 살고 싶어 합니다. 형통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형통이 뭘까요? 형통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찰라흐’인데 그 뜻은 ‘앞으로 나가다, 발전하다, 성공하다, 유익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형통입니다. 요셉은 형통한 자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불통하면 큰일입니다. 형통하고 봐야 합니다. 특히 영적으로 막히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영육 간에 형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럼, 형통한 자는 어떻게 됩니까?


오늘 말씀대로 악인이 되지 않고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믿음으로 된 칭의적 의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믿어 용서의 확신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회개하여 죄에서 떠나 하나님을 경배하며 성결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기뻐하시는 진정 형통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잘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1.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생각을 잘하라는 말씀입니다. 복 받을 자는 생각을 잘하는 자입니다. 생각이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생각이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복의 사람이 되려면 생각부터 변화되어야 합니다.


조선일보에서 연재했던 광수생각이라는 만화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책으로도 출간되기도 했지만 내용이 평범하고 일상적이면서도 감동적이고 교훈적이면서 무언가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여운을 남겨 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생각이 그 사람입니다. 마음에 나라를 생각하면 애국자입니다. 그러나 살인을 생각하면 살인자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주님이 위대한 것은 사탄이 주는 생각을 물리쳤다는 것이고, 아담과 하와가 어리석은 것은 사탄이 주는 생각을 받아들였다는데 있습니다.


요13:2을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자기 생각인줄 알면 안 됩니다. 이것이 사탄의 음성이라는 것만 알아도 벗어날 희망이 있습니다. 거짓말도 백 번 천 번 말하면 참말로 들린답니다. 그래서 이단에 한 번 빠지면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돌아서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갔습니다(창12:4).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 시험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단의 속삭임도 있었을 것이고 사람들의 충고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갈 때 형통의 축복이 있었습니다.


2. 행동을 잘해야 합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는 것이 형통의 조건입니다. 남들이 다 한다고 다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진정 형통하려면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신29:9에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했습니다. 수1:8에도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했습니다.


행위구원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믿음 구원입니다. 그러나 믿음에는 행함의 요소가 있습니다. 믿기에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했습니다. 믿음은 볼 수 있습니다. 행하는 것을 보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압니다.


교회 출석도 믿음의 행위입니다. 빠진 사람을 믿음 좋다 할 수 없습니다. 오후 예배도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사랑도 믿음의 행위입니다. 전도와 봉사도 믿음의 행위입니다. 기뻐하는 것도 믿음의 행위입니다.


갓난아기는 하루에 평균 300번씩 웃는다고 합니다. 하나님 자녀들의 얼굴에 웃음이 없으면 잘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의미 없이 웃으면 미친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나에게 주신 복을 생각하면서 웃으시기 바랍니다.


3.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여기서 ‘오만한 자’는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고 행동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오만은 교만과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잠6:16-19에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 그 첫째가 바로 교만입니다.


내가 누군데, 내가 누구였는데,,, 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 교만이 내 인생을 망치고 내 가정 교회 사회 국가 내가 소속된 공동체를 망칩니다. 겸손하지 않는 것이 교만입니다. 존경 받고 대접 받던 그 생각과 습관 버려야 합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정복하기로 계획했을 때 충성스런 장군이 그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하! 부탁드립니다. 이번 러시아 원정을 취소하세요. 각하께선 지금까지 수많은 나라를 정복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러시아 정복을 그만하소서.” 나폴레옹은 그의 충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장군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간청하면서 말했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일을 계획해도 그 일을 성취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번 러시아 원정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취소하십시오.” 이 말을 들은 나폴레옹은 크게 화를 내면서 소리 질렀습니다. “내가 모든 일을 계획하고 성취한다! 무슨 하나님이 일을 계획하고 성취해?” 그러다가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에서 처절하게 실패하여 말았습니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말라는 것은 오만한 사람과는 사귀지도 말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가까이 하면 나도 오만 병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하면 가만 두지 않습니다. 이리저리 깨닫게 하시고 기회를 주시고 기회를 주시다가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여지없이 치십니다. 그래서 잠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루이스 터먼은 아이큐 160이상의 천재들의 일생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천재들은 대부분이 성인이 되어 실패자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원인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원인은 ‘내가 최고’라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둘째는 그 교만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셋째는 고집불통이 되어 무모하게 행동하다가 결국 실패한 것입니다. 사람의 말만 듣지 않았을까요?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잠22:4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하셨습니다. 겸손하면 돈도 주시고 영광도 주시고 생명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할 때 형통하게 하십니다. 사울도 자기를 작게 여길 때 하나님이 높이셨습니다. 그러나 교만하면 하나님이 다 가져가신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4. 말씀을 늘 묵상해야 합니다.


2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즐거워하며 묵상할 때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고 의인의 길로 행하는 믿음의 복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영국 런던의 테임즈 강변에 재판소가 있는데 그 재판소의 뜰에 포도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포도나무에서 열리는 포도가 영국에서 가장 맛이 좋았답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이 포도나무를 번식시켜 보려고 조사를 해 보니 종자는 다른 포도나무와 조금도 다른 점이 없는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이 포도나무의 뿌리가 강 밑바닥에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요즘도 지식 농민들은 작물의 뿌리에 신경을 씁니다. 그렇게 하면 수확도 많을 뿐 아니라 맛이 좋다고 합니다. 우리도 갈급한 마음으로 성경 말씀에 뿌리를 깊이 뻗어야하겠습니다. 말씀을 기뻐하여 주야로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그 때 우리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고 의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처럼 아브라함처럼 형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처럼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여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것과 같이 여러분의 행사가 다 형통한 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