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임하시면 (말 3:17-4:6)
이 시간 “성령이 임하시면”이라는 제목입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떤 특별한 날이 예언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호와의 날입니다. 이 날을 17절에 “나의 정한 날”이라 했고, 4장 1절에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 그리고 “그 이르는 날”, 3절에도 “나의 정한 날”, 5절에도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날을 선포했는데 이 날은 바로 2000년 전에 육체를 입고 오신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요, 성령이 임하시는 날이며,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선포한 여호와의 날은 그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악인은 심판하시고 성도에게는 기쁨과 축복의 날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날처럼 좋은 날이 없습니다. 모든 악에서 모든 공포와 괴로움에서 모든 죽음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여호와의 날 예언이 이렇게 두렵게 기록되었는가? 이것은 영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또 오시고 또 오시고 계시며 또 온전히 오실 메시아를 이 한 구절로 다 표현하는 성경의 예언의 중복적 특징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진을 몇 번 찍었는데 한 장의 사진으로 나온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주님은 2000년 전에 육체로 오셨고 지금도 영적으로 오시고 계시며 장차 영광의 왕으로 온전히 임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성령의 임하심도 주님 오심의 한 부분이요 모습이라는 점에서 이 시간에 좀 현실감 있게 “성령이 임하시면”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어떤 은혜가 있나요?
1. 특별한 소유를 삼아주십니다.
17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 여기 특별한 소유는 성경 다른 곳에서 보배 기업 등으로 쓰이기도 하는 말인데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친히 택하시고 부르셔서 자기 백성 삼으시고 보배로운 소유로 아끼심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 믿을 수도 없고 하나님 자녀가 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신부도 천국의 백성도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날이 우리에게 임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도록 하신 것입니다.
2. 아끼고 사랑하여 주십니다.
17절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사람이 자녀를 사랑하는 것보다 수십 배 더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성령 받는 것이 하나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롬5:5에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으면 먼저 느끼는 것이 행복감입니다. 그리고 평안하고 안돈감이 있습니다. 아버지 품안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습3:17에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성령으로 이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3. 회개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18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여기 분별하리라는 말은 가려낸다는 뜻이 아니라 ‘보게 되리라’는 뜻입니다. 즉 의인을 구원하시고 복주시며 악인을 징벌하시고 저주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똑똑히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심판은 최후 종말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현재에도 무엇이 선이고 악이며 무엇이 하나님을 경외함이고 아닌지 진실로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지식으로 아는 앎이 아니라 영혼으로 느끼는 앎입니다. 뼈저리게 깨달아지는 앎입니다. 어찌할꼬.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돌아오던 오순절에 회개의 역사와 같습니다.
4. 죄악을 불사르십니다.
4: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초개는 왕겨나 쭉정이를 가리킵니다. 불이 잘 타는 불쏘시개 같은 것입니다. 불쏘시개 얼마나 쉽게 살라집니까? 불이 붙기가 무섭습니다.
죄악을 처리 못해 얼마나 애탑니까?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쉽게 살라집니다. 이방종교처럼 일생 고행이 필요 없습니다. 레위기서를 보면 짐승을 잡아 똥을 빼서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살랐습니다. 이처럼 마음속의 죄악을 성령의 불로 사르십니다.
5. 심령에 치유를 줍니다.
2절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요즘 내적치유라는 프로그램도 결국은 성령운동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마음의 약함과 상처가 회복되고 평안과 자유를 누립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마음의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6. 이기는 자가 됩니다.
3절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것은 구약적인 표현입니다. 신약에서 원수를 저주하거나 멸망시킬 수는 없습니다. 원수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악을 이기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내 안의 악 뿐만 아니라 타인의 악도 사회적인 악도 성령의 부흥이 임하면 가능합니다.
7. 말씀대로 살아지게 됩니다.
4절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율법을 둘로 나누면 율례와 법도로 나눕니다. 율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명령이라면 법도는 인간에게 부과된 모든 규범 및 의무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모세 당시 사람들은 물론 넓은 의미에서는 모든 세대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들이 준수해야 할 영원불변의 규범입니다(신6:20-25).
이 구절에서 주는 힌트가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율법대로 살아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성령의 법이 살아 역사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말씀대로 살아집니다. 돌비의 율법은 명령만 했지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법은 말씀대로 살게까지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시면 원한을 풀게 됩니다. 사랑하게 됩니다. 감사하게 됩니다. 겸손하게 됩니다. 기뻐하게 됩니다. 찬양합니다. 인내하게 됩니다. 순종하게 됩니다. 온유하게 됩니다. 영혼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명을 깨닫습니다. 앞날을 대비하게 됩니다.
8. 숨은 어떤 악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5절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크고 두렵다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철저할지 암시해줍니다. 마음속에 잠재한 숨은 악까지 다 찾아내서 처리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생각까지 모양까지도 처리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충만도에 비례합니다. 온전히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9. 능력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5-6절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여기 엘리야는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니라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메시아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요한을 가리킵니다. 요한은 예수님 나시기 6개월 앞서 나서 예수님의 앞길을 도왔습니다. 즉 인간은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깨닫게 하여 예수만이 구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얼마나 능력이 많았는지 왕을 비롯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이 됩니다. 그 때 많은 죄인들이 회개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지금도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충만히 부어주고 계십니다. 여호와의 날은 과거 현재 미래 그러니까 성령 안에서 지금도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잘 경외하여 성령 충만하셔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되고 사랑 받고 치유와 변화와 승리와 능력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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