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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봄 동산 (아 2:10-13)

공 상희 2017. 4. 11. 07:02

부활의 봄 동산 (아 2:10-13)


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 시간에 “부활의 봄 동산”이라는 제목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안겨다 준 대작전이 있었던 걸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그 작전이 바로 미국의 아이젠하워가 지휘하는 1944년 6월 6일을 D-day로 한 프랑스 노르망디라는 한 해안에 있었던 노르망디상륙작전입니다.


내용을 보면 동원된 함선만 해도 1,200척, 항공기 1만 대, 상륙주정 4,126척, 수송선 804척, 수백 대의 수륙양용 특수장갑차로 편성된 대부대 15만 6,000명의 병력이 짙은 어둠을 뚫고 바다로 혹은 공중으로 상륙했습니다. 이 작전이 얼마나 컸으면 소련 수상 스탈린이 "이처럼 넓은 구상과 웅대한 규모로 전개된 작전은 전쟁 역사상 일찍이 본 일이 없다."라고 감탄했을까요?


그런데 성경을 보면 역사 이래 이보다 더 큰 작전이 있었습니다. 사탄의 시험과 인간의 타락으로 죄와 사망과 저주로 가득한 이 땅 위에 이 모든 악과 그 세력을 없애시고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대작전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영원한 부활생명의 은총 가운데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말씀이 바로 본문 말씀입니다. 본문은 문자적으로는 솔로몬 왕이 혼인하기 위해 산촌에 사는 그의 신부 술람미를 왕궁으로 가자고 부르는 내용입니다. 그 부름에서 신랑은 시각 청각 후각 등에 호소하는 최소한 일곱 가지 이상의 아름다운 비유의 봄노래로 신부를 부르고 있습니다.


신랑은 봄이 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냥 봄이 아닙니다. 왕궁의 봄입니다. 평민 출신과의 결혼에 냉담하던 왕궁의 분위기가 봄 동산처럼 바뀌었다고 혼인을 위해서 가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깊은 진리가 있어요. 누구든지 예수 믿고 성령으로 임하는 부활의 생명을 입으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하늘 왕궁의 생활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부활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 부활생명은 어떤 것일까요?


1. 죄와 사망이기는 능력입니다.


11절 "겨울도 지나고" 여기 '겨울'(호레프)은 '범람하다' '넘쳐나다' 에서 파생된 말로 팔레스틴의 겨울은 비가 와서 물로 범람하는 장마철이며 따라서 매우 추운 때입니다(렘36:22, 암3:15). 마치 우리 나라의 여름이 다습하기 때문에 더 덮게 느껴지듯 이스라엘의 겨울은 장마철이기 때문에 더 춥고 바깥출입이 불가능해집니다.


그런데 이 겨울은 계절적 겨울이라기보다 당시 왕궁의 혼인의 상황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지고한 왕과 비천한 산골 처녀와의 결혼인데 어떻게 순탄함을 예상할 수 있겠습니까? 태후를 비롯한 왕의 가족 신하 모두가 냉담한 상황이고 신부마저 자신감을 갖고 있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신랑으로 말미암아 이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와 같이 부활생명은 우리에게 부활의 봄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니까 여기 겨울은 영적으로 죄악과 사망의 때입니다. 마치 겨울궁전에 앉아서 여호와의 두루마리 책을 불태웠던 여호야김처럼(렘36:22-30) 우리 마음에 불신앙과 완악함이 가득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셔도 아직 준비가 되지 못했다고 거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혹시 그런 심령 가운데 계십니까? 오순절의 제자들처럼 부활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우리 마음의 겨울은 사라지고 의와 생명이 움트는 부활의 봄 동산이 될 것입니다.


2. 부활생명은 저주를 이기는 능력입니다.


그 다음 "비도 그쳤고" 팔레스틴의 겨울은 기압이 불규칙하여 비가 자주 내립니다. 이스라엘은 겨울이 우기인데 우기에 1년 강우량의 80%가 내리고 그것도 가장 추운 1월에 가장 많은 비가 내립니다. 팔레스틴은 국토는 작으나 바다와 사막과 고산을 끼는 등 지형과 지세가 다양하여 지역마다 강우량이 크게 달라, 신부의 고향인 레바논 산악지대는 연평균 강우량이 1,270mm에 달합니다.


성경에서 비는 은혜나(호6:3, 욜2:23, 요7:37-39) 시련과 고난을(마7:25, 27) 상징하기도 하나 본문의 비는 잠25:23에 참소하는 혀를 북풍의 비에 비유함을 볼 때 국왕의 위신과 명분을 내세워 시골 처녀와의 혼인을 반대했던 초기 신하들의 계속되는 간언으로 봅니다. 그러니까 술람미가 왕의 배우자로서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 궂은 겨울비를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말씀의 기준에 합당치 않다고 정죄하고 심판하고 저주하는 율법의 상징입니다. 성경에서 물은 말씀이지만 겨울비는 고통을 주는 물이기 때문에 이것은 율법의 정죄를 가리킵니다.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존재가 아니라고 계속하여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우리가 받을 율법의 저주와 심판을 대신 받으시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그 피를 믿고 의로서 부활한 그 은혜를 받은 자는 율법의 겨울비는 없습니다. 그래서 롬8:33-34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3. 부활생명은 기쁨과 평안을 줍니다.


12절 "지면에는 꽃이 피고" 우리에게 계절을 가장 잘 알려 주는 것은 꽃입니다. 사람이 만든 달력은 틀려도 꽃은 정확합니다. 그래서 꽃은 계절의 시계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에 꽃이 피었다는 것은 신부를 왕후로 맞이함에 대해서 왕궁은 물론 온 이스라엘이 기뻐함을 비유한 말씀입니다.


사27:6에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세상은 봄 동산으로 바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 성도의 심령에도 부활의 영이 오시면 꽃이 핍니다. 기쁨과 평안의 꽃이 핍니다.


거리에 사람들 표정을 보세요. 기쁨으로 활짝 핀 얼굴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은혜를 받으면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하지 않았습니까? 마치 예수님을 바라본 스데반과 같이 천사의 얼굴과 같게 될 것입니다.


4. 부활생명은 주님만을 사랑하는 능력입니다.


12절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본문의 배경이 되는 팔레스틴에는 많은 새들이 서식하고 있는데 이곳은 겨울에도 얼음이 얼지 않는 아열대성 기후와 천연적인 서식처가 많아 철새나 텃새가 많습니다.


본문의 새는 봄의 철새를 의미하는데 이 철새는 무리를 이루며 수효가 많고 소리가 크며 동일한 소리를 반복함이 그 특징입니다. 특히 그 새 중에서 비둘기의 소리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여기 '비둘기'(토르)는 작고 연회색의 산비둘기로 어떤 종류는 목에 둥근 띠를 띠고 있으며 봄부터 여름 동안에는 산울타리나 관목 사이에서 계속하여 노래하는 봄을 알리는 철새입니다.


그런데 이 소리는 짝을 찾는 소리입니다. 또 반구는 충직하고 깨끗하고 정결하며 품위 있는 소리를 냅니다(James Smith). 또 비둘기는 애정이 강해서 짝을 찾기까지는 그 소리를 그치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여기서 이러한 비둘기를 등장시킨 것은 혼인의 때를 알리는 상징 때문입니다.


즉 나라의 신하들과 왕실의 모든 사람들과 백성들이 두 사람의 결혼을 적극 소원하여 충성된 마음으로 “어서 데려오소서.”하며 정중하게 머리를 조아려 수없이 아뢰는 것을 암시합니다. 비둘기가 목에 띠까지 둘렀으니 틀림없는 신하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부활의 은혜를 받으면 그 생명의 능력으로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주님만을 사랑하는 능력 아래 있게 됩니다. 마치 주님을 사모하는 그 심정은 비둘기가 짝을 찾는 것과도 같이 간절합니다. 이건 성령의 은혜가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2:16) 말씀합니다.


5. 부활생명은 참고 이기는 견인의 능력입니다.


13절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했습니다. 여기 무화과는 겨울의 시련기 후에 익은 과실로 처음 익은 봄 무화과입니다. 이 무화과를 원문으로 “비쿠라”무화과라고합니다(사28:4). 이 봄 무화과는 여름 무화과와는 다른 무화과입니다. 그런데 겨울의 이 푸른 무화과가 잘 익은 비쿠라로 변했다는 것은 잘 익었다는 것입니다.


여기 무화과는 북풍한설의 온갖 시련과 갈등과 탈락의 과정을 통과한 과실이요 과실의 내부에 그 꽃을 숨기는 여성적인 그 특징을 종합할 때 이는 입은 다물고 있으나 술람미의 강력한 경쟁자들인 왕궁의 여러 비빈과 궁녀들을 암시한 것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술람미의 유일한 경쟁자들로서 서릿발이 서도록 냉정하게 술람미가 이 황후의 대열에서 푸른 무화과처럼 탈락하기를 가장 고대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도 변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떨어지기를 바라는 푸른 무화과가 아니라 좋아하고 사모하는 잘 익고 향기 나는 비쿠라로 바뀌었습니다. 즉 신랑은 신부에게 ‘염려 마라. 너를 질시하고 시기할 자는 없다.’라는 말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생명의 견인의 능력입니다. 견인이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지켜주시는 은혜를 말합니다. 각인의 믿음으로 설명한다면 주님을 결코 배반하지 않는 참된 신앙을 말합니다. 어떤 어려움도 시련도 다 이기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부활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6. 부활생명은 변화의 능력입니다.


다시 13절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이스라엘에서 포도나무는 늦봄인 6월에 꽃을 핍니다. 그러니까 이젠 초봄을 훨씬 넘어 완전히 무르익은 봄입니다. 그러니까 이 포도나무 말고 더 이상 봄의 연장을 표현할 나무가 없습니다.


포도나무는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상징으로(시80:8-13, 렘2:21, 사5:1-7, 호10:1), 신약에서는 천국과 교회의 상징으로(마20:1-16, 21:28-32),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비유하셨고(요15:1-11), 또 잘 익은 포도는 사랑스런 아내나(시128:3) 악에 대한 심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계14:18-19).


즉 본문의 포도나무는 마치 합창하는 듯한 포도나무의 향기를 토하는 그 인상에서 상기의 복합적인 특징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온 왕궁 그리고 제사장과 선지자 백성들 심지어는 악인들까지도 두 사람의 혼인을 소원한다는 의미입니다. 포도원의 많은 포도들의 향기이니 이것은 나팔도 보통 나팔이 아닙니다. 이것은 상징적으로는 혼인을 지지하는 압도적인 분위기를 묘사합니다. 그리고 더 지체해서는 안 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부활생명은 강권하시는 주님의 강력한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과 성품과 힘, 그리고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게 하십니다. 성령 받은 사도들을 보세요. 행5:40-42에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도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13절). 아직도 하나님께 마음 다 바치지 못하는 완고함 가운데 계십니까? 이 부활의 봄에 부활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더욱 경외함으로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세요. 그래서 부활생명으로 말미암아 지상의 모든 슬픔을 떠나 우리 주님과 함께 하는 부활의 봄 동산과 같은 하늘 왕궁의 영광된 삶을 누리시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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