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전-계시록

고정관념을 깨뜨리시는 하나님 (행 10:9-23)

공 상희 2009. 6. 9. 15:19

고정관념을 깨뜨리시는 하나님 (행 10:9-23)

 

이 시간에 “고정관념을 깨뜨리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그의 일에 쓰임을 받는데 있어서 방해되는 요소들이 많습니다. 방해요소는 밖에도 있지만 우리 자신에게도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잘못된 고정관념입니다. 이 고정관념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강해져서 어떤 일을 판단하고 행동하는데 방해가 되고 나아가 자신은 물론 하나님의 일에 얼마나 거침돌이 되는지 모릅니다.

예를 들면 36년 동안 우리 민족을 압박한 일본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부정적입니까? 축구를 해도 일본에게는 질 수 없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입니다. 지진이 나서 일본 열도가 무너져도 애석하기보다는 잘 됐다 시원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얼마나 썸득한 일입니까? 그러나 고정관념 때문에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이 고정관념 때문에 말씀대로 살 수가 없고 원수를 사랑할 수 없고 이것 때문에 일본을 위해서 기도할 수 없고 또 일본 복음화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고정관념이 요나에게도 있어 얼마나 많은 방해와 갈등이 있었습니까?


그런데 이런 고정관념이 은혜 많이 받은 초대교회와 베드로에게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뿌리 깊은 유대주의 사상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의식법에 기초하여 유대인만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이방인은 짐승만도 못하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상종하지 않았는데 예수를 믿은 후에도 이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고정관념은 형제 사랑과 겸손의 도와 진리 전반 그리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커다란 거침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고정관념을 깨뜨리시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고정관념을 깨뜨리실까요?

1.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뜨리십니다.


행10:5-6에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했습니다. 여기 피장이 나옵니다. 피장이라는 직업은 죽은 짐승의 가죽을 가지고 가공하는 피혁공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죽은 짐승은 부정하다 하여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기피하는 직업이었는데 얼마나 기피했느냐 하면 유대인들의 유전인 미쉬나에 따르면 피장을 남편으로 둔 여자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도 이혼할 수 있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이러한 편견을 무시하고 피장의 집에 머물렀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평소에 행하시고 가르치시던 것을 실행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죄인의 집에도 들어가셨고, 이방인의 집에도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국경을 넘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말씀을 붙들고 유대인의 전통적인 의식법에서 탈피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피장 시몬의 집에 거한 것입니다. 얼마나 멋 있는 장면입니까?

이것이 바로 말씀으로 깨뜨리는 고정관념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남자 여자의 우열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하나님 나라를 동일하게 유업으로 받을 사람들입니다. 말씀 안에서 나와 남이 어디가 있습니까? 예수 믿으면 다 주 안에서 형제자매입니다. 말씀 안에서 백인도 흑인도 황인도 다 한 하나님의 자녀일 뿐입니다. 혹은 말씀 안에서 양반과 상인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하나님의 귀한 백성일 뿐입니다.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기질이나 스타일이나 개성도 깨뜨려야 합니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배경이 강하다 보면 거기에 자신도 모르게 휩쓸리게 되고 그것이 오해도 덜 받는 길이어서 쉽게 치우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보면 잘못된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보면 유대인도 이방인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철폐하시고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이제 구분이 있다면 믿느냐? 안 믿느냐? 그런 의미의 선민과 이방인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엡2:13-19에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하셨습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성경과 다른 모든 것에서의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합니다. 가령 실패와 저주와 절망의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버리고 나는 예수 안에서 의인이요 복 받고 사랑 받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악인을 볼 때도 예수 안에서 새 사람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보고 좋게 대해주면 좋아집니다. 그래서 잠15:1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했습니다.

불신자를 볼 때도 곧 예수 믿어 하나님 백성이 될 사람으로 보아야 합니다. 허튼소리해도 낙심치 말고 기도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후5:16에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러면서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했습니다. 예수 안에 새 사람으로 보시고 좋은 사람으로 보시고 좋게 대해 주세요. 그러면 정말 좋아집니다. 나를 도울 사람으로 보시고 나를 사랑할 사람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를 천사로 볼 때 그도 나를 천사로 보게 됩니다. 그런데 한 번 잘못 보이면 끝까지 나쁜 감정을 버리지 않는 악한 고정관념은 버려야 합니다.

이처럼 진리의 말씀에 서서 고정관념을 철저히 깨뜨리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복음을 믿지 않는 것이요 따라서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릴 수 없습니다. 그 길은 우리가 세상 말보다 날마다 성경을 보고 설교를 들으며 내 생각과 내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2. 반복을 통해 잠재의식까지도 깨뜨리십니다.

베드로의 고정관념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많이 깨뜨려졌다고 하나 유대인의 전통적 의식법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된 것은 아닙니다. 그의 잠재의식 속에는 아직도 유대인의 구별의식이 존재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본문의 베드로에게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9-14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제 육시 즉 정오 기도시간에 기도하다가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봅니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네 귀에 줄에 달려 내려오는데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좋은 고기감이지만 유대인들은 부정하여 회피하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그렇지만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자신도 모르게 대답하고 맙니다. 그러자 두 번째 소리 있어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여전히 “나는 속된 것을 먹을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라갑니다.

이 환상은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을 없애주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환상입니다. 레위기 11장이나 신명기 14장을 보면 율법의 의식법에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구별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 사람들은 부정한 종류는 먹지 않았습니다. 이 법은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인의 차이를 예표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이 사라진 신약시대에 와서 이런 의식법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봅니다. 비몽사몽이란 꿈도 아니고 생시도 아닌 잠시 자기를 잊는 순간입니다. 즉 이때는 잠재의식이 작용하는 때입니다. 베드로는 신약의 진리를 잘 안 사람이었지만 여기 비몽사몽이 의미하는 것처럼 그의 잠재의식 속에는 아직도 처리되어야 할 고정관념이 잔재해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그의 잠재의식은 구약의 의식법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갈라디아서 2장을 보면 베드로의 잠재의식에는 아직도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나타나는 유대주의가 잔재했던 것을 봅니다. 갈2:11-13에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게바는 베드로입니다. 믿음으로 이방인과 먹었다면 어떤 상황이 와도 당연하고 떳떳하며 자랑스러워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유대 성도들이 오니까 두려워서 자신도 모르게 숨었습니다. 여기에 바나바나 다른 유대인들도 그 유혹에 휩쓸렸습니다. 즉 말씀 안에서 고정관념을 털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그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그 잔재가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씀과 기도로서 계속하여 떨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반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같은 환상에 대해서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동일한 말씀으로 반복하신 것입니다. 아주 귀한 진리입니다. 반복하는 것입니다.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내 잠재의식을 진리로 채우며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사랑 받는 사람이다. 나에게 천군천사가 함께 한다. 나는 천국의 영역에서 살고 있다. 나에게 형통함이 올 것이다. 나는 예수 안에서 의인 되었다. 나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실 것이다. 모두가 예수 안에서 귀하다.” 그렇게 반복하면서 기도하고 찬송하며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보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날마다 외워야 합니다. 그리고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말하고 시편 기자처럼 “내 영혼아” 하면서 자기에게도 말하며 잠재의식 깊이깊이 진리로 채워야 합니다. 만약 베드로가 유대주의를 고수했다면 찾아온 고넬료의 사신들을 맞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고넬료의 종들을 맞아 유숙케 한 것처럼 온전히 진리를 나의 것으로 품어야 합니다.

 

3. 순종의 행함으로 온전히 깨뜨리십니다.

 

23절에 “베드로가 불러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갈새 욥바 두어 형제도 함께 가니라” 드디어 베드로가 의식법에서 벗어나 순종하는 장면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도 좋지만 더 나아가 행동으로 더 완성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옛날에 어떤 새가 살았는데 별명이 "날만 새면"이었다고 합니다. 따뜻한 낮에 마음껏 놀다가 새가 밤이 되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새끼 새들이 아버지 새를 원망합니다. "아버지 우리들도 남들처럼 낮에 집을 지었다가 밤이면 편하게 지내요" "오냐 잘못 했다. 날만 새면 집을 지으마" 이렇게 추워서 오들오들 떨었지만 정작 날이 새자 그만 집을 짓기로 한 각오를 잊어버렸습니다. "하룻밤을 어떻게 지냈는데 다음이야 못 참겠느냐? 우선 편하게, 즐겁게, 재미있게, 멋지게 지내야지" 그래서 자식들을 데리고 재미있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초조한 아들 새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오후가 되었어요. 집을 지어야지요" "괜찮다. 해질녘에 지어도 늦지 않다." 놀다가 다시 밤이 되었습니다. 추웠습니다. 아비 새는 오들오들 떨면서 날만 새면 날만 새면 날만 새면 집을 짓겠다고 다시 맹세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날만 새면 다 잊어버리고 놀고 밤이 되면 다시 맹세하고를 연발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추위가 닥친 어느 날 이 새들 가족은 모두 얼어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마음으로만 다짐하지 마시고 행함으로 옮기시기 바랍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순종할수록 더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벧전1:22에서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골3:9-10처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 나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가르치시고 보이시며 제자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리셨습니다. 이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뜨리시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베드로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안에서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는 것까지도 온전히 다 깨뜨려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 하시고 쓰실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