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문 서

고난의 유익, 시119:66`71

공 상희 2019. 9. 7. 11:01

고난의 유익 (시 119:66-71)


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68.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69. 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70.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이 시간에 71절의 말씀과 같이 “고난의 유익”라는 제목입니다. 영국의 시인 윌리암 워즈워드가 쓴 시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황량하고 거친 산속에 살고 있는 새 한마리가 어느 날 들에 나갔다가 폭풍을 만났습니다. 그 새는 자기의 둥지를 떠나지 않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해서 그 산을 향해 날아가려고 발버둥쳤습니다. 자기가 태어나 살고 있는 산을 떠나면 죽을 것만 같아서 안간힘을 썼으나 그것은 허사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 새는 폭풍이 부는 대로 자기의 몸을 맡기고 그 방향으로 날기 시작했습니다. 강한 폭풍을 따라 한참 날아갔습니다. 드디어 폭풍도 약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새의 눈 앞에는 푸른 초장과 멋진 수풀의 아름다운 산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에 자기가 살던 거친 수풀의 산과는 비교가 안되는 훌륭한 수풀과 산이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이처럼 인생길을 가노라면 폭풍의 고난이 우리에게 오지만 진실로 그 의미를 알고 노력한다면 우리 앞에는 더 크고도 영광스러운 것이 나타나게 됩니다(고후4:17-18).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373장) 한 찬송가와 같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다윗은 고난의 의미를 깨닫고 그 유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의 유익은 무엇일까요?


1. 고난은 신앙을 배우게 합니다.


67-68절에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했습니다. 여기 “내게 가르치소서” 그랬습니다. 이처럼 고난은 신앙을 가르치는 학교 중의 학교입니다.


히5:8을 보면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지식의 배움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깊이 깨닫고 체득한 지식만이 내 심령 깊이 산지식이 됩니다. 고난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도 모르고 인생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왜 그럴까요? 그것은 물질이 다인 줄 알고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완악하기 때문에 고난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도 절실하게 신앙생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71절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했고, 욥23:10에 욥도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했습니다.


위대한 인물 치고 고난을 겪지 않았던 사람이 없어요. 위대한 소설도 고난 가운데 쓰여 졌고, 베토벤의 “운명”이라든지 헨델의 “메시야” 등도 다 고난을 통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진 베스트셀러 존 번연의 천로역정도 고난 속에서 쓰여졌습니다. 야곱도 천사와 씨름하다가 환도 뼈가 위골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진주도 조개 속에 이물질이 들어갔을 때 그 이물질로 인해 쓰리고 상처 날 때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카프만 부인의 “광야의 샘”이란 글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누에고치에서 나방이 쉽게 나오라고 구멍을 넓게 해주었더니 나방이 쉽게 나왔지만 날지 못하더랍니다. 그것은 작은 구멍에서 나오려고 힘쓰면서 날개가 강해지는 것인데 그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입니다.


2. 고난은 겸손을 배우게 합니다.


69절에 “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교만한 자의 대적이란 멸시를 가리킵니다. 사람을 멸시하며 달려드는 것은 두고는 볼 수 없는 견딜 수 없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 때 다윗은 시험 들지 않도록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붙잡았습니다. 겸손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그 말씀을 끝가지 붙들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교만한 자가 남이 아니라 자기일 수도 있습니다. 내 속의 교만한 마음이 나를 얼마나 실망시킵니까? 교만이 오면 반드시 징계가 따릅니다. 다른 죄는 하나님께서 두고 보시지만 교만 죄는 즉각 낮추시고 벌하십니다. 그래서 교만한 생각이 들어오는 순간 즉시 그 은혜를 쏟아버립니다. 오늘 새벽에 본 말씀인데 헤롯이 교만하다가 충이 먹어 죽었습니다. 우리 심령을 순식간에 뜯어먹어 버립니다.


이 고통을 당하면서 깨닫는 진리는 교만하면 나는 죽는다. 교만하면 나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이르렀든지 뭐나 된 것처럼 목에 힘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난 것이 고난입니다. 바울에게도 가시가 있었습니다. 질병의 가시, 사람의 가시, 까칠한 사람이 자꾸 찔러댑니다. 이 가시는 교만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히 쓰실수록 더 고난의 연단을 주십니다.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하셨습니다. 욥도 욥7:17-18에서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했습니다. 그래서 사망은 내게 역사하고 생명은 여러분에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마치 풀무 속에서 불순물이 제거되고 순수한 것만 남게 되듯이 고난을 통해서 참 신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경기도 남양주에 가면 풀무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지금 풀무원 식품이 유명한데 풀무는 쇠를 녹여 제련하는 용광로를 뜻합니다. 바로 이 풀무의 정신에 따라 학교도 있고 농장도 있고 회사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훌륭한 인재들이 나오고 풀무원 식품은 누구나 인정해 주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고난의 학교에서 배운 야곱이 참 신자가 되고, 광야의 학교에서 배운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갔고, 탕자가 고난의 학교에서 비로소 아버지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고난이 인생을 명품으로 만듭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향수는 '프랑스 제 사낼'입니다. 그 유명한 향수는 병든 고래의 몸에서 짠 기름을 원료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우황청심환에서 가장 중요한 우황은 병든 소의 몸에서 만들어집니다. 세계에서 가장 공명 좋은 바이올린은 로키산맥의 높고 깊은 계곡에서 자란 나무로 만든 바이올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의 시119:71절에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했으며, 롬8:18절에서 사도 바울은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3. 고난은 열심을 배우게 합니다.


70절에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했습니다. 마음이 살쪄서 기름덩이 같다는 것은 안일하고 게으르다는 말입니다. 열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신앙의 가장 큰 적은 안일과 게으름입니다. 게으름과 안일이 자기 영혼을 죽입니다. 게을러서 기도하지 않으니 온갖 시험이 다가옵니다.


그래서 계3:16에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하시면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나요?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목장에서는 양들 사이에 염소를 한 마리씩 넣어 놓는답니다. 양들은 정이 많아서 서로 뭉치면 눌려 죽는데 염소는 양들이 서로 사랑하는 꼴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걸 보면 염소가 머리로 받아서 다 흩어놓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잠시 방심하면 우리 영혼이 죽으니까 속상할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자, 기도하자, 기도하면 평안해집니다.


그래서 히12:12-13에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하였습니다. 징계 받을 때 깨닫고 더 열심 내야 합니다. 더 예배해야 합니다. 더 기도해야 합니다. 더 사랑해야 합니다. 더 전도해야 합니다. 열심히 순종하며 신앙생활하면 징계가 필요 없습니다.


죤 번연의 천로역정을 보면 고난의 언덕이 나옵니다. 이 언덕길은 아주 험하고 가파른데 그 길의 좌우에는 가파르지 않고 평탄한 또 다른 두 길이 있습니다. 즉 가파른 길은 고난의 길이요, 곁길은 안일과 형식의 길입니다. 그러나 기독도는 곁길로 가지 않고 가파르지만 오직 자기 앞에 있는 바른 길로만 가다가 생명수를 만나고 쉴 수 있는 평안한 정자를 만났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이 힘들고 어렵지만 열심히 신앙생활하면 생명의 날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반면 안일과 형식이라는 두 사람은 그것이 싫다고 곁길로 가다가 한 사람은 정글로 들어가 위험에 처했고, 다른 한 사람은 황량한 사막으로 빠져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한 찬송과 같이 신앙생활 힘들다고 요령 피우지 말고 고난을 각오하고 열심히 섬기십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있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 당할 때 왜 우리에게 고난이 있는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고난의 비싼 수업료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고난을 당했듯 고난은 인생을 배우고, 신앙을 배우고, 겸손을 배우고, 열심을 배우는 학교입니다. 하나님 잘 섬기십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그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더욱 참된 믿음을 배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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