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장 3∼11절
천읍지애(天泣地哀). “하늘이 울고 땅이 슬퍼한다”는 뜻으로 기막힌 슬픔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누구에게든지 크고 작은 어려움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몰아닥쳐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에게도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시 3:1∼2)고 비웃을 정도로 큰 아픔이 닥쳤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던 욥과, 요셉, 다니엘, 여호사밧, 그리고 히스기야 왕에게도 죽음이 눈앞에까지 다가온 환란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바울 사도도 오늘 본문에서 얼마나 고통이 컸던지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숨도 못 쉴 정도의 큰 아픔을 겪고 땅을 치며 통곡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려운 목회자가 찾아와 “한번만 도와주면 은혜를 잊지 않겠다”며 울면서 애원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보증을 서줬습니다. 그게 잘못돼 성도들과 함께 피땀 흘려 건축한 아름다운 성전을 날리고 빈손으로 거리에 나앉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아내는 병석에 누웠고 성도들은 떠났으며 세인들은 망했다고 비웃었습니다. 참으로 눈앞이 캄캄하고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능력의 종 엘리야가 이세벨에게 쫓겨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는 모습(왕상 19:4)이 제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위로’라는 단어가 무려 10회나 강조되고 있습니다.
환란이 끊이지 않는 시대(4절)에 살고 있는 우리는 큰 자나, 작은 자나, 있는 자나, 없는 자나 주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야만 합니다.
‘위로’라는 말씀의 뜻은 ‘괴로움과 아픔을 어루만져 잊게 한다’는 주님의 크나 큰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본문의 바울 사도는 환란을 극복한 비결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해야 한다(9절). 둘째, 겸손히 중보기도를 요청해야 한다(11절). 셋째, 주님을 찬송하며 자비의 아버지, 위로의 하나님이시라고 확신해야 한다(3∼4절). 넷째,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주님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해야 한다(5∼7절).
주님께서는 제 아픔과 괴로움을 어루만지시고 크고 비밀한 것으로 희망 찬 내일을 예비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그 큰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하리오. 이 생명 다해 세상 끝날까지 주의 복음을 전하렵니다.
“오, 주님! 간절히 소원하오니 이 백성을 위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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