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설교

예수님을 모시는 성탄절이 되게 하자(요1:11-14)

공 상희 2006. 12. 21. 11:36
예수님을 모시는 성탄절이 되게 하자(요1:11-14)  

 

예수님을 모시는 성탄절이 되게 하자(요1:11-14)


금년도 저물어 가는 세말입니다. 인생을 구원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찾아오신 예수님의 탄생일을 경축하는 성탄절을 몇일 앞두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기쁜 절기임에 틀림없지만 기쁨과 흥분, 축제와 야단스러움으로만 보낸다고 참된 성탄 축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없이 우리들만 좋아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모시는 성탄절이 되게 하자는데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봄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합니다.


1. 처음 성탄절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11절 말씀에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말씀이시며 창조주이시며 빛이시며 생명이시며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빛으로 오셨고 생명으로 오셨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지만 자기 백성들이 영접지 아니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축복을 가득 담아 가지고 오셔서 사람들에게 부어주시려 했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등을 돌렸고 그에게 무관심하였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학대하고 박해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헤롯은 예수님을 죽이려했고 베들레헴 성민들은 예수님에게 방 한 칸을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눅2:7에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더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특권층도 아니었고 마리아가 만삭이 된 임산부라고 누가 특별히 배려해 주는 사람 하나 없었습니다. 권력 있는 사람들이나 로마의 군인들, 돈 많은 사람들, 특수층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방은 있었지만 요셉과 마리아가 거할 방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냄새나고 더럽고 시끄럽고 추운 어두컴컴한 짐승우리에서 여장을 풀었습니다. 이 마굿간이 예수님이 태어난 장소였습니다. 이것은 세상인심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너무했다는 극단적인 증거입니다. 베들레헴 성민들은 참으로 예수님을 푸대접했습니다. 예수님은 따뜻한 영접도 포근한 환영도 받지 못했습니다. 자기 땅에 왔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첫 번 성탄절의 상황이었습니다.


2. 오늘의 성탄절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나라면 예수님을 그렇게 대접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이 시간에 예수님은 우리 마음속에 찾아오시지만 우리는 이미 세상의 다른 것들로 가득 차있어서 여기 방이 없습니다 라는 말을 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이 거하시기를 원하시는 방은 좋은 호텔, 화려한 궁전, 따뜻한 온돌방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내 마음의 방에 주님이 찾아오시기를 원하시고 계시는데 내 마음은 세상 욕심으로 가득 차있고 이기심, 교만, 허영으로 가득 차있고 세상자랑, 세상재미로 가득 차있습니다. 그래서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들어오실 여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방문해 보시고서 찬양도 있고 선물도 있고 기쁨도 있고 축하행사도 있고 크리스마스 트리도 있는데 내가 들어가 머물 방은 없구나 하시면서 발걸음을 돌리시지는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을 푸대접하여 돌려 보내면서 무슨 성탄축하행사가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문밖에 세워 두면서 무슨 성탄축하행사가 되겠습니까? 우리의 성탄축하행사를 점검해 보아야합니다. 성탄축하행사를 한다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잠을 자지 못해 성탄예배를 드릴 때는 잠을 자고 있거나 아니면 늦잠에 빠져 축하예배를 참석치 못하는 일들이 흔히 있습니다. 의미 없이 모여 웃고 즐기고 먹고 마시는 것, 요란한 노래 소리, 화려한 장식, 외형적인 축하행사와 예수님과의 어떤 관계가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 좋아하는 즐거움으로 성탄을 보낸다면 교회 밖에서 흥청망청하는 그들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모시지 않는 우리들끼리의 행사요, 기쁨이요, 친목이라면 술집에서, 나이트클럽에서 북적대는 사람들의 그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님의 희생정신과 그 겸손을 참으로 묵상해 보아야합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심으로 마음 속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하늘의 평강과 위로와 감격을 맛보아야합니다. 날 구원하러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해 드림으로 그 분 앞에 인격적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해야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한 감격을 맛보고 기쁨으로 찬양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참으로 기뻐해야 될 것에 무감각하고 참된 은혜에 무표정하고 참된 사랑에 무반응적인 행사위주의 성탄절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성탄의 의미를 모르고 요란스럽게 떠들어대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이 없는 성탄절은 축하하는 자가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기뻐하는 장소가 교회 안이건 교회 밖이건 참된 성탄축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3. 예수님을 모셔들이는 즐거운 성탄절이 되게 합시다.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꼭 한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이 일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유일한 길입니다. 가장 진정하고 뜻깊은 성탄절은 인간을 위해 세상에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 속에 영접하여 모셔들이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날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옥의 고통에서, 사탄의 세력에서 건지시기 위해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무목적과 방황에서 새롭게 하기 위해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생명과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기 위해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습니다. 나를 구원하러오신 예수님께 감격의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합니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고마움의 벅찬 느낌을 가져야합니다.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을 마음껏 불러보아야 합니다. 성탄이란 신의 아들이 죽어 인생을 살리는 존귀한 자와 죽음을 담보로 비천한 자가 생명을 유보 받는 장엄한 생명이식수술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성탄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언도한 사형집행문서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효화하고 우리에게 영생문서를 안겨 주시므로 절대사면을 선포하는 유쾌한 사건의 시작 날입니다. 성탄이 있었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탄의 의미를 잊은 채 성탄절을 통해 오히려 범죄만 더해 가는 이 패륜, 이 오류, 이 무례에서부터 우리는 정말 벗어나야 합니다. 내 마음속에, 우리가정에, 우리교회에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하실 깨끗한 방을 준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