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화

낙심에 관한 예화 모음

공 상희 2011. 7. 29. 16:02

낙심에 관한 예화 모음

▣ 낙심하지 말라

성경: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영국의 유명한 50년 목회의 성공자인 레이몬드 데 오비스 목사가 목회를 시작하던 처음 한 노인에게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오라고 전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지방 전도자들 모두 거의 반세기동안 그에게 전도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도 효력을 내지 못하였습니다.
하루는 완고하기로 유명한 노인이 떨며 눈물을 흘리면서 교회에 나아와 제단 기슭에 꿇어 앉게 되었고 그는 믿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오비스 목사의 목회는 대성공이라고 다들 떠들썩하게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오비스 목사 자신도 어깨를 으쓱해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오비스 목사의 성공적인 목회로 그가 회개한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일로 인한 것입니다. 노인은 하루밤 자기가 믿게 동기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나의 여생을 주님께 바치게 하고, 나를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게 한 것은 내 늙은 어머니의 기도입니다. 그분은 벌써 세상 떠나 무덤에 계신지 4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40년 전 어머니의 기도가 늦게 결실한 것입니다. 기도에 낙심하지 아니하고 인내하면 반드시 결실을 보게 됩니다.
오늘도 인내의 기도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 낙심을 물리치는 무기

이 이야기는 사탄의 경매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사탄이 걱정, 두려움, 욕망, 슬픔 그리고 자만심과 같은 물건을 팔기 위해 소비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상품 진열대 한 쪽편에 "세일하지 않음" 이라는 낡아 빠진 꼬리표를 단 물건이 있었습니다. 사탄에게 왜 이물건은 세일하지 않느냐 고 물었습니다. 사탄은 "다른 물건들은 충분한 여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물건만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유용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물건 없이 나는 사람들의 마음 깊숙히 들어가 일 할수 없습니다. 바로 이 물건은 "낙심"이라는 것이죠"라고 대답했습니다. "낙심"을 물리칠 수 있는 무기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먼저 신뢰 하십시요. 하나님을 신뢰하고 우리의 낙심을 정직하게 아뢸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 주십니다. 또한 기도 하십시요. 낙심이나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을때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낙심 가운데서 건져 주실 것입니다. 다음은 당신을 실망 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환경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일 매일 우리의 감정을 새롭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연단은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심을 믿으십시오. (롬5:1-10). 고통없는 성장은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할 것입니다.

▣ 낙심을 물리치는 무기

시련 없이 인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 시련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더욱 단련하시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자 과정이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좋은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영국 속담처럼 시련 없이 성공한 사람 없고 시련 없이 훌륭한 성과를 얻을 수 없다. 훌륭한 작품은 그만큼 더 많은 시련을 거친 결정체이다. 그러므로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시련이란 진리로 통하는 으뜸가는 길이다”라고 하였으며, 세네카도 “거치른 땅 위에서 굳어진 발굽을 가진 짐승은 어떠한 길이든 걸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쇠붙이를 달구지 않고서는 도구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시련 없이 인간을 훌륭한 인격자로 만들 수는 없다. “폭풍은 참나무가 뿌리를 더욱 깊게 박도록 한다”는 G. 허버트의 말처럼, 실로 시련은 인간을 만드는 계기이며 보다 나은 상태로 변화시키기 위한 진통이다. 시련은 인간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보지 않은 자는 작은 시련에도 좌절하기 때문이다. 시련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인생을 성공시키는 원동력이며 매사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추진력이 된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롬 5:3,4)는 성경 말씀처럼 시련 극복의 의지는 인내를 기르고 소망을 키운다. 생활 속에서 오는 시련을 잘 견뎌내고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면 앞으로 더욱 큰 시련이 닥친다해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내일을 여는 사색 / 조만제 -
* 기도: 나의 죄로 인해 상심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나를 징계하시면서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을 약속하심 감사드립니다. 또한 실패와 시련을 통해 나를 더욱 강건케 하시며 정결케 하심을 믿고 바라오니 늘 나와 동행하여 주소서.
/생명의 삶

▣ 낙담케 하는 자

보아 전쟁(1899-1902) 중에 한 사람이 아주 특이한 죄명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죄명은 '낙담시키는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군인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적이 얼마나 강한가. 왜 방어하기 어려운가, 또 이 도시는 필경 점령될 거라며 여러 말을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그는 총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군인들은 이미 모두 무기력해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는 남을 낙심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대안 없이 비난만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격려는 약한 자에게 힘을 주고 머뭇거리는 자에게 희망을 줍니다. 오늘 당신은 사람들을 낙담케 하는 자가 될 수도 있고 희망을 주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살후3:13)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10:24)

▣ 낙심, 포기하지 말라

태국에서 코끼리를 어떻게 잡는 가를 소개합니다. 정글 속에서 으르렁대며 뛰어 나오는 코끼리는 미리 만들어 놓은 우리 같은 큰 집 속으로 들어가게 되며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막아
버리는 큰문이 덜커덕하고 내려져 닫힙니다. 이제 코끼리 사냥꾼들은 갇혀버린 코끼리 발에 다 쇠사슬 줄을 매게 됩니다. 이 쇠사슬 줄의 한 끝은 벵갈 보리수라는 튼튼하고 큰 나무에
메어집니다. 이렇게 한 뒤에 우리를 치우고는 코끼리가 자유롭게 움직이게 해 주면, 코끼리는 며칠 또는 몇 주일 동안 발에 묶인 쇠사슬을 끌으면서 그 나무를 뿌리 뽑으려고 힘을 씁
니다. 그러나 결국 코끼리는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뿌리 뽑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되어 발에 묶인 쇠사슬이 팽팽하게만 되면 곧 포기해 버리고 힘을 안 씁니다. 이제부터는 쇠사슬의 한쪽 끝에 그저 작은 기둥 같은 아무거나 묶어 놓아도 좌우간 팽팽하게만 만들 수 있는 정도의 것이면 아무 곳에나 코끼리를 묶어 놓을 수 있게 되었고 써커스의 천막까지라도 끌고 가서 그 놈을 팔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코끼리의 모습은, "나는 이런 정도의 사람밖에 안돼!"라고 하며 과거의 실패와 연약함에 포로가 되어 항상 포기를 쉽게 하는 사람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어떤 초등학교에서 벼룩을 가지고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우선 여러 마리의 벼룩을 바닥에 놓고 사각형의 유리덮개로 벼룩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덮었습니다. 그랬더니 벼룩들은 그곳을 빠져 나오려고 펄쩍 펄쩍 뛰면서 안간 힘을 썼습니다. 그리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유리 덮개를 치워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유리 덮개를 치워도 벼룩들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벼룩들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몇 번 시도해 보았다가 안되면 포기해 버리는 소망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적어도 크리스천들은 그런 패기 없는 사람들이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낙망하여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한태완 목사 설교중에서(http://je333.com)

▣ 낙심하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이 낙심이요, 가장 권고할 만한 것이 자신감이다. 옛날에 아주 현명한 어떤 사람이 말하길 시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확고한 신앙이 가장 중요한데 첫째도 자신감이요, 둘째도 자신감이요, 셋째도 자신감이라고 거듭 강조하였다. 우리는 정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어느 날 사탄이 자기 부하들을 전부 모아놓고 회의를 열었는데 그 날의 토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선한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었다. 한 악령이 벌떡 일어나 “저는 그에게 죄를 짓는 즐거움과 기쁨을 알려주고 죄를 지으면 많은 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해 주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또 하나의 악령이 일어나서 말했다. “나는 그에게 선행의 고통과 슬픔과 어려움을 말해주고 또한 아무런 소득과 재미도 없음을 잘 설명해 주겠습니다.” 마침내 또 다른 악령이 “그의 영혼을 낙심과 절망에 빠뜨리겠습니다” 라고 했다. 이 짤막한 응답을 듣고 나서 사탄은 기쁨에 넘쳐 소리쳤다. 옛날에 한 작가가 말하기를 “모든 절망은 악마로부터 온다”라고 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을 교훈 삼아 깊이 마음에 새겨두고 죄에서 멀리 떠나야 하는 것처럼 낙심에서도 완전히 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5)

▣ 그래도 낙심 말라

존 웨슬리와 함께 영국 감리교 부흥운동을 주도했던 사람 가운데 휫필드가 있다. 휫필드가 낙심하고 있을 때마다 그에게 영적 도움과 충고를 제공한 사람은 헌팅턴 여사였다. 휫필드가 절망적인 어조로 헌팅턴 여사에게 말했다. “저는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감사드리세요” “왜 그런 감사를 드려야 합니까?” “주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면 바로 당신을 위해 주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에 휫필드는 용기와 힘을 얻었다고 한다.
존 웨슬리에게 “만일 당신이 오늘 저녁에 죽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떻게 하다니요? 아침에는 여전히 설교하고 약속한 사람을 만나고 집에서 저녁을 가족과 함께 먹고 기도한 후 침상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천국에서 눈을 뜰 것입니다” 확신에 찬 대답이었다.
/장자옥 목사(간석제일성결교회)

▣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성경: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카포치아는 당대의 유명한 조각가였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동료들로부터는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한 삶을 보내던 어느 날 카포치아에게 불행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하루는 조각을 위한 대리석을 구하기 위해 채석장에 갔습니다. 그런데 인부가 부족하여 카포치아 자신이 직접 채석장에 나가 작업을 지휘하고 인부들과 함께 돌을 나르며 일을 하던 도중, 갑자기 커다란 돌이 카프치아의 오른손 위로 떨어진 것입니다. 겨우 돌을 들어내고 그를 꺼냈지만 이미 그의 오른손은 완전히 문드러져 버렸습니다. 유명한 의사들도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의 큰 사고였습니다. 조각가로서의 그의 인생은 끝이 난 것입니다. 카포치아 뿐 아니라 그를 아끼던 모든 사람의 실망은 여간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두문불출하며 자신의 현실을 원망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오른팔을 포기하고 왼팔로 조각하는 것을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두 번 절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꾸준히 땀을 흘리며 운명과 싸웠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작품활동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른팔로 하던 조각보다 더욱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시민들은 그 작품을 마을 한 가운데 세우고 그 작품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작품의 이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였습니다. 오늘도 전천후 신앙으로 승리하시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낙망하지 않는 기도

성경: 눅18:1
"항상 기도(祈禱)하고 낙망(落望)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譬喩)로 하여"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스펄젼 목사는 기도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기도는 아래서 줄을 당겨 하늘 위에 있는 큰 종을 하나님의 귀 밑에서 울리는 것과 같다" 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되는대로 힘들이지 않고 줄을 당기기 때문에 하늘에 종이 울리지 아니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단 한 번만 줄을 당겨 보고 맙니다. 그러나 응답을 받고야 마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그 줄을 단단히 잡고 전력을 다해 계속하여 당긴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기도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중국의 '모소'라는 대나무

중국에 '모소'라는 대나무는 산이나 밭에 심어놓아도 5년 동안은 땅 밖으로 전혀 솟아오르지 않고 땅속에서 뿌리만 사방으로 퍼져나갈 뿐이며 그러다가 5년이 지난 다음 해부터는
하루에 한 자씩 무성하게 자라는데 불과 6주만에 15미터 이상 키가 자란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기도 하다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여 낙심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 기도 제목이 이루어질 때까지 시간이 걸려도 다른 것을 또한 얻고 있는 것 입니다. 오늘도 감사함으로 기도하며 기쁨으로 사시는 하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

세계적인 부호인 록펠러도 한때 친구의 권유로 광산업을 시작했다가 사기를 당해 원금까지 모두 날려버리는 위기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빚독촉에 시달리던 그는 너무 괴로운 나머지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기업을 시작할 때부터 철저한 십일조 생활을 해온 록펠러는 황량한 폐광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없음을 믿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왔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위로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리라. 더 깊이 파라.”
록펠러는 이 말씀을 믿고 폐광을 더 깊이 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황금 대신 검은 물이 분수처럼 공중으로 솟구쳤습니다. 그 액체는 석유였습니다. 이 유전으로 그는 일약 거부가 되었습니다.

▣ 28년만의 기도응답

28년 전 신학교 졸업반 때 당시 서울의 한 대형 교회에 교육전도사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았다. 돌아가서 기도하고 기다리라 하기에 신학교 기도탑에서 금식하며 전화가 오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오늘까지 전화는 오지 않고 있다. 28년 된 금년 어느 날,어느 목사로부터 한 주간 부흥회를 인도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 교회에 가서 피차 큰 화해와 감사의 은혜를 받았다. 성도들도 많이 울고 나도 시간시간 눈물로 말씀을 전했다. 다른 성회보다 내가 감격한 것은 28년 전 교육전도사 부임을 거절받고 얼마나 실망이 컸었는지…. 나는 건강도 부족하고,경력도 부족하고,학력도 부족하고,외모도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월이란 시간을 섭리의 시간인 카이로스로 바꾸어 놓았다. 하나님의 때,정한 때에 나를 부흥사로 만들어 그 교회에 28년 만에 보내 28년 전 기도에 응답해주신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낙심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 생각을 초월하신다.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

▣ 낙심하지 말라

성경: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

석수장이가 대리석을 깰 때에는 한 번 내리치고 두 번 내리치고, 열 번, 스무 번, 쉰 번, 목표를 정하고 내리칩니다. 낙심하지 아니하고 칩니다. 아흔 번, 백 번, 백 한 번 칠 때에 목적한대로 대리석이 쪼개집니다. 백 번을 칠 때까지 깨지지 않았지만 그 치는 동안 힘이 저축되어 있다가 마지막 한번을 내리칠 때에 깨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표를 향해서 낙심치 아니하고 전진하면 어느 땐가는 그 목표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와 같은 끈기 속에서 선행을 함으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낙심하지 말라

성경: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미 세상을 떠난 스탠리 존스라는 선교사는 젊은 나이에 인도에서 선교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완악한 인도 사람들은 회개하지를 않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스탠리 존스는 너무 한심하기도 하고 사기도 떨어져서 사과나무 밑에 쓰러져 누워 있었습니다. 그 때 나무 사이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스탠리 존스, 피곤하지? 지쳤지?"
"예, 하나님, 지쳤습니다."
"왜 지쳤느냐?"
"제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저들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습니다. 저들에게는 열매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과나무를 보아라. 지금은 열매가 없는 것 같으나 뿌리가 땅에 묻혀 있고 잎이 태양을 향해 펼쳐 있고 채널을 나에게 향해 맞춰져 있을 땐 언젠가 좋은 열매가 맺힐 것이다. 낙심하지 말아라. 아름다운 열매가 맺힐 것이다."
여러분 혹 열매가 없더라도 낙심하지 맙시다. 하나님께로 향한 열려진 마음을 갖고 하나님께서 내 마음 가운데서 역사 하실 때 언젠가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채널을 여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 환난 날에 낙심치 말라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잠 24:10)

1930년대 미국에 경제공황이 밀어닥쳐 은행, 공장, 심지어는 학교 등이 문을 닫고 경영주들이 자살하는 등 일대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J.J. 라스코라고 하는 실업가는 증권에 투자했던 돈을 빼내 많은 실업자들을 동원하여 맨해튼에 거대한 빌딩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라스코는 미쳤어. 저 사람은 망할 거야”라고 했지만 그는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1929년에 시작해 1931년에 완공한 그 건물이 바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입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한창 미국이 경제 공황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을 때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사람은 사는 데 어려움 없고 모든 일이 잘되고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꼭 환난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난 가운데서 나 홀로 던져진 채로 쓰러져 몸부림치고 허우적대지만 그 어디에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절망의 짙은 안개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진가는 환난 날에 나타납니다. 이럴 때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크고 강한 권능의 손으로 보호해 주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 고기가 잡히지 않을 때

본문: 눅 5; 8∼11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눅 5:8)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이 게네사렛 호숫가로 몰려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를 가르치신 후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을 때 그 말에 따르자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많이 잡게 되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여,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베드로는 밤이 늦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애썼으나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실패한 그 밤이 결코 이득이 없는 밤이 아니었습니다. 실패한 가운데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성공이 실패보다 더 나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공하면 자만에 빠지고,실패한 사람들을 멸시하게 되고 또한 생명과 건강과 지혜와 기회와 가정을 주셔서 성공하도록 도와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가 변화 받고 얼마 되지 않아 유명한 부흥사가 되어서 열아홉 살 때 어느 교회에 부흥강사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초청한 교회에서는 사람이 많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교회를 빌려서 집회 준비를 했는데 참석한 사람이 7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큰 교회에 7명밖에 없었으니 얼마나 썰렁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펄전 목사는 온 정열을 다해 일생 동안 행한 설교 가운데 가장 훌륭한 설교라고 기록될 정도로 훌륭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음 집회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고 합니다.
저도 사회생활과 목회하면서 실패한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때가 바로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실패한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실패 가운데서 놀라운 주님의 섭리가 함께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라 이는 너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 기도: 주님, 세상 일이 잘되지 않을 때 실망하지 않고 주님만 믿고 의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중용 목사(탬파 연합감리교회)

▣ 장애는 친구다.

“손님, 토요일날 이렇게 혼자 앉아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면
영업에 지장이 많습니다. 나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개인적인 아픔과 함께 목회를 그만두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실의에 빠진 서른여덟 살 남자에게 카페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몰려오는 창피함을 뒤로한채 카페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오다가 이 남자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습니다.
‘그래, 내가 카페를 하는 거야.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카페 마담이 되는 거야!’
다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서른여덟의 나이에 카페를 해보겠다고 결심한 이 남자는, 현재 전국에 20개 지점이 있고 한국 토종 브랜드로서 외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민들레영토’의 지승룡 사장입니다.
/지승룡 저서「선배처럼 살아라」에서
* 기도: 너무나 연약한 저의 모습을 보며 낙심하고 좌절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온전케 하실 것을 믿고 다시 일어서게 하소서. 제 삶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나아가게 하소서.

▣ G선상의 아리아

큐티를 하다 문득 '파가니니'라고 하는 한 음악가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이 사람은 이태리가 낳은 천재적인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어느 날, 음악 애호가들이 모인 연주회장에서 연주회를 가졌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연주 도중에 줄이 하나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이 파가니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은 세 줄을 가지고 계속 연주를 해나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가니까 또 한 줄이 끊어집니다. 그리고 조금 가니까 또 한 줄이 끊어집니다. 이젠 줄이 하나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청중들이 대단히 미안해하고 당혹해 하면서 오늘 이 연주야 말로 파가니니에게 있어 최고의 불행한 연주회가 될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파가니니는 청중들을 바라보고 잠시 음악을 멈추더니 그 남은 한 줄을 가지고 완벽한 음악을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그 사건이 지금까지도 그 사람을 그토록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바이올린에는 4줄이 있다고 합니다. 가장 낮은 줄은 G선 입니다. 때론 G선만 가지고도 아주 훌륭한 음악을 연주해 낼 수가 있습니다. 내 인생의 어느 때에, 내가 그토록 의지했던 줄이 끊어져 나갈 때가 있을 것입니다. 물질의 줄, 명예의 줄, 가정의 줄, 사랑의 줄......
내가 가지고 있는, 내가 의지 할 수 있었던 모든 줄들이 끊어지고 가장 낮은 G선만 남았을지라도, 우리는 G선상의 아리아와 같은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래요. 우리 삶 속에서 G선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줄이 있는 한 우리의 삶도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 낙심하지 말라

성경: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동쪽하늘에 해가 떠오르기 직전 세상은 잠시 깜깜해집니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춥습니다. 그래서 새벽녘에 닭들이 그렇게 비명을 지르는 것 아닌가? 또한 가장 짜릿한 순간은 역전되는 순간입니다. 가장 통쾌한 모습은 반전되는 모습입니다. 마지막에 기적적으로 뒤집어지는 순간에는 모두들 말을 잃습니다. 또한 가장 다리가 아플 때는 언제인가 하면 대문 앞에까지 왔을 때입니다.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되는데, 대문 앞에 그냥 주저 앉으시렵니까? 포기해서는 않됩니다. 가장 극한 상황은 끝이 아니라 반전의 기회입니다. 삶이란 그런 것입니다. 아! 이제 마지막이구나! 하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새로운 일의 시작의 순간입니다. 오늘도 어떠한 상황이라도 절망하지 말고 믿음으로 인내하여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상실은 새로운 기회

1642년 영국 동부지역 울스소프에서 유복자로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 아이가 겨우 말을 배우려고 할 때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재혼했다. 아이는 자라면서 사과나무 아래 혼자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그후 아이는 천신만고 끝에 열망하던 대학에 들어가 학업을 마쳤다. 그의 꿈은 박사. 그가 박사학위 과정에 들어가려고 할 때 흑사병이 창궐,지역의 모든 대학이 문을 닫았다.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뭐람.’ 그는 낙담한 채 고향에 내려가 사과나무 아래 앉았다. 꿈을 잃어버린 절망의 자리였다. 그때 사과 한 개가 ‘툭’ 떨어졌다. 어쩌면 자기 처지와도 같았다. ‘왜 사과는 옆으로 안 떨어지고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걸까?’ 이 의문이 인류 과학사의 흐름을 바꿨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탄생시킨 의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아이작 뉴턴. 세기의 법칙은 낙담의 현장에서 탄생했다. 꿈을 잃었다고 절망할 일이 아니다. 상실은 새로운 기회다.
/김상길 국민일보 논설위원

▣ 우리의 약점은 곧 하나님의 부르심

1967년 이스라엘 총리로서 연립 내각을 이끌었던 여자 정치가가 있었다. 그녀는 중동 평화를 위해서 무진 애를 썼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고 국민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그녀의 이름은 골다 메이어.
사람들은 그녀가 죽은 후에야 12년 동안이나 백혈병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때때로 골다 메이어 총리는 자기의 약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제 얼굴이 못생긴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일반적인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았을 때 너무나 못났기에 열심히 기도했고 정말 최선을 다해 공부했습니다.
나의 이러한 연약함은 나에게 뿐 아니라 이 나라에도 무한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의 약점과 실망은 곧 하나님의 부르심 입니다."

▣ 헛되지 않은 10년

10년 동안 두 가지 고통에 시달린 사람이 있었다. 하나는 해도해도 실패만 거듭하는 ‘고무 바퀴에 대한 실험’이었으며 또 하나는 주위 사람들의 냉대와 비난에서 오는 자괴감이었다. 1830년께 당시 나무와 쇠로 된 모든 바퀴에는 안전장치가 없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다쳤다. 이런 모습을 보며 ‘어떻게 하면 바퀴에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을까?’하고 골똘하게 생각하던 그였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다행히 그의 신조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선한 결과가 온다”였다. 그는 이 신조를 갖고 나약해져가는 자신,실패만 거듭하는 연구와 투쟁했다. 그리고 마침내 1839년 ‘가황처리법’을 개발, 인류 최초로 타이어를 만들었다. 그의 이름은 찰스 굿이어.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명성이다. 인고의 세월을 견딘 그에게 창조주는 타이어를 선물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김상길 국민일보 논설위원

▣ 우리를 안으시는 하나님

매우 단련된 신앙인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헨리 무어하우스에게 닥쳤다. 그가 낙망해 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어린 딸을 통하여 확신을 주셨다. 어느 날 풀이 죽은 모습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들어오는 그를 응접실에서 놀고 있는 어린 딸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아빠가 들고 들어오는 꾸러미를 보자 휠체어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빠 그거 뭐예요?"
"엄마에게 줄 거란다. 엄마 어디 계시니?"
"2층에 계셔요. 아빠 그것 이리 주세요. 내가 들고 갈께요."
"아니 너는 제대로 걸을 수 없으면서... 어떻게 2층에 계시는 엄마에게 이것을 가져다준다고 그러니?"
그런데 그 아이가 말했다.
"나는 꾸러미를 들고, 아빠는 나를 안으면 되잖아요."
참으로 옳은 말이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리에 섬광처럼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하나님이 나를 이와 같이 안고 계시는데 왜 내가 그토록 좌절했던가."
헨리 무어하우스는 이 확신을 가지고 승리자가 되었다.

▣ 역전의 하나님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될 당시 기독교 인구는 430만 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1억 명이 넘는다. 백 투 예루살렘운동(이슬람권을 넘어 예루살렘까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운동)을 위해 순교적 각오를 가지고 자원하는 사람만도 1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어떤 선교학자는 앞으로 최고의 기독교 국가가 중국이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역전의 은총이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는 역전의 이야기다. 노예로 끌려갔던 요셉, 목동이었던 다윗, 기생의 아들이었던 사사 입다, 포로로 끌려갔던 다니엘, 거지 나사로,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모두 역전의 주인공이다. 지금 주님 때문에 핍박받고, 손해를 보았더라도 낙망하고 좌절하지 말자. 지금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있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아직 당신의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더 좋은 날은 아직 당신에게 오지 않았다. 역전의 은혜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은 역전의 명수이시다.
/김은호 목사(오륜교회)

▣ 봄에 눈이 와도 땅속의 새순은 솟아나고야 맙니다

윈스턴 처칠은 반항아적 기질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어릴 때 공부에서 흥미를 찾지 못했고 어떤 종류의 필기 시험도 통과하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났으며, 세 번의 시도 끝에 가까스로 샌드 허스트에 있는 왕립군사학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는 보어 전쟁에서 보어인들의 포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국경에서 약 48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적의 영토에서 대탈출을 감행하였고 전쟁 영웅으로 귀국했습니다. 그는 어릴 때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천천히 언어능력을 개발하여 폭넓은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의 전쟁 경험으로 소설을 써 부와 명성을 얻었고, 대중 강연을 통해 국내외에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그림 그리기를 통해 공무의 중압감을 덜어내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1899년 군대에서 퇴역했을 때도 포기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정치에 도전하여 보수당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는 60여년 동안 공직에 몸담으면서 내무, 재무, 통상, 국방 장관 등 국가의 중요한 장관직을 수행하였습니다. 세계대전 초창기에 해군장관이었던 그는 갈리폴리 작전의 실패로 실각해 20년 간 공직을 떠났으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 낙심을 극복하는 지혜

낙심을 극복할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중의 하나가 꿈이다. 성령 충만한 사람의 특징은 그가 꾸는 꿈에 있다. 성경은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씀한다. 꿈은 우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꿈은 우리의 소망,삶의 이유,존재의 근거가 된다. 인간은 꿈을 꾸고,꿈을 성취하며 살도록 만들어졌다. 그런데 꿈을 성취하는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적이 있다. 그것은 낙심이다. 낙심은 사단이 사용하는 무서운 도구다. 낙심은 용기와 희망과 자신감을 잃어버린 상태다. 기가 꺾인 상태다. 낙심을 낙망이란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낙망이란 소망이 떨어졌음을 뜻한다. 낙심 대신에 낙담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낙담이란 담력을 잃어버린 상태다. 자신감을 잃어버린 상태다. 낙심이 꿈을 성취하는 사람의 적이 되는 것은 포기하는 마음 때문이다. 낙심을 잘못 다루면 아주 위험하다. 우리는 낙심이라는 적을 이겨야 한다. 낙심을 정복해야 한다. 낙심을 물리쳐야 한다. 낙심을 이기는 길은 낙심의 원인을 분별해서 정복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3절에 보면 낙심의 원인을 피곤과 인간관계의 갈등으로 보고 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3) 우리는 피곤하면 낙심하게 된다. 그래서 피곤이 찾아오면 안식을 취해야 한다. 피곤과 함께 인간관계의 갈등은 우리를 낙심케 한다. 인간관계의 갈등을 해결하는 길은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참는 것이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위로를 받게 된다. 낙심을 이기는 길은 기도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고 말씀한다(눅 18:1). 낙심케 하는 사단의 공격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도구는 기도다. 기도하게 되면 힘을 얻어 낙심을 이기게 된다. 낙심은 꿈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낙심 때문에 낙심하지 않도록 하라. 낙심이 찾아오면 낙심을 정복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라. 기도하는 중에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능력을 힘입도록 하라. 무엇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도록 하라. 가장 강력한 에너지는 사랑의 에너지다.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게 된다. 사랑하면 낙심을 넉넉히 정복할 수 있다.
/강준민 (LA동양선교교회 목사)

▣ 그래도 사는 길은 있습니다

한 실력 있는 회사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다 54세에 IMF를 맞아 해고되었습니다. 그때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야 속이 후련하다. 내가 지금까지 오랫동안 회사에 매여 가족들과 좋은 시간도 못 가졌고 취미생활도 못했는데 이젠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도 많아지고 취미생활도 할 수 있어 잘 됐다.”
가족들은 정말 그런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그는 처음엔 여행도 가고, 가족과 함께 외식도 했습니다. 그러나 3개월쯤 후부터 완전히 말을 잃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3개월 내내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그때 쉽게 죽지 못한 이유는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죽을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그의 54회 생일에 가족들은 아빠에게 힘을 주자고 했습니다. 그날 네 식구가 조용한 찻집에 가서 아내가 먼저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 54회 생일에 우리가 특별 선물을 준비했어요.” 그리고 봉투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습니다. 그 종이에는 그 동안 남편에게 고마웠던 일, 남편이 자랑스러웠던 일 54개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다 읽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었어요.”
곧 이어 대학생 딸이 아빠에게 고마웠던 54가지 일을 다 읽고 말했습니다.“저는 저를 이만큼 키워주신 아빠가 너무 자랑스러워요.” 아빠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계속해서 고등학생 아들이 아빠에게 고마웠던 54가지 일을 다 읽고 말했습니다. “아빠는 우리 가정의 보석과 같은 분이예요.” 결국 아빠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 그는 일어섰습니다. 자존심이 무너지며 다 무너졌는데 자기에게는 아직 소중한 가족이 있음을 깨닫고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후 그는 다시 든든한 남편과 아빠의 모습을 되찾고 작은 행복의 조건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좌절의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사는 길은 있습니다. 나는 ‘내 생각을 초월한 어떤 분’의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그분은 나를 사려고 ‘십자가’란 엄청난 값을 치르신 분입니다. 그분은 필요하면 쓰고 필요 없으면 즉각 버리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끝까지 나를 돌봐주시고, 책임지시고, 섬겨주십니다. 그분은 여전히 “너는 내게 최고의 선물이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에게 나는 값진 진주입니다.
믿었던 것을 잃고 믿었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나 “이제 어떻게 사나? 누굴 믿고 사나?”하는 생각이 들 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면 됩니다. ‘일자리’를 잃으면 ‘제자리’를 찾으면 됩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분만 계시면 됩니다. “내가 없으면 안돼!”라고 하면 길이 없지만 “그분이 없으면 안돼!”라고 하면 길이 있습니다. 무엇이 없고 누가 없어서 못살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한규 목사

▣ 무릎꿇은 나무

캐나다 로키산에 무릎 꿇은 나무가 있다. 오랜 세월 폭풍우를 견뎌내며 자라온 나무다. 이 나무는 마치 무릎 꿇은 것처럼 순종하는 자세로 서 있다. 그러나 이 나무가 명품 바이올린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련을 이겨낸 나무로 만든 바이올린의 소리가 워낙 고와서 고가로 팔린다. 이것이 바로 로키산 나무가 주는 교훈이다.
어려움이 닥칠 때 좌절하고 낙심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인생이 끝난다. 그러나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은 명품 인생으로 다시 태어난다. 고난의 폭풍우를 견뎌온 사람들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낸다. 역경 앞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낙타는 짐을 실을 때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 낙타는 짐을 내릴 때도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과 기도의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리할 때 부활의 기쁨이 우리의 삶 속에서 활짝 꽃핀다.
/설동욱 목사(예정교회)

▣ 낙심에 관한 성경 말씀

0 잡으려는 소망은 헛것이라 그것을 보기만 하여도 낙담하지 않겠느냐(욥41:9)
0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34: 18)
0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5)
0 네가 만일 환난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잠24:10)
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 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6:9-10)
0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3:21)
0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살후3:13)
0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12:3)

▣ 낙심에 관한 금언

0 인생은 패배했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했을 때 끝나는 것이다.(닉슨)
0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훌륭하다.(노만 빈센트 필)
0 늦게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다 중단하는 것을 두려워하라(중국속담)
0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낙심해서는 안된다. 해야 할 일을 한 이상은 강하여 남자답게 하라 별과 같이 잠자지 말고 쉬는 일 없이 하라 그러면 이루리라.(케에즈디)
0 세상에서 낙심하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으나 믿음의 사전에는 그런 말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낙심되는 것들이 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알리는 신호이다.(죤 뉴턴)

 

낙심은 금물
영국에 불신자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한 부인이 남편의 회개를 위해서 일년 열두달 날마다 기도하기로 결심하였다. 날마다 12시가 되면, 그 여자는 혼자 자기 방으로 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 여자가 기도한지 12개월이 지나갔는데, 그가 굴복할 징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여자는 6개월을 더 기도하려고 결심하고 날마다 혼자 방에 들어가서 남편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였다. 6개월이 또 지나갔는데 아직도 아무런 징조가 보이지를 않고 응답도 없었다. 회의가 그 여자의 마음에 일어났다. 그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속삭이실 때까지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라고 그 여자는 말하였다.
바로 그날, 남편이 저녁 식사를 하려고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데, 저녁 식사를 하려고 내려오지를 않았다. 마침내 그 여자는 남편 방으로 갔더니, 그가 무릎을 꿇고 자기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셨다.
그는 기독교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자유로이 진행되었고, 그 사람 안에서 영광을 받으셨으며, 하나님은 그를 거대하게 사용하셨다. 그것이 바로 이 기독자 아내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 증거이다. 그 여자는 두드리고, 또 두드리고 응답이 올 때까지 두드렸다.

 

선행에 낙심치 말라
미국 <뉴저지주> 서멀빌교회에 죤 브레덴벅 목사가 다년간 설교를 하였으나 그 교역은 실패라고 스스로 느낀 채 용기를 상실한 중에 별세 하였다. 그 후 일주일이 채 못가서 2백명의 새로운 신자가 나왔는데 거의가 다 자백하기를 브레덴벅 목사의 교역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다.
서양의 어떤 목사가 자기 평생에 자기는 한 사람의 영혼도 구원하지 못했다고 자백한 후 세상을 떠났다. 장례날은 비가 내리고 음침하였다. 묘지에는 상여를 맨 사람, 무덤을 파는
사람, 주례하는 목사외 다른 한 사람의 조객 뿐이었다. 목사가 하관식을 마치고 돌아보니 조객 한 사람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래서 목사는 가까이 가서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말
하기를 `당신은 그의 친척이요` `아닙니다` `그러면 그 교회의 교인이요` `아닙니다. 나는 친척도 교인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이 내 영혼을 구원했습니다.` 고 하였다.

 


고통의 날에 낙심치 말라

본문 : 잠언 12장 1 절- 14 절

오늘 저녁 읽을 말씀 가운데서 1절 말씀을 보십시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 니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리라. 뜻이 통하는 다른 곳의 말씀을 같이 읽읍시다. 3장 11절-12절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 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5장 11절-14절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그 종말이 비참하게 된 사람이 후회 막심해서 울부짖을 것을 경고한 말씀입니다. 두렵건데 마지막에 이르 러 네 몸에 육체가 쇠패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 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모든 악에 거의 빠지게 되었었노라 하게 될 까 하노라. 9장 7절-8절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흠을 잡히리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있는 자를 책 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10장 17절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 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 13장 24절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 계하느니라. 15장 5절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 라. 15장 12절 거만한 자는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 니라. 19장 18절 네가 내 아들에게 소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고 죽일 마음은 두지 말라. 소망있는 아들을 징계해야 바로 되지, 소망없는 자식은 징계하면 오히려 빗나갑니다. 23장 13절-14절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 찌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여기 우리가 같이 읽는 잠언서 가운데 징계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징계라는 말은 히브 리어로 무사르(musar)인데 그 뜻은 과실을 범한 자에 대한 처리이지 형법은 아닙니다. 그저 쉽게 말하면 사랑하는 아이가 잘못된 길로 나갈 때 혹은 나갈까 봐서 부모가 훈계하고 때로는 책망하고 어떤 때는 채찍으로 매를 드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어떤 때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에서 고통을 당하는 분이나 그런 고통 속에서 지나온 분이 에, 이번에 하나님께 되 게 맞았습니다 하는 말씀을 들을 때 어딘지 모르게 어진 아들이 아버지한테 불려 들어가서 굉 장히 심한 꾸지람을 받고 얼굴이 벌개서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매맞은 자리를 툭툭 털면서 그 형제들에게 에, 아버지한테 혼났어! 내 다신 안 그럴테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곤 합니다. 믿음 있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징계란 성경이 말씀하는 것처럼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아픈 일입니다. 눈물나는 일입니다. 손해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고통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받느냐 하는데 따라서 징계가 축복이 될 수 있고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옛날 시인들 가운데도 어려움을 당할 때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도무지 인간의 이성으로는 고난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민합니다. 가령 시편 73편 같은데 보면 성도의 고민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악한 사람은 오히려 건강하고, 살이 찌고, 고난도 없고, 재 앙도 없고, 그들이 소원했던 것보다 오히려 더 얻고, 재물은 더 해 가고, 그래서 교만하고 세 상에 높은 사람 없이 살다가 죽을 때도 고통이 없는데 오히려 신앙을 따라 바르게 살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당하니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 의문을 도 저히 풀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73편 16절에 보면 내가 어찌하면 이를 알까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그러면서 21절 이하에 내 마 음이 산란하여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 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 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 이시라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 파하리이다. 이 시인은 고통 속에서 낙심할 뻔 하였으나 하나님의 성소에 가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 었습니다. 오히려 어려움이 극심한 속에서 주를 가까이 하면서 주님의 능력의 오른팔이 붙드심 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어린이들도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아버지를 신뢰하면 아버지가 매를 때리면 때릴수록 도망가 지 아니하고 아버지께로 가까이 가면서 아버지 품에 매달리면서 아버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께요 합니다. 그러면 아버지도 품에 안기는 아들을 더 이상 때릴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혹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 떠나지 말고,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주님 품에 꼭 안겨야 합니다. 그러기에 시편 32편 9절에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 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의에 의해서 하 나님께 가까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신령한 의미로 볼 때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 됩니다. 시 편 119편 67절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71 절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하였 습니다. 욥기 5장 17-20절을 보세요.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 즉 너희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매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습니다. 에가드(Egard)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사탄의 애무와 사랑보다 오히려 낫 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게 하시려고 징계하시고, 사탄은 우리를 죽게 하려고 애무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징계 그 자체가 우리에게 괴로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동 기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입니다. 여기에 대한 좋은 해석이 히브리서 12장 5절-13절에 있습니다. 같이 찾아서 교독하실까요? 5 절 :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 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절 :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7절 : 너 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 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절 :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9절 :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 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절 :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 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11절 :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 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12절 :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 고, 13절 :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트라프(Trapp)이란 분은 하나님의 징벌을 피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는지 의심할 만 하다 고 하였습니다. 징계의 동기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입니다. 우리에게 소원과 기 대가 있어서 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8장 5절 이하에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 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 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좀더 넓은 의미에서 생각하면 인간에게는 고통이 있습니다. 물론 누구나 고통을 원하 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어떤 사람 은 오해를 하는데요 예수를 믿으면 이 모든 고통이나 환난을 당하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 나 성경에 그렇게 말씀한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 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받으나 즉 우리 믿는 사람도 세상에서 환난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물론 불의한 사람들과 같이 자기가 잘못해서 오는 여러 가지 곤란에서 벗어 나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은 불신자들보다 이 고난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을 바로 사는 것인가 하는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이 내신 도덕의 법칙을 바로 배워서 그대로 살 때 많은 불필요한 고난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미 말씀드린대로 우리 믿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사 는 동안에는 모든 세상 사람들과 꼭같이 유전적으로, 사회적으로 질병이나 사고나 실패나 슬픔 의 고난을 같이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은 참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꼭 같은 고난을 받지마는 그 미치는 영향이나 그 결 과가 아주 다릅니다. 꼭 같은 용광로이지마는 나무가 들어가면 다 타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금광석이 들어가면 금이 아닌 부분이나 성분은 타 버리고 순금이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당 한 경험을 생각해 보세요.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 불쌍한 계집종의 병을 고쳐준 죄로 억울하게 관청에 잡혀가서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힘을 당하고, 착고에 채워 부자유한 가운데 그 날 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보통으로 생각하면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닙니까? 분한 일 아닙니까?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고,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정도가 아닙니까? 그 러나 바울과 실라는 그런 환경 가운데서 그런 마음을 조금도 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런 가운데서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그 결과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이 열리 고 착고가 풀리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부분을 주석하면서 바울과 실라가 높은 테너 음 으로 찬송을 불렀더니 하나님께서는 지진을 통해서 낮은 베이스 음으로 화답하였다고 하였습니 다. 하여간 이런 가운데서 자결하려던 간수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온 집안이 구원을 얻었고 따라서 빌립보 교회의 기초가 튼튼히 서게 된 것입니다. 같은 고통이지마는 바울과 실라에게 있어서는 놀라운 결과를 맺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바울은 오랫동안 로마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지 않았습니까? 예나 지금 이나 옥중 생활이란 평안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나이 많을 때에 옥중 생활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쓴 편지를 보면 그의 간증대로 내가 오 히려 이렇게 매임으로 말미암아 온 시위대와 가이사의 식구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생 각할 때에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 없다 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신앙의 자세입니까? 이런 가운데 쓴 편지인데도 오히려 자유롭게 평안히 사는 사람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한 것입니다. 가령 빌립보에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 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 리라 하였습니다. 이런 옥고 가운데서도 참된 신앙으로 사는 사도 바울에게는 이와같은 기쁨이 있었고, 이와 같은 불후의 글을 써서 오늘까지도 성경으로 우리가 읽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과 실라의 경험만이 아닙니다.참된 신앙을 가진 모든 성도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같은 고통 고난을 받지마는 신앙이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자 포자기하지 않습니다 원망하지 않습니다. 타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과 고난을 이용해 서 더 높이 비약합니다 더 큰 일을 합니다. 누구든지 주를 믿는 믿음 안에 사는 사람은 주님께서 모든 것을 이기는 능력을 주십니다. 빌 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에도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 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 히 이기느니라. 간신히가 아니라 거뜬히, 넉넉히 이깁니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의 영혼을 위로 향하게 합니다. 그래서 같은 슬픔, 병, 고난, 실패를 통 해서 새로운 비젼(Vision)을 얻고, 새로운 용기를 얻고, 새로운 능력을 얻어서 실패를 승리로 바꾸고 탄식을 찬성으로 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난에 대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시편 50편 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하였습니다. 시편 107편 4-7절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여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 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 며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 야고보서 1장 12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 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일년 동안 살아갈 때, 아니 여러분의 평생을 지내실 때 어려움을 당 하시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혹시 당한대도 낙심하거나 상심되고, 좌절되고, 실망하지 말고 오히려 담대하여 믿음으로 이 어려움을 잘 이겨 오히려 여러분의 삶에 큰 축복이 되시기 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낙심을 물리치는 무기
시련 없이 인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 시련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더욱 단련하시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자 과정이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좋은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영국 속담처럼 시련 없이 성공한 사람 없고 시련 없이 훌륭한 성과를 얻을 수 없다. 훌륭한 작품은 그만큼 더 많은 시련을 거친 결정체이다. 그러므로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시련이란 진리로 통하는 으뜸가는 길이다”라고 하였으며, 세네카도 “거치른 땅 위에서 굳어진 발굽을 가진 짐승은 어떠한 길이든 걸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쇠붙이를 달구지 않고서는 도구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시련 없이 인간을 훌륭한 인격자로 만들 수는 없다. “폭풍은 참나무가 뿌리를 더욱 깊게 박도록 한다”는 G. 허버트의 말처럼, 실로 시련은 인간을 만드는 계기이며 보다 나은 상태로 변화시키기 위한 진통이다. 시련은 인간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보지 않은 자는 작은 시련에도 좌절하기 때문이다. 시련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인생을 성공시키는 원동력이며 매사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추진력이 된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롬 5:3,4)는 성경 말씀처럼 시련 극복의 의지는 인내를 기르고 소망을 키운다. 생활 속에서 오는 시련을 잘 견뎌내고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면 앞으로 더욱 큰 시련이 닥친다해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낙심 말라
존 웨슬리와 함께 영국 감리교 부흥운동을 주도했던 사람 가운데 휫필드가 있다. 휫필드가 낙심하고 있을 때마다 그에게 영적 도움과 충고를 제공한 사람은 헌팅턴 여사였다.
휫필드가 절망적인 어조로 헌팅턴 여사에게 말했다.
“저는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감사드리세요”
“왜 그런 감사를 드려야 합니까?”
“주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면 바로 당신을 위해 주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에 휫필드는 용기와 힘을 얻었다고 한다.
존 웨슬리에게 “만일 당신이 오늘 저녁에 죽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떻게 하다니요? 아침에는 여전히 설교하고 약속한 사람을 만나고 집에서 저녁을 가족과 함께 먹고 기도한 후 침상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천국에서 눈을 뜰 것입니다” 확신에 찬 대답이었다.

낙심치 말라
 시 42:5; 벧전 2:25; 히 10:39
 
 존 브레덴벅 목사는 미국 뉴너지 주 서머빌 교회에서 다년간 목회 했으나 그 자신은 교역이 실패라고 느껴 용기를 잃고 있던중 별세하였다.
 그 후 1주일이 채 못되어서 200여 명의 새신자가 생겼는데 신자들의 고백은 한결같이 브레덴벅 목사의 사역에서 이루어진 것 이라고 대답하였다.
 또 서양의 어떤 목사는 일평생 사역에서 자기는 한 사람의 영혼도 구원하지 못하였음을 자백한 후에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날 묘지에는 주례하는 목사와 한 사람의 조객뿐이었다. 목사가 하관식을 마치고 조객에게 가서 돌아가신 분의 친척이냐고 물었으나 아니라고 하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목사님의 친척도 아니고 교인도 아닙니다. 다만 돌아가신 목사님이 제 영혼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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