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문 서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가 2:1-17

공 상희 2022. 3. 10. 14:00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가 2:1-17

 

이 시간에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아가서는 성경 66권 중 매우 특이한 책입니다.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하기까지 한. 에로스적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가서는 이중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하나는,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직접적인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사랑이라는 비유적인 해석입니다.

 

본문에 솔로몬의 술람미 여인을 향한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를 향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또 술람미 여인이 게달의 장막과 같았던 것처럼, 사도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표현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술람미 여인이 자신은 검다고 표현했던 것처럼, 우리는 허물과 죄로 가득했던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주시고 죄의 종에서 우리를 사셔서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로 만들어주셨습니다.

본문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서로를 향한 고백 중의 일부분입니다. 두사람 간에 사랑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랑은 상대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2절은,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 대하여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솔로몬은 자신의 연인인 술람미만 보인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에게 다른 여자들은 가시나무고, 술람미 여인은 가시나무 가운데 한 송이 백합화 같다고 합니다. 가시나무와 백합화는 비교불가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솔로몬에게는, 술람미 여인 외에는 뵈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3절은,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 대하여 고백하는 것입니다.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어떻습니까? 술람미 여인에게 솔로몬은 수풀 속에서 만난 사과나무 같습니다. 무더운 날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이, 숲 속을 헤매다가 잘 익고 맛있는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사과나무를 만났습니다. 그는 사과 하나를 따서 나무 그늘에 앉아서 사과를 아싹~ 하고 한 입 먹습니다. 그때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술람미에게 솔로몬은 그런 존재입니다. 솔로몬에게는 많은 여자 중에서 술람미만 아름답게 보였고. 술람미 여인에게는 많은 남자 중에 내 남자 솔로몬만 위대하게 보였습니다.

 

진짜 사랑에 빠지면 상대 외에는 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상대를 위해서라면 화약통을 매고 불속에라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요즘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나라 사랑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국민들은 위대합니다. 그들의 행동을 보면서 나라를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여러분은 우크라이나 국민 중에 한 사람이 맨몸으로 탱크를 막아서는 것을 영상으로 보셨습니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이 득세하자 대통령이 달러를 챙겨서 도망을 갔는데,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수도 키우에에 남아서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국민들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크라이나 영부인이 무장을 하고 있는 모습의 사진을 봤습니다. 우크라이나 어린이가 주먹을 쥐고 러시아 군인을 위협하는 동영상을 봤습니다. 외국에 거주하던 수많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조국을 위하여 싸우기 위하여 우크라이나로 들어가서 자원입대를 했습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일까요?

그들에게는 지금 다른 것은 보이지 않고 오직 조국만 보이는 것입니다. 조국을 사랑하니까 조국의 안녕 외에는 뵈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우리는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였습니다. 수많은 석탄 속에 빛나는 다이아몬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우리의 구원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시고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도 우리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을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불로 죽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한다는 말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주님에게만 초점을 맞춘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의 신비 중에 하나가,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님만 보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후에 자신이 가진 세상적인 모든 좋은 조건들을 분토처럼 여겼습니다. 그리고 주를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드렸습니다. 사랑은 상대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모든 초점을 주님에게 맞추어야 합니다. 사랑하면 그렇게 됩니다.

 

2. 사랑은 상대에게 정복당하는 것입니다.

4절은 술람미 여인의 고백입니다.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 이 말은, 자신은 솔로몬에게 정복당했다는 의미입니다. 전쟁을 해서 상대의 땅을 정복하면, 그곳에 정복자의 깃발을 꼽습니다. 그런 것처럼,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이 자신을 정복한 깃발과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의 사랑에 정복당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힘과 권력으로 술람미 여인을 정복한 것이 아닙니다. 4절에 보면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의 인도를 받아서 잔칫집에 들어갔습니다.

술람미 여인에게는 솔로몬과의 사랑은 축제였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의 사랑에 정복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사랑의 깃발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정복한 곳에 꽂은 깃발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에 정복당합니다.

이처럼 사랑하면 상대에게 모든 것을 정복당합니다. 상대를 위하여 시간을 써도 전혀 아깝지 않고. 물질을 써도 하나도 아깝지 않고. 상대에게 모든 것을 줘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랑은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것입니다. 내 목숨도 빼앗기고, 내 마음도 빼앗기고, 내 물질도 빼앗기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상대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상대에게 정복당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향한 사랑에 정복당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주신 것입니다. 8: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여기 보면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다고 말씀합니다. 죽음은 이길 자도 막을 자가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고,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을 위하여 죽었습니다. 사랑에 정복당한 것입니다. 사랑의 힘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에 정복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내 위에 어떤 깃발이 세워져 있는가를 봐야 합니다. 돈에 정복당한 인생이 되면 안 됩니다. 에로스 사랑에 정복당해서도 안 됩니다. 세상 성공이라는 목표가 깃발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다른 어떤 깃발보다도 예수님의 깃발이 세워져야 합니다. 주님이 나의 깃발이시다. 나는 주님께 점령당했다.” 사랑은 정복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사병 아시죠? 상대를 몹시 그리워하여 병이 드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상사병이 나옵니다. 본문 5절에 술람미 여인은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고 말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사랑하는 솔로몬을 보지 못해서 병이 난 것입니다. 보고 싶은데 보지 못하니까 마음에 병이 난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하여 병이 생길 정도로 정복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술람미 여인처럼 해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고 싶어서 병들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은혜를 받는 것 외에는 채워짐이 없어야 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이 생기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세상적으로 출세를 하고 성공을 해도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병들 정도로 그렇게 뜨거운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3. 사랑은 상대와 동행하는 것입니다.

10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3절 하반 절에도.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합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자신과 함께 가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술람미에게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달라. 남은 인생을 동행하자는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에게 우리는 사랑하는 자입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어여쁜 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그때부터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는 주의 음성에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가야 합니다. 심지어 죽음의 장소에도 함께 가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마치신 주님은 자신이 잡혀가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6: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주님과 함께 가지 못했습니다.

사랑의 부족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한데 제자들에게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 잘하려면 주님을 사랑하면 됩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면 어디든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어려운 일이 많아도 사랑하면 모든 것을 이기고 주님과 함께 갈 수 있습니다.

 

4. 사랑은 방해꾼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15절에.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합니다. 포도나무에 꽃이 피었으면 곧 열매가 열립니다. 그런데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중동지역에는 포도원에 만한 크기의 작은 여우가 있습니다. 그 여우는 땅을 깊이 파고 들어가 포도나무의 뿌리를 갉아먹습니다. 그러면 포도나무가 시들어 말라버립니다. 그래서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성경에서의 포도원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우는 사탄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에는 항상 마귀의 역사가 있습니다.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가 있는 것처럼, 주님과 우리의 사랑을 무너뜨리는 방해꾼이 있습니다. 마귀와 귀신들입니다. 때로는 마귀가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처럼 작게 역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시무시한 사자처럼 크게 역사할 때도 있습니다.

 

마귀가 역사하면 시험이 찾아옵니다. 이 시험의 목적은, 주님과 나 사이, 목회자와 성도 사이, 성도와 성도 사이를 갈라놓는 것입니다. 하나 되지 못하게 만들고, 별거 아닌데 섭섭하게 만들고,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서로를 미워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랑이 식어지게 만들고, 결국은 사랑이 깨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과거 어느 때를 회상하면서 그때는 교회를

그렇게 사랑했는데, 그때는 성도들을 그렇게 사랑했는데, 그때는 주의 종을 그렇게 사랑했는데, 그때는 배우자를 그렇게 사랑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여러분은 이미 시험에 든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랑의 방해꾼인 마귀에게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첫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식어진 열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포도원을 허는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마귀는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해야 물러갑니다.

 

결론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사랑은 상대에게 초점을 맞추고, 사랑은 상대에게 정복당하는 것이며. 사랑은 상대와 함께 가며. 사랑은 방해꾼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 하고 이웃을 사랑하여 하나님과 깊은 사랑을 유지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