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전-계시록

초대 교회로 돌아갑시다 (행 2:42-47)

공 상희 2009. 6. 9. 15:30

초대 교회로 돌아갑시다 (행 2:42-47)

“초대 교회로 돌아갑시다.”라는 제목입니다. 초대교회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몇 가지 측면에서입니다. 먼저는 구원의 확신이 있었고, 다음은 성령이 충만했다는 것입니다. 너도 나도 성령 충만하지 못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기사와 이적이 많이 나타나 하나님 영광을 크게 나타냈고, 사랑으로 물질을 유무상통하여 교회 안팎에 덕을 끼쳤으며, 세상에도 칭송 받아 아무도 교회를 무시하지 못하는 경외의 대상이 되었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 더욱 늘어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교회입니까? 한 마디로 살아있는 성도요, 살아있는 교회였습니다. 이전의 한 사람의 예수가 아니라 예수님을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을 보는 듯한 경이로운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참 교회의 모범을 보이심으로 오는 모든 교회에 따라오도록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늘 우리가 하는 말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초대교회가 이렇게 모범적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답이 42절입니다. 42절이 본문의 핵심구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예배가 살아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살아있었습니다. 이 말씀이 가장 중요한 구절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초대교회를 닮아보려고 해도 예배의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껍데기에 머물고 마는 것입니다.

그럼 초대교회의 예배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1. 사도들의 가르침이 나타나는 예배였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그랬습니다. 사도란 교회의 초석을 놓기 위해서 세우신 특별한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의 가르침이란 그 권위가 독보적인 것이었습니다. 신적인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말씀의 영적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 예로 단조로운 설교였지만 그 설교에 하루 3,000명이 회개했는가 하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에서 보듯 사도들의 말 한 마디가 그대로 이루어지는 두려울 만큼의 영적 권세가 있었습니다. 생명력, 영적 능력, 영적 권위가 넘쳤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초대교회로 들어가려면 먼저 강단 회복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도가 아니어도 좋고 선지자가 아니어도 좋지만 문제는 강단이 그만큼 살아있고 능력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목회자의 기도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또한 성도의 기도 역시 많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강단의 회복이 사실은 초대교회로 돌아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강단 회복만 이루어지면 모든 것은 다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교회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하면 첫째가 강단을 위한 기도입니다. 강단만 회복 되면 한국교회는 살아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강단 회복은 교역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하루에 몇 시간 기도한 줄 아십니까? 열 시간쯤 하실까요? 많이 하시겠지만 열 시간 하지 않습니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그 바쁜 목회생활 속에서 엎드려만 있겠습니까? 고백에 의하면 세 시간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분만 세 시간 기도할까요? 세 시간 기도하는 목사님들 많습니다. 그런데 왜 다른 분들보다 더 열매도 크고 영광도 많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그 배후에 성도들의 기도가 상상할 수 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꼭 조목사님과 똑 같이 설교하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 분의 설교 테이프를 조목사님의 아버지께 드렸더니 들어 보시고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목소리는 아들 목사가 틀림이 없는데 어찌 은혜가 덜하다고 하더랍니다. 그 차이가 어디 있을까요? 흉내 잘 내는 분도 기도방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닐 만큼 기도한 사람이지만 왜 그런 차이가 날까요? 배후의 기도의 차이인 것입니다. 혼자 혹은 수십 명이 기도해 주는 것과 수십 만 명이 기도해 주는 것이 어찌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도의 가르침과 같은 영적인 권위가 나타나도록 설교자는 물론 전교인은 항상 강단회복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가 보여주는 예배의 특징입니다.

2. 구원의 감격이 나타나는 예배였습니다.

여기 서로 교제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한 가족과 같이 친밀한 연대감을 갖고 있었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무슨 프로그램에 의해서 강압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생겨난 가족과 같이 여기는 친밀한 연대감입니다. 이 가족애가 있었다고 하는 것은 초대교회의 참으로 귀한 자랑입니다.

이런 현상이 구약에도 한 번 나타났지요? 에스더서를 보면 죽음에서 다시 살았던 민족의 기쁜 경사를 맞아 너무나도 즐거워 많이 가진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쌓은 것을 후회하고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요즘도 어떤 사람들은 나라의 경사를 맞이하면 기뻐서 오늘 하루는 밥값 무료라고 써 붙인 식당도 있습니다. 5,18 광주의거 때도 전 시민이 하나 되어 아무 것도 아깝지 않는 가족과 같은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기이한 현상도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보다 더 진한 가족애가 초대교회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서로 교제함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구원의 감격입니다. 구원의 감격이 넘쳤던 것입니다. 이 사랑의 친교는 구원의 감격이 넘칠 때만 있는 현상입니다. 구원이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에게 붙은 모든 지체와의 회복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일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랬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넘칠 때 성도와의 진정한 교제가 열란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진정 구원의 감격이 있으면 한 가족의 친밀한 연대감이 생겨납니다. 여기에 용서도 있고, 여기에 사랑도 있고, 여기에 부흥도 있습니다. 교회는 천국의 한 부분으로 사랑의 분위기여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없으면 촛대를 옮기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가족애는 예수 믿고 성령 받아 구원의 감격을 가질 때 가능합니다. 이 가족애가 넘칠 때만이 화목도 가능하고, 전도도 가능하고, 선교도 가능한 것입니다.

3. 진정한 영성이 나타나는 예배였습니다.

“떡을 떼며”라는 말이 성찬을 가리킵니다. 성찬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으로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 됩니다.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과 사심을 확신하고 기억하고 기념했습니다. 여기서 구원의 확신을 얻었고, 여기서 내가 죽고 예수가 사는 성화의 신앙을 배웠으며, 이때마다 겸손과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수준 높은 신앙을 다짐했습니다. 우리 신앙이 성찬 예식 때만 같으면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성찬식은 내가 죽고 예수가 사는 성화신앙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입니다. 내 죄는 그대로 두고 육적으로 잘만 되려는 그런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방종교요, 그곳에 성령께서 임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진정 나를 위하신 주님의 고난 앞에서 내 가슴을 치며 내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며 주님의 마음이 가 있는 곳에 내 마음도 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 몸으로 드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번제인 것입니다. 즉 초대교회의 예배는 진정한 영성이 나타나는 예배였습니다.

4. 그리고 마지막 기도에 전념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여기 “전혀 힘쓰다”는 말은 한 가지 일에 마음과 몸을 바쳐 매진한다는 뜻입니다. 기도시간에 있어서 여러 추측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당시 유대인들의 하루 세 번의 기도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과 주일에 모일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혹은 베드로가 잡혔을 때 보듯 밤새 철야하며 기도하기 했습니다. 당시는 유대인의 관습과 혼용해서 행한 과도기였지만 어떻게 했든 모임에서나 개인 생활에서나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이처럼 초대교회 예배는 기도가 넘치는 예배였습니다. 낮 예배에 합심기도하지 말라는 말씀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들은 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했든지 모인 곳이 진동하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럴 때 오순절에 임한 그 강력한 성령이 기름 부으심이 계속하여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초대교회의 본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아름다운 모델교회를 보여주셨습니다. 예배에 성공하는 교회입니다. 예배에 성공할 때 모든 것의 성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 초대교회처럼 강단이 회복 되고 구원의 감격 속에 사랑하고 내가 죽고 예수가 살며 기도에 전념하는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나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