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 받지 않고 복 받는 법 (창 8:20-22)
20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이 시간에 “저주 받지 않고 복 받는 법”이라는 제목입니다. 오늘 본문에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아주 상식적인 말이지만 사람이 살면서 복 받고 살아야지 저주 받고 살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인간은 스스로 저주를 자청하는 일을 너무나도 많이 합니다. 인간은 죄인이고 약점 투성이라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러므로 저주 받지 않고 복의 사람이 되는 길을 잘 알아야 합니다.
본문은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먼저 단을 쌓고 번제를 드릴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그 중심에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시겠다고 다짐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다시는 저주 받지 않고 복 받는 복음이 나타납니다. 번제가 갖는 의미입니다. 노아가 번제를 드릴 때 여호와께서 다시는 저주하지 않고 복 주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번제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1.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노아가 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는데 번제는 원래 온전한 헌신과 희생을 상징하는 제사입니다. 이 제사는 장차 속죄와 화목의 제물로 오실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그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와 저주를 지시고 십자가에 대신 못 박히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나의 죄와 저주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믿는 자는 저주를 받지 않습니다. 이 진리에 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벧전2:24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하셨습니다. 예수 안에 저주가 없어요. 복만 있어요. 의로움만 있어요. 사랑만 있어요. 생명의 성령만 있어요. 그래서 살전5:16-18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알지 못해서 자기가 자기를 정죄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보혈의 속죄의 공로를 몰라 자유하지 못하고 늘 양심의 가책속에 살아갑니다.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자임을 믿어야 합니다. 자기를 정죄하는 것이 저주의 시작입니다. 양심의 가책 속에 있을 때 심령에 사망이 역사하고 온갖 시험이 다가옵니다. 회개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회개와 겸손의 의미로 죄인라고 할지언정 정죄의 의미로는 하지 마세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진리에 서서 마음의 화평을 누리세요. 이것이 복을 누림의 시작입니다. 정죄는 저주의 시작이요 보혈은 복의 시작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돌로 치려는 여인을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문제는 율법의 정죄와 여인 자신의 정죄입니다. 너는 죄인이다. 나는 법을 어겼다고 자기를 정죄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선언하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정죄하지 않으신다 하셨으면 우리도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로로 양심의 자유함을 얻어 저주 받지 않는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2. 예배의 생활입니다.
노아가 번제 드림이 주는 또 다른 교훈은 예배생활입니다. 보혈 공로로 끝나지않습니다. 보혈 공로를 믿고 아버지 앞에 서게 되었으면 늘 예배해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이 상당히 특이합니다. 21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스스로 마음 가운데 하신 독백입니다. 노아가 번제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마음 가운데 하신 말씀입니다. 누가 나를 기쁘게 하면 나도 잘해주어야지 그런 마음이 우러나지요. 그런 모습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마음에 자꾸 그런 마음이 우러나게 해야 합니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요? 바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하면 하나님께서 복 주실 마음이 우러납니다. 롬12:1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하셨습니다.
예배는 상당히 광범위합니다. 찬송과 말씀과 기도와 교제의 모임의 예배도 있고, 회개하여 바로 사는 삶의 예배도 있고, 충성 구제 봉사 전도와 같은 예배도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모두 예배입니다. 이 예배가 우리에게 복을 가져다줍니다.
일차는 모임의 예배에 열심하시기 바랍니다. 혼자든 둘이든 모두든 예배의 삶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모든 예배의 시작이요 기본입니다. 이 일이 잘 되어야 다른 삶의 예배도 됩니다. 나는 생활속에서 예배 잘하니 모임의 예는 필요 없다고 한다면 틀린 말입니다. 향단에 드리는 향도 거친 향이 있고 고운 향이 있습니다. 생활 속에 한 마디씩 하는 거친 기도도 필요하지만 엎드려 드리는 고운 기도도 필요합니다. 예배를 잘 드리면 저주가 물러갑니다. 축복이 임합니다. 성령이 임합니다. 사랑이 임합니다. 이 때 복을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크게 우러나서 복을 주시고야 마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예배 내용이 좋아야 합니다. 본문의 노아는 부정한 것 말고 정결한 짐승과 새로 제물 삼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좋지 않는 짐승으로 제사하다가 저주 받지요. 즉 이방인의 제사와 같이 소원성취를 위한 그런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함께 하심을 감사하고 찬송하며 몸과 마음을 헌신하고 다짐하는 예배여야 합니다. 소원성취는 하나님께 맡기고 주실 것을 믿으면서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만 찬양하면 됩니다.
그 때 어떻게 하실까요? 노아가 번제로 영광 돌릴 때 또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22절에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대 홍수 이후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낀 인간에게 규칙적인 자연계의 운행을 보장하신 말씀입니다. 이 운행하심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예배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그대로 임하여 그 이치대로 우리 삶에 운행되고 이루어집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만사형통입니다. 원리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예외도 있습니다. 주를 위한 고난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의 저주와 슬픔을 다 지셨습니다. 이 복음 믿으시기 바랍니다. 늘 예배하십니다. 그러면 하늘의 복이 옵니다. 이 얼마나 복되고 간단합니까? 우리 모두 이 복음을 생각하며 날마다 하나님 앞에 자유하면서 예배하고 감사하고 순종하십시다. 그래서 저주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복으로 놀랍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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