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 교훈 (창 6:16)
오늘은 방주의 "문의 교훈”입니다. 노아의 방주에 문이 있었습니다. 창6:16에 “그 문은 옆으로 내고” 그랬습니다. 이 방주의 문이 갖는 복음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1. 구주는 오직 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방주의 문이 몇 개였을까요? 방주의 창은 많지만 문은 많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뿐이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구주는 오직 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에 보면 성막의 문도 하나였습니다. 성막의 문 역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문이 뭡니까? 요10:7에 “나는 양의 문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14: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행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다른 길이나 다른 방법을 가감한다면 그것은 이단입니다.
2. 누구든지 다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방주의 문은 얼마나 클까요? 본문에 방주 문의 치수가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문의 치수를 정해주시지 않은 것은 들어오는데 무슨 크기 제한이 있지 않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몸집이 크든지 작든지 키가 크든지 작든지 무게가 많이 나가든지 가볍든지 한 쌍이든 일곱 쌍이든 제한 없이 다 들어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추측이지만 방주의 문이 결코 작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막의 문도 20규빗 약 10m나 되는 큰문이었습니다. 성막의 규모로 볼 때 그렇게 큰 문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크게 만드신 이유는 거기에 담겨있는 상징적 의미 때문입니다. 어떤 죄인도 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다 내게로 오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은 하나이지만 가장 큰 문입니다. 온 세상 인류가 다 들어갈 수 있는 문이니 가장 큰 문입니다.
예배당 건축도 현관이 중요합니다. 교인의 수효는 많고 노년층이 많은 교회는 현관을 빠져나오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천국의 문은 온 인류가 출입하고도 조금도 비좁지 않는 문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줄 서 있으니 기다리라고 하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전도하고 선교해야 하겠습니다.
3. 구원의 문도 세상을 향해 열려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방주의 문을 어디로 냈을까요? "그 문은 옆으로 내고" 그랬습니다. 방주 옆으로 났습니다. 창처럼 위로 나지 않았습니다. 문이 방주 위로 나 있으면 파도를 막기에 더 나을 텐데 옆으로 내라고 하셨습니다. 들어가기 쉽도록 방주의 문을 배 옆구리에 내게 하신 것입니다.
이 옆구리의 진리가 큽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신부를 만드실 때 아담이 옆구리의 뼈를 빼서 만드셨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교회 역시 그리스도의 옆구리의 피 흘리심으로 탄생했습니다. 주님의 옆구리를 찔러 트심으로 물과 피를 흘리지 않으면 죄인이 구원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문도 세상을 향해 열려야 합니다. 교회의 거룩함만 있으면 아무도 접근하지 못합니다. 교회에는 세상 사람들이 가까이 할 수 있는 중간지대가 필요합니다. 옆구리를 터야 합니다. 옆구리를 틀 때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 옆구리는 사랑입니다. 봉사입니다. 예절입니다. 쉼터입니다. 물리치료실이기도 합니다. 공부방이기도 합니다. 피난처이기도 합니다. 그런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마5:15-16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셨습니다.
어느 교회는 아주 싼 가격으로 뷔페식을 대접하고 있었습니다. 신불신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서입니다. 결신의 여부는 하나님께 맡기고 일단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오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전도하실 때 사람들아 모여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런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교회와 친해지고 성도들과 친해지고 예수님과 친해져야 합니다. 그 때 전도하기 한층 쉬워집니다.
방주의 옆구리에 문을 내놓으니 방주에 들어오는 것은 아주 쉬웠습니다. 이처럼 교회 나오기 쉬워야 합니다. 노방전도하시는 분들은 귀에 대고 예수 천당을 외치는 것보다 차라리 육교 밑에서 노인들 부축하거나 커피포트에 커피를 담아 가지고 나가서 사람들을 대접하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이 낫습니다. 특수한 경우를 빼고는 단숨에 결실 보려고 마세요. 방주의 옆구리가 터진 것처럼 성도들의 희생과 헌신이 전도의 첫걸음입니다.
4. 구원을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방주의 문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최후로 방주의 문을 닫으신 분이 계십니다. 창7:16에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하셨습니다. 닫으시는 분은 노아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여기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하는 이 말씀의 원문의 뜻은 “그 뒤에서 닫으셨느니라.” 입니다. 노아와 그 가족, 그리고 짐승들이 다 들어간 후 하나님께서 밖에서 그 문을 꽝 닫으셨습니다. 그 문을 열 자가 누굽니까? 하나님이 닫으셨으니 다시 열어주시기 전에는 열 자가 없습니다.
무슨 교훈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까? 성도 견인의 은총을 말씀한 것입니다. 견인의 은총이란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은바 구원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 견인의 은총이 있을 때 죽는 날까지 신앙을 신실하게 지켜 나갈 것이고 최후의 승리의 면류관을 쓰게 됩니다.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말씀으로 은사로 능력으로 체험으로 혹은 징계의 채찍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을 버리려야 버릴 수 없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짜 구원 받은 자도 진짜로 버림 받을 수 있다는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 몇 곳에 버림을 의미하는 말씀이 있지만 자세히 보면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말씀도 있어요.
일반적으로 주님을 믿다가 배반하면 지옥 간다는 말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로 구원 받은 자도 진짜로 버림 받을 수 있다는 말은 좀 다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본질까지 거부하는 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견인의 은총을 무시한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롬8:38-39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했습니다.
5. 구원의 기회가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입니다.
방주의 열린 문도 닫힐 때가 있었습니다. 한 번 닫힌 후에는 아무도 열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구원의 문은 아무리 크고 넓지만 언제까지나 열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닫힐 때가 있습니다. 따라서 구원도 구원 얻을 때 얻어야 합니다. 구원의 문이 닫힌 후에 아무리 열어 달라고 해도 한번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5장 열 처녀 비유에서도 "저희가 사러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했습니다.
아직 살았을 때 믿자는 말입니다. 더 늙기 전에 믿자는 말입니다. 말씀을 들을 수 있을 때 믿자는 말입니다. 구원만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때가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집니다. 건강하고 힘이 있을 때 기도 많이 하세요. 눈 밝고 총명할 때 성경도 많이 봐두세요. 다리에 힘 있을 때 교회 열심히 나오세요. 재물이 있을 때 봉사하고 충성하고 전도하세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방주의 문이십니다. 예수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로 다 나올 수 있습니다. 구원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나 구원의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어 온전히 모셔드리고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은혜 안에서 진정한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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