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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주님을 체험하자 (눅 24:13-20)

공 상희 2017. 4. 17. 06:20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자 (눅 24:13-20)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35절까지 읽어야 하는데 시간관계상 생략하였습니다.

 

이 시간에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부활하신 소식 만큼 중요한 것은 부활의 체험입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1815년 영국해군과 불란서 해군이 워털루에서 대전을 치루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이기 때문에 당시만 해도 전황을 범선에서 보내는 신호로 전세를 판가름할 때였습니다. 영국 국민은 해전을 치르고 있는 웰링턴 장군으로부터 보내오는 전쟁의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바다에서 싸우고 있던 범선에서 신호가 왔는데 그 신호는 안타깝게도 “우리가 패했다”는 비보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 국민은 패배감과 절망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자식을 전쟁터에 보낸 아내와 부모들은 물론이고 영국 왕실을 비롯한 전 국민이 비통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이 때 영국국민은 실망하지 않고 왕으로부터 모든 국민이 합심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바다에 자욱하게 낀 안개가 걷히고 배로부터 정확한 신호가 다시 왔는데 “웰링턴이 적을 패배시켰다”는 승리의 소식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온 영국 국민들이 길거리로 뛰어나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였고 온 거리는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대 사건이 약 2,00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되고 사흘 동안 무덤에 계셨던 그 시간은 ‘예수가 죽었다’는 슬픈 소식이었지만 사흘 뒤 부활의 새벽, 빈 무덤을 남긴 채 다시 사신 예수님의 소식은 그를 바라는 모든 자에게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새 역사의 아침이 밝아오게 하였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도 글로바라는 제자와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다른 제자가 예수님의 죽으심에 실망하며 예루살렘에서 엠마오 마을로 가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처럼 부활하신 주님은 이 순간에도 우리들과 함께 하시며 우리 인생 길에 동행하시고 우리가 부르짖고 우리에게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두 제자가 부활의 예수님을 체험하고 달라졌듯 우리 성도들은 이 시간에 함께 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믿음으로 체험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체험하면 어떻게 달라질까요?


1. 부활의 예수를 체험하면 인생의 대역전이 일어납니다.


13-14절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그리 멀지 않는 곳입니다. 때는 저녁입니다. 그들은 해가 뉘엿뉘엿 지려는 황혼의 때에 서쪽을 향해 가면서 온갖 실망과 한숨을 안고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는데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사흘 후 어떤 여자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천사의 소식을 들었다지만 예수는 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여인들이 헛것을 보지 않았나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이처럼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성도들의 간증을 들어도 인생의 문제에 확신을 얻지 못하고 절망 가운데 넘어가는 인생의 태양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 모습이 부활의 예수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예수를 믿고 가르침을 받아도 체험이 없으면 절망과 실망의 어둠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2:1-5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체험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데서 그치지 말고 기도생활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즉시로 돌이켜 엠마오를 떠나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갔습니다. 이제는 황혼의 서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그리고 때가 밤이요, 원수들의 박해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들은 힘차게 예루살렘을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이처럼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인생의 대역전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요11:25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롬14:8-9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부활의 주를 만나면 이런 인생 대 역전이 일어납니다. 사울이 바울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2. 부활의 예수를 체험하면 인생길이 즐거워집니다.


15-16절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여기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했다는 말씀처럼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고 문의하고 대답해보아도 답답하기만 하지 그들이 갖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친구였지만 그들의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슬픈 빛을 띠었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에도 많은 만남을 경험하면서 함께 가는 길동무가 있습니다. 부모 아내 남편 자식 친구 동료 이웃 성도 혹은 방송에 이르기까지 인생길을 가면서 많은 길동무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가장 중요한 인생문제는 특정종교라 하여 귀를 막아버립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지식들을 나누지만 예수 빠진 지식으로는 영원한 인생의 안내가 되지 못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들의 대화에 동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을 친구로 맞이하였을 때 놀랍게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가슴이 뜨겁고 진리를 깨닫게 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는데 부활의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시고 자기를 체험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계3:20에 "불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하셨고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21절)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고 늘 하나님을 찬양으로 경외하고 성경을 읽으시고 함께 하신 예수님과 기도하세요. 그러면 우리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욥이 온갖 환난에서 역전한 것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42:5-6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함께 계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대하심으로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부활의 예수를 체험하면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30-31절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은 3년이나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그 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가장 친숙한 모습이었고 가장 정겨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길을 가면서 예수를 눈으로 보고 그의 말씀을 귀로 들으면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진리보다 그들의 마음의 소리가 더 컸기 때문입니다. 동행자가 보통 분이 아니고 예수님 같이 느껴졌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었다는 마음의 소리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런 생각의 엄두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인생의 비극 중 하나는 정말 보아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그 엄청난 사랑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그 사랑을 보지 못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과논증처럼 천지와 만물의 오묘함을 보면서 그것을 존재하게 할 고도의 능력을 가지신 어떤 절대자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완악한 인생은 그런 방향으로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두 제자는 함께 음식을 잡수실 때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주실 때 그들은 예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순간 예수님은 사라집니다. 그 때에야 그동안 길에서 있었던 모든 것들이 떠오르면서 부활의 주님을 믿고 예루살렘으로 달려갔습니다. 예수를 보지 못했으나 사랑하고 즐거워합니다. 여전히 예수를 보지 못하나 믿음으로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덴마크의 실존철학자 키에르코르는 인생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사형언도를 받은 죄수들이 감방에 갇혀 있다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교수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기 순번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활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잠3:6에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했습니다.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동행하신 주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도 함께 동행한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믿고 늘 인격적으로 기도하고 찬송하고 대화하며 감사하며 순복할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자신을 나타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믿음으로 두 제자처럼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여 우리 인생이 역전되고, 더 즐거워지고, 더 신령해져서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