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전-계시록

세상을 소망하지 말라 (행 27:9-20)

공 상희 2009. 6. 9. 11:28

세상을 소망하지 말라 (행 27:9-20)

 

 

이 시간 “세상을 소망하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본문에는 바울을 호송하던 배가 바울의 충고를 무시하고 항해하다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위기에 처하는 장면입니다. 때는 유대인의 절기인 대속죄일이 훨씬 지난 겨울철이니 항해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정박한 곳은 미항이었습니다. 천혜의 아름다운 항구 미항,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항구 뵈닉스에 가서 겨울나기를 희망했습니다. 지루하고 기나긴 겨울 보내기 좋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풍 만나는 큰 사건이 생깁니다.

우리 신앙으로 치자면 미항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믿음생활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미항에 와 있어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미항에서 우리 인생의 겨울을 나야 합니다. 거기에 반해 뵈닉스는 세상 일낙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늘 그 둘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신앙 안에서 살 것이냐? 아니면 세상 일낙으로 살 것이냐? 이처럼 우리의 양심은 믿음을 떠나지 말라고 소리치지만 인간의 육신은 사람들처럼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고 말합니다.

그럼 세상 소망하면 어떻게 될까요?

1. 세상 소망하면 위태합니다.


9절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은 선원은 아니지만 오랜 전도여행 가운데 바다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니 무리한 항해를 할 때가 많아서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후 11장을 보면 바다에서 파선 당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겨울에 배를 타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실패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세상 길 가면 백이면 백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뜻대로 살면 행복할 것 같지요? 그러나 그게 고통입니다. 그게 환난의 시작입니다. 행복하지 않아요. 한 번이라도 세상 소망하고 살다 은혜로운 적 있었나요? 제 경험으로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시험이 다가옴은 물론 심령이 찢어지고 답답하고 견딜 수 없었습니다. 딤전5:6에 “일낙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했어요.

그래서 바울이 뭐라고 권했나요? “저희를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향락과 번쩍이는 것들 이것이 우리를 손해내고 죽이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습니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입니다.

2. 세상 소망하면 우선은 편리합니다.

12절 “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향하였더라” 미항은 사람들이 과동 즉 겨울나기가 불편했습니다. 주변 환경은 아름다웠지만 상업과 유흥업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리 멀지도 않는 무역과 환락의 도시 뵈닉스를 추구했습니다. 뵈닉스는 그레데의 서편에 있는 항구로 동북과 동남을 향하여 활짝 열린 항구였습니다. 그리고 뵈닉스는 미항에서 불과 65km 지점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이탈하면 편리하게 겨울을 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이 육신으로만 보면 불편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고 융통성도 부족한 것 같고 거짓말도 못하고 세상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나아가 참아야 하고 용서하고 축복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실재는 미항처럼 더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낙에 마음 둔 사람으로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안전하고 이것이 행복입니다. 신앙 안에서 누리는 행복을 불신자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믿음 떠나 살면 우선은 편리합니다. 그러나 우선 편리가 편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제 살을 깔아 먹는 일보다 더 어리석은 것입니다. 영원히 살고 영원히 행복하고 영원히 안전해야지 인간의 상황윤리대로 편리대로 살다가는 이것도 저것도 다 잃고 말기 때문입니다.

3. 세상 소망하면 시험의 광풍이 불어옵니다.

13-14절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처음에는 순풍이었습니다. 그러나 뵈닉스도 가지 못해 광풍이 불어왔습니다. 요나도 그랬지요? 처음에는 순풍이었지만 곧 이어 태풍이 불지 않았습니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약속하는 온갖 행복 사단이 사람 잡으려는 낚시 밥이지 행복이 아닙니다. 잠5:3-6에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가나니 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치 못하여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우선은 좋은 것 같아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주일성수하지 않으면 시간도 많고 여가도 즐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이 불행의 씨앗이라는 말입니다. 헌금이나 기도나 봉사나 사명 감당하지 않으면 편할 것 같아도 더 무거운 것이 다가옵니다. 사단에게 역사할 틈을 주는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그런 시험이 다가왔습니다. 자칭 선지자라는 사람이 여자 이세벨을 용납하게 한 것입니다. 이세벨은 백성에게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게 한 사람입니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두아디라 교회가 이세벨을 용납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경건신앙을 무시하고 세속주의 신앙으로 나감을 의미합니다.

이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은 어떠했습니까? 계2:22-23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있거든 신앙부터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4. 세상 소망하면 소득 없는 헛일에 허비합니다.

15-19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바람을 맞추어 갈 수가 없어 그냥 떠밀려 갑니다.

다행히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를 지나면서 풍세가 좀 나아져 거룻배를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비상시 탈출할 작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배는 곧 깨어질 것만 같고 스르디스라는 모래톱에 걸려 파선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니 살기 위한 선원들의 노력이 얼마나 힘겨웠겠습니까? 그래봐야 겨우 작은 배 하나 끌어올렸고 줄로 배를 감을 뿐입니다. 참으로 힘겹고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주님 멀리하여 당하는 일들 얼마나 힘겹습니까? 이 일 하고 나면 저 일이 터지고 저 일을 하고 나면 다른 일이 또 터집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쉼이 없습니다. 두렵습니다. 돕는 이 없습니다. 주님을 불러도 침묵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때 깨달아야 하는데 그래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 멀리한 삶은 허비하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시127:1-2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했습니다.

18절 보면 결국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살기 위해 귀중한 온갖 것들 다 바다에 풀어버려야 했습니다. 이처럼 믿음 떠나 살면 은혜도 축복도 다 쏟아버리는 것입니다.

5. 세상 소망하면 소망도 없습니다.

20절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현재는 어려워도 소망이라도 있으면 참을 수 있는데 소망도 없습니다. 언제 거대한 풍랑으로 파선될지 모릅니다. 배는 파도 따라 하늘로 솟구쳤다가 아래로 떨 꿔지면서 공포심은 극도에 달합니다.

시편 107편은 여기에 대해서 잘 표현합니다. 시107:24-28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하신 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 도다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 도다 저희가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이것이 우리 인생 바다에서 당하는 인간의 고통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험한 이 세상에 오셔서 대신 온갖 시험을 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생활을 떠나지 마세요. 신앙의 미항 떠나 세상의 뵈닉스를 추구하면 시험이 다가옵니다. 속지 마세요. 거기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예수 안에서 믿음생활 잘하여 온갖 아름다운 은혜로 가득한 삶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