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문 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시50:14-15)

공 상희 2006. 10. 28. 13:30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시50:14-15)

건강학을 연구하는 분들의 말을 빌리면 건강하게 사는 법은 몸의 생체리듬에 맞게 순리대로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거스를 때 질병이 오고 고통이 옵니다. 이처럼 오늘날 모든 불행의 원인은 인간이 하나님의 지으신 목적에 맞지 않게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기뻐하며 살도록 하시기 위함인데 그 목적에 맞게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결코 하나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우리 인간의 최고의 행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주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까요?

1. 감사로 제사해야 합니다.

본문 14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그랬습니다. 감사제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감사는 히브리어로 ‘힢일’이라고 하는데 그의 백성이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반응을 뜻합니다. 여기 반응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이 용어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모든 은혜로우심을 전제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의식주 문제만 가지고 감사의 조건을 삼고 있는데 그것은 작은 한 부분일 뿐입니다. 우리는 큰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 큰 감사를 엡 1장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창세전에 선택해 주신 은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성령을 주시고, 죄 사함을 주시고, 의롭게 해 주시고, 예수 안에서 하늘 높이까지 영화롭게 해 주시고, 영원한 천국과,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이 되게 하시고, 주의 일군 삼아주신 그 사랑 등이 큰 사랑입니다.

그런데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이유는 감사 그 자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남이 알아주는 것보다 내 자녀가 알아주는 것이 더욱 기쁘던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저는 아빠가 가장 존경스러워요.” 할 때 사실은 그렇지 못하지만 아들의 말이 너무나도 고마워 눈물 흘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 최고예요.”하면 하나님도 감격하여 글썽거리지 않으실까요? 하나님의 은혜는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끝없는 감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임마누엘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보이는 것만 감사하려면 감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모세가 올라간 산이 호렙산인데 황폐한 산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신 산이기에 복된 산입니다. 헬렌켈러, 그녀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 세 가지 장애를 가진 자였습니다. 오체불만족 목석과 같은 사람이라고 불러야 딱 맞는 사람이었죠. 헬렌켈러에게도 소원이 있었습니다. “내가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내가 3일 동안만 보고 싶다고 했을까요? 그러나 그는 오체불만족 속에서도 함께 하신 하나님 때문에 항상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특별히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 높이 구원해 주신 것을 생각하며 날마다 감사해야 합니다. 합3:17-18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했습니다. 이처럼 심령에 풍성함이 없다고 불만하지 마세요. 예수 안에서 이미 주신 것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누리는 복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박국의 감사는 결코 추수감사절에만 쓰이는 감사가 아니라 영적으로 보면 예수 안에서 이루어주신 복음의 감사입니다. 실재로 문맥을 보면 그의 감사는 구원의 이야기예요. 이렇게 구원의 은혜를 감사할 때 그리스도의 구원의 영광이 나타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감사는 우리의 삶에 무한한 기적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 서원을 갚아야 합니다.

다시 14절에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서원이란 하나님께 한 헌신의 약속입니다. 그럼 난 서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합니까?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서원은 신약의 성령 감동의 예표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형식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원의 바탕을 이루는 성령의 감동 그 자체가 우리에게 순종할 의무를 준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구약의 서원은 신약에서 폐하지 않았고 성령의 감동이라는 이름으로 더 완전하게 맥맥히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약삭빠르게 나는 서원하지 않았다 하며 빠져나가지 말고 약속했다면 물론이거니와 내 약속이 없다 해도 이제는 성령의 감동에 순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감동은 우리에게 순종과 갚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서원을 갚을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것처럼 성령의 감동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감동을 소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감동은 순종하는 자에게 엄청난 축복을 몰고 오지만 소멸하면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슬픔은 곧 나의 슬픔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무시하다가 슬픔을 당한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셨지요? 그 예로 다윗에게 성령 감동이 함께 하실 때 얼마나 큰 영광을 돌렸습니까? 그러나 사울에게서 보듯이 성령의 감동 떨어지면 악신이 역사합니다. 그래서 악이 나타나고 죄가 나타나고 부패한 내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울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계속 되는 우리 이야기입니다.

지난번에 삭개오 이야기했는데 자기 영달과 돈이라면 동족의 피라도 빨던, 그리고 세리가 아니라 세리장이라도 되려했던, 그리고 부자는 천국 가기가 어려우니라 했던 부자요 그 완악한 삭개오가 어떻게 그렇게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으로 구원을 가져다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였습니다. 우리가 성령 따라 살면 천사처럼 사랑으로 사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예레미야처럼 눈물의 선지자가 되는 것도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5:22-23) 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선인들의 믿음의 이야기를 달리 표현하면 성령 감동의 이야기입니다. 히11:33-35에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항상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감동 안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환난의 날에 부르짖어야 합니다.

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했습니다. 환난이 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환난의 날에 부르짖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광 나타나는 것은 받아놓은 축복이나 다름없습니다. 환난은 영광을 위해 받아놓은 밥상입니다. 그러나 이 축복은 부르짖는 자에게만 해당하는 축복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외식적인 자기 틀에 매여 부르짖지 않기에 하나님의 영광은 물론 환난에서 도우심을 얻지 못합니다.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이라는 책을 모르는 분들이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다니엘 데포라는 장로교 목사입니다. 외딴 섬에 던져진 로빈슨 크루소, 절망할 수밖에 없던 그에게 생기를 북돋아 준 것은 한 절의 성경 구절이었습니다.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로빈슨은 이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찾고 식인종 섬에서 사람을 구출하고 배를 만나 귀국에 성공합니다.

율법에 처녀가 성 밖에서 겁탈 당하면 죄인만 죽였지만 성중에서 겁탈을 당하면 죄인도 처녀도 함께 죽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주변에 사람이 있음에도 부르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계신데 부르짖지 않는다면 우리가 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험들 수밖에 없어요. 시험들려고 합니까? 그러나 강하게 기도하면 죄악이 떠나가고 슬픔이 다 떠나가고 저주가 다 떠나가고 병마가 떠나가고 삶이 바뀌며 사상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고 문제가 해결 되며 새 능력이 임합니다.

기도의 사람 죠지 뮬러는“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시119:147)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면 부르짖는 기도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예배하고 성령의 감동하심 따라 살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나님의 영광 크게 드러내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