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은혜 받은 사람 (행 3:1-10)
이 시간에는 “얼떨결에 은혜 받은 사람”이라는 제목입니다. 본문은 나면서 앉은뱅이가 된 사람이 베드로가 외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걷고 뛰며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광스런 기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평생 성전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문밖에 앉아 구걸만 하고 살던 사람이 건강하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 마디로 그는 예수 이름을 만나 그의 인생이 완전히 변한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보면 이 모습이 바로 지금 우리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란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성전을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 볼 때 지금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처럼 예수 믿는다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깊은 은혜와 기쁨을 맛보지 하고 비루하고 추한 모습으로 항상 영적으로 영적 변두리에서 병인보다 못하고 거지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우리의 영적 모습이 아닌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이 거지의 공로는 없습니다. 오직 베드로가 명령한 예수 이름의 기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앉은뱅이 거지는 얼떨결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앉은뱅이가 고침 받아 춤추며 찬양했던 것처럼 우리가 얼떨결에라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성령으로 마음껏 누리며 기쁘게 춤을 추며 가장 행복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그럼 어떻게 그런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까요?
1. 어떤 식으로든 진정 구할 것을 구해야 합니다.
1-2절을 보면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앉은뱅이는 일생 구하는 삶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돈이었습니다. 큰돈도 아니고 자기 앞에 떨어지는 작은 엽전일 뿐이었습니다. 즉 진정 구해야 할 것을 구하지 못하는 삶이었습니다. 여기에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진정 구해야 할 것을 구하는 삶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가 진정 구해야 할 것을 일생 구하는 삶이었다면 그의 인생은 이렇게 비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부르짖고 기도하지만 진정 구해야 할 것을 구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어 구할 줄 모르는 사람도 많고 구한다 해도 육신의 문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구함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육신의 건강과 육신의 형통과 육신의 평안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책망하시고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시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0-33)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기도하고 있지만 구하는 것이 잘못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 영적 거지 신세를 면치 못하고 하나님 나라의 중심부가 아닌 변두리에서 허덕이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 변화 되려면 구하기를 잘해야 합니다.
여기 앉은뱅이는 스스로 바로 구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는 여전히 돈이라든지 무엇을 주기를 바라는 잘못 구함만이 있었습니다. 다만 베드로의 강권에 의해서 구하지도 생각치도 않은 예수 이름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는 타의에 의해서라도 강제로라도 얼떨결에라도 진정 구해야 할 것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내가 진실로 원해서 구한다면 우리 인생은 더욱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럼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구하고 성령님을 구하고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구하면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성령을 구하면 거기 다 있어요.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원하세요. 예수님만 원하세요. 성령님만 원하세요. 그런데 하나님에는 관심 없고 육신의 것만 구걸하고 있기 때문에 영적 거지 신세를 영원히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대하31:21에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구하고 일심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다고 했습니다.
2.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4-8절에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 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앉은뱅이는 때 아닌 밤에 홍두께 식으로 갑자기 된 일이라 전혀 예상도 계획도 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리고 타의 힘, 자기의 힘이 범벅된 얼떨결한 순종이었지만 예수 이름의 명령 앞에 순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를 보라 할 때 바라보았고 일으킬 때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너무 큰 소리로 말하니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고, 너무 강하게 잡아당기니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순종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겨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자의든 타의든 우리가 순종할 수만 있다면 거기에 기적이 나타납니다. 성경에 기적은 순종할 때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에게 떡을 달라 할 때 그 떡이 마지막 떡임에도 그렇게 순종할 때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고, 가나 혼인집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물을 떠다 줄 때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기적이 나타납니다.
예루살렘 성전 미문 곁에 앉은 이 앉은뱅이 보세요. 그의 순종의 질이란 그리 훌륭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미처 생각도 못했고, 예상도 못했고, 계획은 더더욱 못했고, 심지어 베드로가 누군지 요한이 누군지도 몰랐고, 일어날 힘도 없었고, 일어나 본 적도 없었지만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잡아 일으키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한 얼떨결의 순종이었지만 거기에도 기적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은 한 가지도 없다고 믿고 우리가 믿음이 오든 안 오든 예수 이름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그 예비하신 것을 다 우리에게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가 누릴 수 없는 것은 결코 없어요. 안 된다고 하니 안 되고, 못한다고 하니 못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방 땅에서 얼마나 두렵게 살았습니까? 법도 없는 이방 땅에서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나그네의 삶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안전보장이 전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승리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가 데리고 온 조카 롯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한 4개국 연합군에게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듣 크게 책임감을 느낀 아브라함은 얼떨결에 자기 수하의 종들을 이끌고 4개국 대 연합군과 싸우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이 큰 승리를 거둡니다. 싸우니까 싸워지더라는 것입니다. 한없이 나약한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지극히 나약한 자기였지만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서 싸워보니 승리가 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은 자신을 과소평가하여 실망하고 절망하지만 말씀으로 행해보면 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면서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이 사람의 고정관념, 얼마나 강하겠습니까? 당시 사람들의 수명은 로마인들이 그랬듯 40세 안팎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4:22절을 보면 이 사람의 나이가 40여 세였다고 했습니다. 당시로는 인생을 살만큼 산 사람입니다.
이렇게 일생을 한 번도 일어나지 못했고 앉아보지 못한 채로 산 이 사람인지라, 그러므로 나는 못한다, 나는 걸을 수 없다, 나는 성전에 들어갈 수 없다, 나는 업히지 않으면 꼼짝할 수 없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영원한 거지라는 이 고정관념을 어느 누가 깰 수가 있겠습니까? 그가 이러난 것은 제 정신이 아니었지요. 정말 정신조차 차릴 겨를 없이 베드로가 소리치며 강하게 잡아 다니니 얼떨결에 한 순종이었지 제 정신으로 한 순종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내 정신이든 남의 강요든 상황이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든 어떤 원인이든지 간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움직일 수만 있다면 그것은 은혜이고 거기에는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위기 앞에 부르짖다 능력을 받고, 부도가 나서 자살 직전에 애통하다가 하나님을 만나는 기적이 지금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것이면 꼭 상황을 만나서 그렇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순순히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 하지 않았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백성이면 너도 나도 다 들어가는 예루살렘 성전 뜰인데 문밖에만 자리 잡고 앉아 있을 이유가 어디 있나요? 자발적으로 순종하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천국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은혜의 문도 활짝 열려 있습니다. 내일 주시겠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그래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했습니다. 풍성하신 사랑의 하나님 앞에서 정상적인 신앙이라면 영적빈곤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요1:16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은혜러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요 구주 예수를 믿는다면서도 아직도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기쁨을 맛보지 하고 항상 영적 변두리에서 거지보다 못한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이 시간 진실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자의든 타의든 힘을 다해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크신 은혜를 풍성하게 받아 누리시는 복락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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