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강해 모음

상중하 삼층의 교훈 (창 6:16)

공 상희 2010. 9. 11. 08:36

상중하 삼층의 교훈 (창 6:16)

 


이 시간 “상중하 삼층의 교훈”이라는 제목입니다. 노아의 방주는 3층이었습니다. 창6:16에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방주를 만들게 하실 때 3층으로 짓게 하셨을까요? 공간의 효율성을 위해서, 혹은 짐승들의 몸집이나 습성 등이 달라 각각 층을 달리했을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문을 보면 상중하가 첫째의, 둘째의 그런 순서계념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개역 성경에서 1층 2층 3층으로 번역하지 않고 상중하로 번역했습니다. 높은 층, 낮은 층, 중간 층이 있다는 말입니다. 신령한 관점에서 본다면 영적수준을 교훈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믿음에 따라 영적 수준들이 각각 다르단 말입니다.


방주를 요즘 건물로 말하면 하층은 지하, 중층은 반 지하, 상층은 지상과 같은 형태입니다. 하층은 바다 깊숙이 잠겼으니 지하와 같고 상층은 바다 위에 있으니 최고의 로열층입니다. 같은 방주생활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방주는 상층일수록 더 살기 좋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도 3층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90개의 다락방이 3층으로 성전 벽을 이루고 있는데 올라갈수록 방이 넓고 시설이 좋고 조용하며 귀한 보물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들도 상층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3층천에 사는 삶이었습니다. 고후12:2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3층천을 경험했다면 지상에서의 영적생활도 그런 수준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몸은 지상에 거했지만 마음은 언제나 천국을 누리면서 살았습니다. 우리들도 상층에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생활도 수준이 있습니다.


1. 아직 세상에 속한 삶입니다.


하층은 어둡습니다. 바다 물에 잠겼으니 지하층과 같습니다. 이처럼 영적 막장생활입니다. 믿음이 없어 생각이 긍정적이지 못하고 소극적이고 부정적입니다. 어둡고 기쁨이 없고 우울하고 걱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 믿지만 신앙의 기쁨을 모릅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받았지만 하층에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노아가 하층은 몸집이 무거운 짐승을 실었을 것입니다. 몸이 둔하고 감각도 둔한 짐승들입니다. 몸의 움직임이 빠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층에 거하는 믿음은 게으르고 열심히 없습니다. 부지런하지도 않고 뜨거움이 없습니다. 말씀을 깨닫고 회개하는 일도 없습니다.


여기 있는 짐승들은 대개 날개가 없어 창공을 향해 오르려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꿈도 없고 열망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대로 살기를 갈망하지 않습니다. 요나가 배 밑창에 숨듯 주의 일에 의욕도 없고 회피하고 반항심도 있습니다. 그저 여기가 좋사오니 현실에 안주하기를 좋아할 뿐입니다.


그런가 하면 하층은 가장 누추한 곳입니다. 쓰레기나 오물이나 탄산가스는 아래로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짐승들이 많이 살고 있으니 관리한다 해도 문제가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1층은 아직도 세상에 속한 삶을 가리킵니다. 죄악의 노예가 되어 있는 세상 애굽의 삶입니다.


2. 중층에 머무르면 안 됩니다.


하층에는 몸집이 크고 강하고 사나운 짐승들이 많았다면 중층은 비교적 몸집이 작고 순한 초식동물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상층은 비둘기나 까마귀 독수리 같은 날개 달린 가금류가 있는 곳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층은 어느 정도 믿음은 있지만 독수리처럼 여호와를 앙망하며 비상하는 영적생활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올라가다가 자만해서도 안 되고 중단해서도 안 됩니다.


갈6:3에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했습니다. 또 고전10:12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했습니다. 빌3:15-16에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 현재의 영적생활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성령을 체험치 못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충만한 것도 아니고, 예배생활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윗처럼 찬송하며 사는 삶도 아니고 어정쩡한 삶이라는 말입니다.


중층에 거하면 하층으로 떨어지기 쉽습니다. 노아 방주의 짐승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순종했겠지만 그래도 짐승은 짐승 아니었겠습니까? 하층으로 떨어진 짐승도 있었을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조금 어려운 일만 있으면 믿음으로 극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애굽으로 돌아가자 했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가 그들의 입에 붙은 구호였습니다. 그들은 애굽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층으로 떨어지면 위험합니다. 맹수들이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 떨어지면 사탄의 밥이라는 말입니다. 예수 안에 확실히 들어와야지 중간지대에 있으면 위험합니다. 예수 믿어도 확실히 믿어야지 중간지대에 있으면 훨씬 시험을 많이 받습니다. 애굽의 중력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세상 향수 버리시기 바랍니다. 철저한 믿음과 하나님을 경외함을 배워 상층으로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3. 축복의 상층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노아 방주의 상층은 가장 밝고 환하고 쾌적한 공간입니다. 한 층에 사는 노아 할아버지와 셈과 함과 야벳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더 사랑 받는 공간입니다. 더 축복 받는 공간입니다. 영적 교제가 있는 공간입니다.


아파트도 3층 정도가 좋다고 합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고 건강에도 좋다고 합니다. 땅을 밟고 사는 것이 제일 좋지만 도시의 여건에는 하층보다 그리 높지 않는 층이 최선이라고 합니다. 과습하지 않고, 비가와도 잠길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지진이 일어나도 파묻힐 염려도 적고, 도적의 피해도 비교적 적은 곳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집니다. 상층의 믿음 가진 성도는 복을 누리며 삽니다. 평안하고 밝고 힘이 있고 성경의 약속을 그대로 믿기에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입니다. 매사에 어두운 면보다 밝는 면을 보고 살아갑니다.


이처럼 우리 신앙생활도 날개를 가져야 합니다. 은혜 충만한 삼 층천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앙모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날던 비행기가 에너지가 부족하면 추락하듯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이 부족하면 추락하면 떨어집니다. 그래서 영적생활이 약해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주의 상층은 빛과 바람이 잘 들어오는 곳입니다. 이처럼 항상 말씀을 묵상하고 늘 찬송하며 사니 진리의 빛과 성령으로 충만합니다. 우리는 아래 바라보지 말고 위만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내 생각, 내 뜻, 내 주장 버리고 하나님 기뻐하신 말씀대로 성령님의 인도대로 살아야 합니다.


살전5:16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했습니다. 이런 생활은 하층 믿음에 사는 사람은 꿈도 꾸지 못하는 삶입니다. 중층 믿음 가진 사람은 바라만 볼뿐이고, 오직 상층 믿음의 성도만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 구원의 방주이십니다. 예수 믿어야 영생을 얻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어 방주에 들어왔지만 아직 천국을 경험하고 있지 못하다면 신앙의 날개를 날고 하나님을 열심히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죄악의 어둔 것 누추한 것 좋아하지 말고 십자가로 다 처리해 버리고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가장 축복된 믿음의 상층에 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