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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백 이십 년의 교훈 (창 6:3)

공 상희 2010. 9. 11. 08:37

일백 이십 년의 교훈 (창 6:3)

 

노아 방주 추상도


이 시간은 “일백 이십 년의 교훈”이라는 제목입니다. 대홍수가 임하기 전 120년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세상에 대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 예고를 주시면서 그 기간을 120년이라 하셨는데 이 120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방주 제작기간인가? 아니면 심판 예고기간인가? 본문 6:3을 참고해 보면 심판을 예고하심이 확실합니다.


방주 제작기간에 대해서 흔히 120년간이라고 말하는데 그 기간 안에 만들었기에 통상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 정확한 방주 제작기간을 대라 하면 누구도 그 기간을 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창6:3의 일백 이십 년은 사람들의 육체의 남은 기간을 예고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기록 순서로만 본다면 창6:10에 노아의 세 아들을 낳은 후에 방주를 만들라는 계시가 주어지고, 18절에 자부들이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보아 노아의 세 아들들을 모두 낳은 후에 모두 자라고 모두 결혼한 후에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이 있었지 않는가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가정하고 계산해 본다면 창11:10에 노아 502세에 셈이 태어났고 이 세 아들들이 모두 태어나 다 자라서 다 결혼하기까지니까 짧게 잡아도 30년은 되리라 본다면 대략 노아 나이 532세에 방주에 대한 계시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노아 600세 되던 해에 대 홍수가 있었으니 532년을 빼면 불과 방주 제작기간은 대략 68년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나 성경을 역사보다 구속사 중심으로 기록하다 보니 왕왕 역사적인 나열을 무시하는 수도 많고 또 노아가 세 아들을 모두 결혼시킨 그 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기간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방주 건조기간은 120년보다 더 짧은 기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포괄적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120년간 신앙을 준비한 것과 그 기간 안에 방주를 예비한 것을 생각해서 포괄적 의미로 120년을 언급한다 해서 우리가 문구 가지고 너무 문제 삼을 것은 없다고 봅니다.

 

노아방주로 추정되는 항공사진


그럼 일백 이십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 120년은 회개의 기간입니다.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신 이 말씀의 첫째 의미는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기간 안에라도 회개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길 기다리시는 집행유예의 기간입니다. 그러나 120년이란 긴 세월을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끝내 죄악 된 인간은 홍수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요나 선지자가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 니느웨 성에 가서 니느웨가 40일이 지나면 멸망한다고 외칠 때 니느웨 사람들은 왕으로 부터 시작해서 백성은 물론 짐승에 이르기까지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그 결과 모두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았습니다.

 

노아방주의 위치 추정 항공사진


이처럼 심판의 예고를 듣고 할 일은 회개입니다. 회개하면 피하게 하시거나 살길을 열어주십니다. 벧후3:9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지금 우리 인간이 육체 가지고 사는 이유 중 하나는 회개를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육체가 사는 이유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회개의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 회개하여 예수 믿고 준비하지 않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육체대로만 살면 영원한 불 못에 들어갑니다. 얼마 남지 않는 날을 육체를 위해서만 살지 말고 우리 영혼 준비하는 기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2. 120년은 전도의 기간입니다.


벧후2:5에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다고 했습니다. 노아는 120년간 의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의의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여기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죄인을 의롭다 칭해 주는 칭의, 또 하나는 변화되는 성결, 두 면입니다. 당시는 짐승 제사로 예표 되었지만 메시아를 믿으면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칭의의 복음이 전해졌을 것입니다. 보혈의 복음입니다. 또 “회개하세요. 이대로 살면 안 됩니다.”하는 성결의 복음이 전해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보혈로 말미암는 칭의의 기초를 잘 닦고 말씀과 성령 안에서 성결의 은혜 가운데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육체가 부름 받는 날 그리고 재림하시는 그 날을 준비하는 법은 자기 마음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단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일3:3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하셨습니다.


노아의 전파 제목은 의의복음이요, 경건의 복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메시지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런데 관심이 없습니다. 영의 사람은 세속에 속한 것에는 고통을 느낍니다. 반대로 육신에 속한 사람은 신령한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영적 메시지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축복설교나 하면 아멘하지 회개하여 바로 살자, 하나님 나라, 영생, 영적 교제, 구원의 길, 은혜 받는 길, 성결의 길, 믿음의 길, 하나님을 경외하자, 예수를 사랑하자, 사명을 감당하자, 이런 말씀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방주가 머물렀다는 터키의 아라랏산


창7:10을 보면 여호와께서 마지막 7일을 기회로 주십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방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7은 완전수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이 7일 동안 하늘의 무슨 징조나 무슨 번개나 뇌성 같은 어떤 특별한 현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노아의 말이 맞음을 깨닫게 하시려는 현상이 주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징조도 경고도 없이 진행하시는 분 아닙니다.

 

예루살렘 멸망 시에도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하나님의 경고의 음성이 들리는 등 여러 징조가 있었고 로마군대를 잠시 물러가게 하신 후 경건한 자로 피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기도하다 응답을 받은 예루살렘 교인들은 모두 피했습니다. 그러나 함께 가자는 말을 무시하고 예루살렘으로 몰려든 온 나라 젊은이들은 또 다시 포위되어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7일에 담긴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회개할 수밖에 없는 완전한 은혜를 가리킵니다. 영적 은사입니다. 이 은사가 내게 나타나든 어디에 나타나든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또 은사는 고난과 징계입니다. 이런 것을 통해서 완악한 인간은 회개하고 예수 믿고 또 은혜를 사모하여 성결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구제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은혜를 경홀히 여기고 피할 길은 아주 없습니다.


3. 120년은 준비의 기간입니다.


노아가 120년간 가장 많이 준비한 것은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방주보다 더 많이 준비한 것은 믿음이었습니다. 방주 건조기간은 더 줄어들 수 있지만 믿음 준비기간 만큼은 120년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방주 짓는 그 자체도 믿음이었습니다.


요즘 방주 그림이 너무 화려한 것 같아요. 방주를 히브리어로 ‘테바’라고 하는데 “궤짝, 상자, 관”이런 뜻입니다. 방주는 안전하게 떠 있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간단하면서도 튼튼하게 만들 수 있는 모형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방주의 설계대로 하되 견고성에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말씀대로 하되 견고해야 합니다.

 

방주가 머문 자리로 추정함


그런데 우리가 육체가 있을 동안에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늘 경건하여 성령 충만 받는 것입니다. 벧전3:21의 베드로처럼 홍수를 물세례 혹은 성령세례의 상징으로 본다면 노아 홍수의 사건은 우리가 피할 성질이 아닙니다. 큰 은혜입니다. 리는 이 은혜의 장맛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 날이 바로 우리 육신적인 옛사람이 죽어 장사될 날입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 임하시는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시면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롬8:8-9에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 신령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게 됩니다. 은혜의 대홍수가 있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신앙생활 잘해야 합니다. 120이라는 숫자에 담긴 의미가 그렇습니다. 성령 강림이 있던 오순절에도 120문도였고, 노아 홍수가 있기 전 기간도 120년이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12는 제자의 수입니다. 10은 구비되고 가득한 만수입니다. 그러므로 120은 구원 받고 잘 훈련된 경건에 이른 믿음을 상징합니다. 즉 성령의 충만을 입으려면 믿음이 준비되고 기도가 준비되어야 합니다. 경외하는 믿음이 부족해서는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의미에서 심판은 성도에게 축복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강림에 관한 구약의 예언은 온통 심판의 내용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우리 옛 것 죄의 속성은 철저히 죽고 새 사람으로 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의 도를 마음에 품고 믿음과 기도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참 제자는 예수를 주로 믿고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에 거하며 하나님을 경외함과 이웃 사랑으로 훈련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육체의 살 동안 허송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육체의 남은 기간은 노아시대 120년과 같이 회개의 기간입니다. 전도의 기간입니다. 성결의 기간입니다. 제자 되는 기간입니다. 성령의 홍수로 덮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불원간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남은 시간 믿음 준비 잘하여 조금도 후회함이 없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