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랑하자
막12:29-30
이 시간에 “하나님을 사랑하자”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2000년 전 예수님을 배척하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유대인들의 실패의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말씀이 있었고, 훌륭한 전통도 있었고, 선지자도 있었고, 제사장도 있었고,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도 있었으며, 잘 다듬어진 보수적인 신학도 있었고,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수천 년간 하나님의 특별은총이 떠나지 않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던 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함의 부족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요5:42에 “다만 하나님을 사랑함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하시면서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5:44)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울 서신에서 아주 충격적인 말씀을 봅니다. 고전16:22에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한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러나 성경에 저주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것은 갈1:8을 보면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단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음이 이단만큼 이렇게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기에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에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다란 사랑 없는 결혼과 같이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 우리 주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막12:29-30)
1.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우리 마음이 어디에 가 있습니까? 이게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 24시간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항상 서로를 생각하며 살듯이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 주지 않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혹시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게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10:37-38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 하니라” 하셨습니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한다면 그것을 우상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에 있어서 분명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출20:3-6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을 보면 신랑은 신부를 데려오되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데려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율법에 1년 동안은 군대도 면제해 주고 일터에 나가서 일하는 것도 면제해 주고 오직 아내를 기쁘게 하는데 힘쓰게 합니다. 이렇게 노력하면 신부는 친부모님 말고 더 좋은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더 좋은 사람이 있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시집에 두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온갖 귀한 은혜로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에 마음 빼앗기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을 목숨을 다해서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의 중요한 방법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목숨 드리지 못하면서 사랑한다는 사람은 언제든지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겼던 신앙에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다윗 보세요. 자기 목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랬기에 몇 번이나 기회가 왔지만 하나님의 기름 받은 원수 사울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산채로 삼켜 버리는 사자굴이 기다리고 있었어도 하나님께 기도와 감사하는 것을 쉬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법궤를 보관한 오벧에돔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사장들도 못하고 다윗도 못한 법궤를 그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모실 때 복을 받았습니다.
초대 교인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이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바로 감옥에 투옥되는 것이요 기업도 빼앗기는 것이요 죽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들은 목숨 걸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초대교회를 본받자고 하지만 그들의 그 목숨 바친 그 마음을 본받지 않은 한 형식만 따랐다고 진정 본 받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온전히 함께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편하게 예수를 믿습니다. 생명 바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때가 영적으로는 더 위기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순교도 중요하지만 매일 매일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산 순교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을 뜻을 다해서 사랑해야 합니다.
여기 뜻이란 생각과 계획입니다. 다니엘이 뜻을 정했던 것처럼 하나님 섬기는데 계획을 가져야 합니다. 다니엘이 어떤 뜻을 가졌습니까?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물과 채식을 할 것을 뜻을 정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세상 탐욕으로 양식 삼지 말고 말씀과 성령으로 양식을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몇 분 동안 성경을 보리라, 혹은 몇 분 동안 기도를 하리라, 혹은 예배에는 빠지지 않으리라, 혹은 전도하리라 결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내 일생에 예배당을 하나 지어 봉헌하리라 결심한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일생 힘주시는 대로 신학생을 도우리라 혹은 세계선교에 후원하리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뜻을 정해야 합니다. 혹시 다 이루지 못했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만은 보실 줄 믿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읽었지만 사울이란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지 못해서 핍박했지 진정 뜻을 정해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뜻을 정하여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려고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달려갔습니다. 달려 가다가 자기가 핍박한 부활하신 만나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사울은 자기 뜻을 고쳐 온 세상에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는 행20:22-24에서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했습니다. 우리들도 작은 뜻일지라도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힘을 다해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율법의 제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힘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양을 드리지만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를 드리고 그것조차도 드릴 수 없는 미약한 사람은 곡식 가루를 드립니다. 그러나 힘이 있는 사람은 소를 드리고 더 힘이 있는 사람 소 한 마리가 아니라 솔로몬의 경우 일천 번제를 하나님께 드려 영광을 돌렸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많이 맡긴 자에게는 많이 작게 맡긴 자에게는 작게 달라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헌금하는 것을 보신 주님께서는 부자의 많은 헌금보다 렙돈 두 닢을 드린 한 과부를 칭찬하셨습니다. 그것은 부자는 많은 가운데 드렸지만 과부는 아무 것도 없지만 생활비 전부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보면 성도들이 남 하는 것을 봐가며 신앙생활을 하는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어떻게 요구하시느냐에 있지 남을 표준삼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힘이 없다고 약하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힘대로 최선을 다하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보십니다. 그리고 자기 재능 달란트를 다해서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3번이나 물으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드려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들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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