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선지서

예수 나를 위하여 (사 53:4-6)

공 상희 2018. 3. 26. 06:52

예수 나를 위하여 (사 53:4-6)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번 주일은 주님이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환영했다 해서 종려주일이라고 부릅니다. 마16:22-23에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신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고난 받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예수 나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어느 한 예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의 얼굴은 세상에서 그렇게 일그러질 수 없을 정도로 추해서 속된 말로 동화에 나오는 어떤 악귀와 같았습니다. 딸은 어머니 얼굴을 보여 주는 것이 싫어서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오지 않았고 어머니가 학교에 오는 것도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도시락을 빠뜨리고 학교 가 도시락을 학교에 갖다 주러 갔을 때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저 여자는 누구니?” 그러자 여학생은 “우리 집 식모야” 하고는 도시락을 빼앗듯이 교실로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날 집으로 돌아 온 딸은 울며불며 어머니에게 대들었습니다. “왜 학교에 왔어요? 이제는 창피해서 학교 못 다니겠어요.”


어머니는 울고 있는 딸에게 “넌 엄마 얼굴이 이렇게 된 사연을 아느냐? 네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출근하시고 내가 바깥에서 빨래할 때 원인 모를 불이 나 불길이 온통 집안에 휩싸여 있었다. 그 때 너를 구하려고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 구해 오는 동안 이렇게 심한 화상을 당하였단다.” 이 말을 들은 딸은 울면서 어머니를 안으면서 용서를 빌고 그 때부터 어머니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는데 우리는 얼마나 그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마음으로 자랑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무엇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1.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위한 것입니다.


4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리고 5절에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고난당하신 이유입니다. 병들 때 얼마나 아픕니까? 사람이 아프면 몸만 아니라 마음까지 아픕니다. 그것이 더 고통스럽습니다. 한의학에서는 몸과 마음의 상관관계를 잘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권태와 짜증이 나고 외롭고 우울하고 초조하고 불안하고 두려움과 공포가 오기도 하고 자포자기 비관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심리적인 아픔이 더 고통스러워요. 이 때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단이 얼마나 역사하는지 그러므로 몸이 약할수록 더 기도하고 더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질고와 그 아픔을 담당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작게가 아니라 많이 아프셨습니다. 주님을 내리친 채찍은 가죽에 뾰쪽한 여러 구조물을 붙여 치면 살을 파내는 채찍이라고 합니다. 견딜 수 없이 아픈 채찍입니다. 우리 아픈 질병을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런 질고와 고통을 대신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공로를 믿음으로 우리의 질고를 벗어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을 집행하시는 성령님의 강력한 은혜로 더 온전해져야합니다. 그래서 더욱 은혜로 충만하고 강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부르짖고 사랑하고 기도하고 물리치며 하나님의 이 치유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약5:15-16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치유하시고 또 어떤 방법으로든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2.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한 것입니다.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의 고난은 자신의 죄와 허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죄인 된 우리를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죄 있는 우리를 죄 없다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죄과도 담당해 주셨고, 죄성도 담당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속죄의 복음을 믿으면 양심의 자유를 얻고, 우리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그 은혜를 믿으면 죄악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갈5:24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믿어 죄에서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된 사실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을 누릴 뿐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하여 더욱 풍성하게 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십자가에서 담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공로로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의 각성도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고난 받으셨다는 마음으로 더 이상 범죄하지 않아야겠다는 각성과 함께, 칭의와 거룩의 은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늘 경외하는 삶으로 더욱 풍성하게 누리시기 바랍니다.


3.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갈3:1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여기에 우리가 복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 대신 저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와 닿게 말하면 우리가 망할 것 주님이 대신 다 망해 주셨어요.


그러므로 예수 공로로 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복만 있기를 바랍니다. 형통만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연단하시는 고난도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생 연단만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이삭과 같이 순종하는 자식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역하세요. 내 마음대로 다 결정해놓고 기도해달라고 하면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더 힌트를 얻고 더 전문적이고 더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기본은 나는 복 받은 자라는 믿음에 서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저주까지 받으신 그 복이니 우리는 반드시 복을 누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대상 11장을 보면 다윗이 블레셋 군대에 포위당한 상황에 있었고 베들레헴은 블레셋군대의 중심부에 있는데 그 때 갑자기 자기가 자라났던 동네에 있는 우물물이 생각나 무심코 '저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이 참 시원하고 맛있었는데 누가 나에게 한 모금 마시게 해 줄 수 있었으면...'이라고 혼잣말처럼 말했습니다.


그것은 명령이 아니었고 그저 다윗이 고향 동네는 바라보다가 추억에 사로잡히면서 문득 튀어나온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그 말을 들은 다윗의 세 용사들은 블레셋 군대와 싸우며 베들레헴 성문 곁의 우물에서 물을 길러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다윗은 자기 앞에 바쳐진 물 한 바가지를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 자기가 그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 때문에 그 충성스럽고 용맹스러운 부하 세 명이 목숨을 걸고 적진을 뚫고 다녀왔던 것입니다. 정말 살아 돌아왔기에 망정이지 그 한 바가지의 물 때문에 그들 중 한 명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다윗으로서는 그 얼마나 후회스럽고 통탄할 일이 되었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그 물을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내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이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19절) 하고 그 물을 마시지 않고 여호와께 부어 드렸습니다.


사람의 희생도 이러한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귀한 피를 흘리시며 희생하셨는데 우리가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거부하고 경히 여기면 어떻게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히2:1-4에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고난의 은혜를 깊이 기억하십시다. 그리고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또 나를 위해 예비하신 은혜를 믿고 온전히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누리는 것이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더욱 믿음에 서서 우리 앞의 악을 명령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주님이 은혜를 누리고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