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화

배움에 대한 예화 모음

공 상희 2011. 8. 1. 18:11

배움에 대한 예화 모음  


경험은 최고의 배움이다.

미국의 R.H. 에머슨(1803-1882)은 한평생을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여 사상가,시인,평론가,목사,철학가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훌륭한 인물이다. 그런 박식한 그가 어느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한 늙은 가정부로부터 크게 깨달은 일이 있었다. 에머슨이 시골에 살때다. 그는 어느날 자기 아들이 송아지 한 마리를 끌어당기며 외양간에 넣으려는 모습을 목격 하였다. 아들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송아지는 꿈쩍도 하지 않아 에머슨까지 함께 송아지를 당겨 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에머슨 부자가 애를 스고 있을 때, 늙은 가정부가 웃으며 이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송아지는 그렇게 힘으로 다루는게 아닙니다. 제가 송아지를 외양간에 넣어보지요." 이렇게 말한 가정부는 자기의 손가락 하나를 송아지 입에 물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송아지는 그 손가락이 마치 어미의 젖이나 되는 듯 쪽쪽 빨았다. 그러자 가정부는 외양간으로 살살 뒷걸음을 쳤고 송아지는 그 손가락을 빨며 그대로 따라왔다. 이에 에머슨이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그렇구나! 그렇게 하니 정말 쉽게 송아지를 외양간에 가두는구나. 오늘 나는 참으로 큰 것을 배웠다. 어떤 문제에도 그 해결책이 많다는 것과, 가정부도 나의 스승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렇게 말한 에머슨은 그 후 더울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공자님도 세 살 어린이에게 배운다는 말이 떠오른다. 또한, "경험은 유일하게 순수한 지식이다."라는 궤테의 말도, 에머슨의 "인생은 하나의 실험이다. 실험이 많아질수록 더욱더 훌륭한 사람이 된다." 는 얘기도 알 것만 같다. 책상 앞에서 밤을 새워가며 수많은 책을 읽은 위대한 학자도 오직 이론가에 불과 할 수 있다는 이 이야기에서, 우리만의 고유의 경험을 최대한으로 살린다면 그렇게 세상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안을 받을 것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똑같은 경험은 없다. 남다르게 격어온 나만의 독특한 경험을 최대한으로 살려, 보다나은 내일을 건설하자.

 


실패는 배움입니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단어 가운데 하나가 '실패'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삶의 참 용기를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요?
영국의 부수 장군이 전쟁에 참패해 동굴 속으로 숨었습니다.
자신의 실패를 치욕으로 받아들인 그는 자살하려했습니다.
그때 동굴 입구에 매달린 거미 한 마리가 열심히 거미줄 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거미는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거미줄 치는 일에 번번이 실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곱 번째에 기어이 성공하고 말았습니다.
부수 장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난 겨우 한 번 실패했다.!"
실패는 잃는 것도 열등한 것도 아닙니다. 실패는 배움입니다.
이번 수능시험 성적이 안 좋았다고 인생에서 실패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용기를 갖고 재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참 교육, 참 배움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자고로 교육열이 매우 높았다. 그런데 그 교육의 내용은 주로 지식 전달이나 기술 전수에 치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교육의 목적은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부를 획득하는데 두었다. 과열된 교육열은 최근 인문 사회 지식은 물론 각종 예술 및 과학 기술 습득을 위한 수 많은 학원 “교육”으로 확대되어 커다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게까지 되었다. 결국 교육열이 극도로 또는 기형적으로 과열된 한국 땅을 떠나 좀 더 자유롭고 여유롭게 삶을 개발할 수 있는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증가하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참된 교육이 무엇이고 참된 배움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이란 말이 포함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미 성숙한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 미치는 영향." "인격 형성을 위한 인간 육성의 과정." "내재적 잠재력을 개발하여 선하고 지혜롭고 용기 있는 삶의 자세를 지니게 하기 위해 미치는 영향." 우리는 이와 같은 교육이란 말이 내포하는 의미들을 되새기면서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성공과 행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지식 습득으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기술 개발로 부귀를 획득하는 것이 인생의 성공과 행복인가? 성숙한 인격을 형성하고 선하고 지혜롭고 용기 있는 삶의 자세를 구비하여 한 평생을 보람 있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가?
우리는 참된 교육이란 인간의 내재적 잠재력을 개발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선하고 지혜롭고 용기 있는 삶의 자세를 지니게 함으로 한 평생을 바르고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도록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기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감화를 받은 사람들 중에서 수 많은 애국자들과 민족의 지도자들이 배출되었다. 소크라테스의 감화를 받은 사람들 중에서 수 많은 희랍의 철인들이 배출되었다. 예수님의 인격적 감화를 받은 사람들 중에서 수 많은 기독교와 사회의 지도자들이 배출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감화와 영향을 미치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스승과의 인격적 접촉을 통해 감화와 영향을 받는다. 진정한 교육은 지식 전달이 아닌 인격적 감화에서 온다. 지식이 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지식이 필요하되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지식이 전수되는 방편이다. 어머니가 전수해 준 한 마디의 지식과 도둑놈이 전수해 준 한 마디의 지식의 의미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오늘날 교육의 붕괴는 사제간의 인격적 만남과 감화의 결여에 기인한다고 하겠다. 어느 교육학자가 각기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 비결을 조사 연구한 일이 있다. 한 가지 공통점은 그들이 모두 자기가 따르며 배운 스승들을 너무 좋아하고 너무 존경했다는 것이다. 참된 교육의 회복은 사제간의 인격적 관계 형성에 기인한다고 하겠다. 지식이나 기술 전달자로서의 선생이 아닌 자기가 너무 좋아하고 존경하는 스승으로서의 선생님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스승과의 만남과 나눔의 장을 넓히자. 즐거움과 감동이 넘치는 제자들과의 만남의 장을 만들자.
둘째, 우리는 오묘하고 아름다운 자연과의 접촉을 통해 아름답고 성스러운 감화와 영향을 받는다. 진실하고 아름답고 조화롭고 성스러운 자연이야말로 우리 인간들의 참된 스승이다. 영국 서북부 아름다운 호수 지역 쿰브리아에서 위대한 자연 시인 윌리암 워즈워드의 인격이 형성되었고, 산천초목과 동식물의 아름다운 자연의 품속에서 사랑의 사람 성 프랜시스의 거룩한 삶이 형성되었으며, 하늘과 구름과 나무와 풀포기들과의 깊은 접촉가운데서 요나단 에드워즈의 영성이 형성되었다. 시인 워즈워드와 성자 프랜시스와 미국 최고의 지성이요 영적 지도자였던 에드워즈는 그들의 당대 뿐 아니라 오고 오는 수 많은 세대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와 감동을 주는 인류의 스승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참된 교육의 회복은 자연과의 친밀한 만남과 접촉을 통한 자연성 함양에 기인한다고 하겠다. 어린 아이 때부터 흙을 밟게 하고 동식물을 만지게 하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즐거워 하고 고마워 할 줄 아는 자연적 심성을 배양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셋째, 우리는 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체험하고 있는 인간의 고통과 실패와 아픔에 친밀하게 연계함으로 인생에 대한 깊은 감화와 감동을 받는다. 지구와 지구촌 주민들이 처한 공통적 컨텍스트는 고통과 실패와 아픔의 컨텍스트라고 하겠다. 우리가 지구에서 지구촌 주민들과 함께 사는 한 대부분의 지구촌 주민들이 처하고 있는 고통과 실패와 아픔의 처지를 외면한다면 우리는 지구촌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격적 자질을 지니지 못하게 될 것이다.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동정하는 착함이나 그들을 격려할 수 있는 지혜나 그들과 함께 고난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용기의 덕목을 지니지 못하게 될 것이다. 교육의 목적이 인간 속에 내재적으로 잠재해 있는 선과 지혜와 용기를 개발하는데 있다면 참된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는 학습자들로 하여금 인간이 처하고 있는 고통과 실패와 아픔의 현장과 연계하고 참예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교육의 과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교육 환경은 너무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안일하다. 우리의 자녀들로 하여금 고난과 아픔의 현장에 참여하게 하자. 인생에 대한 깊은 감화와 감동을 받게 하자. 그래서 서로서로 격려하며 이 세상을 보다 살맛 나는 훈훈한 세상으로 만들어가자.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지혜와 용기와 사랑을 어느 명문 대학에서 배웠다고 하지 않았고 인생학교에서 한 평생 배웠다고 고백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빌4:11).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2). 우리는 한 평생 인생학교에서 인생이 무엇인지를 배워가는 학습생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인생학교에서 터득한 지혜와 선함과 용기들을 우리들의 동료들과 후배들에게 전수해가는 스승들이다. 이와 같은 교육과 배움은 지식 이나 기술 전달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격의 만남과 자연과의 만남과 고난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우리 학교와 우리 사회 안에 참된 교육과 참된 배움이 이루어져가기를 바란다. /김명혁 목사


배우는 사람
  햇병아리 첼리스트 피아티고르스키가 첫 연주회를 가졌다. 바로 그날 그는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세계 정상의 첼리스트인 카잘스가 청중석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더 잘하려고 하면 더 틀리기 쉬운 법이 아니던가. 그날의 연주는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신기한 사실은 연주회가 끝나자 카잘스가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는 카잘스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입어 마침내 세계 정상의 첼리스트가 되었다. 뒷날 서로 흉허물 없는 사이가 된 피아티고르스키가 카잘스에게 그 옛날 자기에게 보내준 까닭모를 박수의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카잘스는 “그때 당신은 이렇게 첼로를 잡고 이렇게 활을 놀려 바로 이 음을 낸 적이 있소. 나는 당신의 연주를 통하여 그 음을 내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미친 듯이 박수를 쳤던 거요. 나는 누구를 막론하고 나에게 가르침을 준 사람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내 스승으로 생각한다오. 그래서 그날 이후 나는 당신을 내 스승같이 생각하고 도왔던 것이오”라고 말했다. 성장하는 사람. 진정 훌륭한 사람이 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코흘리개 꼬마라도 좋고 까마득한 후배라도 좋다. 자기보다 나은 것이 있으면 바로 그것을 명심하여 배우며 또 세상만물을 통하여 교훈을 얻으면서 자기가 배운 대로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우리들이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훌륭한 인격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모든 사람들을 비웃으면서 스스로 배우기를 거부하고 언제나 남을 지도하며 가르치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고전 14:31


학문에 대한 호기심
  어느날 오후 아버지가 그의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산보를 하고 있었다. 그때, 그 꼬마 아들이 아버지에게 전기가 어떻게 전화선을 통과할 수있는지 물어 보았다. "글쎄! 아빠도 잘 모르겠는 걸. 전기에 대해선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말야."라고 아버지는 대답했다.
 몇 블락 더 지나가자 그 아이는 다시 묻기 시작 했다. "아빠! 무엇 때문에 번개와 천둥이 치는 거죠?" "응 사실 말이야, 이 아빠도 그걸 잘 몰라요."라고 아버지는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꼬마는 계속해서 아버지에게 물었고 아버지는 하나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마침내 그들이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그 소년은 다시 물었다. "아빠! 제가 자꾸 묻는게 귀찮지는 않으시죠?" 그러자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론이야. 하지만 네가 뭘 배울 수 있겠니?"그리고 그후로 그 아이는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고 그것은 불행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호기심과 학문에의 열정은 계속 격려를 받고 자라가야 한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이 학교에서 잘 하기를 바라지만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그저 망상에 빠지고 말 뿐이다. 오는날 대부분의 많은 아이들은 직접 배우려는 열의를 격려 받고 있지 못하다. 신앙도 똑 같다고 본다. 예를들자면, 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교회의 본이 되어야 한다. 만일 그들이 배우기를 멈추고 자라나지 못한다면,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리 영감을 주려고 해도 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학생과노신사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학생 하나가 오래간만에 그 학업에서 해방되어, 그 해방감을 가지고 여행을 하다가 어느 조그마한 산장에서 어떤 노신사를 만났습니다.
 여러 가지 대화가 오고 가던 중에 노신사가 이렇게 묻습니다. "학생은 무엇을 하고 있소" "방금 수학을 다 마스터했습니다. 끝을 내버렸습니다."노인이 한참을 웃습니다.
 그 학생이 다시 반문을 합니다. "선생님은 무엇을 하시는 분입니까?" 노신사가 웃으며 대답을 합니다. "나는 방금 수학 공부하기를 시작했소"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보통 분이 아니예요. 그래서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자기 이름은 화이트 헤드라는거예요. 그는 유명한 수학자이며, 과학자입니다. 그가 방금 배우기를 시작했다는 겁니다. 어쩌면 이 세상의 학문이라는 것은 우리가 모두 얼마나 많이 모른는 것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현대를 가리켜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불확실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세상에 확실한 것은 내가 죽는다는 것과 세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 밖에는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저와 여러분들은 암흑과 무지의 불확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배워라!
 성경을 배워라! 그 다음에 확신하라! 확신하라! 확신하라!


 학생과 함께 성장한 교사
 롬 12:6; 골 1:10; 단 12:3; 딤전 5:17
  교육부 총무 크리센슨은 자넷에게 교회학교 3학년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녀는 자기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과연 있는 지 생각한 다음 한 주간 그 일에 관해 기도하기로 했고, 그 주간 끝에 반을 맡겠다고 승낙했다.
 그 후 수개월 동안 총무는 자넷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 보았다. 그녀 의 얼굴에는 사랑과 열심이 나타났다. 어머니들도 자넷이 가르친 영향이 그 아이들의 열심을 보아 잘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 해 연말, 자넷은 총무실로 가서 이렇게 말했다.
 "크리센슨 선생님, 나더러 주일학교를 가르치라고 부탁하신 일을 참 고맙게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내가 가지고 있는 재간을 스스로 발견하게 해주었습니다. 이 일은 내게는 가장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회학교 선생일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학자와 겸손한 어머니
 미국의 명문 하버드 대학의 26대 총장 닐 루딘스틴은 근면과 성실로 인생을 보낸 학자였다.
사람들은 그가 최고 학자의 위치에 오른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는 하버드 전통 정서에 맞지 않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 출신이며 그의 아버지는 유대계 소련인, 어머니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식당 종업원이었다. 특히 어머니는 아들이 하버드대 총장이 되었을 때도 식당 종업원으로 일했다. 사람들이 만류하자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아들이 더 높은 직책을 맡아도 하던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학장의 교훈
  필리핀의 부자 사업가의 아들 카 통 까우라는 학생이 마닐라에 있는 성서 대학데 입학했다. 그는 기숙사의 욕실과 화장실이 불결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학장에게 불평을 털어놓았다. 학장은 웃음을 지으며 “내가 조치해주지”라고 하였다. 그 학생은 학장이 곧 청소부를 보내어 깨끗하게 해주리라 믿었다. 얼마 후 화장실을 닦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학생이 청소를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보려고 나갔더니 다름아닌 학장이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화장실과 욕실을 깨끗이 청소한 뒤. “자. 화장실과 욕실이 깨끗해졌으니 마음에 드나.”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학생은 너무나 뜻밖의 일에 놀라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학장이 웃음띤 얼굴로 “학생. 염려말게. 우리 학교는 그다지 넉넉한 학교가 못되어서 청소부를 따로 둘 수가 없으니 모두가 스스로 자기 일을 한다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학생은 다시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그 성서대학을 졸업하고 신학을 마친 뒤 미국 시카고 자유교회에서 외국인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었는데. 그 학장으로부터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랑과 평화의 교훈을 받았다고 했다. 세상을 사노라면 짜증나는 일도 생기고 불평스럽고 화나는 일도 생긴다. 그럴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승리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그 순간 손바닥에 십자가를 되풀이해서 그리며 주님을 생각한다고 한다.


탈무드 / 기도 시간은 짧게 하고, 학문에는 오랜 시간을 보내라.
    이 말은 유태인들이 학문 즉 배움에 대한 생각을 신을 찬양하는 것과 같이 생각한 데서 연유한  말이다. 그렇다면 '가장 위대한  것은 신'이라고 믿고 있는 그들이 어째서 기도 시간을 짧게 하라고 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이 기도하는  것은 인간이 신에게는 하는 일방적인 말이고, 배움이란 것은 신이 인간에게 베푸는 진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신에게 하는 기도는 맑은  정신으로 짧게 하는 것이 옳으며, 배움은 오랜 시간에 걸쳐 신의 진리를 배운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태인들은 진리를 연구하는 것 자체를 신을 찬양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지식과 지혜를 존중하는 것은 이것이 곧 신을 찬양하는 일로 여겼다.
 간혹 신을 찬양하지 않는 유태인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인생에 있어 학문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유태인들의 이와  같은 전통에 의한 것이다.

 


성공 의욕 재물 물질 정치 배움
개인 아니 천하를 다스리는데는 어려운 해를 끼치는 것이 네 가지 있다고 한다.
 최완이란 중국의 한 사람은 좌우명에 이러한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지 즐겨하고 좋아하면서 일을 하지 않으면 자기 마음을 망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재물이 없으면  몸을 망치고,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없으면 백성을 망치고 , 
세상을 살아가면서 학문과 기술로 공헌 할 수 없으면 천하를 망친다. "
 그러니 일할 의욕이 있어야 하고 재물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정사를  할줄 알아야 하고, 배움과 학술이 있어야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영성 준비와 축복과 교회내에서의활동과 끊임없이 배우려는 우리의 노력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영감 +마음자세 + 자발적인 동기  = 성공적인 믿음


                           노력

(1)배움의 정신은

1.겸손의 정신이다.
  겸손한자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부지런히 배운다.
2.향상의 정신이다.
  배움은 향상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끊임없이 전진하려고 하는 자세 이것이 향상의 정신이요 바람직한 정신이다.
3.활동의 정신이다.
  왜 배우는가? 활동하기 위해서다.나와 내 이웃과 하나님께 유익한 활동을 하기 위해서 배운다.
  그러한 의지가 부족한 사람은 배우고하는 열의가 없다.

(2) 태산이 높다 하되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배우는 사람

1.웃음을 배우는 사람이 되라-- 마음껏 웃을 수 있는것은 하나님의 은총이
  며 웃음은 몸에 보약보다 더 좋은 것입니다.

2.삶의 성실을 배우는 사람이 되라 --남의일에 참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가 맡은일을 힘껏 하는 것은 자기 발전의 지름길입니다.

3.대화를 잘하는 지혜를 배우는 사람이 되라--유창하고 건강한 이야기를
  잘 하는 것은 환자의 방에 스며드는 햇빛과도 같습니다.

4.친절을 배우는 사람이 되라--무슨일에든지 친절하다는 것에 대해 나쁘다
  고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5.사랑을 베푸는 것을 배우는 사람이 되라-- 진실한 사랑의 힘으로 열리지
  않는 문이 없고,사랑의 양념을 넣으면 맛없는 음식이 없습니다.

6.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법을 배우라--어떤 부정적인 말이나 일을
  당할때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여 이해하세요.

7.화내지 않는 것을 배우는 사람이 되라--불평과 짜증스러운 일을  당할때
  자신의 마음을 잘 절제하세요.

8.성경의 교훈을 배우는 사람이 되라-- 이 세상의 어떤 책보다 성경책만큼
  우리의 매일 매일의 생활에 대해 잘 안내해 주는 책은 없습니다.


배움은 늦지않다:

 '아키바'라고 하는 유대의 제일가는 랍비가있다.  그는 50세가 될때까지 공부를 하지 못했는데 어느날 양때를 몰고 개울가로 나가 물을 먹이고 있었는데  자신도 목이말라 물을 마시려고 몸을 구푸리는데 어디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물방울이 한 바위위로 떨어지고 있었는데 그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자리에 구멍이 패여있었다. 
아키바는 이것을보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물방울이 집중적으로 떨어지니까 바위에도 구멍이 뚫리는 구나 ! 나도 지금부터라도 공부를 하면 되겠구나 !' 이렇게 생각하고 아키바는 50세에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유대에서 제일가는 학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배움의 스승
 옛 랍비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읍니다.
"나는 내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내 동료들로부터는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가장 많이 배운 것은 내 제자들 곧 어린 학생들로부터이다."

 

소 길들이기
    렘 22:21; 잠8:13; 13:6

  어린 소를 처음 길들일 때는 한 사람이 소 고삐를 잡고 뒤에서 다른 한사람이 쟁기를 잡고서 논밭을 갈았다.
  어느 산골에 형제가 살았는데 형은  소 고삐를 잡고 아누는 뒤에서 쟁기로 밭을 갈았다.  형은  그 어린소의 고삐를 잡고 "형님, 이리로 가세요", "형님, 저리로  가세요"하면서 길들여 놓았다.   얼마 후에 동생이 혼자 밭을 갈아 보려고 소에게 아무리 "이랴 이랴"하면서 소리치고 때려도 가지를 않았다.  그래서 동생은 가만히 생각해보니 형님과 소를 길들일 때에 "형님, 이리로  가세요", "형님, 저리로 가세요"한 생각이 나서 소한테 "형님, 이리로 가세요.", "형님,저리로 가세요"하며 소리를 지르자 이번에는 소가 신통하게 말을잘 들었다.
  이처럼 신앙생활도 처음부터 바르게 배워야 한다.


 아랫사람에게 배운 지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영국의  물리학자 뉴턴은 한번 연구에 몰두하면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지  아랑곳하지 않았다.뉴턴이 말년에 연구하고 있었을 때의 일.난로 가까이 앉아있던  그는 너무 더워 땀을 뻘뻘 흘리며 고통스러워했다.참다 못한 그는  하인을 불러 난로 불을 꺼달라고 말했다.그러자 하인은 『선생님,의자를 잠깐 뒤로 빼시면 되는데요』라고 말하며 웃었다.『대물리학자』뉴턴은 그제야 무릎을치며 『아,그렇구나.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었네』라고 하면서 의자를 뒤로 빼고 다시 연구에 몰두했다.


 어떤 선생님의 솔선수범

▨ 안창호 선생의 약속엄수

  4월 29일은 안창호 선생께서 상해에서 체포된 날이었다. 이 날은 도산 선생의 친지 자녀의 생일 날인데 바로 며칠전에 어린아이와 약속하기를"내가 네 생일에 좋은 선물을 사가지고 오마" 하였던 것이다. 또 이때는 계엄령이 심하여 출입하기가 어려운 때였다. 그러나 어린아이와 약속한 날이니 아니갈 수 없다하여 좋은 선물 사가지고 어린아이에게 방문했는데 이곳에서 체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산 선생은 이것이 약속을 지키다가
체포된 것이니 조금도 유감이 없다고 하였다 한다.

 

책을 빌려 달랠때 거절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 금전의 차용은 거절해도 좋으나 책을 빌려 달랠때 거절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이 말은 <탈무드>에 있는 율법 가운데 하나이다.
 예로부터 유태인들은 '학문과 책의  민족'이라 불릴 만큼 배움을 중시하였다. 유태 민족에 있어서의 배움이란 인간에서의 피와 같다고 여긴다.

 인간의 몸 속에 피가 흐르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없듯이, 배움이 없는 유태인들은 생각할 수 없다.이렇듯  배움이라는 것을 종교적인 측면에서 지켜
가는 의무로 삼고 있는 민족은 유태 민족뿐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 자라는 성장기에 말을 배운다. 하지만 각 나라의 많은 민족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소수를  제외하고는 읽고 쓰는 것을 모르는
민족이 많았다.

 그러나 유태  민족만은 태어나면서부터 성서와 <탈무드>를  배우면서 쓰고읽는 공부를 한다.  이들은 이때부터 배움이란 곧  신의 가르침이므로 모든
사람이 함께 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유태 민족에게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강한 전통 의식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펄벅과 토인비의 노년기 소감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벅 여사는 80세를 맞는 생일날 이런 일기를 썼다. "젊다는 것과 늙었다는 것은 나에게 의미없는 용어이다. 나는 언제나 다시 젊어지려고 노력해 왔다. 80년간의 내 생이를 돌이켜 볼 때 십년전인 70세가 되었을 때 비로서 나의 인생중 가장 좋은 시기를 맞았다는 확신을 가졌다. 왜냐하면 그때쯤에서야 배울 것을 배웠고 지금부터 정말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유명한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박사는 81세를 맞이하는 날 이런 글을 썼다. "사람이 늙으면서 과거에 붙들려 있으면 불행하다.  또한 미래에 대하여 눈을 뜨지 않으려는 약한 마음도 생긴다. 이것은 모두 후회하는 자세이며  몸이 죽기 전에 이미 죽은 상태이다. 몸이 늙어도 계속 배워야 한다. 미래를 향하여 희망을 가지고 내다 보는 용기가 사람을 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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