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6:1∼6
구걸을 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늘 자기 앞을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돈을 받기 위해 “아빠, 100원만 주세요”라며 구걸했습니다. 아이가 불쌍한 아저씨는 아무 말없이 백원을 주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이제 그 아저씨가 그 앞을 지날 때면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천원만 주세요” 지금까지 늘 백원씩 주던 아저씨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또 천원을 주었습니다. 묵묵히 천원을 주는 아저씨를 보면서 아이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와, 천원을 말없이 주는 걸보면 분명히 우리 아빠가 맞아.”
이제 아이는 주위 사람들에게 달라고만 하면 말없이 돈을 주는 아저씨를 아빠라고 자랑하면서 자신의 아빠라는 생각에 확신을 더했습니다. 그후 세월이 흘러 아저씨가 나이 들고 병이 들자 자신의 유업을 물려주기 위해 자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은 그 아이는 자신도 분명히 찾아가면 유업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아저씨를 찾아갔습니다. “아빠, 저에게는 무엇을 주실 겁니까?” 이후의 상황은 어찌 되었을까요, 물론 그 아이는 아무런 유업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이 아이처럼 세상의 복을 바라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 시작하다 육적으로 형통해지는 것을 하나님이 내 아버지인 증거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정신병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정신과 전문의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상하게도 정신병자들은 하나같이 모두가 잘났고, 똑똑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정신병자가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러니까 옆에 있던 정신병자가 “네가 어째서 하나님이냐?”하고 따집니다. 그랬더니 뒤에서 듣던 정신병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언제 너를 하나님으로 임명했냐?” 저마다 잘난 것입니다. 정신병자는 자기 지식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1절을 보면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회개입니다. 회개는 장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삶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나는 나라는 식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3절은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히브리말로 ‘다아트’라고 하는데 이 말은 ‘야다’라는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는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결혼생활이나 부부관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경험으로 아는 지식입니다. 부딪쳐서 알고, 눈으로 보고 알고, 손으로 만져서 아는 체험적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특징이 여기 있습니다. 그 치시는 매로써 사랑을 느낍니다. 그 진노에서 하나님의 구체적이고 선택적인 사랑을 체험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길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강하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그 놀랍고 구체적인 구속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에 나 자신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아는 일에 힘씁시다. 힘써 여호와를 압시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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