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선지서

부서야 할 우상들 (단 2:31-35)

공 상희 2019. 3. 3. 06:21

부서야 할 우상들 (단 2:31-35)


31.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32.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33.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34.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35.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이 시간에 “부서야 할 우상들”이라는 제목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무언지 아십니까?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나타납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것과 우상숭배입니다. 그래서 출20:3-5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지 않다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당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보이는 우상은 버렸는데 마음의 우상이 많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8장을 보면 성전 안에 많은 우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그 우상 앞에 빌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의 성전에도 무수한 우상이 존재합니다.


오늘 본문 보니까 이상한 모습의 우상이 나타납니다. 머리는 금이요 가슴과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의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인 우상인데 한 뜨인 돌이 나타나 신상을 부수고 그 돌들이 세상을 가득하게 덮었습니다. 이는 장차 나타날 여러 제국에 대한 꿈인데 여기 뜨인 돌은 예수님이신데 이런 일이 오늘 이 시간에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척결해야 할 마음의 우상은 무엇일까요?


1. 교만의 우상입니다.


32절에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머리는 주권이요, 금은 신성의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이 자리는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우상이 있듯이 이것은 내가 인생의 주인 노릇하고 내가 내 인생의 하나님 노릇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주인 삼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할 텐데 내가 주가 되어 내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려고 하다가 쫓겨났듯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높이고 그 말씀에 순복함이 없다면 기본부터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뜨인 돌이 이 우상을 부수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나를 깨뜨리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삼고 예수님을 나의 주로 삼고 부르게 됩니다. 그래서 고전12:3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은혜 받으면 내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귑니다.


2. 무가치의 우상을 척결해야 합니다.


32절 “그 우상의 -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신상의 가슴과 팔이 은이었는데 은은 당시 대표적인 화폐로 쓰이던 금속입니다. 그러니까 가치를 상징하는 물질입니다. 그리고 가슴은 마음이 머무는 곳이요, 팔은 부둥켜안는 취함의 상징입니다. 가치관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세상 것을 얼마나 사랑하고 마음으로 부둥켜안고 품는지 세상 것이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 것이 가치 있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가치 없는 것이 가치 있게 보이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이건 사탄이 우리 영혼을 잘못된 곳으로 끌고 가려는 미혹입니다.


그래서 요일2:15-17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뜨인 돌이 나타나 가슴과 팔도 부수었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세상의 것이 무가치하게 보입니다. 권세 명예 물질 향락이 무가치하게 보입니다. 계시록에서는 세상의 그럴듯한 미혹거리를 바벨론 상품으로 묘사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이 죄악의 바벨론 상품을 거래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가치관이 변화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3:8에서 전에 귀하게 여기던 세상 것을 다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여겼다고 했습니다.


3. 탐욕의 우상입니다.


32절에 “그 우상의 -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왜 배와 넓적다리가 놋일까요? 빌3:19에 "저희의 신은 배요" 했습니다. 그러니까 배는 욕망의 상징입니다. 세상 욕망은 우상입니다. 골3:5에도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넓적다리는 힘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놋은 강한 쇠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놋으로 된 배와 넓적다리는 육체의 본능이 그렇게 강하다는 것입니다. 본능을 이길 자는 아무도 없어요. 손과 발을 잘라도 본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성령이 임해도 본능 자체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뜨인 돌이 나타나 이 놋 배와 넓적다리까지 부수었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육체의 욕망을 위해 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본능은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범죄하지 않도록 강한 의지가 생겨나서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가 아니라 이제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이 몸 드려 주의 영광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2:20-21에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2:20-21) 했습니다. 성령으로 욕망 따라 살던 우상이 무너지기를 바랍니다.


4. 완고의 우상이 부서져야 합니다.


33절에 “그 종아리는 쇠요.”그랬는데 종아리가 튼튼하면 힘이 센 사람입니다. 종아리가 굵은 건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종아리는 짓밟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다리가 빛난 주석 같다는 것도 그 의미입니다. 그리고 철은 당시 모든 것을 다 부서뜨리는 강한 것입니다. 그래서 철의 나라 로마를 당할 나라가 없었습니다.


종아리가 쇠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짓밟으려는 완고함을 나타냅니다. 완고함도 우상입니다. 삼상15:23에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했습니다. 완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순순히 순종해야 복을 받습니다. 은혜 받지 못한 심령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리 사람에게는 잘해도 하나님에게는 잘못하는지, 그래서 마음이 길바닥과 같고 돌밭과 같고 가시밭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짓밟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토록 말씀을 들어도 자기 해오던 패턴을 바꾸지 않고 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은혜 받으면 그 완고한 심령도 옥토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인내함으로서 지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랬습니다. 그들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주님을 본받은 자가 되었고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살전1:6-7). 이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5. 저주의 우상도 부서져야 합니다.


33절에 “그 발의 -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그 발의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습니다. 진흙이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진흙은 저주의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그리고 발은 행함입니다. 그러니까 저주의 길로 달려가는 죄악된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잠1:15-19에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 새가 보는 데서 그물을 치면 헛일이겠거늘 그들이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분별력이 있어야 하는데 분별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사는 길이요 무엇이 죽는 길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말합니다. 잠7:24-27에 “이제 아들들아 내 말을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의 집은 스올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다윗도 시119:105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도 뜨인 돌에 의해 깨어졌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고 먹든지 마시든지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됩니다. 그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불안에서 평안으로 바뀌고 하늘의 상급을 위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상을 가장 미워하십니다. 우리 심령에 가득한 우상부터 부서 버리시기 바랍니다. 내가 우상입니다. 세상 정욕, 육체 정욕이 우상입니다. 완고함과 죄가 우상입니다. 이 우상에 대한 대책은 하늘에 뜨인 돌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 믿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령의 은혜로 모든 우상이 산산조각 나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