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문 서

나의 사랑,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가 2:1-17)

공 상희 2006. 9. 19. 15:26
나의 사랑,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가 2:1-17)  

 

나의 사랑,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가 2:1-17)


오늘 우리가 읽은 아가서는 솔로몬이 지은 노래입니다.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가서는 아무리 읽어도 어떻게 이런 내용이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입니다.


6장 5절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네 눈이 나를 놀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대단한 표현입니다. 눈이 너무 아름다워서 볼 때마다 놀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보다가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게 생겼으니까 다른 데 보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집에 가셔서 한번 써먹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7장에는 "네 발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공교한 장색의 만든 구슬꿰미 같구나.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무슨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멋진 표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계속해서 "네 눈은 연못과 같고, 코는 망대와 같구나. 머리는 갈멜산같고,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하였습니다. 자주색 빛깔이 나는 머리카락이 왕의 마음을 홀려놓는다는 것입니다. 다음 주일에는 머리카락을 자주색으로 염색하고 나타나는 분들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결론으로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쾌락하게 하는구나." 하였습니다.


아가서는 전부 이런 내용입니다. 그래서 아가서는 성경이라고 하기보다는 한 권의 멋진 시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듯 합니다. 그러나 아가서가 정경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아가서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아가(雅歌)'라는 말은 한문으로 맑을 '雅'자와 노래 '歌'자를 씁니다. 다시 말해서 "맑은 노래"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아가'는 '쉬르 하쉬림(ࠎࠉ࠘৕ࢎ ࠘ࠉࠚ)'이란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Song of songs" 즉 "노래 중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솔로몬은 한 여인과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그 여인은 시골뜨기 처녀인 '술람미' 라는 여인입니다. 술람미는 본래 포도원지기였습니다. 매일같이 포도원에서 햇볕을 받으면서 일을 하였기 때문에 까맣게 탄 피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즘에야 까맣게 탄 피부가 건강미가 넘친다고 좋아하지만 옛날 유대사람들은 까만 피부를 가진 사람은 사람 취급을 안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술람미를 피부가 까만 시골뜨기 처녀라고 놀려대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본문 1절은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하였습니다. 술람미는 자신을 가리켜서 수선화요, 백합이라고 합니다. 보통 착각이 아닙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여기서 한술 더 뜨고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여자들 가운데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이 정도면 완전히 눈에 뭐가 씌운 수준입니다. 술람미는 피부가 까만 여자인데 하얀 백합화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다른 여자들은 전부 가시나무처럼 보이고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만 백합화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아가서는 이렇게 완전히 정신 나간 두 사람, 솔로몬과 술람미의 사랑의 노래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 아가서가 어떻게 성경에 기록이 되었는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한 가지 힌트가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아가서를 낭독했다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유월절에 아가서를 읽었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주신 사랑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가서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과의 사랑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가서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솔로몬과 술람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또한 오늘 영적 이스라엘 백성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가를 살펴봅니다.



첫째는, 사랑하는 사람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술람미는 당시의 미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술람미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새까만 사람인데도 "백합화 같다."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결코 아름답지 못한 우리를 아름답다고 인정하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따집니다. 얼굴이 어떻게 생겼다, 키가 크다 작다, 날씬하다 배둘레햄이다, 이렇게 외모를 따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모를 따지는 분이 아닙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어서 더럽고 추한 모습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따지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서기만 하면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여겨주시고 품에 안아주십니다.


이 비밀을 깨달은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나만큼 못생긴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만큼 더럽고 추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못생긴 사람 중의 괴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연애를 하는 것을 보면, 남녀가 전부 잘생긴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은 제 경우와 같이 한 쪽이 잘생기면 한 쪽이 좀 처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간혹 어떤 사람들은 너무 차이가 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저렇게 못생긴 사람을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좋다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건 아무도 말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나는 비록 이렇게 더럽고 추한 모습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여기십니다. 로마서 3장의 말씀입니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누가 능히 하나님의 책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하나님께서 희다고 하시는데 누가 까맣다고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여기시는데 누가 감히 시비를 거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더럽고 추한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누구보다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향해 "너는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말씀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사랑하는 사람을 정성을 다해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본문 3절 말씀입니다. "남자들 가운데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 길을 잃고 숲 사이를 헤매고 있는데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나무를 발견했습니다. 그 사과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아픈 다리도 쉬고, 사과를 따먹음으로 마른 목을 추기는 모습입니다. 남자에게서 안식을 얻고 의지하는 모습입니다.


또한 6, 7절에도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 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여기서 "노루와 들 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이런 뜻입니다. "너희들이 노루와 들 사슴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지 않느냐? 이 여인은 내게 있어서 노루와 들 사슴 같이 소중한 여자이다. 그러니 제발 이 여인이 잠자는 것을 방해하지 말아라." 하는 뜻입니다.


여기 앉아 계신 남자 분들은 이 시간 마음에 상당히 찔리는 것이 있을 줄로 압니다. 부인이 자거든 깨우지 마세요. 그냥 주무시게 내버려두고 출근하십시오. 아침 굶고 나간다고 지구의 종말이 오는 것처럼 난리 떨지 마시고 그냥 자게 내버려두십시오.


제가 요즘에 혼자 삽니다. 집사람이 한국에 한 열흘동안 가있기 때문에 혼자 지내고 있는데 살림을 해보니까 가장 귀찮은 일이 설거지입니다. 밥 먹고 치우고 설거지를 하려면 상당히 처량한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여유가 생기면 가장 먼저 설거지하는 기계를 하나 사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 저하고 뜻을 같이 하는 분이 계시면 단체로 구입하실 수 있겠습니다.


사랑은 정성을 다해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무슨 마음이 상하는 일이 없는가, 어디 불편한 것은 없는가를 살피고 있는 힘을 다해서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성을 다해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신명기 32장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도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광야와도 같습니다. 곳곳에서 우리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들이 생기고,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만날지 모르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 인생에 어떤 일을 만난다 해도 나를 지켜주시는 하나님, 내가 위기에 처할 때에는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하나님, 내가 마음 아파 눈물 흘릴 때에 언제나 내 곁에 오셔서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 내가 때로 죄 가운데 빠져있다 할지라도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기다려주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이 험한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언제나 "하나님께서 나를 정성으로 지켜주신다."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달려가는 것입니다.


본문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이것은 술람미가 시골에 살 때에 솔로몬이 찾아오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솔로몬은 술람미를 한번 본 후에 그 마음에 끓어오르는 연정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산을 넘고 들판을 가로질러 술람미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사랑에는 장애물이 없습니다. 높은 산이든 낮은 산이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달려가는 그 발걸음에는 거칠 것이 없습니다. 설령 지구 끝에 있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것이 사랑입니다.


여러분들이 옛날로 돌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옛날에 연애할 때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서 만나자고 하면 "아, 거기는 너무 멀고, 대충 우리 집 근처에서 만나지." 이러신 분이 계십니까? 그러고도 결혼에 성공하셨다면 하도 불쌍해서 해준 것으로 아시면 됩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아마 영하 20도에도 맨발로 달려가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부인이 모처럼 어디 가서 저녁이라도 먹자고 하면 "나 피곤해, 집에서 라면 끓여먹자." 이러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언제든지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하란으로 정처 없이 떠날 때에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셔서 "내가 너와 함께 하마."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 약속을 잊고 살았습니다. 돈버는 일에 바빠서, 아내를 얻는 일에 바빠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다 잊어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오고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제 야곱은 진퇴양난의 위기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시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창세기 32장 2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잘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야곱과 씨름했다."고 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붙들고 씨름하신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위기에 빠진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기를 극복한 야곱은 또 다시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립니다. 벧엘에다 하나님의 제단을 쌓겠다는 약속을 잊어버리고 세겜 땅에 정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문제가 생깁니다. 야곱의 딸이 동네 구경을 나갔다가 그 땅의 추장에게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야곱의 아들들이 나가서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렸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이웃 마을에 사는 동족들이 복수를 하러 올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 다시 야곱을 찾아오십니다. "야곱아,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나님은 한번 사랑하신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한번 찾아오셔서 안되면 두 번 찾아오십니다. 두 번 찾아오셔서 안되면 세 번 찾아오시고, 세 번도 안되면 영원히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끝까지 우리를 찾아오시고 끝까지 설득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그 자리에 서게 만드십니다.


본문 9절을 보십시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솔로몬은 산을 넘고 달려서 술람미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솔로몬은 술람미의 집 앞에 와서 멈춥니다. 곧장 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창문을 통해서 술람미를 엿보고 있습니다.


술람미가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랑은 강제로 문을 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스스로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강제로 끌고 가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찾아오셔서 도와주시고 설득하셨습니다. 마침내 야곱은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들고 벧엘에 제단을 쌓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떠나 살아도 하나님은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잊고 살아도 하나님은 잊지 아니하십니다. 여러분들이 괴로워할 때, 여러분들이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은 여러분 곁에 찾아오셔서 설득하십니다. 깨닫게 하시고 일어서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으신 축복의 자리에 서게 만드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에 여러분의 인생을 온전히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로, 사랑은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 10절부터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에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사랑은 사랑하는 자에게 희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봄이 오고 꽃이 피고 새들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곳,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함께 가자고 속삭이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이런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저 사람하고 함께 있기만 하면 내 인생은 참으로 기쁠 것이다. 내 인생은 참으로 희망에 넘치는 인생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야지 "저 사람하고 살면 살수록 나는 절망이다." 이러면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드리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남자들에게 많은 부담을 주는 것 같은데, 저보고 부담 준다고 뭐라고 하실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한번 돌아보시라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렇게 할 수 있는 남편이 제대로 된 남편입니다. 깊이 반성하시고 앞으로 잘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나중에 다 물어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함께 가자." 우리를 붙들어 이끄시는 분입니다.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금을 거두는 세리였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정부에 세금을 냈습니다. 그런데 로마정부는 세금을 보다 잘 걷히게 하기 위해서 유대인 중에 세리를 뽑아서 이들에게 세금을 걷는 일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세금을 잘 걷으면 그 대가로 일정한 액수를 떼어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세리는 민족반역자요, 동포들의 피를 빨아먹는 죄인으로 여겨졌습니다.


삭개오는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희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미움을 받으며 그 등뒤에 일평생 손가락질을 당하며 살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아서 사람들 틈에서는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눈을 들어 삭개오를 쳐다보셨습니다. 예수님의 눈이 삭개오의 눈과 마주쳤습니다. 순간 삭개오는 너무도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에 슬그머니 나뭇가지 뒤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러나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희 집에서 묵고 가야겠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하나님은 절망 가운데 빠진 우리를 부르시는 분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절망가운데 빠져있다 해도 이 말씀을 기억하시며 힘있게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못남과 추함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십니다. 정성을 다해 보호해 주시고,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우리를 찾아와 주십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함께 가자." 소망을 보여주시고 손을 붙들어 일으켜 세우시는 분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힘있게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