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화

불평에 대한 예화 모음

공 상희 2011. 8. 1. 17:56

불평에 대한 예화 모음   


불평촌과 감사촌

두 마을이 있었다. 한 마을은 감사촌이고 다른 한 마을은 불평촌 이었다. 불평촌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불만이고, 무엇이든지 근심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매사에 분노하고, 또 좋은 일이 일어나도 혹시 잘못되어 다시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예상을 하면서 걱정을 했다.
담배 연기가 코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들에게선 잠재적으로 불평과 불만, 근심의 연기가 항상 입에서 나왔다. 불평촌 사람들은 주소가 그 동네이고 또 모두가 불평 속에서 살기 때문에 이 비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감사촌에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가운데서도 감사를 했다. 고생을 해도 감사하고 또 시련을 받을수록 감사의 농도는 더욱 깊어졌다. 봄에는 꽃이 피는 것에 감사했고 여름에는 잎이 무성한 것에 감사했으며, 가을에는 추수하는 것에 감사하고 겨울에는 나뭇가지는 앙상하지만 그 뿌리가 있는 것에 감사를 했다.
하루는 불평촌에 사는 사람이 감사촌에 놀러왔다가 감사하는 소리에 놀랬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감사를 배웠다. 그러나 하루종일 범사에 감사하다가 저녁이 되어 불평촌에 돌아온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에이. 감사촌에 갔다가 얻어먹은 것도 없이 감사만 하고 왔네.”
감사는 감사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감사촌으로 이사를 와야만 되는 것이다. 감사촌에 이사오기 위해서는 불평촌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그곳에 놓고 나와야 된다.
그리고 감사촌에서는 무에서 시작해야 한다. 무에서 출발한다면 모든 것이 감사하다. 옷 한벌, 밥 한끼가 감사하게 된다. 불평촌은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위치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고, 감사촌은 바로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다.

 

무겁다고 불평함
어느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한 성도가 항상 심중에 ` 내가 진 십자가는 너무 무거워.' 하는 불평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꿈에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언덕길을 올라갔는데 얼
마를 힘겹게 가다보니 한 곳에 여러개의 십자가가 있었다.
어디서 음성이 들려오길 "네가 진 십자가가 무겁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여기 많은 십자가 중에서 하나 골라 지라."고 하였다. 그는 이것 저것 살펴보니 번쩍 번쩍 빛나는 조그만 십
자가가 있어 그것을 골라졌다. 이 황금으로 된 십자가는 일어서기조차 힘들 정도로 무거웠다. 다시 소리가 들리길 "다시 골라 보라"고 했다. 이번에는 역시 조그만 십자가인데 아름다운 장미꽃이 활짝 피어있는 십자가였다. 아름다운 향기도 나고 해서 골라졌다. 이 십작가는 무겁지는 않는데 지고 갈 수가 없었다. 가시가 등을 어찌나 찌르는지 할 수 없이 다시 내려놓았다. 자기의 십자가가 가장 가볍고 좋더란다.


감사와 불평
영국 크랜취 감독의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덩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추어도 하나님의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이리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게딱지같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늘 아버지와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똑같은 은혜를 받은 자 중에도 감사하는 자는 실로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눅17:11-19)
불평 원망은 쉽고 감사란 어려운 것이다. (민14:1-25)

 

원망과 불평이 많은 가정
어떤 사람이 자기 가정이 복잡하여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와 말다툼하고, 형제는 서로 싸우고, 친자는 서로 욕하는 상태였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집 안엔 불평만이 가득찼습니다. 이웃집은 친자 2대의 대가족이므로 옥신각신하기 쉬울 텐데도 풍파도 없이 언제나 온화했습니다. 아주 감동이 되어 물어봤습니다.
“댁은 어떻게 그리 평화스럽습니까?”
대답은 이상했습니다.
“댁은 선한 사람만 한 데 모였지만 우리 집은 악한 사람뿐이니까요.”
놀라와하는 얼굴을 보고 그 이웃 사람은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댁에서 가령 실수하여 항아리를 깼다고 합시다. 즉시 '누구야. 이런 곳에 분재를 놓아둔 놈은?', '당신은 눈뜬 소경이요'라고 하게 되지요. 모두 저마다 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는 '아, 내가 그런 곳에 놓아둔 것이 잘못이었어요', '아뇨, 제가 부주의한 탓이지요' 하며 모두 자기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집안이 평화롭고 안정이 되지요.”
이것이 평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휴지통이 많이 놓여 있기 때문에 깨끗하게 정리가 된 역 홀을 보고,“나는 우리 집의 휴지통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가시돋친 말, 비꼬는 대답, 냉정한 말대꾸, 이러한 가정의 쓰레기같은 것을 모두 자기 마음 속에 받아넣어 집안을 깨끗하게 정리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욕을 먹어도 미소로 답하고, 빈정거려도 따뜻하게 웃어주는 인간이 되려고 결심한 것입니다.

 

불평과 감사
불평은 자기에게 해를 가져올 뿐인데 반하여, 감사는 언제 나 자기에게 유익을 가져 온다. 다음 사실은 그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일본 와까야마 지방 출신의 해군 장교인 가와가미 기이찌는 대전후 귀국하게 되었는데, 고향에 돌아와 보니, 국내 상태는 참아 눈 뜨고 볼 수 없으 리만큼 퇴폐해 있었다. 불평 불만만 품고 살아가는 중에, 그 만 전신이 굳어져 버려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고 말 았다 한다. 병원에 가서 진찰했지만 전연 치료의 길이 없다 는 것이었다. 이 때 와까야마에 있는 정신 치료가 후지다씨 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말하기를 매일 밤<감사합니다>를 억지로라도 만번씩 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날부터 돌아와 자리에 누운채로 하고 싶지 않는 감사이지만 매일밤 계속하 는데, 어떤날 그의 아들아이가 두 개의 익은 감을 나무에서 따다가 `아버지 이거 잡수셔요`하고 드리게 되었다. 그 때 그 몸에 배기 시작한 감사가 참 감사로 되어,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고맙다고 하면서 손을 내 밀게 되었다 그때 비로소 손의 움직임을 발견하게 되고 차츰 전신이 움직여져 불치의 병은 치료되고, 감사의 사람이 되어졌다는 것이다. 실로 감사하는 이에게는 감사할 일이 생겨져 오는 것이다.

 

만성불평자
많은 사람들은 고난의 짐을 예수님에게 맡겨버리지 않고, 계속 끊임없는 불평을 함으로써 더욱더 우울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불평을 듣는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고 실망에 빠뜨립니다.
매리 배철러라는 여인은 바로 그러한 만성 불평자였습니다. 그 여자는 목사님의 딸이었고 가정주부이며 또한 목회자인 그의 오빠의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빠에게 그의 고민을 날마다 불평하곤 했습니다.
그들이 서로 대화를 하고 있던 어느 저녁에 그녀는 오빠에게 자기가 한 불평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발견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양심에 가책이 되어 창밖을 내다보니, 높이 솟아 있는 포플라 나무들이 저물어가는 저녁 해를 안고 저 건너 잔디밭으로 길쭉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었습니다.
그녀는 '나는 저 나무들처럼 오빠에게 그림자를 지우고 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왜 나는 예수님께 내 짐을 맡김으로써 슬픔을 매장하지 못할까?' 그녀는 자기 방으로 가서 눈물을 흘리며 위로를 얻었습니다. 후에 그녀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너의 슬픔을 서슴지 말고 묻어버려라.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걱정이 있으니 깊숙히 묻어버려라.조심스레 숨겨서 침착하게 생각하라.어두움의 장막이 내릴 때, 어서 주님께 말하라.그러면 만사가 의로우리라.”
그후 그녀가 더욱 행복한 크리스챤이 되었을 때 그 글을 오빠에게 보여주고, 오빠는 그 글을 읽고 지방 신문에 실었으며, 저명한 작곡가인 필립 브리스 씨가 그 글을 읽고 작곡하였습니다. 매리 배철러는 한때 만성불평자였으나 주님께 그의 모든 짐을 던져 맡겨드림으로써 우울증으로부터 완치가 되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다 불평하지 말라
당신은 어떻게 시간을 관리하며 살고 계십니까? 늘 입버릇처럼 시간이 없다고 불평을 하고 계신 건 아닌지요? 만약 그렇다면 오늘로써 불평을 그치고 자신이 어떻게 시간을 관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은 뒷전에 둔 채 자신의 정욕대로 일을 추진하면서 수많은 시간들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가치 있고도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는 비결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인지 파악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기도: 주님, 저희로 주님의 뜻을 알게 하사 귀한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불평중 감사의 찬송
"돌아오라 돌아오라"의 작사가인 게이츠는 25세 되던 해인 1960년 어느 겨울날 폭풍이
몰아치는 좋지 않는 날씨 때문에 자신의 모든 일정이 취소되자 짜증내고 불평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창 밖으로 휘날리는 눈을 보면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그녀는 "내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으면 집 안에서 유익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고는 다음과 같은 찬송가 가사를 지었습니다.

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 이여
길이 참 어둡고 매우 험악하니
집을 나간 자여 어서 돌아오라
어서 돌아오라

 


감사를 불평으로 바꾸는 사람들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함께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었다.한쪽에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온천이 솟고 그 옆에서는 얼음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올라 동네 여인들은 빨랫감을 가지고와 온천에서는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는 헹구어 집으로 가져가곤 했다. 그 모습을 본 관광객이 안내하던 사람에게 물었다.“여기 사람들은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참 좋겠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죠” 그러자 안내원은 “천만에요.이 마을 사람들은 불평이 더 많습니다. 더운물과 찬물이 나오는 것은 좋은데 빨래 비누까지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이 많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더운물과 찬물이 솟아나는 샘물처럼 사람의 마음 역시 감사와 불평이 솟아나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감사하면 감사하는 일이 많아지고 불평하면 불평할 일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돌아와 감사했던 사마리아 한사람처럼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삶으로 우리의 삶을 바꿔야 한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1-2)

 

불평 속에 담긴 불신앙

투덜댐은 어려운 상황이나 곤란한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는 비판적 불평이다. 그것은 자신 앞에서 느리게 진행하는 운전자에 대한 불평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 허락하신 일들에 대한 불평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불평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직접적인 위반이기도 하다. 내가 만났던 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업이나 하나님이 쓰시는 지도자, 또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불평이 하나님의 가치기준과 계획,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인 반영이라는 것을 현명하게 알고 있었다. 한번 생각해보라! 어떤 아이가 그들 부모의 끊임없는 불평의 대상인 조직체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싶겠는가? 현명한 부모는 자녀들에게 사랑의 원리와 우리 주위의 불완전한 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가르친다. 불평은 항상 믿음 없는 가운데 행해지는 일로서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의 잠재적 능력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불평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환경이라도 다스리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그러한 태도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언제나 최상의 일을 하신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부정적 환경도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다.

 

비겁한 사자의 불평
사자가 하루는 하나님께 이런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크고 멋있게 만들어 주었어요. 저도 그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있어요. 아랫턱의 긴 이빨과 날카로운 발톱, 그래서 다른 짐승보다 힘센 동물로 만들어주셔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다른 것은 잘 만들어주셨으면서 한 가지 닭을 무서워하게 하신 까닭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러자 하나님은 "네 말대로 너에게는 내가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었다. 닭을 겁내는 것은 네 정 신이 비겁하기 때문이지 나한테 원망할 것은 못된다."
하고 사자의 비굴한 마음을 꾸짖었습니다.
사자는 하나님의 꾸짖음을 듣자 그만 죽어버릴 생각을 하고 있는데, 코끼리를 만났습니
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코끼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큰 귀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봐 코끼리. 왜 그렇게 쉴새 없이 귀를 움직이고 있나?"
그때서야 코끼리는 날아다니는 모기떼를 가리키며 말하였습니다.
"나는 이 모기들 때문에 잠시도 안심하고 살 수가 없어요. 이놈들이 내 귓구멍 속에 들
어가면 그만 나는 마지막이거든요."
이 말을 듣고 사자는 그렇다면 굳이 내가 죽을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모기보다 닭은 훨씬 강한 놈이니 적어
도 나는 코끼리보다는 행복하거든.'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불행합니다.

 

장미의 불평

화단 구석에 장미가 한 송이 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불평이 많았는지 눈만 뜨면 불평을 털어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장미는 밤이면 춥고 어두워서 못있겠으니 거실로 옮겨 달라고 주인을 졸랐습니다.
주인은 장미를 화분에 옮겨서 거실에 두었습니다. 얼마 후 장미는 또다시 주인에게 불평을 했습니다. 여기는 나비가 찾아오지 않으니 창가에 옮겨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장미를 창가에 옮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장미는 창가에는 고양이가 지나다녀서 싫다며 화병에 넣어 방안으로 옮겨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다시 장미를 화병으로 옮겨 방안에 두었습니다. 며칠 뒤 장미는 또 다시 주인에게 바깥 화단으로 옮겨 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뿌리가 잘린 장미는 시들어버렸고 주인은 장미를 뽑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습니다.

 

불평 제조업자

노만 필 박사는 항상 적극적 사고방식을 강조한 사람으로 어느 날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그의 맞은편에는 한 중년 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그 부인은 계속해서 주변환경에 대해 불평하고 있었다.좌석이 불편하고 시트가 지저분하고 청소도 제대로 안돼 있고 승무원도 불친절하다는 등 불평을 했다.
이때 부인의 불평을 듣고 있던 남편이 필 박사에게 인사를 하자고 제의했다.그러면서 그는 자신들을 소개하기를 “저는 변호사이고 제 아내는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필 박사는 “그럼 부인께서는 어떤 것을 제조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그러자 남편은 웃으며 “제 아내는 불평을 만들어내는 제조업자입니다”고 대답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부인처럼 불평을 만드는 제조업자가 아니라 감사를 만드는 제조업자가 돼야 한다.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천년을 하루같이 여기시면서 모든 것을 참아주신다.그런데 우리가 조금 어렵다고 불평해서야 되겠는가.감사하는 자세는 우리의 인생을 복되게 만든다.감사의 제조업자는 시련을 축복으로 변화시킨다.


 불평 책
 시 37:1; 눅 6:37; 마 7:2; 약 4:11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평>이라 이름 붙여진 특이한 책을 가지고 있는 설교자가 있었다.
 하루는 성도 한 사람이 그에게 와서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하여 떠벌렸다. 그러자 그 목사는 이렇게 말해다.
 "좋아요. 여기 `불평 책'이 있어요. 제가 여기에 당신이 이야기한걸 모아 써 넣을 테니까 여기에 서명을 좀 해주시겠어요? 제가 그 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루게 될 때 당신이 증인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대개 불평 책이 눈 앞에 펼쳐지고 펜이 준비되면 당장에 효과가 나타난다.
 "아, 안돼요. 나는 여기에 서명할 수 없어요!"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하면서 서명하려 하지 않았다.
 이 설교자는 그 책을 50년 동안이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동안 줄잡아 책이 수천 번 펼쳐졌지만 거기에는 단 한 사람의 서명도 적혀 있지 않았다.(Moody Monthly)
  불평은 불평에 불평 낳고…

 언제나 불평하는 농부가 있었다. 농부의 눈에는 아름다운 것이 없었고 귀에는 좋은 소식이 없었다.
 비가 조금만 와도 홍수 걱정을 하며 투덜거렸고, 햇빛이 비쳐도 가뭄 걱정을 하며 소란을 피웠다. 해충이 조금만 눈에 띄어도 온 곡식이 피해를 보는 것처럼 걱정했다.
 어느 해에 유례없는 풍작을 이뤘다. 곡식 값까지 껑충 뛰어 마을 사람들이 기뻐했다. 마을 사람들은 늘 불평만 하던 농부를 찾아가 "금년엔 괜찮지?"라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농부는 이렇게 투덜거렸다.
 "괜찮긴, 땅에는 몹시 해로울 거야."


 
불평은 불행을 부른다
 출옥한 늙은 죄수가 수도원에 찾아가 받아줄 것을 간청했다.
 수도원장은 "단, 조건이 있습니다. 5년마다 꼭 한마디 말만 하는 겁니다"라고 말하며 수락했다.
이 노인이 첫 5년 되는 해에 내뱉은 말은 "잠자리가 나쁘다"였다.
 그 다음 5년 뒤에는 "음식이 나빠 못 먹겠다"라고 했다. 다시 5년이 지난 후 노인은 "더 못 살겠다"라고 했다. 15년 동안 노인의 세 마디는 전부 불평뿐이었다.
 수도원장은 이렇게 말하며 노인을 내보냈다.
 "그대가 여기 있는 동안 불평뿐이었으니, 나가시오."


불평은 은혜를 잊게 한다
 눅 6:35; 시 37:1
 
 에든버러 세인트 조지교회에서 목회하던 화이트 목사는 어느 날 오후 늙고 가난한 여인을 방문했다. 그가 머무르고 있던 20분 동안 그녀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들에 대해 불평하고 또 불평했다. 그러나 화이트 목사는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는 가려고 일어나 그녀와 악수를 하고 인사를 한 후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명심하세요. 당신의 받은 은혜를 잊지 마세요."
 

불행을 만드는 사람
 시 37:1, 7, 8; 유 1:16
 
 어느 목사님이 열차 식당 안에서 아침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 옆 자리에는 한 중년 부부가 앉아 있었다. 식사가 나오자 그 부인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오믈렛은 다 식은 데다가 맛도 없어요. 그리고 그레이프프루츠는 시원하지가 않아요."
 그녀는 계속해서 구역질 나도록 불만을 늘어 놓았다. 이러한 짜증스런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목사가 그녀의 남편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예, 제조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 안사람도 역시 제조업에 관계하고있지요. 아주 흥미있는 일이지요?" 하고 그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당신 부인이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이죠?"
 "나의 처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불행을 만들어 낸답니다."자신이 불행해지거나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때에만 기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불행도 하나님의 뜻이기에
 막 11:22-26; 욥 1:20-22; 2:10
 
 어떤 신앙인 부부가 자식을 모두 잃는 불행을 당했다. 순식간에 자식들을 잃은 그 부부는 절망과 슬픔에 잠겨 괴로워했다. 사람들이 그들 부부를 찾아와 "좀 더 주의했더라면 그런 불행한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애석해하며 그들 부부의 잘못을 탓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오랜 시간이 경과하고 난 후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 때 만일 그 불행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면 나는 결단코 그들을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 부부는 불행한 사고를 이렇듯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받아들이고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였다.
 

불행이 다행!
 
 랍비 아키바가 램프를 가지고 나귀와 개와 함께 여행중이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그들은 어느 빈 집 헛간에 들어가 밤을 보내기로 하였다. 밤에 아키바가 램프 불빛 아래서 책을 읽고 있을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램프가 꺼졌다. 할 수 없이 아키바가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여우가 와서 개를 몰고 갔다. 사자가 와서는 나귀를 죽여 끌고 갔다.
 허탈해진 아키바가 램프만 챙겨 가지고 가까운 마을에 다다르자, 그곳에서는 간밤에 큰 난리가 터졌었다. 도둑떼가 쳐들어 와 온 마을을 파괴하고 마을 사람들을 몽땅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아키바가 휴우! 한숨을 쉬었다.
 "램프가 안 꺼졌다면 그 역시 도적에게 발견되었겠지. 개가 그저 있었다면 개가 컹컹 짖어 도둑이 달려 왔겠지. 나귀도 역시 시끄럽게 했겠지. 모든 걸 잃어버린 덕분에 내가 목숨을 건졌구나! 최악의 상태에서도 희망을 가져라. 불행이 다행이되는 일도 있을지니!"


감사 결핍증

  지난 연말, 세종로 복판 교보문고 외서(敎保文庫 外書) 책가게 앞에서 친구 하나 만나기로 약속하고 서 있었던 적이  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어머니가 네댓 살 먹어 보이는 사내 아이와 계집 아이 손을 잡고 지나 가다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서 있는 장식용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아이들을 세워 놓고 사진을 찍고 싶었던 것 같다. 핸드백에서  카메라를 꺼내더니 날더러 찍어 달라는 것이었다.
  거리를 조절하며 초점을 잡고 있는데 이 어머니 부탁이, 웃겨서 찍어 달라고 한다. 스마일, 치이즈...해도 알아듣질 못하고 히히, 해해 광대짓을 해도 웃질 않는다. 고양이 소리 쥐 소리를 내어 겨우 웃겨놓은 것이 웃는 상이 아니라 찡그린 상이었고, 마냥 그러하고만 있을 수 없어 셔터를 눌러 버렸다. 못마땅했던지 그 젊은 어머니는 `웃지 않았는데...'  하며 카메라를 빼앗듯 돌려 받더니 아이들 뒤쫓아 가버린다.  나의 노역(勞役)은 조금도 감사 받지 못하고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애들 아비가 곰처럼 무뚝뚝하겠거니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새끼 사슴처럼 발랄한 여학생 하나가 뛰어 오더니 메었던 가방을 내앞에 벗어 던지면서 `아저씨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한다. 가방 좀 지켜 달라는 것같다. 귀밑머리 희끗희끗한 것을 보고 안심했던 것 같다.  색깔 바랜 인생을 한숨 쉬고 있는데, 돌아온 그 아가씨는 벗어진 신발이라도 줍듯 제가방 주워 메고는 뒤돌아 보지도 않고 총총 뛰어가 버린다. 이 역시 나의 가방지기 노역은 조금도 감사 받지 못하고 만 것이다.
한 장소에 연속적으로 일어난 이 감사 증발이 우연의 일치이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나, 요즈음 젊은 사람들 대체로 감사할  줄 모르는 것 같다. 거스름을 받지 않고 택시 요금을  주었을 때 감사하다고 말하는 운전 기사를 별반 본 일이없다.
택시 스톱에서 바삐 구는 아가씨에게 차례를 양보했을 때 감사 받기도 힘든 일이다. 단골집에 물건 사러 갔을때, 또 오십시오...하는 이기적(利己的) 인사는 들어도 감사하다는 말듣기는 어렵다. 아이들에게 과자 나부랭이를 사 주었을 때 신난다고는 외치지만 감사하다고 답례하는 아이가 몇 이나 되겠는가.
말끝마다 감사가 뒤따르는 기독교 문화권과 비겨 감사 결핍증(感謝缺乏症)은 너무 혹심하다.  유태교의 성전(聖典)에도 `혓바닥(舌)에게 감사합니다는 말을버릇들이기 전에 아무 말도 하지말라'는 가르침이 있다. 감사 한다는 것은 신(神)에게 감사하건, 사람에게 감사하건 물건에 감사하건 그것을 소중히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보호의 `응석'속에 유아독존(唯我獨尊) 이요 자기 중심(自己中心)적으로 살아온 탓인지 요구만 할 줄 알고 감사할 줄 모르는 이 한국인의 감사결핍증은 국제화 시대에 소외 받을 국병(韓國病)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싶다.

 

감사 속의 불평

 백년전 미국인들은 72 종류의 바라는 것들이  있었고 그중 꼭  필요한 것은 16 개를 꼽을 수 있었는데 오늘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이 바라는 것들은 484 종류이고 그중 꼭 필요한 것으로 꼽은 것은 92 개라고 한다.  백년 사이에 가지고 싶은 것도 엄청나게 늘었고  필수품도 늘었는데 발전이라면 발전이지만 여기에 정비례 불만도  늘어났다.


감사를 잊었는가?
  한 젊은 부부가 카나다의 록키 산맥에 자리잡고 있는 벤프라는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철따라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절경을 연출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들 부부는 그 절경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자 그들은 더이상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벌써 그 경치에 싫증이 난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만 먹는 것이 싫증났다고 불평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늘 특별한 감사거리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수많은 감사거리가 곁에 있음에도  말입니다.
   "주님, 저희들은 감사하는 것을 쉬 잊어버리고 불평하기를 즐겨합니다. 저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저희 입술에 감사가 넘치게 도와 주시옵소서."
 불테면 불어라 겨울 바람아,눈보라 섞어치니 사정도 없다만은 인생의 감사치 않는 마음보다 모질지는 않는구나.

 

 감사와 불평

  영국 크랜취 감독의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덩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추어도 하나님의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이리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게딱지같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늘 아버지와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똑같은 은혜를 받은 자 중에도 감사하는 자는 실로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눅17:11-19)
  불평 원망은 쉽고 감사란 어려운 것이다. (민14:1-25)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 지라.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눅17:11-19)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민14)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
   감옥과 수도원은 「고립」이란 점에서 비슷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 차이에 대해 미국의 데이비드 소퍼목사는 다음과같이 말한다.

 『감옥과 수도원의 근본적인 차이는 단지 불평하느냐, 아니면 감사하느냐는 차이일 뿐이다. 수감된 죄수가 수도자와 같은 「감사의 마음」을 가질 때 감옥은 수도원으로 승화될 것이고, 반면에 수도자가 「불평의 마음」을 가질 때 수도원은 감옥으로 전락할 것이다』고립되었을 때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환경과  앞날을 의미있게 가꿀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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