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로 틈타지 못하게 하라 (행 25:1-12)
이 시간 “마귀로 틈타지 못하게 하라”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요즘 북한의 침략 책동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사단 마귀가 바로 이와 같다는 생각입니다. 김정일이 불법을 저지르고 남한을 위협하면서 돈을 타내고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문제를 삼아 위협하듯 사단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 우리는 기도해야 하고 지혜롭게 조금의 틈새라도 보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본문은 바울이 신임 총독 베스도에게 재판 받는 이야기입니다.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적개심은 2년이 지났건만 변치 않고 끝까지 죽이려고 집요하게 달려들고 있습니다. 기회를 놓치면 죽일 수 없다는 생각에서 더욱 발악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조그만 틈새라도 보이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처한 영적환경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하기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5:8-9)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에게 역사할 어떤 틈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사단에게 틈을 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말씀에 무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1절 “베스도가 도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이제 도임한지 사흘 밖에 되지 않았으니 아무 것도 모를 때입니다. 그래도 그는 활동적이어서 유대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왔습니다. 당시 유대교는 파벌 문제가 심각했고 전임 총독 벨릭스의 실정으로 유대인들과의 관계는 악화될 대로 악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바울 사건에 대해서는 깜깜한 상태였습니다.
이처럼 말씀에 무지하면 사단에게 틈을 줍니다. 더구나 알지 못하고 활동적이면 더 위험합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해서 남는 것보다 모자라는 것이 낫다고 하지요. 모르면 가만있는 것이 더 나아요. 무지하면서 용감하면 큰일을 저지릅니다.
주님이 마귀를 이기신 것도 말씀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위험할 때는 은혜는 사모하는데 말씀에는 무지할 때입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이단의 밥이 됩니다. 더 위험한 것은 내 맘에 생겨나는 마귀가 넣어주는 생각입니다. 마음을 말씀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말씀에 충만해야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2. 높아지지 않고 겸손하는 것입니다.
2절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 새” 여기 높은 사람들은 유대의 최고 지도자들입니다. 지금 총독이 만나러 가는 자들입니다. 총독이 어떻게 하든지 달래서 잘 사귀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높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총독에게 영향이나 압력을 줄 자들임을 암시합니다.
높은 자들이니 총독이 무시하거나 거절하기 힘든 사람들입니다. 더군다나 총독은 유대인들과 관계개선이 급선무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함으로 바울은 그 정치의 틈새에 끼어 희생당하기는 너무나도 쉬운 처지였습니다. 유대인들을 달래려고 바울을 정치적 희생물로 내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높아지면 넘어집니다. 높아지면 시험이 훨씬 쉽게 옵니다. 낮아져야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도와주십니다. 전쟁터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저격수라고 합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의 어떤 여성 저격수는 수백 명을 저격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군의 고위 지휘관들만 골라서 저격했습니다. 몰래 나무 위나 풀이나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망원렌즈를 이용하여 정조준하여 방아쇠를 당갑니다. 그들이 쓰는 소총은 정밀하고 위력이 있어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정확히 저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저격했을까요? 자기를 높이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나타내고 노출하는 사람들은 저격병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이처럼 자기를 높이면 사단이 틈을 탑니다. 낮은 마음을 가질 때는 시험 되지 않던 것이 자기를 높이면 작은 일에도 기분이 상합니다. 나를 대접해 주지 않는 것 같고 나를 제외시키는 것 같고 나를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설혹 무시한다 해도 겸손하면 시험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낮아지신 예수님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시험이 와도 감사하면서 시험 들지 않습니다.
3. 정도를 벗어나지 않고 바로 가야 합니다.
3절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러라” 유대지도자들은 베스도의 호의를 입어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이송해 오고자 했습니다. 신임총독의 약점을 한껏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표면으로는 재판이지만 재판해 봐야 질 것이 뻔하니까 이송하는 도중 자객을 매복시켜 살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베스도의 체면이 어떻든 목적을 이루고 보자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베스도는 상당히 깐깐하고 성실해서 원리원칙을 고수했습니다. 4-5절에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미구에 떠나갈 것을 말하고 또 가로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송사하라 하니라” 바울은 가이사랴에 구류되어 있고 또 자기도 곧 예루살렘을 떠날 것이며, 자기 관할이 아닌 예루살렘에서 재판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살아가면서 목적을 우선하여 말씀의 정도를 벗어나면 안 됩니다.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 될 때 남미로 간 사람들은 황금을 발견할 목적으로 갔습니다. 황금을 캐어 부자가 되겠다는 목적으로 간 서양 사람들에 의해 남미는 개척되었습니다. 저들은 도착하자마자 금광을 찾아 헤매었고 그 옆에 먹고 놀 술집을 차렸습니다.
그러나 북미대륙으로 간 사람들은 청교도들이었고 저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그곳에서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고 신앙하고 믿고 섬기기 위해 신대륙에 발을 디뎠습니다. 청교도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를 세우고 옆에는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며 자녀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1-2백년이 흐르면서 어떤 결과를 낳았습니까? 북미는 초일류 강대국이 되었고, 남미는 가난 가운데 허덕이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해 줍니까? 진리대로 사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교훈입니다. 거기서 생긴 일화 중에 금을 캐러 가던 사람들 이야기 중에 남보다 빨리 가서 금을 차지하려던 사람들은 가다가 많이 죽었지만 주일을 지켜가면서 갔던 사람들은 살았다고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말씀의 정도를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자식을 얻겠다는 마음으로 편법으로 사라의 여종 하갈을 첩으로 삼았다가 하나님과 교통도 끊어지고 가정은 엉망이 되지 않았습니까? 자녀들도 공부 위주로 키우면 사단에게 빼앗깁니다. 신앙위주 키우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신앙 위주로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신앙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다 안 됩니다. 신앙이라도 바로 되어야겠다고 하면 둘 다 되게 하실 것입니다.
4. 믿음의 확신 갖고 살아야 합니다.
6-7절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송사하되 능히 증명하지 못한지라” 유대인들은 이길 자신도 확신도 없으면서 바울을 고소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번번이, 이런 확신 없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영적생활도 확신으로 행해야 합니다. 마5:37에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하셨어요. 죄는 죄고 아닌 것은 아닙니다. 할 것은 해야 하고 하지 않아야 할 것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검은 것은 검고 흰 것은 흰 것입니다. 이렇게 해도 흥 저렇게 해도 흥 주관도 없고 중심을 잡지 못하면 시험이 옵니다.
롬14:22-23에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했습니다. 죄는 회개 하세요. 그러나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회개하지 마세요. 이런 확신 없으면 사단이 시험하는 것입니다.
5.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8-12절 말씀입니다. 바울의 변론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무죄를 주장하며 흔들리는 베스도를 막아 가이사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상소했습니다. 바울이 황제에게 재판 받겠다고 한 것은 숨은 의도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박해를 피하려고 함이 아니라 로마 황제 앞에 전도하기 위해서입니다. 황제를 전도하겠다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신앙의 담대함이요, 사명의 담대함입니다.
마음이 나약하면 시험이 틈탑니다. 강하고 담대하세요. 담대한 사람이 큰 일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거기에 생명을 거세요. 쫓겨나면 쫓겨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사세요.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삽니다. 담대한 믿음에 기적이 옵니다. 하나님은 담대한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온갖 방법으로 틈을 타려 했지만 다 이기셨습니다. 바울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간계를 믿음으로 이겼습니다. 우리 모두 말씀 충만하고 겸손하고 정도를 걷고 확신 가지고 강하고 담대히 하나님을 믿어 모든 시험을 이기고 이기며 예수와 함께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행전-계시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행 24:22-27) (0) | 2009.06.09 |
---|---|
크고 귀히 쓰임 받는 사람 (행 24:22-27) (0) | 2009.06.09 |
사명자에게 주시는 은총 (행 27:1-8) (0) | 2009.06.09 |
세상을 소망하지 말라 (행 27:9-20) (0) | 2009.06.09 |
예수를 만나지 못하면 (행 26:1-23) (0) | 2009.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