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언 강해

새벽 잠언 강해21장

공 상희 2019. 1. 25. 06:47

124,영에 속한 사람 2 (21:1-3)

 

이 시간에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은혜 받겠씁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은 누굴까요? 회개한 사람입니다. 15:7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하셨습니다.

 

진실로 회개하면 육에 속하지 않고, 영에 속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8: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하십니다, 이 말씀을 바꾸어 말하면 영에 속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온전히 영에 속하셔서 하늘에서 회개할 것 없는 의인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영에 속한 사람의 삶의 기본이 있습니다.

 

1.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1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여기 봇물이란 농사를 위한 관계시설을 말합니다. 어느 나라도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특별히 강우량이 적은 팔레스틴에서 보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이 보의 물은 관리자에 의해 이리저리 원하는 대로 흘러갑니다.

왕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4:17처럼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막강한 권세를 가진 왕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은 역사를 섭리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즉 정권을 세우시고 폐하심에서 시작하여 위가 견고하거나 약하거나 기타 어떤 무엇을 하는데 있어서까지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정치란 인간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지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바벨론 왕과 같이 막강한 왕도 그랬는데 일반 왕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자들은 자신이 단순히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도구임을 인식하고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 때마다 돕는 손길이 하늘에서 나타나 돕습니다.

 

이처럼 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살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다스리시는 성령의 생명이 흐릅니다. 5: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하셨습니다.

어떻게 성령 따라 삽니까?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생활의 기본입니다. 이 기본이 잘되어야 합니다. 술 취하면 그만큼 술에 사로잡히듯 성령 충만하면 자동으로 성령 따라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 게으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마음의 보에 성령이 충만하고 영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야 우리 마음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봇물처럼 흘러갈 수 있습니다.

 

2. 육신적인 것을 분별해 내야 합니다.

2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이 말씀은 잠16:2에도 나오는 교훈으로 여호와의 판단은 정확하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행동이나 혹은 일의 결과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인간과는 달리 내적동기와 목적 등 인간이 쉽게 파악할 수 없는 내면적인 요인을 보시고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 보기에는 좋아도 하나님 보실 때는 아니다 일 수 있습니다. 착한 일 많이 하고 봉사 잘하면 사람들은 참 잘 한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성령을 따라 신앙으로 하는지 아니면 육을 따라 내 기분 내 열심 자기 이름으로 하는지 다 아십니다.

 

성도는 지상에 있는 동안 늘 영과 육이라는 두 마음의 지배를 받습니다. 베드로 보세요. 하나님께 속해서 신령한 말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육에 속한 말을 해서 예수님께 사탄아 물러가라 책망 받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영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과 행위가 어디에 속했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생활의 기본입니다. 분별해 내서 처리하지 않으면 영적 생활은 불가능합니다. 선이 악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감정으로 성급하거나 욱하는 마음은 육에 속한 것입니다. 칭찬을 받았을 때 들뜨거나 우쭐하는 것도 육에서 나온 마음입니다. 무슨 일이 있다고 낙심하고 우울하고 그것도 육신의 감정입니다. 그럼 어떻게 영의 생각과 육의 생각을 분별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으로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4:12-13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이처럼 말씀으로 영의 것과 육의 것을 분별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육에서 난 마음입니다. 두려움이 있다든지 염려 근심 미움 상처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건 두 말할 것이 없이 육에서 난 것들입니다. 성경을 보면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 다 드러나게 됩니다.

 

3. 겸손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3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공의와 정의란 바르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공의와 정의는 성경 전반에 걸쳐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절대가치입니다. 그리고 이 가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데서 나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잖아요? 그 말씀이 3절 말씀입니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조금 어렵게 쓰였을 뿐 그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공의와 정의는 하나님이 말씀이고, 행하는 것은 순종입니다. 즉 하나님과 그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겸손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습2:3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했습니다. 이 자세가 영에 속한 사람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겸손과 순종이 영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지게 하는 귀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생활의 기분은 겸손입니다.

 

어거스틴의 말대로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 이 말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겸손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디에 이르렀든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다는 과거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뿌리입니다. 이 뿌리가 견고해야 믿음이 견고히 섭니다. 이 뿌리가 없으면 감사도 감격도 찬양도 겸손도 없어요. 이 겸손의 기초를 잃지 마세요. 이 기초에 설 때만이 진정한 찬양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겸손의 기초에 설 때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공로가 우리에게 베풀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복음에 설 뿐 아니라 겸손히 엎드릴 때 죄악은 안개가 사라지듯이 사라지고 진정한 영에 속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셔서 아버지께 받아 우리 믿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셨고 또 사모하는 자에게 더 충만히 부어주시고 계십니다. 그러기 위해 기본에 서십시다. 우리 모두 우리는 본래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 받았다는 감격 속에서 항상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령으로 충만하고 육신에 속한 죄악을 떨어버려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하고 기쁘실 영에 속한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125,영적인 부자 (21:4-6)

 

이 시간에 영적인 부자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10:10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그러므로 우리가 구원 얻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우리 심령이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해져야 합니다. 그것이 마음의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부요는 마치 기업을 경영함과 같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여러 인생의 형통과 사업의 성공과 부요와 권세와 영광 등을 통해 장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나타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잠언 기자의 기업 경영을 중심으로 기업에도 도움을 얻을 뿐 아니라 먼저는 우리 심령이 복 받는 그 진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럼 어떻게 신앙생활에 성공하여 신령한 부자가 될까요?

 

1. 무엇보다 겸손해야 합니다.

4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이 말씀은 자기 한계를 망각하고 무례히 행하는 교만을 경계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악인의 형통이란 악인이 형통할 수가 없는데 형통하려 한다면 그 생각 자체가 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언 기자는 눈이 높은 것과 = 교만한 것과 = 악인을 동의어로 보고 나란히 나열하고 있습니다. 자기 분수를 알라. 그리고 교만하지 말라. 경영의 측면에서 분수를 모르는 자는 악인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공적인 기업 경영의 첫 번째는 겸손입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경험도 없으면서 빚 얻어 크게 저지른다면 그건 자기는 물론 타인의 인생까지 망치는 실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 분수를 알고 투자해야 합니다. 전문가가 되기까지 열심히 공부하며 배워야합니다.

 

우리 영적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분수를 알고 겸손해야 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할 죄인들입니다, 우리 죄 때문에 예수님을 중한 고통 받으시게 한 자들이며, 본래 아무 가진 것도 능력도 없는 무능한 존재들임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런데 분수를 모르고 스스로 난자처럼 생각하다면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지 않습니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입니다. 넷째는 뭘까요? 넷째도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골짜기에 물이 흐르듯 겸손한 심령에만 은혜가 흐릅니다. 겸손하지 않는데도 은혜가 있고 능력이 있다면 그건 하나님의 영은 아닙니다.

 

2. 무엇보다 성실해야 합니다.

5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여기 부지런한 자와 조급한 자가 나오는데 그 차이는 뭘까요? 부지런한 자는 현실 가운데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조급한 자는 욕망에 사로잡혀 그 과정을 생략하려고 합니다.

 

그 과정을 생략하는 것이 바로 조폭이나 도적이나 사기입니다. 정당한 방법을 넘어 부자가 되려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나 조폭해서 성공했다든지 도적질해서 잘 되었단 소리 들어 보셨습니까? 그런 사람은 감옥만 들락날락하며 자신의 인생을 망칠 뿐 그들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실해야합니다.

우리 영적 생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 성실해야 합니다. 충실한 말씀과 기도생활 없이 위대한 성도가 되고 위대한 일군이 될 수 없습니다. 비전 좋지만 비전만 가지고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받쳐주는 영적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물었을 때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7-8) 하셨습니다.

요한 웨슬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최상의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부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경건생활에 성실하시기 바랍니다.

 

3. 무엇보다 정도를 가야 합니다.

6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즉 부정한 방법으로 부정 축재한다면 오히려 자신의 멸망을 재촉하는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여기 불려 다니는 안개란 신기루를 가리킵니다. 사막에서 어떤 빛의 굴절로 일어나는 현상인데 갑자기 빌딩이 보이고 도시가 보이다가 사라지는 것이 신기루입니다. 부정 축재는 신기루와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편법으로 기업을 육성하지 않아야 합니다. 정치와 결탁하면 쉽게 기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즘 일어난 사건처럼 2000억을 탕감 받았는데 그냥 탕감해 주겠습니까? 100억을 커미션으로 주었는지 200억을 주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거래하면 쉽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어땠습니까? 한 번의 사고로 인해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원인 모를 죽음을 당한 기업가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왜 죽입니까? 정치인들이 탄로가 나겠으니까 죽입니다. 아니면 돈을 송두리째 빼앗기 위해서입니다. 단물만 빨아먹고 쓸모가 없으면 버립니다.

 

그러므로 정말 탄탄한 기업을 육성하려면 교과서대로 바르게 나가야 합니다. 속도는 늦더라도 세금도 바칠 것은 바치면서 누구 두려울 것도 없고 누구에게 아쉬울 것도 없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코 꿰이고 약점 잡히면 결과는 안개와 같이 허무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주인 삼고 늘 성령의 지도하심을 받으며 신앙의 양심 안에서 기업 윤리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삭을 보세요. 흉년 들어 애굽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가지 말고 이 땅에 머물라 그리하면 복을 주시겠다 하셔서 가뭄 들어 먼지 나는 그 척박한 블레셋 땅에 농사하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26:12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했더라 했습니다.

우리는 공부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엎드리므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소통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중과도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자기 기업입니까?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이걸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것이 분명해야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믿음이 정리됩니다. 그래서 초연한 마음으로 기업의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운영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써야 합니다.

 

불신자처럼 하려면 기도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상을 받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기업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엎드리는 기본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십자가 지고 정도를 가야 신령한 부자가 됩니다. 내가 변화되는데 힘쓰지 않고 은혜와 은사만 구하다가는 사탄의 영이 임합니다. 갑자기 엄청난 능력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탄의 영이라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내가 죽는 길입니다. 회개의 길입니다. 또 십자가의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의 십자가를 지십시다. 진정한 영적 부흥은 이렇게 정도를 구할 때 옵니다. 대하27:6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서 가신 우리 주님을 따라서 신령한 부자가 됩시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 무엇보다 겸손하고, 무엇보다 성실하고, 무엇보다 십자가 지고 정도를 가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복 주시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마음관리 (21:7-9)

 

이 시간에 "성도의 마음관리"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우리 영육 간 지체 중에서 가장 관리를 잘해야 할 곳이 바로 마음입니다. 4:23"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생사화복 흥망성쇠가 각인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그럼, 성도의 마음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성도의 마음관리는 항상 의를 갈망함으로 해야 합니다.

7"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하나니 이는 정의를 행하기 싫어함이니라" 이 말씀은 악이 멸망의 원인이 됨을 말씀하면서 나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정의라, 그런데 악인은 정의를 싫어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의를 갈망하고 의를 사모해야 하는데 그것을 싫어하기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인간의 심성이 그렇습니다. 죄는 쉽게 지으면서도 의는 쉽지 않습니다. 화를 내려고 해도 화내는 방법을 몰라 죄짓기 어려워야 하는데, 죄는 가르쳐 주지 않아도 너무나 쉽습니다. 욕심도 너무나 쉽습니다. 게으름은 더 쉽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그렇게 되니까요. 그 뿐 아니라 죄에 대한 갈망이 너무나 큽니다.

 

문제는 구원 받은 하나님이 자녀가 되었어도 여전히 죄짓기가 쉬운 것입니다. 이것은 의인의 마음 관리 부분을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나요? 5: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르라고 하셨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을 갈망하고 또 의를 갈망해야 합니다. 그래야 의는 비로소 내 것이 됩니다. 이것이 의의 특징입니다. 갈망하지 않으면 의는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의를 갈망하지 않으면 죄가 머리를 듭니다.

 

 

그 말씀이 창4:7에 있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시기가 나서 동생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마음에 가인과 같이 통제가 안 됩니까? 평소에 선으로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의에 대한 갈망으로 채우지 않은 빈집의 불행입니다.

 

이처럼 성도라도 항상 거룩한 갈망으로 채우지 않는다면 언젠가 다시 사탄이 차지하고 맙니다. 믿다가 타락하면 더 악하게 됩니다. 모르는 사람은 박해를 해도 감정에 그치고 말지만 믿다가 타락한 사람들은 아주 지식적으로 구체적으로 위해를 가하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이 빈집의 불행입니다. 그러므로 늘 말씀을 읽고 듣고 늘 은혜 받아야지 성경 멀리하고 교회 멀리하고 세상에 마음 내주고 시간 주내고 기회 주내면 시험 들게 됩니다. 믿는 자라도 마음 내주면 시험 들어요.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향한 열망으로 채워 빈집은 되지 않아야 합니다.

 

2. 성도의 마음관리는 항상 주님을 바라봄으로 해야 합니다.

8"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 의인과 악인이 상반된 보응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체적인 이유를 말씀합니다. 여기 "구부러지다."는 말은 '부정하다. 간교하다."는 뜻으로 기회가 생기면 악을 도모하는데 여념이 없는 악인의 습성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악인은 생각부터가 구부러져 있어요. 무엇을 봐도 비뚤어지게 봅니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을 봅니다.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이고,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을 보고, 신앙보다 불신앙을, 그래서 하늘에서 벼락이 내려도 성도는 하나님께서 왜 이러실까 그 벼락의 의미를 신앙 안에서 찾으려고 하지만 악인은 이것이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라고 하나님을 능욕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병든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웃자고 가볍게 한 말도 피해의식을 가지고 대합니다. 친하고 싶어서 한 말도 원수의 말로 받아들입니다. 마음이 건강하지 않습니다. 건강한 마음이라면 그랬다 할지라도 그냥 웃고 말지 깊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 즉 그 마음은 외부의 어떤 말이나 상황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마음입니다. 왜 그럴까요? 성도는 예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12:2-3"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면 시험 들지 않습니다. 억울한 욕을 먹어도 주님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잖아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지 못해 늘 죄송하던 차에 욕이라도 얻어먹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삶이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생각하면 이 정도 쯤은 하나도 고통스럽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왜 그렇게 천사의 얼굴이었을까요? 주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7:55-56"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했습니다.

그는 돌에 맞기 전에도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 같았습니다. 돌에 맞으면서도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랬기에 예수님처럼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항상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성도의 중요한 마음관리법입니다.

 

3. 성도의 마음관리는 죄에 대하여 죽는 것입니다.

9"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여인의 역할이 중요한데 미련한 여인은 시도 때도 없이 가정불화를 일으켜서 가정의 행복을 깨뜨립니다.

 

이 경우 혼자 사는 것이 다투는 여인과 큰 집에서 함께 사는 것보다 낫다고 잠언기자는 말합니다. 이 말은 이혼이나 독신을 권장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이 그렇게 힘들다는 말입니다. 솔로몬이 체험에서 나온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방 나라에서 많이 데려다 놓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럼 다투는 여인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잠언 기자는 멀리 움막으로 가라. 상대하지 말고 피하라. 그 수밖에는 없다. 그래서 남자 분들 내가 죽어야 평안하다고 아예 벙어리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자들도 할 말은 있습니다. 평생 말 못하고 살았으니 이젠 말 좀 하고 살자. 그러나 그러면 불행의 시작입니다. 같이 죽는 것이 더 좋습니다.

 

성도의 마음관리도 이와 같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으시기 바랍니다. 상관하지 않는 것이 죽는 것입니다. 아무리 죄악된 세상에 살지라도 너는 떠들어라 너와는 상관이 없다 하고 피해야 합니다. 시험의 환경을 최대한 피하세요. 다 간섭하다 보면 내가 시험 듭니다. 그래서 딤전5:22"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갈6: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의에는 관계있다 생각하고, 죄에는 관계없다 생각하세요. 성도는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산 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 삼위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임재해 계시고 살고 죽는 것이 우리 마음 쓰기에 달렸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잘 관리해야 할 곳은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늘 말씀으로 충만하여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열망으로 채우고, 또 항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아 마음 비뚤어지지 않고, 그리고 세상이 무엇이라 간섭해도 자기를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여기고 죄와 상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마음관리 잘해서 하나님 잘 모시는 복된 심령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127,성도의 마음점검 (21:10-12)

 

이 시간에 "성도의 마음점검"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임하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 가운데 영육 간에 복 받고 살려면 마음점검을 잘해야 합니다.

 

어떻게 마음점검을 해야 합니까?

 

1. 이웃에게 진정 축복할 수 있습니까?

10악인의 마음은 남의 재앙을 원하나니, 그 이웃도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하느니라본 구절은 악인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즉 악인은 이웃이 잘되고 번영하는 것을 몹시 시기하여 잘못되기를 바라며, 그래서 이웃들이 그 앞에서 그 은혜를 입지 못합니다.

 

이처럼 남을 시기 질투하여 마음껏 축복할 수 없다면 그 마음은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내 자녀를 축복할 때와 남의 자녀를 축복할 때를 비교해 보세요. 모두 똑 같이 마음껏 축복합니까? 아니면 말로는 같지만 마음은 내 자녀보다는 더 큰 복을 받으면 안 된다는 마음이 있습니까? 시기 질투, 이것이 나를 복 받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시109:17-18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의 뼈 속으로 들어갔나이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복 받고 살려면 남을 축복하기 좋아해야 합니다. 사돈 네 논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보통 인간의 악한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이어서는 안 됩니다. 남이 잘못될 때 내 마음에 재미가 쏠쏠 난다면 잘못된 마음입니다. 남을 축복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사욕을 갖지 않아야 합니다. 라이벌 의식 갖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함께 하시고 은혜를 베푸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시35:13나는 그들이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려면 시기와 질투를 버리고 축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말씀 앞에 아멘하고 순종하십니까?

11거만한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겠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하리라여기 거만한 자는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고 훼방하는 악인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여기 어리석은 자는 근본적으로 악하지는 않는데, 훈계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며 지적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거만한 자를 징벌하시므로, 그것을 보고 어리석은 자가 깨닫도록 하십니다. 반면 지혜로운 자는 징벌이나 강제력 없이 훈계만으로 자신의 그릇됨을 깨닫고 행실을 고치는 자입니다.

 

여기 세 종류의 마음이 나타납니다. 징벌을 받고도 회개하지 않는 악인, 타인이 징벌 받는 것을 보고서야 깨닫는 어리석은 사람, 그리고 징벌 받지 않고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아멘하고 순순히 순종하고 회개함으로 사랑 받고 복 받는 자입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말씀에 아멘하고 순종하는 사람, 징계가 필요 없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에게 축복의 통로가 열립니다. 그래서 시32:9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완악할수록 손해입니다. 자기 고집 버려야 합니다. 말이나 노새도 그렇고 염소도 가장 말을 듣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주관입니다. 갈 때도 자기가 앞장 서야 가지 앞에 끌면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으뜸 되기를 좋아합니다. 높은 곳을 좋아해서 어느 순간에 올라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악한 마음입니다. 우리 속에 그런 마음이 있다면 속히 고치시기 바랍니다. 마음 고쳐야 복이 옵니다. 마음 밭이 좋아야 합니다. 옥토 밭만이 10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닳고 또 닳아진 길가 밭이 되면 안 됩니다. 교만하여 말씀을 받지 않고 들어도 실천이 없는 사람입니다. 돌밭이 있습니다. 이 돌밭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지만 흙이 깊지 않아 조그만 시험이 오면 곧 배반하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는 가시밭이 있습니다. 가시밭은 말씀을 받고 행하려 하지만 세상의 염려와 근심 때문에 기운이 막혀 믿음을 잃어버리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어떤 시험이 와도 끝까지 실행에 옮기는 그런 심령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을 두려워 죄를 얼마나 멀리하십니까?

12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시느니라여기 의로우신 자는 문맥상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모든 일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사람의 행위를 보응하실 때 결코 실수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므로 악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환난 가운데 놓이게 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방심하지 말고 늘 자기를 돌아보아 범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죄를 두려워하세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시란 말씀입니다.

 

59:1-2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했습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기도도 막힙니다. 벧전3:7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죄를 두려워하며 회개하여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십시다. 그러기 위해 마음을 점검하십시다. 시기와 질투 없이 진정 축복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어떤 말씀 앞에서라도 아멘하고 순종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죄를 얼마나 멀리할 수 있는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진리의 참 마음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온전한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는 귀한 마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128,사랑의 능력 (21:13-15)

 

이 시간에 "사랑의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사랑이 왜 중요할까요?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고, 또 하나님의 자녀 여부를 알려주는 중요한 표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녀는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각한 일입니다.

 

그래서 요일3:10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했습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그건 사탄의 영이 틈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자에게는 특별한 능력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능력은 어떤 것일까요?

 

1. 사랑은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합니다.

13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남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마음을 가지면, 사람은 물론, 하나님께서도 그 무자비한 자의 호소를 듣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18장의 일만 달란트 비유가 있지요? 베드로가 사람이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물을 때, 예수께서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 말씀하시면서 하신, 비유가 바로 일만 달란트 비유입니다.

어떤 임금이 신하 중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깊을 길 없어 비니까 불쌍히 여겨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는데 탕감 받은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고작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옥에 가둡니다.

 

금 일만 달란트라면 국가를 팔아도 살까 말까한 돈입니다. 그런데 100일의 품삯 정도 갚지 않는다고 용서해주지 못했으니 얼마나 민망한 일이겠습니까?

이것을 본 동료들이 하도 민망해서 그 일을 임금에게 알리니 임금이 그를 불러다가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하고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넘겼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시면서 마18:35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하고 사랑할 때, 어떤 죄도 용서하신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겸손과 사랑의 심정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다 들어주십니다. 사랑은 무엇이든지 다 받게 합니다.

 

2. 사랑은 이웃의 분노를 쉬게 합니다.

14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이 말씀은 뇌물 바치는 관행을 정당화한 것이 아니라. 선물이나 뇌물이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데.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선물을 싫어하는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싫어한다면 선물이 선물 갖지 않으니까, 돈의 액수가 액수 같지 않으니까 싫어하겠지요. 혹은 비밀을 지켜주지 않고 나팔 불어 부끄럽고 위태하게 하니까 싫어하겠지요. 그래서 은밀한 선물이라, 품안의 뇌물이라.

 

능력으로 보면 뇌물의 힘이나 사랑의 힘이나 같습니다. 이웃의 분노를 쉬게 하는 방법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벧전3:13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하면서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영향력 있는 메시지는 선과 사랑의 메시지밖에 없습니다. 예수 천당이 진리지만 아무리 외쳐도 그들에게는 소음공해가 될 뿐입니다. 그러나 선과 사랑은 아무도 토를 달 수 없는 막강한 능력이 됩니다.

교회에 대한 악감을 가진 자들이 있습니다. 이단이나 이방종교인들 가운데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것을 부풀리고 본질을 왜곡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이유 없는 악감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신앙인과 교회를 향해 분노를 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신앙을 변호하는 변증도 강화해야 하지만 선과 사랑으로 무식한 자들의 입을 막아야 합니다. 민심이 기독교를 향해 있어서 아무리 음해해도 이빨이 들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은 분노를 쉬게 할 뿐 아니라 복음화의 최고의 방법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말씀은 사랑이 복음화의 최고의 방법이라는 말도 됩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기독교의 황금율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교회는 이 땅에서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우리도 사랑으로 정복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 사랑은 우리를 온전케 합니다.

15정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죄인에게는 패망이니라정의가 실행되는 것에 대한 의인과 악인의 대조적인 반응을 여기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정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죄인에게는 패망일까요? 정의로운 세상이 실현될수록 의인은 인정받지만 죄인은 정죄 받고 멸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범위를 좁혀서 우리 신앙 안에서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 속에도 선과 악이 있습니다. 우리 속의 악을 무엇으로 척결할까요?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에는 언제나 비례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믿는 것만큼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만큼 믿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정의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함으로 우리 속의 죄악을 패망시킵니다.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사랑함으로 어둠에서 떠나 빛으로 오며,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벗어나 생명으로 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도 수없이 사랑하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온전히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우리를 온전케 합니다. 고전13:10-11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여기 온전한 것이 무엇일까요? 사랑입니다.

 

은사가 신령하다고 하지만 사랑을 소유하면 그 정도가 아닙니다. 더 신령해집니다. 알려주셔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압니다. 보게 해 주셔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봅니다. 정말 신령해지고 싶습니까? 사랑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온전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사랑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4: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성도의 장성한 분량이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의 회개가 도덕적인 면을 넘어서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사랑은 우리 속의 악을 척결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도 사랑입니다. 우리 성도도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랑은 이웃의 분노도 쉬게 하며, 사랑은 우리를 온전케 하는 영적 최고봉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사랑의 은사를 구하여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이 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129,교인의 생활점검 (21:16-18)

 

이 시간에 "교인의 생활점검"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교인이 무엇일까요? 교인을 알려면 교회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교회란 무엇일까요? 교회란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 하는데, 이 말은 '불러낸 무리' 혹은 '거룩한 공동체' 등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죄악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구원의 자리로 불러낸 거룩한 모임이 곧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인이란 그 불러낸 무리 중의 개개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의 생활점검의 내용은 에클레시아 교회의 정의에 부합한 것이어야 합니다.

 

교인생활의 어떤 것을 점검해야 할까요?

 

1. 세속과 얼마나 분리되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16명철의 길을 떠난 사람은 사망의 회중에 거하리라여기 명철이란 하나님을 경외할 뿐 아니라 그 말씀을 따라 의롭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사람이 악인을 따라 명철의 길을 떠난다면, 그 사람은 사망의 회중 가운데 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1:5-6에도 그런 말씀이 있지요?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여기 의인의 회중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회입니다.

 

그런데 사망의 회중이란 어떤 상대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즉 사망의 회중이란, 역설적으로 생명의 회중도 있음을 반증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곧 생명의 회중이란 말입니다. 멸망할 세상 죄에서 구원 받아 영생 얻은 무리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가 왜 생명이 있을까요? 세상에서 철저히 분리되어 하나님 편에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명과 같아요. 육신에 더러운 오염물질이 틈타고 악성 세균이 틈타면 병들고 죽을 수밖에 없어요. 이처럼 우리 심령도 세속과 비진리가 틈타면 그 심령은 죽습니다.

그래서 딤전5:6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어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실상은 죽은 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명력을 찾기 위해서는 첫째도 거룩, 둘째도 거룩, 셋째도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 속에 생명이 있어요.

 

그래서 교회는 늘 하나님의 경건한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에 따라서 계속하여 자기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세속을 철저히 회개하는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흥입니다.

우리의 몸은 세상에 살되 마음은 세속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생명의 회중 가운데 있습니까? 사망의 회중 가운데 있습니까?

 

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얼마나 사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17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이 말씀은, 방종과 사치를 경계하는 말씀인데요. 연락은 연회를 베풀고, 잔치하는 호화스러운 생활을, 술은 유흥을 위해 잔치에 사용되는 음식이지요, 기름은 손님들의 머리나 의복에 부어 환대를 표시하는 비싼 향료를 일컫습니다.

 

이것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잔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연락에 힘쓰면 가난해진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들입니다. 여기서 교훈을 발견해 보십시다.

 

교회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곳입니다. 사람에게 불친절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무엇을 하든지 그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도 사람을 위해서 하면 실패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목적으로 예배해야 은혜가 임합니다.

이처럼 교인들도 자기를 기쁘게 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5:10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은 없는지에 관심 가져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시게 한다면 그 사람은 크게 성공할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인데 안 한다. 안한다. 그러지 마세요. 십자가 피하지 마세요. 더 큰 십자가가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기쁘시게 해주실 것입니다.

 

3.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18악인은 의인의 속전이 되고 사악한 자는 정직한 자의 대신이 되느니라이 말씀이 이사야서에도 나타납니다. 43:3-4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이 예언은 B.C.538년 고레스의 칙령으로 성취됩니다. 파사왕 고레스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포로에서 해방시켜 준 것입니다. 그런데 파사왕 고레스가 종들 다 보내고 손해 볼일 할 사람입니까? 역사를 볼 때 고레스가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다 점령하여 그들로 종을 삼고 그 대신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누구에게로 말미암은 것입니까?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계획하셨기에 고레스의 마음이 움직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배롭고 존귀하며 사랑하셨기에 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기에 이와 반대되는 일도 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이방인들을 이스라엘의 채찍이 되게 하셔서 이스라엘을 침략해서 죽이고 빼앗고 잡아가며 심하게 치게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이스라엘의 회개를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을 위해 악역을 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스라엘을 위한 훈련 교관이나 조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받고 도움을 받고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아도 다 우리의 믿음을 위한 것입니다. 악인을 붙여주셔서 괴로운 세월을 보내지만 그것 역시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깨뜨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우리 때문에 그들이 악역을 한 것입니다. 우리를 훈련시키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물론 그들을 위해 사랑하고 축복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감사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 악역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미안합니까? 이걸 알면 그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생각이 사라집니다. 내 믿음이 부족해서 그가 이런 악역을 대신 한 것이다. 정말 신령한 사람이라면 이걸 깊이 깨닫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말씀합니다. 고후13:5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우리 모두 얼마나 세속과 분리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지 반성하면서 하나님의 최고의 기쁨이 될 수 있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130,은혜생활의 기초 (21:19-21)

 

이 시간에 은혜생활의 기초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속담에 깨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밑이 깨진 독에 아무리 부어봐야 물이 담길 수 없습니다. 우리 은혜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 기초가 잘못되면 아무리 부어도 항상 그 상태입니다.

 

그래서 고후6:1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했습니다. 딤후3:7에도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하십니다. 신앙에 있어서 기본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기본이어야 할까요?

 

1. 평안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19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이 말씀은, 앞의 9절과 비슷한데 9절에서는 움막인데, 여기서는 광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광야에 비유한 것은, 평안 없는 환경이 물질적 육체적 어려움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시사하기 위함입니다. 집안이 평안하지 않는데, 물질이 많으면 뭐합니까? 행복할까요?

 

이처럼 은혜생활도 첫째가 평안입니다. 먼저, 양심이 평안해야 합니다. 우리가 여러 진리 면에서 갖추었다 해도, 가장 기초적인 진리, 양심의 평안 없으면, 그 무엇을 이루었다 말할 수 없습니다. 죄로 인해 양심이 평안하지 못하면, 은혜를 받아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양심에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같이 다투며 구박하는 세력이 바로 율법과 무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지 못하면, 자기 양심을 심히 구박합니다. 늘 강조하지만 보혈의 기초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을 멀리하시고, 죄에 대하여 죽으시기 바랍니다. 12:1절에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 이것 벗어버려야 결국은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내게 달라붙어 있는 이런 무게와 죄가 무엇인가 이것을 꼭 찾아서 이 시간에 벗어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를 넘어뜨리려고 시험해도 죽으시기 바랍니다. 고통스러운 일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세요. 그러면 고통스럽지 않고 참을 수 있습니다. 억울하지 않고. 감사 할 수 있게 됩니다. 잘 다스려지지 않으면 금식하면서라도 엎드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세요. 내가 죽어야 평안합니다. 이 마음의 평안이 없이는 은혜 생활은 불가능합니다.

 

2. 성실이 그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20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미래를 대비하여 근면하고 검소하게 사는 지혜로운 자는 가정에 부가 쌓이지만,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오늘을 즐기는 자는 재물을 낭비해 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탕자의 비유가 주는 교훈이 그것입니다. 둘째가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 받아 허랑방탕하다가 모두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돈은 모으기는 어려워도 허비하기는 쉽습니다. 손이 커야 할 데 크지 않고 아무에게나 기분대로 선심 쓰면 돈을 모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실하고 착실해야 합니다.

 

성공은 지혜나 지식도 한 몫 하지만, 성실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실은 성공과 부와 장수의 비결이라고 합니다. 큰 성공이나 작은 성공이나 그 밑바탕은 성실함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실하면 무슨 일을 하든 큰 성공은 아니더라도 작은 성공이라도 반드시 이룰 수 있습니다. 성실함은 장수의 비결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교육 개혁가 부커 워싱턴은 어려서 남의 집 하인 노릇을 했습니다. 그의 꿈은 집 근처에 있는 헴프턴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학교 측에서 입학을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입학을 시켜 준다고 해도 도저히 희망을 찾아 볼 수 없는 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워싱턴은 포기하지 않고 선생님을 찾아가 졸라댔습니다. 집으로 가지 않고 해가 지고 어두워질 때까지 부탁을 했습니다. 귀찮아진 교사는 그에게 학교 교실 청소를 시켰습니다. 위싱턴은 그때부터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고 걸레질을 하여 깨끗하게 청소를 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선생은 감탄하고 입학을 허가해 주었습니다. 훗날 그는 교육자가 되었고 법학박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성실성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믿음도 성실해야 합니다. 가만있어도 배가 고파집니다. 이처럼 가만있어도 우리 심령은 배가 고픕니다. 그래서 은혜는 잃기는 쉬워도 모으기는 어렵습니다. 말씀과 기도에 충실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생활을 딱 정해놔야 합니다. 제 아무리 하늘을 나는 재주가 있어도 먹지 않으면 안 되듯 말씀과 기도에 충실해야 합니다.

 

3. 십자가 사랑이 그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21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여기 공의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도덕적으로 어그러짐이 없는 행동을 말하고, 인자는 헤세드로 나와 있는데 사랑과 너그러움을 말합니다.

 

공의와 인자 이 둘은 서로 보완적입니다. 공의를 행할 때 사랑과 너그러움을 가져야 하며, 반대로 사랑을 행할 때도 공의를 가져야 합니다. 사랑 없는 공의를 위한 공의는 죽이는 것이고, 공의 없는 사랑은 분별을 상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의와 사랑이 가장 잘 나타난 곳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미움과 심판, 그리고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결과는 21절처럼 생명과 공의와 영광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사랑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죄인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 역시 죄인 구원에 그 포인트를 맞추어야 합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애석하게 여기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고의 사랑이며 그 때 그 영혼들을 구할 수 있고 중요한 것은 내 영혼이 삽니다. 내 영혼의 부흥은 심령 구원에 있습니다.

전도하면 우리 영혼이 삽니다. 4:34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하셨습니다. 어느 정도 성장하다가 전도하지 않으면 더 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전도와 선교를 목표로 삼고 가슴을 불태우지 않으면 우리 심령도 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그토록 함께 하신 것은 영혼 구원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롬9:1-3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했습니다.

 

십자가는 목에 걸고 다니는 액세서리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실천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맡겨진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온전히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기본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평안하십니까? 성실하십니까? 십자가 사랑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 보혈로서 양심의 평안을 갖고, 말씀과 기도에 충실하며, 죄인의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뜨거운 사랑을 품에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 하시는 은혜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131,영적승리의 핵심 (21:22-24)

 

이 시간에 영적승리의 핵심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한국장로교가 낳은 교리신학자 박형룡 박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찰스 핫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가 일종의 느낌일 뿐, 신학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독교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기독교에는 항상 신학, 다시 말해 신앙의 내용이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20세기의 영적 거장이요 복음주의자라 불리는 영국의 로이드 존스는 이런 말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부인하든 안하든, 교리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교리를 거부하는 것은, 곧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꼭 참고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학은 인간이 만든 것이라면서, 무시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영적승리를 거두는데도 진리의 핵심이 필요합니다.

 

1. 진리의 핵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22지혜로운 자는 용사의 성에 올라가서 그 성이 의지하는 방벽을 허느니라지혜의 우월성을 고대의 전쟁 이미지를 빌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용사는 자신의 물리적인 힘을 의지해 상대방을 굴복시키지만, 지혜로운 자는 지혜로서 원하는 것을 더 쉽고 온전하게 성취합니다. 모든 일을 명철과 지식을 앞세워 처리하기 때문에 ,부작용도 일으키지 않고,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됩니다.

 

이솝 우화에 해가 바람을 이기죠? 바람과 해에서 한 사나이의 외투를 벗긴 것은 세차고 차가운 바람이 아닌 온화하고 따뜻한 햇볕이었습니다.

본문에 성을 정복하는 법이 나타납니다. 성을 정복할 때도 지혜로운 자는 다릅니다. 그 무엇보다 성이 의지하는 것을, 무너뜨리는데 힘을 다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성벽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방벽만을 무너뜨리면 성은 함락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지혜로워야 합니다. 신앙의 핵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실에 나타난 사소하고 지엽적인데 힘을 빼앗기지 말고 진리의 핵심을 파악하고 거기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진실로 회개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붙들면 승리합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택하여 주시고 우리 하나님과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시고 다시 임하시는 예수의 복음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부흥은 북을 치며 거리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복음 붙들고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예수 안에서 나를 구원과 영광과 승리와 복락을 얻게 하실 것이다가 아니라, 얻게 하신 그 진리를 진정 깨닫고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진리대로 몸과 마음을 하나님의 것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일단은 나무가 시냇가에 심겨지듯 복음의 진리에 심겨져야 합니다.

 

2. 진리의 핵심에 서서 말하고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23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여기 입과 혀는 강조형 동의어입니다. 말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교훈입니다. 성경에 그릇된 말을 경고하는 부분이 많이 나타납니다. 잘못된 말이 범죄하게 하고 그로인하여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환난은 원문으로 초르인데 그 의미는 굳고 날카로운 살상용 돌혹은 을 의미하는 말로서 포위하다. 추방하다. 괴롭히다.’는 의미를 가진 추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말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말에 달렸습니다. 사람이 입을 지켜야 화를 당하지 않습니다. 전쟁의 날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 영적생활에서도 말이 고쳐져야 합니다. 10: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믿는데서 그치지 마세요. 말씀대로 입으로 시인해야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을 실감하고 살려면 나를 구원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임했지만 그 하나님 나라를 내 안에서 약동하고 실감하며 살려면 시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골2:6-7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했습니다. 하늘로서 임하는 어떤 황홀경만 기다리지 말고 주신 것을 믿음으로 누리세요.

 

13:44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믿은 자는 하나님의 자녀요 복 받은 자임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복음 안에서 감사할 뿐 아니라 늘 찬송생활을 해야 합니다.

만입이 내게 있어도 그 입 다 가지고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다 찬송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찬송하세요. 이미 복되기 때문에 기쁨으로 찬송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진정 복음을 믿음으로 실감하며 행복감 가지고 찬송할 때 진짜 큰 행복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지 못하고 불신하고 불만불평만 한다면 22절 말씀대로 그 영혼을 환난에서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3. 진리의 핵심 안에서 항상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24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여기 망령된 자는 히브리 원어로 루츠그 의미는 비웃는 자, 희롱하는 자등의 의미로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를 모르고 교만하게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이 신비한 마술로 사람들에게 큰 자라 추앙을 받았는데 더 추앙 받기 위해 성령을 돈 주고 사려다가 저주 받았습니다. 나중에 이 사람이 자기를 높이려고 신비한 마술을 보여준다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다가 배가 터져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심리적으로 사람들에게 지나친 추앙을 받다보면 인간은 스스로를 신으로 착각한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추앙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엄숙한 분위기에 말려듭니다. 사람들이 저렇게 존경하는데 그가 신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런 논리입니다.

 

이단의 교주들이 그랬습니다.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한계를 넘어가면 곧 바로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의 한계를 정하셨는데 이건 생명의 법입니다. 육지에서 살아야 할 생물이 바다로 들어가면 살겠습니까? 반대로 바다에서만 살게 한 고기가 밖으로 나오면 살겠습니까?

 

하나님은 느브갓네살 왕이 교만할 때 그를 짐승처럼 낮추셨잖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교만할 때 어둠 가운데 가두신 것처럼 교만하면 어둠 가운데 떨어져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내 나이 몇 살인데,,,” 그러지 마세요. 당연한 말 같지만 그 생각하면 시험 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데요. 우리 나이가 어디에 이르더라도 사랑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젊게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말씀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 함께 하신 진리를 알 뿐 아니라 그 진리에 서서 말하고 그 진리에 서서 즐거워하고 찬송하고 그리고 그 진리의 핵심대로 나는 사라지고 하나님만 온전히 높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이 세상에 아무리 악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이 진리로 승리하고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132,쓰임 받는 사역자 (21:28-31)

 

이 시간에 쓰임 받는 사역자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군이 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일 뿐 아니라. 그 사명이 심히 중하다는 점에서 심히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3:17-18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 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라하셨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3:1에도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말했습니다. 반면 잘 감당하기만 하면 하늘의 영광도 크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르심에는 거부할 수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충성할 뿐입니다.

 

그럼 하나님께 효과적으로 쓰임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 확실한 체험을 가진 사람입니다.

28거짓 증인은 패망하려니와 확실히 들은 사람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거짓 증인의 발언은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할 수 있을지라도 곧 거짓된 것이 밝혀지고 그로 인해 신용이 실추되고 비난과 조소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참된 증인은 있었던 사실만을 증언할 뿐 아니라 그의 말은 사실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귀를 기울이게 하고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신앙적 체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그렇다고 합니다.”와는 의미전달에 있어서 천지 차이입니다. 증인이란 견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사실을 말할 수 없다면 그는 증인이 아닙니다.

 

4:20절에 사도들은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하였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힘 있게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체험 뿐 아니라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했기 때문에 조금도 흔들릴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깊이 체험한 사람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입니다.

 

2. 삶으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29악인은 자기의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자기의 행위를 삼가느니라여기 얼굴을 굳게 하다의 굳게 하다.”꾸미다. 속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악인은 남을 속하기 위해 자기를 광명한 천사와 같이 꾸밉니다.

그러나 정직한 자는 자기의 본질과 행위를 고치려고 하지 겉모습만 꾸미려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삶이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말이고 가장 두려운 말인데 우리가 말씀도 해야 하나 삶으로도 말해야 합니다. 내가 삶으로 본을 보일 때 그 말씀은 100배의 효과를 발휘하게 됩니다.

 

부흥사 무디의 한 친구가 동방을 여행할 때 양치는 목자를 보고 내게 당신의 의복과 지팡이를 빌려주십시오.” 그런 다음에 그 목자처럼 지팡이를 들고 똑 같은 음성으로 양을 불렀더니 양은 따라오기는 고사하고 모두 놀라서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는 목자에게 "왜 내가 양을 불러도 한 마리도 따라오지 않을까요?" 그러자 목자는 "병든 것이라야 따라갈 것입니다." 병든 양이나 따라가지 건강한 양은 자기 목자를 알아보고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들과의 삶이 있어야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23:1-4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3. 나를 내려놓는 사람입니다.

30"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 모략은 원문에 에차로서 충고, 조언, 의논, 결의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제갈공명이 곁에 있어도 그런 의미입니다. 그리고 여기 지혜 명철 모략이 이 세 가지를 반복적으로 늘어놓은 것은 강조형입니다.

 

그러니까 계획한 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기 위한 인간적인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으니 그 모든 것 다 내려놓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지식도 학벌도 필요하나 그걸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도 수완도 필요하나 그것으로 성공하는 것 아닙니다. 세상에서 우등생 그것 가지고 하나님의 일 하려고 하다가는 100번이면 100번 실패합니다. 그런 것 철저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야 합니다.

 

4. 생명을 하나님께 건 사람입니다.

31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고대 전쟁에서 기동력을 갖춘 마병의 확보는 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애굽으로부터 말과 병거를 수입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쟁 승패의 궁극적 승패가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여호와의 손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20:7-8에도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팔을 불며 여리고를 돌았습니다. 여호사밧 왕도 하나님을 믿고 찬양대를 앞세우고 적 앞에 행진했습니다. 이처럼 전쟁의 날에 하나님을 목숨 바쳐 믿고 생명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이건 생명 걸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도 생명 걸어야 합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삽니다. 목숨 부지하려고 하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6:26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모든 사람에게 좋은 말만 들으려고 한다면 그건 거짓입니다. 그건 하나님 비위 맞추지 않고 사람 비위만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신 하나님을 위해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무언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 확실한 신앙체험을 가지고 말보다 삶의 모범을 보이며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뜻을 좇고 목숨 걸고 주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참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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