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화

나그네 손님에 관한 예화 모음

공 상희 2011. 7. 29. 16:07

나그네 손님에 관한 예화 모음

 

▣ 나그네

성경은 나그네나 이방인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그네 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히11: 13)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주장한 것은 인생은 나그네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게 나그네의 삶이라는 걸 안 그들은 더 나은 본향에 소망을 두고 힘들고 어려운 인생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나그네는 객지에 있는 사람, 손, 방랑객이란 뜻입니다. 자기 고장을 떠나 다른 곳에 잠시 머물거나 떠도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나그네는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이 계속 지낼 곳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다시 왔던 곳으로 갈 사람입니다. 나그네가 어떤 집에 신세를 지며 지내다가 돌아갈 생각을 안 한다면 이상한 나그네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돌아갈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15) 우리는 세상에 사는 게 나그네요, 여행객이요, 손님이요, 방문객이요, 외국인으로 사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그네는 주인처럼 행세하며 살면 안 됩니다.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1:17) 집에 돌아가면 어떻게 될 것인지 준비해야 합니다.
비자를 가지고 남의 나라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간이 있습니다. 비자 기간이 끝나도 자기 나라로 안 가면 불법체류자입니다. 여기저기 여행을 해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 많습니다. 좋은 음식들이 많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오는 희열이 넘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도 돌아와야 합니다. 마치 인생이 그렇습니다. 문명은 발달하고 참으로 편리한 세상으로 치닫습니다. 그러나 우린 돌아가야 하는 나그네요 여행자입니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 19, 20)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영생이며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여행하다가 천국이라는 나라로 돌아가야 합니다.

▣ 노력만 하면 된다

'여보시오, 당신은 어딜 그렇게 바삐 가는 거요?' 분주한 인생길에서 누군가 당신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그때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한 노인이 지나는 나그네에게 물었습니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는 거냐고. 나그네는 서울에 간다고 대답했습니다. 노인은 딱하다는 듯이 '서울은 북쪽인데, 어째서 남쪽으로 가는 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나그네는 다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염려 마세요. 나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니 노력만 하면 안 될 게 없지요.' 나그네가 어리석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쯤, 당신도 자기 삶의 목적과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문제는 방향입니다.
- 오 인 숙 / 교단작가

▣ 나그네는 짐이 가볍습니다

이조 숙종 때 서울에서 일찍 남편을 여의고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생계가 곤란해 남의 집 바느질을 하면서도 알뜰하게 돈을 장만해 아들 학성 형제를 가르쳤습니다. 하루는 비가 내렸는데 빗방울이 떨어지는 곳에서 금속성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상히 여기며 주위를 파보니 큰 가마니에 은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학성 어머니는 한참 생각하다가 그것을 전보다 더 단단히 묻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학성 어머니는 오빠에게 그 집을 속히 팔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그마한 집을 새로 구입해 전과 다름없이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 가며 두 아들을 가르친 결과 학성 형제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어느 해 학성 어머니는 오빠를 초대하고 두 아들을 불러 옛날 집에서 은가마니를 묻고 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깜짝 놀라 이유를 묻는 오빠에게 학성 어머니는
“아무런 수고 없이 큰 재물을 얻으면 반드시 뜻하지 않은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어릴 때 의식(衣食)이 편하면 학업에 힘쓰지 아니할 것이고, 궁한 것을 알고 고생을 해보아야만 사는 것이 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오빠와 두 아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고 두 아들은 무수한 고생 가운데서도 진실하고 아름답게 산 자기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더욱 훌륭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 나무 아래 쉬소서

창세기 18장 1 - 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마므레 상수리나무 숲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한 낮의 가장 더운 시간에 아브라함이 자기 천막 입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가 눈을 들어 보니 세 사람이 자기 맞은편에 서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 그들을 보는 순간 즉시 달려갔습니다. 그들을 맞으며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다면 주의 종을 그냥 자나가지 마소서 물을 조금 가져 올 테니 방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 쉬소서. 내가 먹을 것을 가져오겠나이다. 이왕 종에게 오셨으니 음식을 잡수소서. 힘을 얻으신 후에 가세요. 그러니 그냥 지나가지 마세요. 그러자 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좋다 네 말대로 하라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급히 천막으로 갑니다. 그 아내 사라에게 당신은 제일 좋은 밀가루 한 됫박을 가져다가 서둘러 빵을 좀 만드시오. 그리고서 그가 소 있는 데로 갑니다. 연하고 살찐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골라 하인에게 줍니다. 그러자 하인이 급히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버터와 우유와 요리한 고기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놓고 나무 아래서 그들이 음식을 먹는 동안 그들 곁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이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하고 묻습니다. 아브라함은 천막 안에 있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 때 여호와께서 내년 이맘때에 내가 반드시 너에게 돌아 올 것이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때 사라는 그 뒤 천막에서 이 말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았습니다. 사라는 갱년기도 지났고 노쇠하여 늙었는데 내가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어째서 사라가 웃으며 내가 늙었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는가 하고 중얼거리는가! 나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겠는가! 내년 정한 때에 내가 너에게 돌아 올 것이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하십니다. 사라는 자기가 한 말이 두려워서 나는 웃지 않았습니다. 합니다. 하나님은 아니다 너는 웃었다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지중에 손님 대접을 하다가 엄청난 선물을 받은 아브라함을 배웁시다. 우리도 늘 이와 같은 인격자가 됩시다. 사랑은 에누리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는 것입니다.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도 늘 이런 삶을 살아 주 안에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 나그네와 같은 너

성경: 벧전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백 년전, 미국에서 온 한 여행자가 유명한 랍비 호페츠 캐임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는 랍비의 집에 책들과 한 개의 테이블과 벤치가 있는 단순한 방 한 개가 전부인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 여행자는 "선생님 당신의 가구는 어디에 있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당신의 가구는 어디 있죠?"라고 랍비가 대답했습니다.
"내꺼라뇨?" 당황한 미국인이 물었습니다."
저는 단지 이곳을 방문했을 뿐이오. 단지 지나갈 뿐이예요" "나도 그렇소"라고 랍비가 말했습니다.
여기에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인생은 나그네와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그네와 같은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 하룻밤 묵고 갑시다!

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뉘엿뉘엿 해가 지기에 한 동네에 들렀다. 마침 궁궐 같은 큰 집이 있어 주인을 불렀다.
"저는 길가는 나그네올시다. 하룻밤만 묵고 갔으면 하는데
허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했더니 주인은 "이곳은 여관이 아니요. 저 건너편에 있는 여관으로 가보시오." 라며 거절을 했다. 이때 나그네는 "그러면 주인장 하나 물어봅시다.
이 큰집에 몇 대나 살아오셨소?"
"예, 나까지 16대를 살아왔죠."
"그러면 그 16대가 다 지금 생존해 계신가요?"
"아니죠, 다 세상을 떠났죠."
"그렇다면 이집도 여관집과 뭐가 다릅니까? 대대로 자고 가고 자고 가고 16대를 했지 않습니까? 그러니 나도 하룻밤 묵고 간들 뭐가 이상하오?"
주인은 하는 수 없이 이 제치 있는 나그네를 하룻밤을 묵게 하고 잘 대접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참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너무나 정확한 대화입니다. 오늘 한번 지난날을 돌아보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 잡아 한해의 마무리를 잘 합시다.

▣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기대하라

중세 시대에 수사들은 성도들을 일컬어 라틴어로 ‘비아토르(viator)’라고 했다. 비아토르는 여행자나 나그네, 곧 ‘세상을 지나가는 자’라는 의미다. 성경에서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우리를 나그네라고 하고 있지 않는가? 지금 우리는 이 세상을 지나가는 여정 가운데 있을 뿐이다. 가장 영광스럽고 위대한 축복은 현세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가장 귀한 축복은 아직 오지 않았고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순례자는 눈을 이 땅에 두는 사람이 아니라 위를 향해 드는 사람이다. 세상의 뜻이 아니라 하늘의 뜻에 민감한 사람이다.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이 영원한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순례자의 삶을 좀더 역동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태도가 필요하다. 하나는 기억을 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대를 잘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기억했다. 애굽에서 모든 장자의 죽음에서 보호하시고 홍해를 건너가게 하신 그 하나님을 기억했다. 우리도 영적으로 구원받지 못할 자
들을 그리스도의 피 값만큼 귀한 존재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향한 기대를 가졌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비된 것을 상속하라’고 하신 약속을 붙들고 장차 다가올 삶을 기대해야 한다. 이러한 기억과 기대가 떠나가지 않을 때, 우리는 순례자의 삶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다.
/ 오정현

▣ 나그네의 삶을 지혜롭게

터키 사람들은 고난과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인사할 때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빨리 지나가기 바랍니다”. 인생은 나그네와 같아서 괴로움이나 즐거움이나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인생을 “나그네와 행인” 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나그네”라고 했고 야곱도 “나그네”(창47:9)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25장 23절에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도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습니다. 육신은 풀과 같아서 조만간 시들어 죽고 마는 것이니 그 육신의 정욕대로 살지 말고 영생하는 영혼의 뜻을 따라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태리의 밀라노 대성당에는 세 가지 아치로 된 문이 있는데 첫째 문은 장미꽃이 새겨져 있는데 “모든 즐거움은 잠깐이다” 하는 글귀가 있고, 둘째 문은 십자가가 새겨졌는데 “모든 고통도 잠깐이다”라고 쓰여 있고, 셋째 문에는 “오직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이다”라고 쓰여져 있다고 합니다. 인생살이는 고통도 잠깐이고 즐거움도 잠깐이기 때문에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했습니다. 나그네와 같은 짧은 인생을 육신의 정욕대로 아무렇게 살지 말고 인간의 모든 행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머지않아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서 결산하고 선악 간에 심판 받을 날이 온다는 것을 잊지 말고 매일매일 순간순간 조심스럽게 두려움으로 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70세를 살든 100살을 살든 인생은 전광석화와 같이 빨리 지나갑니다. 나그네와 같은 이 짧은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후회할 날이 오게 됩니다.

▣ 짧은 인생여정

P.B. 셸리가 쓴 ‘오지만 디아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고대 대륙에서의 한 여행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막을 여행하던 중 하나의 커다란 석상을 발견했습니다. 발견 당시 그 석상은 돌로 된 커다란 다리가 군데군데 파손되어 있었고, 머리는 몸체와 분리되어 모래 속에 반쯤 파묻혀 있었을 뿐 아니라 아주 보기 흉하고 추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석상의 주춧대 표면에 쓰여있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왕 중의 왕인 나는 오지만 디아스다. 나의 과업과 이 강대함을 보라. 온 인류가 나를 영원토록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석상은 대부분 파손되었고 제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라고는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람세스 2세를 가리키는 이 위대했던 왕은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 자신의 위대함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과연 누가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중에 한 분이라도 그를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 인간은 죽으면 물론 얼마간이야 가겠습니만 영원히 기억될 수는 없습니다.

▣ 동병상련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나그네 된 사람은 나그네를 사랑하고,왕년에 술에 찌들어 살다가 하나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술 먹고 비척거리는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낍니다. 죄 많이 짓고 용서받은 사람은 죄 많이 지은 사람을 보면 정이 갑니다.
한 초보 강도가 어떤 집에 들어가서 누워 있는 집 주인에게 “꼼짝마. 손들어”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강도가 “왜 손을 안 들어. 죽고 싶어?”라고 협박했더니 그 사람은 “제가 오십견이어서 손을 들 수가 없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집 주인의 말을 들은 강도는 “오십견이세요? 저도 오십견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나았습니다”라고 말하며 칼을 놓더니 집 주인과 오십견에 대해 치료 정보를 나누고 그냥 가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방황하고 나그네 되고 노예 되었을 때 용서받고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연약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베풀어야 합니다.
/피영민 목사(강남중앙교회)

▣ 나그네 인생

젊은 날에 애송하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저녁에 숲가에 멈춰 서서'입니다.

이 숲이 누구의 것인지 나는 안다
하지만 그의 집은 마을에 있으니
내가 지금 여기 멈춰 서서
눈이 쌓이는 자기 숲을 보고 있는 걸 알지 못하리
……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그윽한데
나에겐 지켜야만 할 약속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만 할 몇십 리 길이
잠들기 전에 가야만 할 몇십 리 길이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는 저녁에 고요한 숲을 바라보면서 갈 길이 먼 나그네가 말안장 위에 앉아 읊은 시입니다.
/여운학 (사랑의편지 발행인)

▣ 주님대접

비가 퍼붓는 어느 날 한 중년 부인이 비를 피하여 조그만 집 처마 밑에 들어섰다. 늦은 저녁이었는데 주인은 그 낯선 사람을 안으로 맞아 난롯가에서 옷을 말리게 하며 따뜻한 보리차를 대접하고 저녁 식사로 준비한 감자 몇 알까지도 나눠주었다. 잠시 후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그 부인은 바로 수행원을 일찍 돌려보내고 혼자 거닐던 평상복 차림의 여왕이었다.
성경은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에 대해 말한다. 평상시에 우리가 사람들을 대하는 것 우리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대하는것이 곧 주님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주님도 그렇게 말씀 하셨다

▣ 무엇을 위한 신앙인가?

성 경: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었음이니라 (출 22:21)

지난해 5월 31일 조선족 서문봉 씨(45)는 한국인의 몽둥이에 맞아 아산재단 강릉병원에 실려갔으나 치료 도중 뇌사상태에 빠졌다. 한국인 가해자는 "몸으로 때우겠다."며 교도소행을 선택했다. 병원측은 치료비를 받는 대신 장기기증을 주선하려 했지만 책임질 가족이 없어 불발. 6월 10일 마침내 사망했다. 중국에서 입국한 그의 부인은 남편의 시체를 찾아 장례를 치르려 했으나 치료비 1천 3백만 원을 지불해야 시체를 찾아갈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의 부인은 남편 사망 후 5개월이 되자 병원에 가서 "시체를 내놓아라. 아니면 내가 여기서 죽겠다."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병원측은 영안실의 시체 안치료 5백만 원을 더 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 면담 신청을 했으나 거절당했고 청와대까지 편지를 보냈다. 수일 후 그녀는 남편의 유해를 받았고 장례를 치렀다. 사망자는 보상금은 차치하고 임금 450만 원과 빌려준 돈 200만 원도 받지 못한 채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 그의 부인은 "고국에서 맞아 죽은 것도 서러운데 보상도 못 받고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이 곳이 과연 고국인가."라면서 통곡했다.

* 적 용: 코리안 드림을 안고 고국 땅을 밟았던 그들에게 우리는 작은 마음의 여유도 베풀지 못했다. 우리는 그러한 이들을 도와야 한다. 이러한 마음은 남을 먼저 대접하고 나도 그러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이해와 용서와 사랑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한다. 나그네와 이방인이었던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겠다.

▣ 외국인과 나그네 인생

어떤 공원에 한 나그네가 벤치에 앉아서 깊은 사색에 잠겨있었습니다. 공원 청소부는 황혼이 깃들기 시작하자 서둘러 청소를 하는 중 벤치에 앉은 나그네를 보고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나그네가 대답하길 “글쎄요 내가 누군지를 몰라서 생각하는 중에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그것도 잘 몰라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로 갈 것입니까? ”글쎄요 그것을 알았으면 벌써 여기를 떠나지 않았겠습니까? “ 공원 청소부의 질문에 도리어 이 나그네는 반문을 하듯 했습니다. 공원 청소부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한 이 나그네는 유명한 철학자 ‘데카르트’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방향이 다르기는 했지만 공원 청소부가 대수롭지 않게 던진 이 질문내용은 우리 인생들에게 있어서 가장 심각하고도 중대한 물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생은 과연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해답은 성경에서만 찾아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인생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이 나타나 있습니다. 시편73:20절에서는 인생은 꿈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 시편90:5절에서는 잠깐 자는 잠으로 표현했고. 욥기7:6절에서는 베틀에 북보다 더 빠른 인생이라고 표현했고. 이보다 더 많이 나와 있는 표현은 그림자와 같은 인생(대상29:15, 전6:1·2) 꽃과 같은 인생(욥14:2, 시103:15, 사40:6). 풀과 같은 인생(시37:2, 사40:6-8, 약1:10, 11). 손바닥만한 인생(시39:5) 지렁이 같은 인생(사41:14) 안개와 같은 인생(약4:14) 등이 있습니다.

▣ 주님의 심정으로

며칠 전에 우리 병원에 러시아 여성 2명과 어떤 남자 한 분이 진료를 받기 위해 오셨습니다. 앳된 얼굴에 금발머리,푸른 눈 등 한눈에 이방인임을 알아볼 수 있었고 인근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간호사들이 알려주었습니다. 남자분은 친구 정도로 생각했는데 일반 진료를 보는 선생님이 러시아 아가씨들이 아프다면 늘 같이 온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뭘 도와드릴까요 하고 물으니 한 사람은 넘어져서 다리에 타박상을,다른 한 사람은 손을 다쳐서 왔다고 했습니다. 이국에서 겪는 아픔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혹시 일을 잘못 한다고 맞았는지도 모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분들이 왜 다쳤는지는 몰랐지만 마음에도 상처가 있는지 표정이 무척 어두워 보였다는 것입니다. 진료를 다 마치고 기도회 때에 병원 가족이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참 잘 해드려야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풍습에는 얼마나 나그네를 선대했습니까? 지난 설날 처가에 가는 길에 우리 가족은 패스트푸드점에서 동남아 노동자 네 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옆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메뉴의 가격표를 보다가 주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가격이 너무 비싸고 아마 이런 음식을 먹지 못하는 고국의 부모님과 동생들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긴 시간이 흘렀고 급기야 포기하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집사람과 우리 아이들이랑 의논하여 닭튀김과 음료수 등을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사와서 드리니 너무도 고마워하며 맛있게 잘 드셨습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와서 힘들게 생활하는 저분들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위로하시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혹시 아프시면 우리 병원으로 오라고 일러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닭튀김을 먹을 때면 꼭 이 만남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주말에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무료 진료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섬겨야 할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인 필리핀인 파키스탄인은 물론 중국의 우리 동포와 탈북민들…. 조금 멀리 보면 외국인 노동자를 섬겨 그분들이 예수님을 알게 하여 귀국시킨다면 얼마나 좋은 하나님의 디아스포라 선교 사역이 될까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이방인들을 삶의 현장에서 친절하게 대해주고 인격적으로 선대하시고 도와주고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이병욱<사랑의클리닉원장>

▣ 인생의 본질

인생의 본질을 안다면 애착을 버리는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떤 거룩한 랍비의 이야기가 이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인 몇 명이 폴란드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이들은 거룩한 랍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랍비는 인생의 대부분을 그 마을에서 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 거룩한 사람을 보려고 그의 집을 찾아간 그들은 집에 들어서면서 깜짝 놀랐다. 살림살이가 거의 없이 집안이 썰렁했던 것이다. 랍비가 앉아서 성경을 공부하는 의자와 책상, 그리고 간단한 침대가 눈에 띄는 가구의 전부였다. 손님들은 물었다. "랍비님, 당신의 가구는 어디 있습니까?" 그러자 랍비는 잠시 책에서 눈을 떼 이들을 올려다 보면서 이렇게 되물었다. "그러는 여러분의 가구는 어디 있습니까?" "우리의 가구요? 왜 우리가 가구를 들고 다닙니까? 우리는 잠시 지나가는 길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대답하자 랍비가 말했다. "나도 똑같습니다." 애착에서 벗어나고 소유에 대해 죽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이 나그네 인생길에 들고 다녀야 하는 '가구'가 얼마만큼이 적절한지 깨닫게 된다. 그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필요도 없는 물건을 지고 다니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된다. 그 자유와 아울러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인생을 누리게 된다.
/ 에드워즈 헤이즈
* 기도: 선한 목자이신 주여, 나그네 된 인생길을 사는 동안 그 인자하심으로 나를 인도하소서. 오늘 나를 이 세상으로 부르신 그 뜻을 알기 원합니다. 고난과 손해가 있더라도 천국에서 내게 주실 의의 면류관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 하나님이 정하신 것

고려말 시인 우탁이 지은 시가 있다. “한 손에 가시 들고/다른 손에 막대기 들고/늙은 길 가시로 막고/오는 백발 막대기로 치렸더니/백발이 저 먼저 알고/지름길로 오더라.”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일들은 불변하다.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 죽는다. 영웅호걸도 결국 죽는다. 진시황은 3000동자를 세계 각처에 보내어 불로초를 구해오게 하였으나 49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인생은 나그네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다. 이런 인생에게 기쁘고 좋은 소식이 있다. 예수 믿으면 영생한다는 소식이다. 영생의 의미는 두 가지다. 영원히 사는 것과 풍성한 생명을 누린다는 뜻이다. 풍성한 생명이란 신바람 나는 삶을 의미한다. 항상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이다. 예수 안에만 있는 은혜요 복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정죄함이 없다. 예수님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정한 복이다.
/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

▣ 나그네

행선지가 분명하고 그것이 종교적인 것이면, 여행은 순례가 된다. 자비엘은 시노무로에게 인생은 하나님께로 가는 순례라고 주장했다. 순례에는 은혜를 받으려는 소원이 따르고 그 은혜를 받으려면 희생이 요구된다. 괴로움이 따르지 않는 순례는 생각할 수 없다.
시편 119편에는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사오니"(19절) 또는 "나의 나그네 된 집 (54절)이라는 구절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율법에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작자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 불타 있으면서도 인생의 여로를 서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19절)라고 한다. 길손이라는 자각은 하나님의 율례의 준수와 연결되어 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05절).
그리고 "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54절)라고, 지상에서 인간을 인도하는 율례는 무거운 짐이 되기는커녕, 노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 노인과 샘물

사막에 조그만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우거진 야자수와 맑은 샘물이 있어서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좋은 쉼터가 되었습니다. 노인은 야자수 그늘 아래서 목마른 나그네들에게 시원한 샘물을 떠 주는 것으로 기쁨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그네들이 물을 마시고 나서 몇 푼의 동전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극구 사양을 했지만, 동전이 쌓여가면서 욕심이 생겨 나중에는 동전을 안 주는 사람들에게는 당당하게 동전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노인은 더 많은 물을 나오게 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샘터를 최신 시설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샘물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주변의 야자수가 샘물을 빨아들인다고 생각하고 야자수를 모두 베어버렸습니다. 얼마 후에 야자수 그늘도 없어져 버렸고 샘물은 말라 버렸습니다. 노인은 뜨거운 햇볕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 나그네의 삶

옛날 구약성경에 야곱이라는 사람이 아들 요셉을 찾아 애굽 나라로 갔을 때 애굽왕 바로가 "당신의 나이가 얼마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야곱의 대답이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라며 자기일생을 나그네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 이곳 저곳에는 인생을 나그네라고 표현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다윗왕이 하나님을 향하여 말씀하는 중에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대상29:15)라고 했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너희는 나그네요,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25:23)고했습니다. 그러면 인생이 나그네와 같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인생은 이 세상에서 얼마동안 나그네와 같이 살다가 떠나간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보면 인생은 고향인 하나님 나라를 떠나서 나그네로 이 세상을 얼마동안 살다가 이땅을 떠나서 고향인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에 있어서 이 세상은 영원한 정처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얼마동안 살다가 떠나가는 나그네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으로서 틀림없이 할 수 있는 예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예언입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은 언젠가는 죽게되어 있습니다. 영웅도 죽고, 열사도 죽고, 천재도 죽고, 농민도 죽습니다. 사람이면 반드시 죽어 이 세상을 떠나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인생이 나그네"라는 성경말씀의 뜻입니다.
둘째로, 인생이 잠깐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장한 세월에 초로인생이라는 한문이 있습니다. 흘러가는 세월은 길고 한가한데 사람의 생명은 풀에 맺힌 이슬같이 잠깐이라는 뜻입니다. 오늘의 홍안, 내일의 백골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오늘 어여쁜 얼굴이 내일이면 흰 뼈로 변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하여 성경은 "여러분의 생명이 대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약4:14)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안개와 같습니다. 쉬 지나가는 하루와 같습니다. 어린 시절은 아침과 같고, 젊은 시절은 낮과 같고, 늙은 시절은 저녁과 같이 잠깐 지나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따라서 한 옛 시인은 "한손에 막대들고 또 한손에 가시 쥐고, 늙는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드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고 했습니다.
셋째로, 인생이 나그네라는 뜻은 사람이 세상에서 떠나갈 때에 모든 것을 두고 가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요즘같이 호텔업이 발달된 시대에는 나그네 생활이 매우 편안합니다. 식당에는 음식이 있고, 방안에는 텔레비젼과 냉장고가 있고, 성경책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온갖 실내 오라기구와 실외 운동시설까지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호텔의 손님으로 있는 동안에는 이렇게 차려 놓은 좋은 환경시설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참으로 편리하고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그네의 특징은 일단 그 여관에서 떠나가는 날에는 그 좋은 것들을 전부 놓아두고 가야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호텔에 속한 것이지 자기의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잠시 사는 동안에는 좋은 호텔에 들어 사는 손님같이 모든 시설을 자유로 쓰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세상 나그네 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하늘나라로 떠나갈 때에는 그 좋은 것들을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딤전6:7)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나그네와 같다고 합니다. 간다는 뜻이요, 잠깐이라는 뜻이요, 내것이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생이 나그네인 줄 알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은 자기가 세상에서 나그네인줄 알고 사는 사람입니다. 옛 신앙의 용사들은 하나님을 믿고 사는 증거로 세상에서는 나그네라는 것을 알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산 것은 고향을 찾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그곳이 바로 하늘의 고향입니다.(히11:13-16)
그리고 우리가 나그네인 줄을 아는 이상에는 우리를 나그네로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찾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뜻이 계셔서 우리를 이 세상에 나그네로 보내셨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고 했습니다. 우리가 나그네로서 이 세상에 사는 자세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일체의 활동이 장차 하늘 나라에서 사는 삶을 결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은 나그네와 같습니다. 인간에게 이 땅은 영원한 곳이 아닙니다. 인간은 얼마동안 이 땅에 살다가 모든 것을 뒤에 두고 하늘 고향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줄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는 나그네로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을 찾아서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나그네의 삶을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손을 맞잡고 힘찬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면서 영원한 내일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16:8)
/한태완 목사(기쁨의 샘)

▣ 손님 대접하기를 힘써라

성경: 히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어느 비바람치던 날 밤, 필라델피아에 있는 여관에서 한 노부부는 머물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웬만한 여관이나 호텔은 다 사람들이 꽉 차 있군요. 우리가 들어갈 방이 있습니까?" 노인이 물었습니다. 안내인은 마침 이 도시에 세 개의 큰 총회가 모이는 관계로 빈방이라곤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알려 주며, "객실은 모두다 사람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밤 한 시에 이렇게 비 쏟아지는 거리로 당신들같이 나이 든 부부를 쫓아내고 싶지는 않군요. 누추한 제 방에서라도 쉬었다 가시면 어떨까요? 제 걱정은 안하셔도 좋습니다."
다음날 아침 노신사는 방 값을 지불하면서 그 안내인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호텔 주인이 될 만한 사람입니다.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그런 호텔 하나를 지어 드리겠습니다."
안내인은 웃었습니다. 그리고 2년 후, 뉴욕행 왕복 기차료와 비바람 치던 날 만났던 그 때 그 손님을 찾아와 달라는 초청장이 동봉된 편지를 받아들었던 때도 그는 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노신사는 거대한 도시 뉴욕에서 그 젊은 안내인을 데리고 5번가 34거리로 가서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새로운 빌딩을 가리켰습니다.
"저것이 바로 내가 자네에게 운영해 보라고 지어 주는 호텔일세." 벼락에 맞은 듯이 그 젊은 안내인은 땅에 꼿꼿이 서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은 바로 윌리암 왈도르후아스톨이었습니다. 사랑을 베푸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도 이러한 사랑가운데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거짓 없는 삶

미국에서 백화점을 운영하던 스튜어드 사장은 점원들에게 정직한 상거래를 강조했다. 어느 날 신상품을 들여온 후 직원들에게 솔직한 평가를 요구했다. 직원들은 상품을 세밀히 살펴보고는 색상이 눈을 끌긴 하지만 이렇다 할 특색이 없고 바느질도 허술해보인다고 말했다. 이때 한 중년 손님이 들어와 그 신상품을 관심 있게 살펴봤다. 눈치 빠른 점원은 잽싸게 손님에게 상품을 과장해서 칭찬했고 손님은 그 상품을 사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스튜어드가 신사에게 다가가더니 “손님,이 상품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닙니다.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좋은 상품이 들어왔을 때 꼭 알려드리겠습니다”고 말했다. 주위에 서 있던 직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손님도 의아해 했지만 곧 스튜어드의 양심적인 상술에 감탄했다. 스튜어드는 돈벌이보다 먼저 고객을 생각하는 ‘고객 제일주의’로 성공한 사업가다. 정직은 개인과 사회의 신용을 평가하는 기준이며 서로 믿고,돕게 하는 원동력이다.
/장학일 목사(예수마을교회)

▣ 소외 계층에 관심을

본문: 시편 146 장 9절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우리 나라는 일찍부터 수많은 외침을 당했고 강대국의 식민지로 지낸 적도 있습니다. 금세기 들어서도 일본의 압제로 30여 년을 송두리째 빼앗겼고 한국전쟁으로 큰 곤란을 겪었습니다. 전후 피폐한 상황에서 외국의 원조를 바탕으로 기적의 경제부흥을 일구어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은 누구보다도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나라에 와서 취업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보며 우리는 이전의 우리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경영자들 중에는 그저 싼 임금을 주면서 부려먹을 수 있는 약소국 국민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객을 보호하고 고아와 과부 등 소외계층을 철저히 돌보도록 명령하십니다. 그것은 율법으로 정해서 반드시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국인에게 사기를 당한 중국 동포들의 사무친 원한을 듣고 계십니다. 또한 이국 땅에 와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신체의 일부가 잘려 장애자가 되고도 치료도 변변히 못 받고 쓸쓸히 돌아가는 동남아 혹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한 맺힌 눈물 방울을 세고 계실 것입니다.

* 기도: 소외계층을 향한 우리의 관심이 깊어질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 나그네, 손님에 관한 성경 말씀

0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었음이니라 (출 22:21)
0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19:33, 34)
0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신10:19)
0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시146: 9)
0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마9:15)
0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25: 35- 40)
0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히11: 13)
0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13:2)
0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1:17)
0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0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요3서1:5)

▣ 나그네, 손님에 관한 금언

0 죽음은, 나그네가 그 한계를 넘어서면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이다.
0 손님을 후대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다.(이스라엘 격언)
0 손님과 생선은 사흘만 되면 냄새가 난다.(영국 속담)
0 손님은 갈수록 좋고 비는 올수록 좋다(한국 속담)
0 첫 날은 손님이지만, 둘째 날은 짐이요, 셋째 날은 해충이다.(라블레)
0 보따리 내어주며 쉬어 가란다.(한국 속담)
0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그가 가버려야 환영받는 수가 허다하다(세익스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