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복음서

성공의 주인공이 되는 길

공 상희 2012. 4. 14. 17:03

성공의 주인공이 되는 길

누가복음 1322-30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성공을 원하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성공을 좇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공은 돈과 권력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또한 자신의 추종자가 많은 것도 아닙니다. 진짜 성공은 오래도록 선한 영향력을 남기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건중의 하나는, 히틀러가 유대인 육백 만명을 죽인 것입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에 있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가보면, 유대인들을 대량으로 학살하면서 금이빨을 뽑아 산더미처럼 모아둔 것들, 머리카락을 잘라 산더미처럼 모아둔 것들, 시계, 구두, 가방을 산더미처럼 모아둔 것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왜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홀로코스트가 있게 되었습니까? 상처와 편견으로 생긴 히틀러의 광기 때문입니다. 히틀러가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는 행상을 하며 물건을 다 팔 때까지 집을 몇 달 간 비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 히틀러의 어머니가 외로움을 참지 못해 이웃남자들과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그 중에 돈 많은 유대 남자와 어머니가 불륜관계를 맺는 것을 보고, 히틀러는 그러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했지만 어머니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히틀러는 특별히 유대인과 여자를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육백만 명의 유대인을 죽였고, 주변에 여자가 많았지만 여자들을 끝까지 미워하고, 독신으로 살다가 결국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히틀러를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히틀러가 한때 사람들 눈에는, 가장 성공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를 우상처럼 받들며, 그의 말 한 마디에 열광했습니다. 그는 나치 종교의 교주였습니다. 그것이 성공입니까? 아닙니다. 성공은 숫자에 있지도 않고, 현재 눈앞에 보이는 것에도 좌우되지 않습니다. 진짜 성공은 지속성이 있어야 하고, 천국까지 그 영향력이 끼쳐져야 합니다.

 

또한 성공은 소원을 성취하는 것도 아닙니다. 소원을 이루고 허무를 느끼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간지 소설에 응모해서 그 동안 간절히 원하던 당선작을 낸 후 바로 다음날 자살했습니다. 유서의 내용은 평생소원이 이뤄져 문인이 되었지만, 그 자리를 지키기가 너무 두렵고 부담이 되어서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처럼 성공한 후에 기쁨이 없고 불안한 것은 참 성공이 아닙니다.

진짜 성공에는 2가지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영향력영속성입니다. 그처럼 영향력영속성을 가진 진짜 성공의 주인공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본문 24절 말씀을 보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의 축복을 원하면서도, 가나안땅에 이르는 과정, 즉 광야 40년의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러나 광야가 없으면 복된 가나안에 갈 수도 없고, 주어진 가나안을 지킬 수도 없습니다. 기쁨과 행복은 그것을 얻기 위해 지불하는 수고와 희생과 고통에 비례합니다.

 

가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고,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 절제나 신앙 결단 없이 세상의 정욕과 쾌락을 추구하며 살면, 곧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을 본능적으로 살면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더욱 심한 갈증에 시달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네가 정말 의미 있는 삶을 사느냐?”는 딴 소리가 생깁니다. 얼마나 허망한 삶입니까? 항상 좁은 문으로 들어갈 줄 아는 절제와 신앙의 결단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의미 있는 명작명품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2. 축복의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본문 25절 말씀을 보면.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합니다, 이 말씀은 축복의 문은 항상 열려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일단 축복의 문은 닫히면, 그때는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기회가 오면 반드시 붙잡아야 합니다.

 

축복의 기회는 자판기의 상품처럼 언제나 필요할 때 꺼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그 기회를 버리거나 놓칩니까? 근시안적인 안목 때문입니다. 축복의 기회는 거의 예외 없이 처음에는 힘들고 어려워 넘지 못할 산 같은좁은 문의 모습으로 옵니다. 그래서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그 좁은 문을 외면하기에 축복의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축복의 기회는 대개 변화의 초청으로 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선한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변화 없는 승리는 없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들은 휙휙 지나가는데 자기 차만 가만히 서 있으면 그때는 더 위험합니다. 그때 안정을 얻으려면 주변에 달리는 차들과 속도를 맞춰가야 합니다. 밤길에 차를 몰고 갈 때도 차가 십여 대 씩 몰려가야 더 안정이 됩니다. 그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과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에 지혜롭게 보조를 맞추며 한 자리만 고수하지 말고 선한 변화를 의식적으로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변화에는 무의식적인 변화와 의식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무의식적인 변화는 녹스는 변화지만, 의식적인 변화는 창조적인 변화입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여기까지 왔나?”라고 깜짝 놀라는 변화나, 유행을 따라 휩쓸려가는 변화는 죽은 변화입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미래를 위해 선한 변화를 추구하며, 절제와 신앙의 결단으로 준비하고 있으면 가장 적절한 때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축복의 기회를, 붙잡게 될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라면 아무리 축복의 기회가 주어져도 그저 바라만보며 안타까워하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26-27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말씀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인격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것보다, 인정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다채로운 종교행위를 해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면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행복과 성공의 길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어느 날, 여우가 고양이에게 자랑했습니다. “고양아! 나는 꾀가 많아서 적으로부터 숨는 방법을 많이 알고 있어.” 고양이가 대답했습니다. “부럽다! 나는 한 가지 밖에 없는데.” 바로 그때 저 멀리서 사냥개들이 몰려왔습니다. 고양이는 즉시 나무로 뛰어올라 나뭇가지 사이로 자기 몸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여우에게 말했습니다. “여우야! 이것이 내가 적을 피하는 방법인데 너는 어떡할래?”

그때 여우는 자기가 아는 여러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만 하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어느새 사냥개들이 덮쳐서 그 여우를 잡아 죽였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고양이가 중얼거렸습니다. “한 가지 안전한 방법이 복잡한 100가지 방법보다 낫구나!” 그처럼 행복과 성공을 준다고 내세우는 수많은 세상적인 방법보다, 예수님의 인정을 받는 한 가지 일만 잘해도 얼마든지 행복과 성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십시오. 그것을 위해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예배와 선교와 더 나아가 이웃 사랑도 실천하십시오. 이웃을 외면하는 성공은 진짜 성공이 아닙니다. 성공하고 보니까 주변에 아무도 없거나 자신을 욕하는 사람만 있다면 그것은 성공이 아닙니다.

진짜 승리는 공동승리여야 하고, 기쁨과 영향력에 있어서 지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무엇을 하든지 나만 살려고 하지 말고, 같이 살려고 하십시오. 선교와 구제를 통해서 성장과 나눔을 잘 조율하는 지혜를 갖추십시오. 그런 지혜가 없으면 종말이 비참해지고, 천국에서는 더욱 설 자리가 없게 됩니다.

 

4.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28-30절 말씀을 보면 유대인들은 선민임을 자랑했지만, 그 자랑과 교만으로 오히려 하나님 나라 밖으로 쫓겨나고, 대신 사방에서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말씀은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꼬리가 나태와 게으름 중에 있으면 계속 꼬리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머리가 겸손과 성실로 자신을 가꾸면 계속 머리로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 말씀은 최후의 승리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누가 최후의 승리자가 됩니까? 창조적인 소수의 길을 선택하고, 끝까지 인내할 때 최후의 승리자가 됩니다.

사랑으로 시작했으면 사랑으로 마무리해야 합니다. 도중에 딴 소리를 하지 마십시오. 어느 순간이라도 사랑하는 일에 낙심하거나, 미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 인생은 패배한 인생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끔 이런 말을 내뱉습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어디에 있어?” 그런 푸념이 맞는 말일지라도, 사실 그런 푸념을 하는 것 자체가 자신이 실패자란 표시입니다.

 

왜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습니까? 믿을 사람 많습니다. 한 사람 때문에 모두를 매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과거에 잘못 하나 때문에 누군가를 영원히 믿지 못할 사람으로도 매도하지 마십시오. 누군가가 잘못했으면 책망할 때 그 잘못만 책망해야 합니다. 그 잘못 하나로 몇 달 전, 몇 년 전의 잘못까지 들춰내면, 그것은 더 잘못된 태도입니다. 게다가 사람이 그러면 못써!”라고 인격마저 자극하면, 그 사람은 돌아서서 생각합니다. “비록 내가 잘못했지만 인간 됨됨이는 당신이 더 나빠!”합니다,

한 가지 잘못 때문에 인간성을 따지거나 미래의 운명까지 거론하지 마십시오. 오늘 실패한 사람이 끝까지 실패하는 것은 아니고, 오늘 꼬리가 내일도 꼬리는 아닙니다. 머리가 꼬리 될 수 있고, 꼬리가 머리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잃지 말고, 최선을 다해 꿈과 비전을 향해 나를 쳐 복종시키는 절제와 결단으로 항상 좁은 길을 택하고, 하나님께 인정받고, 준비된 삶을 살아서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최후까지 이기는 자가 되시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