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문 서

작은 여우를 잡으라 (아 2:15-17)

공 상희 2006. 10. 28. 13:32

작은 여우를 잡으라 (아 2:15-17) 

본문의 말씀은 술람미의 꿈속에서 된 일로 솔로몬이 왕궁 가기를 주저하는 신부를 여러 방향에서 설득하고 회유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연인은 술람미에게 포도원을 허는 여우를 잡으라고 경고합니다. 포도원에 굴을 파고 살면서 포도나무의 뿌리와 줄기와 싹과 꽃 등을 갉아 먹어 망치는 주범이 작은 여우(슈알)입니다. 즉 포도원을 망치는 것은 사자도 곰도 코끼리도 아닌 여우 그 중에서도 작은 여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영적 생활에도 우리 신앙을 망치는 주범이 이 작은 여우예요.

이런 이야기가 있죠. 리비아 사막에서 기도하고 있는 수도자가 있었는데 악귀들이 이 거룩한 수도자를 온갖 육체적인 유혹이나 의심이나 공포심을 사용하면서 유혹해도 믿음 좋은 수도자는 거기에 조금도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대장 사탄이 "당신은 들었소? 당신의 동생이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었다는 사실 말이오." 속삭이자 순간 밝던 수도자의 얼굴에 질투심이 어둡게 깔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람이 큰 시험은 잘 이기면서도 작은 시험에 쉽게 넘어간다는 말입니다.

본문을 말씀 드리기 전에 먼저 개념 정리를 하고 가야 할 것은 솔로몬은 예수 그리스도를, 술람미는 성도를, 그리고 포도원은 넓게는 교회, 좁게는 은혜 받은 성도의 복된 심령을 상징합니다. 오늘은 후자의 관점 즉 포도원이 은혜 받은 심령이라는 관점에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작은 여우란 무엇일까요?

1. 옛 사고의 거짓된 생각들입니다.

겔13:2-4에 보면 거짓선지자를 여우라고 했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를 여우같다고 있어요. 했습니다. 거짓선지자가 여우입니다. 사람을 간교하게 미혹하고 꾀기 때문입니다. 이런 거짓선지자에게 영혼 맡기면 우리의 축복된 믿음 다 파멸 됩니다.

안식교 계통, 통일교, 여호와증인, 구원파,,, 그들과 대화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단에게는 인사도 말고 집에 들이지도 말라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교묘한지 기성교회를 복음도 모르는 것처럼 터무니없이 매도하고서 자기들만이 진리라고 왜곡하고 사람들을 끌어가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예수이고 성령이고 자기가 하나님이라고까지 합니다.

그런데 밖의 거짓선지자도 문제지만 내 안의 거짓선지자도 있습니다. 우리 속의 잘못된 생각이 거짓선지자예요. 겔 13장을 보면 심령을 따라 예언한다고 했듯 말씀에 입각하지 않고 사단이 주는 생각에 따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의심과 불신이 생기고 염려와 근심과 세상 유혹과 타협을 따릅니다. 이런 안팎의 거짓선지자를 물리치지 못하면 나의 복된 심령은 파괴되고 맙니다.

2. 자만과 게으름과 불성실도 작은 여우가 됩니다.

16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 양떼를 먹이는구나” 했습니다. 물론 꿈속의 일이지만 술람미가 이제는 나와 당신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는 일종의 자만이 숨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약혼을 결혼으로 보기 때문에 한 번 약혼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이기 때문에 남이 아닙니다. 부부의 위기가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는 처음 교제할 때는 잘해 주다가 내 사람 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 언약성에 비추어 영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그러나 이 언약을 악용하여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방심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뒤로 되돌릴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지만 이것 때문에 자만하고 방심한다면 은혜 충만은 커녕 큰 시험을 몰고 오고야 말 것입니다. 바울처럼 주님께 붙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는 성도가 되식 바랍니다.

 

17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 이 말씀 역시 그렇습니다. 베데르산은 사방이 절벽으로 되어 있어서 여기 사는 짐승들은 갇힌 신세가 됩니다. 특히 노루와 사슴은 자기가 있던 장소를 멀리 벗어나지 못하는 짐승입니다. 즉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나를 사랑하기에 나에게로 반드시 돌아오고 말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사9:7에 나타난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이 하나님의 열심을 막을 자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를 시기하시기까지 사모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약4:5). 그렇다고 우리가 신앙생활에 소극적으로 임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충만하신 은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고 인간이 할 일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혹시 이 언약적 자만이 있다면 진실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3. 그런가 하면 작은 여우는 간교한 생각들입니다.

눅13:32을 보면 예수님께서 헤롯을 여우라고 하셨어요. 여우는 간사하고 간교합니다. 헤롯이 얼마나 간사하든지 노예 신분밖에 되지 않는 자가 온갖 아부로 로마 황제를 구슬려서 유대 왕이 되었고, 백성들의 호감을 사려고 옛 성전을 헐고 새 성전을 짓는가 하면, 의심이 많아 가족과 신하를 수천 명을 죽였고, 예수님에게 기적을 행해보라고 희롱하기까지 했습니다. 무엇을 해도 진심도 순수도 없는 마음입니다. 여우는 도망쳐도 멀리 도망치지 않고 뒤돌아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시험하고 증험하고 의심하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여우 자는 것 보셨지요? 꼭 자기 꼬리를 깔고 잡니다. 고놈 참 이상스런 동물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믿는다면서 꼭 의심을 한 자락 깔고, 순종한다고 하면서도 꼭 할까 말까 한 자락 깝니다. 자기 이익이 된다싶으면 꼬리를 치켜세우고 열심히 하다가도 일이 끝났다 싶으면 꼬리를 내리고 뒤로 슬슬 빠집니다. 느4:3이나 겔13:4을 보면 이런 여우를 무가치한 동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여우같은 사람은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나 아무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의 영적 생활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진정 충만하십니까? 작은 여우를 잡으세요. 거짓선지자를 제거하세요. 온전히 마음 바치지 못하는 간사한 마음을 버리십시오. 이것이 복 못 받게 만드는 작은 여우입니다. 그리고 견고한 언약의 확신도 좋지만 거기에만 머물러 더 높은 곳에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거부하고 있다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더 순종하고 더 열심 있는 신앙생활을 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귀한 복음의 실재를 풍성히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