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화

고생에 대한 예화 모음

공 상희 2011. 7. 22. 14:39

고생에 대한 예화 모음  

고생 보따리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마태복음 11:28절입니다.

   6.25동란 때 한국에 온 미군들이 한번은 군 추럭을 몰고 고갯길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그 대 마침 멀리 시장을 갔다오는 한국인들도 머리에 봇짐을이거나,지게에 짐을 지고 힘들게 고개를 넘고 있는지라 힘들게 보이는 그들을 미군이 추럭 짐칸에 태워 주었습니다.

   그런데 미군이 한참가다 뒤를 돌아보니 차 뒤 짐칸에 탄 한국인들이 모두다 여전히 짐을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있었습니다.
  이상히 여긴 미군은 차를 세우고"왜 짐을 내려놓지 않고 여전히 힘들게 머리에 이고있습니까?" 물었습니다.그러자 그들은 대답하길 "차에 태워주는 것만해도 감사한데어떻게 그럴수 있겠습니까?" 하더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 가운데 보면 예수를 믿으면서도 세상 걱정을 혼자다 끌어안고 사는 분들이 계십니다.그래서 얼굴에는 근심 걱정이 떠날 날이없습니다.이런 분들은 걱정과 염려가 습관화 되어 오히려 걱정이 없는 것을걱정하기도 합니다.

   어떤 신학자는 예수는 자유를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만 우리가 예수안에서 얻는 최대의 축복이 자유입니다.죄로 부터,체면으로 부터,출세와 성공에 대한 부담으로 부터,최후 심판과 멸망으로 부터 우리는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미국의 실업가는 한때 남의 빚 보증을 잘못 서주어 빚을 크게지고 사업도 넘어졌습니다.
  게다가 신경을 너무써서 몸에 병마져 들어 나중엔 빼빼 마르고 아무것도 못먹게 되어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의사들도 포기하여 죽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는데 이제 죽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불면증으로 잠을 못자고 마지막 2주간은 한 숨도 못 잣는데 그 순간 깊은 잠에 빠졌고 잠에서 깨어난 이 후부터 음식도 먹게 되고 점차 회복되어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 뒤 월급장이로 시작하여 다시 사업을 일으켰고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고생많다, 소야 ! 힘들지?           

  어느 시골길에 달구지를 끌고 가는 소 한마리가 있었습니다.그런데 소를 끌고가는 농부도 등에 한 짐 짊어졌네요.달구지에 짐을 더 얹을수 있는 공간이 충분한데도... `대지'의 작가 펄벅 여사가 기차를 타고가다 이 광경을 보고 그만 가슴이 찡해지며 크게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글에 `소가 힘들까봐 짐을 나누어지고 가는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한국인' 이라고 한 것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을 갈던 농부가 잠시 새참을 먹습니다.
그사이 아주머니는 소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고생많다, 소야! 힘들제?'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 입니다.  소도 한가족이어서 함께 일하고 함께 쉬는 그런 인정많은 사람들이 한국인 입니다.

 

수레끄는 소

 소가 짐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있었다.소는 너무 힘들었지만 주인에게 충성하기 위해 묵묵히 자갈밭을 가고 있었다.그런데 수레바 퀴들이 아우성 쳤다.짐이 너무 무겁다며  『덜커덩 덜커덩』 투정을 부렸다.그러자 소가 수레바퀴를 향해 말했다.『불평하지  마라.무거운 짐은 내가 끌고 있는데 왜 너희들이 소리를 지르느냐』  세상에는 고생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공연히 제가 땀흘리는 체하는  사람이 많다.사람을 피곤케 하는 것은 노동이아니라 불평이다.

 


어머니 이제야 고생이 끝났군요
    덴마크 오덴세에 한 젊은 제화공이 살고 있었다. 그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가난한 소작인이었던 아버지가 정신 이상이 되는 바람에 양화점에 취직하여 구두제조기슬을 배웠다. 얼마 후 제화공은 글을 전혀 읽을 줄  모르는 마음씨 착한 아가씨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 아가씨도  어릴적엔 구걸을 할 만큼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  제화공 부부는 서로를 봅시 사랑했다. 얼마후 아기가 태어났다. 부부는 아기 이름을 한스라고 지었다. 제화공은 하루일이 끝난 밤에는 반드시 아내와  한스가 나란히 누워있는 침대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 주었고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어머니는 틈만 나면 한스를 등에 업고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가난 속에서도 한스는 티 없이 잘 자랐다. 그런데 한스가 열한살 되던  해 전쟁에 나갔던 제화공이 큰 상처를 입고 집으로 돌아와 숨을 거두자 가장을 잃은 한스의  집은 더더욱 가난에 시달렸다.  한스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남의 집 빠래하는 일을  했다. 동이 트기 전 빨래감을 이고 났다가 저녁 늦게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겨울이 되자 일은 더욱 힘들어 졌다. 어머니는 두껍게 얼은 오덴세 강의 얼음을 돌로 깨고 빨래를 해야 했다. 손, 발, 얼굴 할 것 없이 빨갛게 동상이 들어 온몸이 퉁퉁 부었지만 어머니는 매일 강가로 나났다. 어느 날인가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몸을 녹이려고 술을 조금 마셨다가 동네에서 술먹는 여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어느새 한스는 어른으로  자라 코펜하겐 대학을 졸업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글을 쓰기 위해 유럽을 여행하던 중에 어머니의 부음을 전해 들었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한스! 한스!' 였다. 한스는 가슴을 뜯으며 울부짖었다.

  "하나님, 이 못난 놈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야 어머니의 고생이 끝났군요! 하지만 저는 어머니의 고생을 조금도 덜어드리지 못했습니다!"
  한스의 통곡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다음 해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은 [인어공주] 등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동화 작가로 이름을 날라기 시작했다.

 

20대 중반 男 잦은 환청으로 고생
* “20대 중반의 남성입니다.고등학교를 졸업한뒤 자주 환청이 들리고 저를 꾸짖는 소리가 들립니다.그 목소리를 피해서 도망을 다녀보지만 계속해서 저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 망상,환각,와해된 언어,전반적으로 와해된 행동 및 긴장된 행동 등을 한 가지 또는 그 이상을 가지고 있을 때 정신분열병이라 진단할 수 있다.망상 내용의 주제는 다양한데 가장 흔한 것이 피해망상이다.환각에서는 환청이 가장 흔한 특징이다.둘 또는 그 이상이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계속적으로 간섭하는 목소리를 듣거나 대화하는 증상을 나타낸다.와해된 언어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조금 빗나가거나 엉뚱해 효과적인 의사소통이 어렵다.
정신분열병의 유전적 원인은 일란성 쌍생아의 일치율이 평균 30%라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또 환경적 원인은 개인의 다양한 환경적 심리적 스트레스가 유전적 취약성과 상호작용해 정신분열이 발병된다는 연구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설리번이라는 심리학자는 정신분열병은 어린 시절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특히 부모·자식관계의 어려움에 있다고 믿었다.말러라는 학자는 어린 시절의 관계형성 시기에 가장 광범위한 혼돈을 겪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아는 어머니 사이에서의 포옹,신체접촉,애무 등을 통해서 자아경계가 생겨난다고 했다.정신분열병은 이러한 어머니와 영아상호관계에 있어 정상적인 자극이 결핍돼 타인과 자기를 구별해 내지 못하는 어려움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정신분열병은 개개인의 독특한 증상에 따라 치료방법이 선택돼야 한다. 약물치료와 입원만을 통해 성공적으로 치료될 수 있는 사람은 10%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90%는 약물치료와 더불어 개인심리치료, 집단치료, 가족치료 등에 의해서 성공적으로 치료될 수 있다.

 


17살 순교 여고생 미 전역 추모 물결
"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희생을 드리는 자는 멸할찌니라. " (출애굽기22:20)
미국 콜로라도주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 때 종교적 신념을 지키다 숨진 캐시 버널 양을 추모하는 물결이 미국 전역에 일고 있다.
버널 양은 지난 4월 20일 콜럼바인 고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중 이 학교 학생 두 명이 총기를 난사, 교우와 교사 13명을 살해할 때 희생됐다. 그녀는 범인 중 한 명이
"하나님을 믿느냐" 고 물은데 대해 "그렇다"고 대답한 직후 총격에 숨졌다.
지난달 31일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에서 열린 집회에는 10대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250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그녀가 최후로 남긴 말 '그래요 나는 하나님을 믿어요'를 연호 했다. 이같은 집회는 미국 전역에서 열리기로 돼 있다.
버널 양이 숨진 뒤 기독교 방송과 교회의 설교에서는 그녀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녀를 추모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생겼다.
그녀의 사이트엔 그녀의 생애와 함께 좋아했던 노래, 추모곡, 헌시 등이 올려져 있다. 플로리다 집회를 조직한 제임스 콕스 목사는
"요즘 젊은이들은 신앙의 대상을 갈구하고 있다"며
"버널 양의 희생이 던진 메시지가 이렇게 확산될 줄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
고 말했다.


세 가지 고생
미국의 설교가 비처(Beecher)는 말했습니다.
"사람은 한 가지 일을 하면서 세 가지 고생을 한다.
일 하기 전에 실패할까 걱정하느라 고생이요,
일 하면서 수고하느라 고생이요,
일 끝나고 결과를 걱정하느라 고생이다."

 

30년 동안을 고생했다
한 젊은 농부가 어떤 농부와 나란히 이웃하여 오랫동안 살았는데, 어느날 이웃 농부로부터 참기 어려운 모독을 당하였습니다. 아주 분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화가 난 농부는 복수할 양으로 존슨쵸라고 하는 잡초씨를 이웃 농부의 밭에 뿌렸습니다. 당연히 그 밭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얼마 후에 그 농부의 딸과 그 밭을 이 사람에게 결혼 선물로 주었습니다. 농부는 그 밭의 잡초를 없애느라고 무려 30년 동안을 고생했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 고생 많이 하셨어요
강원도 산골 목장에 살고 있던 소년은 백혈병이 재발하여 다시 서울의 큰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건강한 또래의 소년이라면 중학교에 입학해 한 껏 부풀어있을 때였지만 국민학교 1학년 때 백혈병을 앓기 시작하여 이제 껏 병원을 들락거리느라 소년은 학교도 제대로 다녀보지 못했다.

며칠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눈을 뜬 아침, 소년은 엄마에게 담당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졸랐다. 휠체어를 타고 의사선생님 방에 들어 서자 소년은 의사선생님과 단둘이 할 얘기가 있다며 한사코 엄마를 밖으로 밀어 냈다. 독한 약 때문에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얼굴도 노랗게 부어올랐 지만 소년의 눈만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소년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안 의사선생님은 목이 메어 아무 말도 못하고 보드라운 소년의 머리털을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밖에서 얘기를 엿듣고 있던 엄마는 숨죽여 울고 있었다.

같은 병동의 어린이 환자들이 하나 둘 숨을 거두어 빈자리가 늘어갈 때 에도 소년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쾌활함을 잃지 않았다. 그러던 소 년도 끝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의식 불명상태가 된 지 하루 이틀 .. 시간은 점점 흐르고 소년의 부모의 애절한 바램은 더욱 커져 갔다.

열흘째 되던 날 소년이 가느랗게 눈을 떳다. 곁에 있던 엄마와 아빠가 소년의 이름을 부르며 바싹 다가서자 소년은 입술을 힘겹게 움직이며 말 했다.
소년은 그렇게 7년 동안 백혈병과 힘겹게 싸워 온 삶을 마감했다. 아침 햇살이 소년의 싸늘하게 식어 가는 몸을 따뜻이 감싸안고 있었다.

지난 2월 16일, 김 민우 군은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겠다는 유언을 남기 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고생 보따리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마태복음 11:28절입니다.

   6.25동란 때 한국에 온 미군들이 한번은 군 추럭을 몰고 고갯길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그 대 마침 멀리 시장을 갔다오는 한국인들도 머리에 봇짐을이거나,지게에 짐을 지고 힘들게 고개를 넘고 있는지라 힘들게 보이는 그들을 미군이 추럭 짐칸에 태워 주었습니다.

   그런데 미군이 한참가다 뒤를 돌아보니 차 뒤 짐칸에 탄 한국인들이 모두다 여전히 짐을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있었습니다.
  이상히 여긴 미군은 차를 세우고"왜 짐을 내려놓지 않고 여전히 힘들게 머리에 이고있습니까?" 물었습니다.그러자 그들은 대답하길 "차에 태워주는 것만해도 감사한데어떻게 그럴수 있겠습니까?" 하더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 가운데 보면 예수를 믿으면서도 세상 걱정을 혼자다 끌어안고 사는 분들이 계십니다.그래서 얼굴에는 근심 걱정이 떠날 날이없습니다.이런 분들은 걱정과 염려가 습관화 되어 오히려 걱정이 없는 것을걱정하기도 합니다.

   어떤 신학자는 예수는 자유를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만 우리가 예수안에서 얻는 최대의 축복이 자유입니다.죄로 부터,체면으로 부터,출세와 성공에 대한 부담으로 부터,최후 심판과 멸망으로 부터 우리는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미국의 실업가는 한때 남의 빚 보증을 잘못 서주어 빚을 크게지고 사업도 넘어졌습니다.
  게다가 신경을 너무써서 몸에 병마져 들어 나중엔 빼빼 마르고 아무것도 못먹게 되어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의사들도 포기하여 죽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는데 이제 죽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불면증으로 잠을 못자고 마지막 2주간은 한 숨도 못 잣는데 그 순간 깊은 잠에 빠졌고 잠에서 깨어난 이 후부터 음식도 먹게 되고 점차 회복되어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 뒤 월급장이로 시작하여 다시 사업을 일으켰고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고생많다, 소야 ! 힘들지?           
  어느 시골길에 달구지를 끌고 가는 소 한마리가 있었습니다.그런데 소를 끌고가는 농부도 등에 한 짐 짊어졌네요.달구지에 짐을 더 얹을수 있는 공간이 충분한데도...  
 `대지'의 작가 펄벅 여사가 기차를 타고가다 이 광경을 보고 그만 가슴이 찡해지며 크게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글에 `소가 힘들까봐 짐을 나누어지고 가는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한국인' 이라고 한 것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을 갈던 농부가 잠시 새참을 먹습니다.
그사이 아주머니는 소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고생많다, 소야! 힘들제?'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 입니다.  소도 한가족이어서 함께 일하고 함께 쉬는 그런 인정많은 사람들이 한국인 입니다.


수레끄는 소
  
 소가 짐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있었다.소는 너무 힘들었지만 주인에게 충성하기 위해 묵묵히 자갈밭을 가고 있었다.그런데 수레바 퀴들이 아우성쳤다.짐이 너무 무겁다며  『덜커덩 덜커덩』 투정을 부렸다.그러자 소가 수레바퀴를 향해 말했다.『불평하지  마라.무거운 짐은 내가 끌고 있는데 왜 너희들이 소리를 지르느냐』  세상에는 고생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공연히 제가 땀흘리는 체하는  사람이 많다.사람을 피곤케 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불평이다.


어머니 이제야 고생이 끝났군요
  덴마크 오덴세에 한 젊은 제화공이 살고 있었다. 그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가난한 소작인이었던 아버지가 정신 이상이 되는 바람에 양화점에 취직하여 구두제조기슬을 배웠다. 얼마 후 제화공은 글을 전혀 읽을 줄  모르는 마음씨 착한 아가씨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 아가씨도  어릴적엔 구걸을 할 만큼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  제화공 부부는 서로를 봅시 사랑했다. 얼마후 아기가 태어났다. 부부는 아기 이름을 한스라고 지었다. 제화공은 하루일이 끝난 밤에는 반드시 아내와  한스가 나란히 누워있는 침대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 주었고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어머니는 틈만 나면 한스를 등에 업고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가난 속에서도 한스는 티 없이 잘 자랐다. 그런데 한스가 열한살 되던  해 전쟁에 나갔던 제화공이 큰 상처를 입고 집으로 돌아와 숨을 거두자 가장을 잃은 한스의  집은 더더욱 가난에 시달렸다.  한스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남의 집 빠래하는 일을  했다. 동이 트기 전 빨래감을 이고 났다가 저녁 늦게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겨울이 되자 일은 더욱 힘들어 졌다. 어머니는 두껍게 얼은 오덴세 강의 얼음을 돌로 깨고 빨래를 해야 했다. 손, 발, 얼굴 할 것 없이 빨갛게 동상이 들어 온몸이 퉁퉁 부었지만 어머니는 매일 강가로 나났다. 어느 날인가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몸을 녹이려고 술을 조금 마셨다가 동네에서 술먹는 여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어느새 한스는 어른으로  자라 코펜하겐 대학을 졸업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글을 쓰기 위해 유럽을 여행하던 중에 어머니의 부음을 전해 들었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한스! 한스!' 였다. 한스는 가슴을 뜯으며 울부짖었다.

  "하나님, 이 못난 놈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야 어머니의 고생이 끝났군요! 하지만 저는 어머니의 고생을 조금도 덜어드리지 못했습니다!"
  한스의 통곡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다음 해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은 [인어공주] 등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동화 작가로 이름을 날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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