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전-계시록

성경의 핵심은 예수 (행 13:13-43)

공 상희 2009. 6. 9. 15:16

성경의 핵심은 예수 (행 13:13-43)

이 시간 “성경의 핵심은 예수”라는 제목입니다. 성경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신약과 구약입니다. 그럼 성경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예수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은 오실 예수에 대한 약속이고, 신약은 오신 예수에 대한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예수를 빼놓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학술적으로 아무리 위대해도 완전히 수박 겉핥기가 될 것입니다.

본문은 바울과 바나바의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사역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구브로에서 선교사역을 마치고 배타고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가려고 할 때 구브로에서 사역을 돕던 마가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마가요한은 나이가 젊은데다가 고생을 모르고 자란 사람이기도 했지만 사명감의 부족이었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교훈은 선교란 의욕과 감정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나와 내 교회에 맡기신 목숨 바쳐 수행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 사명은 곧 예수를 전하는 것이며, 이 사명은 예수를 깊이 만난 체험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깊이 만나야합니다. 그런 개인적인 체험이 깊을 때만이 예수를 위한 어떤 고난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요한은 떠났지만 바나바와 바울은 낙심치 않고 그 사역을 계속합니다. 그래서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예수를 전하게 됩니다.

그럼 어디서 예수를 발견하여 전해야 합니까?

1. 성경 전체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15절에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그랬는데 이는 모세오경과 예언서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율법과 선지자가 넓게는 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율법과 선지서를 읽는 것은 당시 회당의 전통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하셨습니다. 바울도 성경에서 예수를 보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수건으로 덮고서 보려는 것이라 했습니다(고후3:15-16). 그러므로 우리는 의도적으로라도 성경에서 예수를 발견하려고 해야 합니다. 이것도 혹시 예수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은 예수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에 아담의 가죽옷도 예수의 그림자입니다. 노아의 방주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요, 아브라함이 아들을 모리아 산에 드리려 한 것도 예수의 십자가 예표입니다. 요셉의 승리도 예수의 예표입니다. 구약의 제사나 절기나 율법이나 도피성도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시편을 보면서도 신령한 관점에서 볼 때 그 말씀이 우리의 영적 체험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그냥 전해도 은혜가 되지만 성경에서 근거를 찾아서 전해줄 때 그 말씀이 얼마나 보배롭고 힘 있는지 모릅니다. 창세기에서도 복음을, 역사서에서도 복음을, 선지서에서도 복음을, 시지혜서에서도 복음을, 사복음과 요한계시록에서도 복음을 발견하여 전해야 합니다. 거기서 예수가 발견되고 신령한 이치가 나타날 때 그렇게 복된 것은 없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전해야 합니다.

2. 출애굽 광야 가나안의 사건에서도 예수가 나타납니다.

17-19절인데요. 이 구절에 출애굽과 광야와 가나안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울이 이 이야기를 언급한 것도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는 대로 출애굽기는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해내신 이야기입니다. 민수기 신명기에는 광야 40년의 연단이 나오고, 여호수아에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신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은 객관적으로는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해 내신 예수 이야기요, 주관적으로는 성령께서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해 내서서 하늘에 속한 자로 만드시는 영적과정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 예로 바울은 홍해 사건을 옛사람을 십자가 아래 매장시키는 세례사건으로 보았어요.

고전10:1-4에서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했습니다. 반석도 예수, 물도 예수, 성막도 예수, 제사도 예수, 여호수아도 예수를 예표한 것입니다. 이런 이치를 모른 사람들은 알레고리(풍유)라고 하면서 비난하는데 성경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빈번하게 말씀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사사시대, 왕정시대도 예수를 말씀한 것입니다.

20-23절의 말씀입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징계를 받아 부르짖을 때 여호와께서 사사를 보내셔서 구원해 주시는데 바로 사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요, 성령의 예표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부르짖으면 성령을 주시고 하나님의 일군을 보내셔서 건져주시고 또 보호해 주십니다.

왕정시대 역시 왕은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 다윗은 다윗은 예수님의 만왕의 왕 되심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온갖 고난과 고통 가운데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결국 온 세계를 통치하는 다윗의 모습은 바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죽기가지 낮아지셨다가 높아지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예표한 것입니다.

4. 또한 다윗에게 하신 말씀 역시 그렇습니다.

22-23절에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즉 상징이나 예표적으로 보나 실재적으로 하신 말씀이나 다 예수님을 증거한 것입니다.

5. 그 뿐 아니라

24-43절에 바울은 세례요한이 증거했던 예수 이야기이며, 성경의 고난 받으실 메시야와 부활 이야기, 그리고 회개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는 성경의 예언 등을 말씀하면서 예수의 구주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예수로 풀어서 설명해줄 때 그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였고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조금의 추호의 의심도 없이 믿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예수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서 다각도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6. 그런데 성경 보는 관점은 조금씩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바울의 설교는 스데반의 설교와 흡사합니다. 그들의 설교는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를 그대로 나열하면서 예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유대인의 설교의 전통입니다. 본래 유대인들의 설교는 본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셨던 그 특별한 은혜를 계속하여 되풀이 전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은총을 대대로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과 스데반도 그와 같이 되풀이하며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이런 설교를 읽고 있노라면 따분합니다. 너무나도 잘 아는 말인데 계속하여 되풀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같은 말을 해도 구약의 일군과 신약의 일군들의 전하는 관점은 다릅니다. 구약의 일군들은 단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이 땅의 복을 말씀하지만, 신약의 일군들은 그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일군들도 약간씩은 다릅니다. 가령 바울과 스데반의 설교를 비교해 보면 예수를 전한다는 점은 같지만, 다른 점은 스데반은 십자가에 못 박은 백성들을 책망하는 설교라면, 바울의 설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구주로 믿도록 안내하는 설교입니다. 그러므로 한 본문을 가지고 성경 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하심 아래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사도들은 개념적인 예수만이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전할 뿐 아니라 예수를 알게 하고 맛보게 하고 체험하게 하고 만나게 하고 그 안에서 살게 하였습니다. 은혜를 끼쳤습니다. 내가 만난 예수를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히 예수님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줄 수 있도록 항상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이 충만을 입어야 합니다. 그것보다 더 귀한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 모든 곳에서 예수를 발견하여 은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그 예수님을 온전히 나타낼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보배로운 복음을 내가 먼저 누리고 그리고 온 세상에 전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