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설교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공 상희 2008. 7. 3. 18:37
이번 주는 여러 가지로 행사가 많은 날입니다. 오늘은 먼저 추수감사주일로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는 날이요, 또한 고3학생들의 수능시험이 불과 3일밖에 남지 않아 고3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날이요, 마지막으로 이번주 토요일에 있는 시와 찬미의 밤을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준비하여야 하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이 모든 일에는 감사가 표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하여, 그동안 함께 해 주셨고, 또 앞으로 함께 해 주실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는 삶은 무척 중요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감사합니다]라는 표현에 무척 인색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비교적 이 [감사]라는 표현(인사)를 잘 하는 편입니다. 영어를 말하는 사람들은 [탱큐](Thank you)라고 하고 독일어로는 [당케 쉔](Danke schon), 네덜란드어로는 [당퀴 벧](Dank U wel), 일본어로는 [아리가도우 고자이마스], 중국말로는 [셰 셰](謝謝), 이태리어로는 [그라지에](Grazie), 스페인어로는 [무차스 그라시아스](Mucharistia), 헬라어로도 [유카리스티아], 이스라엘 사람들은 히브리어로 [토다]라고 하고 불란서어로는 [멜시 뽀쿰](Merci beaucoups)이라고 합니다.

먼저 추수감사절의 유래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은 1620년 102명의 청교도(16세기 영국의 종교개혁자들)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유럽을 떠나는데서부터 그 기원을 찾게 됩니다.
청교도 운동이란, 16세기 중반에서 17세기 초에 걸쳐 영국에서 크게 일어났던 신앙운동입니다. 이 운동이 갖는 교회사적 의미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영국역사와 미국개척사에 끼친 영향도 지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분명히 교회 개혁운동이었고 보다 성서적인 신앙과 예배의식과 교회정치에 대한 열망에서 출발했으며 신학적인 주장에 기초한 정신을 갖고 또한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에 대해 정당한 시각을 나타내준 운동이었습니다. 영국 국교회를 정화시키고자 했던 개혁자들은 1563년 갠터베리교구의 교직회의를 통하여 전국교회에 청교도 운동을 실시하려 했으나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이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어 1567년에 급진적인 청교도의 지도자들이 대거 체포 투옥당하였으며, 1593년 엘리자베드여왕은 회의를 통하여 '반청교도령'을 가결시켰습니다. 이로써 청교도들은 국외로 망명 혹은 추방당하게 되었습니다.
1620년 배에 오른 사람은 남자 78명, 여자 24명이었습니다. 도합 70가구 102명의 사람들은 [메이플라워]라는 배를 타고 망망한 대해를 항해하다가 도중에, 장장 3,400마일(5,440Km)을 항해하여 뉴잉글랜드 "플리머스 하버머"라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감격하여 한 발은 배에 걸치고, 한 발은 육지를 딛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상륙하여 산림을 채벌하여 먼저 토막교회를 짓고, 그 다음 학교를 짓고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집을 세우니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아무런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추운 겨울을 지나는 사이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모자라 병이 들어 그들 반수가 죽어 갔습니다. 다음해까지 남은 남자수는 불과 27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원망없이 청렴하게 하나님을 믿는 생활을 통하여 인디언들과도 가까이 지나게 되었고, 청교도라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습니다. 토지를 개간하여 옥수수, 원두, 밀, 보리씨... 등을 파종했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습니다. 예상 외의 많은 수확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기쁨에 넘친 그들은 처음 추수한 오곡백화 곡식을 앞에 놓고 하나님게 추수의 감사를 드리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1621년 가을 첫 농사 수확에 감사하여 인디언 추장과 그의 부하들을 초청 3일간 즐거운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때 인디언이 칠면조 고기를 선물했는데, 그것을 기념해서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 때 칠면조고기를 먹고 있습니다. 그들의 추수감사절예배는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가운데서 지극히 원시적인 여건과 가난한 사람들의 손길에 의하여 드려진 예배였습니다. 이들은 옥수수와 밀가루 빵과 원두로 케이크를 만들어 성찬으로 식탁을 나누며 하나님께 찬송과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들이 드린 추수감사절의 예배는 동료를 절반이나 잃어버린 예배로서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동료들의 묘지 곁에서 드린 예배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함께 쓰던 공동변소도 불이 나서 타 버린 상태에서 얼어붙은 땅위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예배였던 것입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추수감사절이 함께 배를 탔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애당초 배를 타고 출발할 때부터 모두가 청교도들만이 탔던 것은 아닙니다. 신대륙으로 가서 많은 물질을 소유하겠다고 탐욕스럽게 배를 탔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추수감사예배를 드릴 때 한 쪽에서 카니발(carnival)을 하고 있었습니다. 카니발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왁자거리며 놀기, 광란, 흥청거림]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축제는 카니발이 아닌 페스티발(festival)입니다. 이렇게 초기부터 미국은 두 세력이 공존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라지와 알곡이 섞여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추수감사절예배는 미국 대륙을 발견한 1621년경 청교도인들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지만 1789년 11월 26일 워싱턴대통령에 의하여 미국 국경일로 채택되면서 추수감사절은 더욱 아름다운 믿음의 본이 되는 축제의 날이 된 것입니다. 그후 몇번의 수정이 있다가 1938년 루즈벨트 대통령이 새 관례로서 11월 셋째 목요일을 감사절로 정하고 공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선교 20년 후인 1904년에야 비로소 추수 감사절을 지켰습니다. 1914년에 각 선교부는 미국 선교사에 조선에 처음으로 입국한 날을 기념하여 11월 제3주일 후 3일째인 수요일을 감사절로 정하여 예배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추수감사 헌금은 모두 총회 전도부에 보내어 전도사업에 쓰도록 결정하였고, 그 후에 수정보완하여 11월 셋째주일로 변경하여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습니다. 오늘 날에 와서는 11월의 상황이 우리나라 추수시기와 맞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 추석시기에 맞추어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기도 하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감사를 표하는 마음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은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서는 무엇이라 합니까?
추수감사의 실제적인 오랜 기원은 성경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기원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본 구약의 본문입니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이미 3대 절기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출애굽기23:14에 보면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첫째는 유월절(무교절)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신16:1-18) 이 절기는 출애굽하게 될 때에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르고 쓴 나물과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떡을 먹으며 출애굽을 준비하는 절기였습니다.
둘째는 오순절(맥추절)로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것과 첫번째 수확하는 곡식인 보리수확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셋째는 초막절(수장절,칠칠절)로서 가을에 거둬들인 곡식들과 포도와 무화과 추수를 감사하며 또 출애굽하여 가나안까지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지내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를 지킬 때에는 광야로 나아가 초막을 짓거나 탠트를 치고 한 주 동안 그 안에서 조상들이 겪은 삶을 실제로 경험해 보면서 보내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이 세 절기의 특징과 공통점은 모두 [감사하는 절기]라는 사실입니다. 축복을 받았다는 생각 이전에 우리는 나그네 인생들로 초막집에 거하며 사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와같은 인생들을 하나님께서는 1년 동안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추수감사는 지금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 내려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추수감사는 지나간 1년을 뒤돌아 보면서 우리에게 베푸신 축복을 깊게 기억하며 감사하는 절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신약의 골로새서 말씀을 통하여 감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여섯살 짜리 아이가 식사 초대를 받아 이웃집에 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할 때 그 아이는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모두들 식사하실 때 감사의 기도를 하지 않으세요?"라고 하니까 주인은 "우리는 기도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단다."며 말했습니다. 그때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집 개를 닮았네요. 우리 집 개는 밥을 주면 그냥 달려와서 식사를 시작해요" 라고 말했습니다. 사람과 개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본능은 같습니다. 그러나 개와 사람이 다른 것은 개는 아무 생각 없이 음식을 먹지만 사람은 이 음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농사를 짓느라 수고한 농부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맛있게 요리한 어머니께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이 풍성한 식탁을 나누지 못한 북한 동포를 생각하며 그들에게도 풍성한 식탁이 베풀어 지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안디옥 교회에서부터 였습니다. 이 그리스도인에게 2가지 별명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요. 또 하나는 [감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감사란 은혜를 받은 자들이 그 은혜를 마음에 깨닫고 보답하는 것입니다. 감사라는 말을 한문으로 보면 느낄 감(感 -느끼다, 마음을 움직이다. 고맙게 여기다)에 사례할 사(謝)를 쓰고 있습니다. 이 말 그대로 감사는 고마운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은혜를 베푼 자에게 사례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감사 - 한자로 풀이 제시)

사도바울은 본서 3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리를 교훈 하면서 특히 감사하는 자가 되기 위해 감사 생활 3단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각절마다 감사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1. 마음속에서부터 솟아나는 감사입니다.
본문15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은 인격의 지성소요 그 삶의 실제이며 생명의 근원입니다. 사람은 마음먹기 여하에 따라 그의 삶이 변화되어 감사 하는 삶을 살아 갈 수도 있고, 불평과 원망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모크리토스라는 철학자는 "행복과 불행은 모두 마음에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첫 번째 단계는 마음속에서부터 솟아 나오는 감사입니다.
성경에서 감사의 증인을 말하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구약에서는 다윗이요.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고난과 환난 중에서도 그 마음에 감사함을 잊지 않았습니다. 시편을 보면 감사의 표현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 역시 그가 기록한 성경책을 보면 감사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만을 봅시다. 15절, 16절, 17절 말씀 모두가 감사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특히나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데살로니가 전서 5:18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들이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은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감사는 권면이 아니라 명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성도들이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명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하셨고 엡5:20에서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하셨습니다.
이런 감사의 마음은 우리 마음속에서부터 진정한 평안히 얻어질 때 솟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분이라고 눅2:14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에서 얻는 평안과 다른 다른 내적인 평안입니다. 즉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모시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며 진정 조화를 이룬데서 부터 오는 평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라는 말씀에서 주장이라는 헬라어 {브라뷰에토}는 말은 "조절한다. 관리한다. 통제 지휘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장하고, 우리 마음에 성령으로 주장할 때 범사에 감사가 넘처나오는 삶을 살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2. 말로 하는 감사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모두가 입으로 하는 고백입니다. 진정한 감사의 2단계는 입술의 감사요, 말로 고백하는 감사입니다. 말로 감사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말로 고백하고 시인한다는 뜻입니다. 신앙은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입으로 시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얻는 구원도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라고 롬10:10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와 같이 감사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하심을 마음으로 믿고 또한 깨달은 후 입으로 "감사하다." 라고 시인하고 고백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은 생각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으로 감사를 표현하면 이미 우리의 마음에는 감사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말은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지배하게 됩니다. 우리가 말을 하면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면 내가 그 감사한다는 말을 제일 먼저 듣게 되고 감사가 솟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으로 고백하는 감사는 마음에서 더 큰 감사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미안하다"는 말과 "감사하다"는 말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기쁘게 해주는 것이며 우리들의 생활을 바꿔 주게 됩니다. 우리의 입술로 감사를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요. 우리들의 마음에는 더 큰 감사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3. 생활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본문 말씀 17절입니다. 같이 봉독합시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말에나 일에나 다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일이란 우리들의 하루하루 모든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감사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의 삶은 항상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는 마음의 뿌리요 진정한 감사는 헌신의 삶입니다.
노래는 불려질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되어 질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복은 받은 것을 감사할 때까지 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전체를 통하여 드리는 감사가 참 감사입니다.

3일후면 고3들이 수능시험을 치룹니다. 우리는 그 동안 그들을 위해 별로 한 것이 없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힘이 되고자 기도를 했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았지만 실은 이것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역사상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에 감사하며, 또한 그 동안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지키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3학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아는 한 분은 사법고시 1차를 합격하고, 2차 시험을 하루 앞두고 공부하다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여 시험을 못보고 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어떤 이는 평상시는 학교에서 항상 최고의 성적을 자랑했는데, 막상 수능 시험을 보는데 머리가 아파 제대로 답안을 작성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지키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앞으도로 지키실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 주 토요일에 있게 되는 시와 찬미의 밤에 최선을 다하며 감사하는 지체들이 되길 원합니다. 이번 주 수요일에 고3을 위한 기도회와 더불어 전체 리허설을 하게 되는데, 참여하는 자들이나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이나 모두 나와서 함께 하나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동안 우리의 삶을 지키신 주님, 우리가 이 자리에 있게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하는 시와 찬미의 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고 손양원 목사님이 두 아들이 공산당의 총에 맞아 죽어 영결식을 치룰 때 마음으로, 말로, 생활로 드린 감사의 기도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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