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설교

행복한 학생들

공 상희 2008. 7. 3. 19:32

행복한 학생들

본  문 : 시편 1편 1-6

 

시23편을 조금 바꾸어서.....복있는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바꾸어 봅니다.


1 행복한 사람은 나쁜 사람들의 꾀임에 따라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죄인들이 가는 길에 함께 서지 않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빈정대는 사람들과 자리에 함께 앉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2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즐거워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깊이 생각합니다.

3 행복한 사람은 마치 냇가에 옮겨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계절을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새가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는 일마다 모두 다 잘 될 것입니다.

4 그러나 불행한 사람들, 나쁜 사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들은 마치 겨와 같습니다.

  그래서 쉽게 바람에 날려갑니다.

5 그러므로 나쁜 사람들은 하나님이 벌을 주실 때 그 벌을 견딜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들 또한 착한 사람들이 모여서 드리는 예배에 함께 참석할 수가 없습니다.

6 착한 사람들이 가는 길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살펴 주시지만  악한 사람들이 가는 길은

  결국 망할 것입니다.



* 너무도 사랑하는 중․고등부 여러분!

    할렐루야!! 영광을 모두 우리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정말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을 기뻐하셨습니다. 우리의 준비서부터 관심을 보여주시되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기뻐하시게 한 것들만 하나님은 기억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찬양을 기뻐하며 찬양중에 계시는 하나님께 집중했다면 (찬양집회에 대한감동과 감격에 대한...)

이렇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분명히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귀히 여기신 것이 분명하십니다.

여러분의 생각도, 그 무엇이라도 존중하시고, 기억하시며, 사랑하셨습니다.

더 많은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더 많은 감사드리시길 원합니다.


여러분 벌써 3월입니다. 내일이면 입학식과 개학을 합니다. 2003년 1학기가 시작합니다.

‘복’있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최선을 다하길.. 원하는 마음으로 오늘 말씀을 전합니다.


    여러분! 사람의 인생에는 두 길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길은 행복과 불행의 길입니다.

시편 1편은 목사님과 여러분에게 어떤 길을 걸을 걸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너 행복하니?"라는 질문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오늘 시편 1편에서 복(福)/행복은 히브리어로 '아쉬레이'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의 은총 곧 복을 주셨기에 번영'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행복의 시작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지. 믿습니까? 믿어야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도 어느 정도는 눈치로 잘 알 것 같은데 행복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에 가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공부해야 하는 여러분, 학교를 마친 후에는 학원에 가야하는 여러분이야말로 어쩌면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할줄 모르겠네?? 

여러분은 어디에서 행복을 찾습니까? 성적에서 찾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성친구에게서 찾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게임에서 찾거나 연예인에게서 찾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성적에서 행복을 찾는 친구들은 성적이 예상 밖으로 떨어지면 큰 불행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행복을 이성친구에게서 찾는 친구라면 작은 다툼과 이별로 불행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게임에서 찾는 친구 역시 게임을 하지 못하게 되면 불행할 것입니다. 이처럼 이 세상의 행복은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세상의 행복은 잠깐이기에 더 큰 아픔과 불행을 가져다줍니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잠깐의 행복을 위해 생명을 걸지 말고 영원한 행복을 위해 생명을 거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시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행복을 살아계신 하나님 안에서 얻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떤 사람이 진정한 행복한 사람인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행복한 학생은 자신을 존귀하게 여깁니다.


    시편의 첫 노래가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정의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즉 행복한 사람은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세상친구들과는 정말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하지?? 성적을 올리기 위해 악한 꾀를 생각해 놓고선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포장합니다. 자기가 얻고 싶은 것이 있으면 거짓말도 서슴지 않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실수와 허물을 내 탓이라고 인정하기 보다는 남의 탓이라고 돌립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어찌 이 세상을 살면서 악한 꾀 한 번 내지 아니하며, 죄를 짓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같은 잘못된 삶의 태도와 자세는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신분을 가진 존재들인지 모르기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바로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사람인가를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자들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43:21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큰 비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기대/비전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사람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대가 얼마나 크면 예수님을 버리실 정도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공개하고 있겠습니까?

이사야43:3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의 크기만큼 무게만큼 여러분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며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의 존귀함은 예수님의 핏 값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는 여러분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걸으셨습니다. 우리를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머리엔 가시면류관을 쓰셨습니다. 머리를 찌르는 가시로 인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참아야 하셨으며 얼굴엔 흘러내리는 피로 뒤범벅이가 되셔야 했습니다.


    우리를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양손과 양발을 대못으로 박히셔야 했습니다. 망치가 내리칠 때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참혹한 고통을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참으셔야 했습니다. 우리를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셨으면 예수님께서는 옆구리마저도 창에 찔리시어 물과 피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아니하시고 쏟아내야 하셨겠습니까?

이사야 53:4에 그 이유를 너무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은 우리의 질고, 즉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얻는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짊어 지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은 우리의 눈에서 슬픔의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행복할 권리가 있는 저와 여러분이 질병과 슬픔 때문에 불행해 지기를 원치 않으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5절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 사실이 경험적으로 믿어지는 사람이라면 악인의 꾀임에 따라가지 않습니다. 죄인들이 가는 길에 함께 서지 않을 것입니다. 오만한 자와 자리에 함께 앉지 않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들인지 이 시간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인쳐주시기를 원합니다.



2. 행복한 학생은 남을 존귀하게 여깁니다.


    본문 3절에 행복한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어 자기가 먹는 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심은 믿음의 나무입니다.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다함은 열매를 맺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철이 되었는데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나무는 도끼에 찍혀 아궁이에 던져지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요15:8에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실을 많이 맺는다함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 즉 남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열매를 맺는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 15:13, 14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남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예수님의 친구가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을 친구로 삼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인 줄 믿습니다.


    기생 라합이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정탐꾼 둘을 존귀하게 대하여 친절을 베풀었을 때 그 가정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생명을 걸고서라도 선대한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정탐꾼을 존귀하게 여겼던 기생 라합은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가운데 구원을 받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자신을 죽이려하였고, 노예로 판 형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17세라는 청소년 시절에 요셉이 감당해야할 시련은 너무나도 컸습니다. 10년동안 노예로 살아야 했으며 3년 동안은 감옥에서 지내야 했던 요셉이 형들에 대하여 원한을 품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총리가 된 후 형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형들에게 나로 인하여 근심하지 말고 한탄하지 말라고 하면서 선대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형들이 나를 이곳에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고백하는 요셉은 형들을 존귀하게 대하였습니다. 남을 존귀하게 여기고 섬길 줄 아는 요셉이었기에 하나님께서 노예의 신분에서 한 나라의 총리로 높여 주심으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하신 줄 믿어야 합니다. 믿지?! 믿으십시요^^


    왕자병에게는 따돌리는 문제있지 이것을 우리는 ‘왕따’라고 하지. 왕따 문제로 신음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친구들을 존귀하게 여기고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근에 학교 선생님을 존경하기 보다는 업신여기는 친구들이 늘어만 가고 있음을 봅니다. 마음에 들때만 존경하고, 그렇지 않으면 존경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결코 행복한 사람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선생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위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낳아주신 부모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다른 부모와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이 너무 원망스럽고 밉다구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부모님을 존귀하게 여기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김소윤 선생님은 하루에 30분 정도 아빠와 대화한다는데, '청소년보호백서'에 따르면 고교생 22%가 아버지와 하루 1분도 대화를 안한다고 합니다. 중학생 열명 가운데 한명은 "부모님이 나를 믿지 못한다"고 답했습니다. 여러분은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대화를 하고 있습니까? 부모님과의 갈등은 결국 여러분에게 있어서 불행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부모님에게서 떠나 있다면 지금 그 마음을 되돌리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3. 행복한 학생은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영광를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삼상 2:30에 "…나를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말 3:16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


    하나님께서 존중히 여기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일이 마태복음 26:6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옥합을 깨트린 여자는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마리아라고 합니다. 마리아가 나사로를 살려주신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예수님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옥합을 깨트린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여 예수님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옥합을 깨트리길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마26:13을 보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마리아를 기념하라고 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말씀입니까? 이천 년 전에 한 이름 없는 여인이었지만 오늘날까지 그녀의 이름이 우리에게 공개되고 있으니 마리아는 행복한 사람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이름도 예수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꿈을 꾸는 여러분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분명 여러분을 존귀하게 높여주실 것입니다. 야베스는 하나님을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했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그것을 놓고 기도했을 때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가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대상 4:9) 하나님께서는 야베스에게 복에 복을 더하여 주셨으며, 그의 지경을 넓혀 주셨고, 친히 하나님의 손으로 도우사 모든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분명 야베스는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야베스에게 임한 행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4. 행복한 사람은 존귀한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재능이 무엇이건, 어떤 교육을 받았건, 무슨 일을 하고 있건 여러분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존귀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존귀한 길을 걸을 때 행복한 사람이라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문 6절에서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기준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에 두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행복자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을 걷는 사람이 존귀한 길을 걷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는 것보다 더 보람되고 의미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왔지만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뜻을 정하고 나아갔습니다. 또한 삼십 일 동안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나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지움을 당할 것이리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전에 행하여 오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존귀한 길을 걷다보면 다니엘처럼 사자굴에 던지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다니엘처럼 사자굴 속에서도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할 것입니다.(단6:23)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사자의 입을 꼬옥 봉하셨다면 오늘도 존귀한 길을 걷는 사람이 당하는 시련과 고난을 보고만 계시지 않으리라 믿으시기 바랍니다. 존귀한 길을 걸었던 다니엘을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총리 세 명중에서 으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은총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임하길 원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존귀한 길을 걷고 있습니까? 학교에서 시험을 볼때의 여러분의 모습이 존귀한 길을 걷는 모습이길 원합니다. 컨닝 때문에 존귀한 길을 더럽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여러분의 모습이 존귀한 길을 걷는 모습이길 바랍니다. 게임중독과 음란사이트에 빠져 여러분이 가는 길을 더럽히지 않기 바랍니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탈 때에 존귀한 길을 걷기 바랍니다. 부모님을 속이고 용돈을 더 타내므로 여러분이 걷고 있는 길을 더럽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성친구와 교제를 할 때도 존귀한 길을 걷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존귀한 길을 걷는다면 여러분은 행복한 십대를 보내고 행복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자!


    행복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을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 여러분은 행복한 인생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청소년 시기는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뜨는 시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인지 알고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남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잘못된 길을 걷지 아니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행복이 가득한 십대들이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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