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부활절

부활이 없다면 (고전 15:12-20)

공 상희 2013. 3. 31. 06:26

부활이 없다면 (고전 15:12-20)

시간에 “부활이 없다면”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프랑스에 야심찬 영웅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추종하는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이 되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종교를 하나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 목사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도 예수님처럼 종교를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교를 만들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 목사는 정중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예.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직접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십시오. 그리고 3일 만에 살아나십시오.” 이 말을 들은 그는 새로운 종교 만들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부활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기독교가 참 종교요 위대한 것은 주님이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를 믿는 자들도 그 부활에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이단이 침투하여 부활을 부정하는 소리들이 나돌았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본문에서 부활이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고 질책하면서 만일 부활이 없다면 이란 교훈을 합니다.


만일 부활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1. 만일 부활이 없다면 예수 부활도 없었을 것입니다.


13절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부활이 있기에 우리 주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부활 교리는 우리 기독교의 절대적인 교리라는 말입니다. 아무도 부활의 교리를 우리 신앙에서 제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도 확실한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후 셋째 날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 천사가 내려와 무덤 문을 열고 부활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마28:6에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지키던 군병들도 혼비백산하여 도망갔습니다.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은 천사를 만나 부활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인들에게서 소식을 들은 제자들은 달려와 빈 무덤을 확인했습니다. 마리아는 맨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나중에 제자들도 예수님을 보았고 500여 형제와 바울까지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의 부활을 반박하려는 수많은 이론들이 생겼습니다. 기절설, 예수님이 기절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러나 죽으신 후에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확인사살까지 했는데 무슨 소리입니까?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사기설,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 거짓으로 부활하였다는 것입니다. 당시 권력자들이 꾸며낸 이야기인데, 이에 대해 당시 역사가 요세푸스는 시체를 훔쳐 갈수가 없었다고 썼습니다. ‘그의 무덤 둘레에 로마인 30명과 유대인 1천 명이 지키고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적대적인 원수들의 노력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도둑설, 권력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는 설입니다. 그러나 시체가 죽은 증거는 되도 부활의 증거는 될 수 없으니 이 역시 가당치 않는 설입니다. 환상설, 주님을 너무 사모한 나머지 환상을 본 것이다. 그렇다면 제자들에게 나타난 부활의 그 능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예수님은 참으로 부활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 부활도 없을 것입니다.


2. 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 믿음도 헛것입니다.


14절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7절에도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살자고 믿지 죽자고 믿는 것 아니잖습니까? 부활은 우리 믿음 중의 믿음입니다. 예수 믿고 변화되는 것을 보면 부활은 진리입니다. 예수 믿고 악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환경을 이기는 것을 봐도 부활은 진리 중의 진리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입니다.


1683년 영국의 정치가 윌리암 럿셀경이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정적들의 모함으로 교수형을 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사형당하기 직전에 럿셀경은 차고 있던 시계를 빼어 동석한 의사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죽으면 나는 곧 부활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것입니다. 이런 시계는 그 곳에 필요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믿음이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 부활도 없습니다.


18-19절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만일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 부활만이 아니라 우리 부활도 없을 것입니다.


세계적인 부흥사 무디는 장례식 설교를 부탁받았습니다. 문득 그는 예수님은 성경에서 장례식 설교를 어떻게 하였는지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은 장례식 설교를 단 한 편도 하지 않으셨음에 놀랐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모두는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살아날 사람에게 죽음의 설교는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고전15:51-53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부활이 있기에 믿는 우리들도 부활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만일 부활이 없다면 수고에 대한 보상도 없습니다.


19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습니다. 성도는 천국 내세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부활이 없어 이 세상이 전부라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 믿는다는 것 때문에 핍박을 참으며 절제하고 손해보고 사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내세를 믿기 때문에 이 모든 고통을 다 참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세를 믿기 때문에 하늘의 상을 얻기 위해 수고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부활을 믿기에 늘 나를 죽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부활 내세의 부활을 모두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첫 열매의 부활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도 따라서 부활한다는 말씀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살지 못하셨을 것이고 우리도 살지 못하고 믿음도 헛되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고 믿는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라고 한 바울의 역설적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신하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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