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오심을 예비하라 (눅 3:1-17)
이 시간에 “주가 오심을 예비하라”는 제목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나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첫째 주입니다. 성탄 4주 전 주일을 가리켜 대림절이라고 하고 대강절(ADVENT)이라고도 합니다. 이 절기는 2,000년 전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하신 아기 예수에 대한 의미를 되살리며 나아가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소망 가운데서, 현재 믿는 자에게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감사하면서 더욱 잘 모실 수 있기를 갈망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의 최대의 숙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모셨지만 어떻게 더욱 바르고 더욱 기쁘게 모실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강절에 나타난 진리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시간에는 그 당시 메시야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요한의 외침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어떻게 주님을 바르게 모실까요?
1. 하나님만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평탄케 하라”라고 번역된 것은 “곧게 하라”(Make his paths straight)는 뜻입니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똑 바로 직행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어떤 번역에는 “No detours”, 즉, “돌아 갈 길이 없는 한 개의 길”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세상의 길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교의 길, 이단의 길로도 가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길은 직선로입니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부르면서도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었듯 항상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신6:4-5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바로 모시는 길입니다.
2. 예수만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음이 곧 영접입니다. 요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했습니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만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이 그리스도신가 생각했습니다. 그 때 요한은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했습니다. 요한은 또 자기는 쇠하여야겠고 그는 흥하여야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죄인의 구주시라 믿어야 합니다. 요이1:9에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다고 했어요.
다르게 믿으면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고 구원 받을 수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천하 인간에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알파도 안 됩니다. 잘못된 길 갔다면 회개하고 바른 진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3. 장애물을 처리해야 합니다.
본문에 “골자기마다 돋워지며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된다.” 했습니다. 옛날에 임금이 길 없는 산골이나 광야를 행차할 때는 앞서 길 닦는 사람들이 출발했습니다. 주님이 임하시는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애물이 없어야 합니다.
그 장애는 먼저 죄의 장애입니다. 그래서 요한의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무섭게 책망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고 외쳤습니다. 연륜 직분 과거 선행 내 세울 것 없습니다. 지금 마음의 죄가 있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또 요한은 세리들에게 물질의 욕심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에게도 봉급에 만족하고 약한 백성에게 횡포를 부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죄를 품으면 주님을 바로 모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가 세상종교와 다른 것이 그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을 만나볼 수 없습니다.
“골자기마다 돋워지며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돋아질 것은 돋아져야 합니다. 더 힘쓰라는 말입니다. 더 강하고 더 담대하고 더 열심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낮아질 것은 낮아져야 합니다. 겸손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십니다.
4.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중세기에 나온 한 우화가 있습니다. 수도사 한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출발은 상쾌한 마음으로 했지만 먼 길을 걷자니 피곤했습니다. 정오쯤 되니까 햇볕이 뜨거워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시장기가 들어 살펴보니 도시락을 준비해 오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길바닥에 있는 돌멩이에 채였습니다. 발가락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그는 화가 몹시 나서 주저앉아 중얼거렸습니다. “도대체 이 돌멩이 녀석이 하필이면 왜 여기에 있어 가지고 나를 괴롭힐까?” 그러자 돌멩이가 갑자기 배로 커졌습니다.
“아니야, 이것은 우연이 아니야, 누군가 나를 괴롭히려고 갔다 놓았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자 돌멩이는 다시 몇 배로 커져 바위가 되었습니다. “흐음, 이런 바위를 갖다 놓고 나를 괴롭힐 만한 녀석은 그 놈밖에 없어” 하고 평소에 사이가 나쁜 사람들을 생각하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러자 바위는 다시 몇 배로 커져 아주 길에 가득 막아버렸습니다.
이 때 한 소녀가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수도사님 왜 길바닥에 앉아계셔요. 어디가 아프세요?” 그래서 수도사는 지금까지 생긴 이상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소녀는 두리번거리더니 “어디 그런 산더미만한 바위가 있나요. 여기에 주먹만 한 돌멩이밖에는 없는데요.” 하며 돌을 집어 옮겨 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바위가 무얼까요? 우리가 시험에 들어 만들어낸 바위입니다. 별 것도 아닌데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작은 것을 큰 바위 돌로 만들어 냅니다. 내 마음 아프고 찢어지면 누가 손해입니까? 내가 손해이고 내 안에 계신 주님 마음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예수를 주로 삼고 평안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시131편 말씀처럼 하세요.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우리와 함께 하신 주님을 위해서입니다.
5. 한 가지 더, 간편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운동선수처럼 간편해야 합니다. 주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요한을 보세요. 세례 요한은 약대 털옷만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습니다. 약대 털옷은 질겨서 떨어지지 않는 옷입니다. 먼지 묻으면 털어버리면 그만입니다. 옷 걱정할 것 없습니다. 평생 이 옷 한 벌이면 됩니다. 눅7:25에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눅7:25)한 것을 보면 요한의 옷은 분명 사치가 아닙니다.
음식도 메뚜기와 석청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메뚜기가 많고 더운 나라라 메뚜기는 잡아서 바위 위에 올려놓으면 튀겨집니다. 석청은 있으면 먹고 없으면 먹지 않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사는데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헌옷이면 어떻습니까? 남이 잘 골라놓은 옷이라 더 좋더군요. 자존심 문제가 아닙니다. 너무 격을 다 따지면 주님 바로 모실 공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것 호화로운 것 아니지만 시편 기자의 말을 빌리면 사치입니다. 잠언 30장을 보면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7-9) 했습니다.
바울 역시 딤전6:8에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6:6) 삶의 수준을 낮게 잡고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 드리자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은 외쳤습니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예수 믿는다고 예수 모심이 끝나는 것 아닙니다. 마음이 거친 광야와 같다면 주님을 바로 모실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만 믿고 죄와 삶의 장애를 극복하고 하나님만 사랑하여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더욱 영화롭게 해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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