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복음서

팔복의 주인공4,긍휼히 여기는 자 (마 5:7)

공 상희 2014. 11. 8. 12:27

긍휼히 여기는 자 (5:7)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이 시간에는 긍휼히 여기는 자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긍휼이란, 불쌍히 여기는 자비심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긍휼이 가장 필요한 존재를 말한다면, 우리 인간만큼,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불쌍하기 그지없는 인생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 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우주만물을 창조 하시고, 다스리시며, 심판 하시는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긍휼을 파격적인 은혜라고 말 하고 싶습니다. 파격이란, 일정한 관례나 격식을 과감히 깨뜨리는 것을 말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파격적인 것은.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내려 보내셔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화목 제물로 죽게 하시는 것에서부터 그 파격 성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어떤 죄인이든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죄 사함의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와 함께 살고 예수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은혜까지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파격적인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은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 은혜를 받은 수혜자로서 최소한 내 이웃을 긍휼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본문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 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긍휼히 여기는 자가 받을 복은 무엇입니까?

1. 파격적인 용서를 받습니다.

2:4-5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하십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을 뿐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부활의 영광을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긍휼을 베풀어 주셨다는 말씀 입니다.


하나님의 파격적인 용서를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18:21절 이하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일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하는 빚을, ~~왕에게 빌기에 불쌍히 여기고 다 탕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용서 받은 자가 일백 대나리온 빚진 동무를 만나매 때리고 옥에 가두는 일로 왕이 진노하여 그의 처자와 자식까지 팔아 빚을 갚으라는 엄한 명령이 내려집니다.

 

여기서 우리가 바로 탕감 받은 빚진 자란 사실입니다. 우리가 죄를 탕감 받고 구원 받았다면 당연히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은 마6:15에서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하셨습니다.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도 긍휼을 베풀지 않겠다는 말씀 입니다.

 

혹시 기도해도 심령이 막혀 기도가 되지 않습니까? 보혈의 복음에 섰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렇다면, 용서하고 있지 못한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용서하지 못했다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큰 용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 파격적인 사랑을 받습니다.

9:15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하셨습니다. 여기서의 긍휼은 하나님의 선택적 사랑을 말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애굽의 바로 왕은 긍휼없이 버리시고, 이스라엘을 사랑으로 선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9:13에도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불공평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이 이야기가 바로 선택적 사랑입니다. 마치 농부가 모종을 심을 때 자기 원하는 대로 심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신 것은, 우리가 의롭거나, 공로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파격적인 사랑을 긍휼이라는 용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긍휼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명사 중 가장 많이 쓰인 말은 [라하밈]인데 이는 주로 부모가 자식에 대하여 가지는 혈육적인 사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103:13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긍휼입니다.

 

옛날 미국 서부 개척시대 때 어느 날 농부가 두 마리의 힘쎈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마을에 들어왔습니다. 말들을 말뚝에 맨 그는 상점에 들어가 볼일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말들이 미친 듯이 날뛰더니 매놓은 줄을 끊고 온통 마을을 휩쓸고 다니며 난동을 부렸습니다. 농부가 헐레벌떡 달려와 재빨리 말고삐를 움켜잡았으나 허공에 치솟은 무자비한 말발굽이 그만 농부의 가슴을 짓밟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달려와 농부를 끌어냈지만 그는 이미 죽음을 앞두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사람들이 농부에게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도대체 저까짓 마차 하나 때문에 이지경이 되다니..."

농부는 숨을 몰아 쉬며 마지막 말을 하고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마차 안을 보십시오! 마차........ "

사람들은 마차 짐 사이에서 어린 사내아기 하나가 놀라 울고 있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농부의 희생은 결코 어리석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부모의 사랑은 항상 파격적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은혜는 당신의 아들을 값없이 주시기까지 파격적인 사랑입니다. 이 사랑으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파격적인 은혜를 받고 싶습니까? 감당할 수 없는 성령의 사랑을 체험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형제자매에게 사랑으로 긍휼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이웃에게 사랑으로 긍휼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파격적인 은혜를 사랑으로 받는 방법입니다.

3. 파격적인 도우심을 받습니다.

41:1-3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면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게 하시는데, 재앙에서 지켜 주시고, 원수에게서도 건져 주시고, 병도 고쳐주십니다.


유다의 제 13대 왕,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악성 흑색종과 같은 암인데 등에 생겨나 낫지 않는 것입니다. 흑색 종은 칼을 대면 전신으로 퍼지기 때문에 손도 댈 수 없습니다.


왕하 20장을 보면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아에게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죽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히스기야는 이제 끝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통곡하며 간구했습니다.

무슨 간구 입니까? 그동안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우상을 타파 한 일과, 백성에게 긍휼로 선정을 베푼 일을 기억해 주시고 살려 달라는 간구입니다.


히스기야왕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약을 가르쳐 주셨고, 무화과를 찧어 종처에 붙인지 사흘 만에 완전히 녹아 낫게 하시고, 그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주셨습니다.

이처럼 긍휼은 죽을 자도 살립니다.


그러므로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긍휼을 먼저 베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이 빚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기도할 때 질병만이 아니라. 물질까지도 풍족하게 주십니다. 11:25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훈련 차원에서라도 성경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긍휼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4. 긍휼은 심판도 이깁니다.

2:13"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했습니다. 심판이란 법에 의한 처단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한 치의 예외도 없습니다. 그런데 긍휼은 그 심판도 이기게 하십니다.


5:26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했습니다. 이것이 법입니다. 세상법도 그런데 공의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이 말세에 하나님의 긍휼을 받고 사는 길은 이웃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L.A 폭동 시에 교포 집들이 많이 털렸는데, 멀쩡한 집 한 채가 있었습니다. 평상시에 흑인들에게 긍휼을 베풀었던 어느 집사님 댁이었습니다. 우리가 긍휼을 베풀지 않고 살면 ,언젠가는 우리도 이웃들로부터 무자비한 대우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9:13절에 하나님은 제사보다 긍휼을 더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우리가 긍휼을 입는 길이기도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히 여기심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웃의 형제, 자매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김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하심을 크게 받는 사랑하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