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혼에 대한 예화 모음
재클린의 혼전 계약
1968년 10월, 저 유명한 재클린 케네디와 그리스의 억만장자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가 결혼할 때 그들은 "혼전계약"을 했다. 그 내용은 "부부의 침실은 각기 독립하고, 한쪽의 허가없이는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다. 1년에 3개월은 동서(同棲) 생활을 하되 9개월은 제각기 따로 생할할 수 있다.
동거동락을 전제로 한 남녀간의 만남이 결혼생활이라면 이 얼마나 놀라운 계약인가? 또 이런 약속을 했다. "남편이 이혼을 요구할 경우 1년에 10만달러로 처서 결혼기간에 상당한 위자료를 지불하고 만 5년 이상일 경우 종신 연금 1백만 달러를 준다.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을 경우에도 일시불로 2천만 달러와 그 이후 10년간 18만 달러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이 혼전계약서에는 의상비, 미용비, 용돈 등이 상세되어 서약되어 있었다.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어서 결혼하는게 아니라 "그대는 돈 중의 돈"이러서 결혼하는 세태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실례이다.
재 판
한 남편이 아내를 상대로
이혼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대학을 나왔고 자유 분방한 그녀는
결혼 후 10년 간 직장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녀는 시부모의 생신이나 명절에
시댁에 가기를 꺼려 했으며,
집안 일을 거들어주고 식사를 차려주는
시어머니에게 고마워하지 않았답니다.
청소나 빨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으면
오히려 큰소리로 불평을 했답니다.
재판부는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노부부가 방 한 칸 전세금을 주고
셋째딸 집에서 살아왔습니다.
아파트를 처분한 돈도 딸부부에게 맡겼습니다.
몇 달 후 큰아들 집에 가서 살게 되어
아파트 판 돈과 전세금을 달라고 했으나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노부부는 법원에 소송을 냈습니다.
그러자 딸네는 오히려
37개월 동안의 부양비를 내라며
반소청구를 맞섰습니다.
양측 변호사와 재판부가 나서서
화해를 유도했습니다.
그러나 양측의 감정의 골은
점점 더 깊어갔고,
이를 보다 못한 딸부부의
담당 변호사는 사임해버렸습니다.
재판부는,
부모 부양은 자식된 도리이자 의무라며
부모의 돈을 모두 돌려주라고
딸부부를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곧 추석 명절이 돌아옵니다.
우리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전쟁·경제불황기 성과 죽음에의 욕구
[한겨레신문] 98.1.3
전쟁이 나거나 경제공황 등으로 사회불안이 심해지면 성과 사랑에 관련된 인간의 심리에도 몇가지 변화가 올 수 있다.
얼핏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한가롭게 무슨 사랑타령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정신적 · 육체적 고통이 심할수록 폭력적이거나 난잡한 성생활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 나나 동티모르처럼 약탈과 살상 뒤에는 으레 비인간적인 강간사건 이 빈발한다. 성본능, 즉 에로스와 가장 비극적으로 연결되어 짝을 이루고 있는 인간의 본능은 타나토스라는 죽음에 대한 욕구란 지적을 절감하게 되는 극한 상황이다.
고달픈 피난민 생활이 시작되면 신기하게도 대부분 여성들의 생리가 멈춘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서게 되었으니 월경이나 임신 같은 일로 고생하지 말고 생명을 보전할 수 있게 몸을 가벼이 해 주자는 자연의 조화일까. 스트레스가 심하면 프로게스테론, 에스 트로겐 등 호르몬 분비가 급격하게 감소하여 자연피임이 된다. 따라서 성관계를 가진다 해도 임신이 될 확률이 낮다. 종전이 된 후 여성들의 생리가 다시 시작하니 이때가 베이비 붐 시기이다.
이제 내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실업자가 늘어나고 공황이 닥칠 것이 뻔하니 많은 남자들이 절망감과 분노로 술에 취해 거리를 배회할 터이다. 전쟁터인 베트남으로, 열사의 나라 중동으로, 독일의 탄광으로 혈혈단신 떠나 알뜰살뜰 모아 금의환향하였던 70년대의 성실한 개척정신은 벌써 잊은지 오래이니, 좁은 땅덩이에서 넘쳐나는 실업자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불만을 해소할지 가슴이 답답 하다.
사소한 일에도 시비가 붙어 패싸움이 벌어지고 정부나 기업에 대한 반감으로 시설을 부수는 등 난동이 잦을지 모른다. 동시에 약자인 여성이나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강간·납치사건도 잦을 듯싶다. 성행위를 통해서 일시적으로나마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과 패배감, 사회에 대한 불만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자신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절망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성에 탐닉하는 사람들도 많을 터이니 성관련 산업도 기형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검경쪽에서 홍등가를 단속하면 밀집된 사창가는 줄겠지만 거리를 떠돌며 몸을 파는 미국식 후커나 통신을 통한 일본식 매춘도 급증할지 모른다.
출판문화계도 돈 안되는 진지한 책보다는 일시적인 마약의 효력을 보이는 포르노그라피들과 성 관련 서적, 에로물만 양산해낼지 모른다. 벌써부터 서점가에는 예전 같으면 감옥에 끌려가고도 남았을 노골적인 서적들이 등장하고 있다 한다.
이런 식으로 퇴폐적인 성문화가 커지면 국민들의 정서가 비관적인 패배주의로 흘러 탐욕스런 외국경제와의 싸움에서 전의마저 상실해버릴까 걱정도 된다. 밀교의 영향으로 현실을 외면한 채 무기력하게 몰락했던 티베트, 이교도식 성 숭배의 영향을 받아 타락의 길을 걷다 결국 나라가 분열된 솔로몬 이후의 이스라엘 등 힘없는 소국들의 운명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전주 소년.소녀가장 절반이 이혼탓
(전주=서형식 기자) 전주시내에 거주하는 소년, 소녀가장 중 절반이상이 부모들의 이혼으로 인한 가정파탄 때문에 가사를 떠맡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주시가 관내 80가구의 소년, 소녀 가장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54%인 43가구가 부모의 이혼으로 자녀들을 돌보지 않기 때문으로 조사됐다.
또 34%인 27가구는 가정불화 등으로 부모중 어느 한쪽이 가출을 해 행방불명이 됐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결국 소년,소녀 가장의 90%는 부모들이 자녀들을 버렸기 때 문이고 교통사고 등 불의의 사고로 인한 소년, 소녀 가장은 10%인 8가구에 불과했다.
이같은 원인은 갈수록 사회에 이기주의가 만연되면서 부모들이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 보다는 자신들의 삶을 우선적으로 생각해 가정윤리가 파괴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소년,소녀가장중 54명이 자신들을 버린 부모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이들의 탈선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
Ш 중앙일보: 96년5월25일
절대적 사랑
최근 테헤란의 외신 보도.20대에 서로 사랑하던 연인이 있었다.그러나 처녀의 아버지가 반대,이들은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서로 헤어져야 했다.그로부터 60년 후인 1997년 어느날 이들은 80대의 고령이 되어 한 요양소에서「운명적인 재회」를 했다.이들 모두 독신.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 때문에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내왔던 것.뒤늦게 이들은 결혼했다.신랑의 나이 85세.이들의 순애보가 우리 가슴을 울리는 것은 우리가 너무 이기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성개방 풍조
섹스어필한 가수 클론의 <도시탈출>이란 노래가 잘 어울리는 계절이다. 싱싱한 혈기를 어쩔줄 모르는 젊은이들이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렇게 들뜬 분위기 속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것까지는 좋은데 원치않는 임신을 한다든가 성병에 감염되는 경우가 많아 병원 문턱이 바빠지는 게 문제다.
매독이나 임질만 해도 페니실린 주사를 맞으면 치료가 잘 되는 편이지만, 잠복기가 있어서 몇년 후 합병증이 나타나거나 보균자로 지내다가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키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헤르페스나 에이즈는 아직까지 별다른 치료약도 없는 형편이다. 얼마전에는 키스만으로도 에이즈가 감염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와 키스 애호가들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벌써 상반기에 에이즈 발병율이 83%나 늘었다니 걱정이다.
혹자는 성개방 풍토에 따른 성병의 유행이 한 문명이 쇠퇴하는 징조라며 모든 것을 타락시키는 자본주의가 그 원흉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성병에 대한 기록은 자본주의 시대 훨씬 이전인 그리이스 로마 시대부터 존재했다. 신에게 저주받은 나병이라고 진단받은 고대의 환자들 중에는 매독의 합병증을 앓았던 이들이 실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성병과 관련된 기록이 꽤 많다. 고려 충숙왕 원년(1339) 왕의 숨겨놓은 애인 황씨가 임병(淋病)이 있어 치료했다는 언급이 있다. <동의보감>보다 훨씬 오래 전에 편찬된 <향약집성방>의 `여음문'(女陰門)이라는 장에는 세 개의 벌레 혹은 아홉 개의 벌레가 성기의 조화와 혈기의 기능을 망가트린 탓에 병이 생긴것이라는 구절이 나오며, `제림문'(諸淋門) 중에는 삼화자방(三化子方) 등의 치료법까지 등장한다.
고려시대는 인도·아라비아 의학, 원나라 의학, 당송 의학 등을 통합한 의료체계를 갖추게된 시기인데 잦은 외침으로 수입된 성병들에 대한 치료에 꽤나 골머리를 썩혔던 모양이다. 그래선지 근대에 이르러서야 성병을 옮기는 원인이 박테리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서양에 비해 병에 대한 서술이나 대중요법이 훨씬 일찍 더 치밀하게 기술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도 황진이 같은 기생들이 현대의학적 의미의 성병을 앓았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하는 구절이 꽤 많이 보인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거치며 외래종 성병들이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기본적으로,기독교 문명은 성생활을 죄의 근원으로 간주하여 성적 타락을 경계하였고, 도교나 밀교의 영향 아래 있는 동양인들은 섭생을 통한 무병장수 내지는 해탈의 한 방법으로 성을 보고 자신들의 욕망을 조절하였다. 서양의 `종교적 극기심'과 동양의 자연스런 `자기 수양법' 양쪽을 다 수용할 기회를 가지고 있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뜨거운 성욕을 다스릴지 궁금해진다.
♥ 접 촉 ♥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서로를 어루만지는 시간을 갖자 서로에게 자신을 알리는 그 시간동안 ㅇ하루는 당신을을 기다렸다가 시 작할 것이며 모든 사소한 일들이 당신들앞에서 침묵할 것이다.
잠에서 깨자마자 아직은 잠이 덜 깨서 달콤한 졸음이 남아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새롭게 당신의 마음 속에 새겨라 그렇게 함으로써 매일매일 휘몰아치는 회오리 바람보다 더 위대한 무엇이 당신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함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어루만짐으로써 서로를 재충전한다.-
좋은 말에 채찍이 있고, 현자에게는 충고가 있다.
곱고 명석한 여자도 남자가 없으면 제 역할을 다할 수 없다.
왕에게는 왕관, 개미한테는 사탕, 여치에게는 오이처럼 세상에는 서로 짝을 이루는 것이 있다. 이 격언은 어울리는 짝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나 속담이나 격언에 대한 설명이란 것이 그다지 좋은 짝맞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속담이나 격언은 일종의 암시이다.그러므로 너무 장황한 풀이는 '지금부터 한가지만 힌트로 주겠다'고 하고서는 한 시간씩이나 연설하는 것과 다를게 없다.
유태인 사회에서는 남녀가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반드시 결혼해야만 비로소 한 몫을 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특히 여성을 놓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이고 비슷한 것 같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다음 속담으로이 질문의 답을 대신하기로 하자.
'여자가 남자보다 젊었을 때 결혼해야 하는 것은 여자가 잘못하면 두드러지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좋은 배필-출세위해 자녀 교육시킨다"
딸을 교육시키는 주된 목적의 하나는 좋은 배필을 찾아주는데 있으며, 아들의 경우는 출세시키는 데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또 대다수의 부모는 자녀가 갖춰야할 덕목으로 책임감을 꼽았다.
이같은 사실은 고려대 대학원 김혜영씨(33.사회학)가 우리나라 가족문화의 특성파악을 위해 지난해 8∼9월 수도권 지역 기혼 성인남녀 6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11일 밝혀졌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자녀교육의 목적으로 딸의 경우는 응답자의 50.3%가 `자아실현', 39.5%가 `좋은 배우자와의 결혼', 9.1%가 `출세'를 꼽았고 아들의 경우 60.7%가 `자아실현', 35.6%가 `출세', 2.4%가 `좋은 배우자와의 결혼'을 들어 상당수 부모들이 딸과 아들의 교육목적을 다르게생각하고 있었다.
자녀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복수응답)으로 책임감을 지적한 사람이 48.4%로 가장 많았고 예절(41.8%), 인내심(31.8%), 자주성(30.8%),사교성(19.0%), 지도력(12.6%), 검소함(7.8%), 협동성(5.5%) 등의 순이었다.
한편 부부간의 하루평균 대화시간은 30분∼2시간이 62.5%로 주류였고 30분미만과 `전혀 안한다'는 응답이 각각 25.2%와 1.8%를 차지, 부부간의 대화가 대체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끼리의 평일 여가시간 활용법으로는 TV.비디오 시청을 지적한응답이 과반수인 50.7%였고 `각자 일한다' 17.5%, `대화를 나눈다' 12.1%,`산책한다' 11.5%, `운동한다' 4.3%, `잠잔다' 3.0% 등이었다.
애를 낳는 이유로는 `원만한 가족을 이루기 위해'(36.4%), `키우는기쁨을 얻기위해'(24.6%), `대를 잇기 위해'(13.1%), `닮은 아이를 키우려고'(11.0%), `자신이 못한 것을 이루게하기 위해'(7.2%) 등의 순으로많은 응답이 나왔다.
아들을 반드시 낳아야 한다는 견해와 관련, 반대(33.1%)가 찬성(31.6%)보다 많았고 자식을 위해 부모가 어떠한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견해에도 반대(40.8%)가 찬성(36.6%)보다 많아 변하는 세태를 반영했다.
한편 주택매매.고가품 구입.이사문제의 경우는 남편(50.0%)이, 생활비.휴가.자녀교육 문제는 아내(63.2%)가, 시댁.친정에 관한 일은 부부(58.4%)가 함께 주로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목숨을 건져 낸 어머님께 원망:
1975년 12월 18일, 저는 율곡로 육교 아래서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마비와 식물인간이 되어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여 3개월만에 의식을 되찾았읍니다. 제가 눈을 떳을 땐 옆에는 늙으신 어머님과 아내 김필순집사가 저를 지켜보고 있었고, "이 병원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산소호흡기를 꼿았던 사람이었다"고 수간호원이 말해 주었다.
지난 밤, 일기장에 "삶이란 희락보다는 고락이 많은 것이다
이럴바엔 차라리..."라고 적은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저는 지난 날의 삶 속에서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했던 돈과 명성, 자존심에 대한 상실과 주위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치 못하는 데 대한 죄책감, 그리고 마음 속에 싹튼 심리적 갈등과 허탈감, 공허감을 메꾸지 못해
우울증에 빠져 급기야는 정신적인 혼란이 와서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어 무의식 중에 차에 뛰어든게 아닌가 하는 기억이 되살아 났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계속되는 진통과 고통에 제 마음은 다시 포악해져서 이 목숨을 건져낸 어머님과 아내에게 "왜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았냐?"며 눈을 부릎뜨고 원망과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마른 부지깽이 마냥 뻣뻣한 산송장과 같이 되어 미움과 증오에 찬 입술로 악독을 뿜어대는 그 처참한 모습은 마치 지옥문을 찾아가는 죽음의 사자 그대로였습니다.
기독교 방송을 듣고 새 소망 찾아:
...헌신적으로 간호를 하던 아내가 채널을 맞춰 놓은 기독교 방송에서 어떤 목사님의 설교가 들려왔습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혹은 어떤 일을 해왔는지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죄 많은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당신의 해답이며, 그분 만이 당신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혼란을 바로 잡으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는데 필요한 자격은 여러분이 죄인이며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뿐입니다." 이 방송이 나오는 동안 나는 지금까지 기독교를 핍박했던 모든 합리적 이유를 열심히 꺼내 보았으며 어떤 큰 힘이 이것을 하나하나 흐물흐물 녹여 보리는듯 평안함이 나의 마음에 찾아왔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회개의 순간 치유의 은총이:
"미움의 찌꺼기와 뿌리조차도 모두 제거해 버리고 용서하라"는 세미한 음성을 들었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서약한 순간, 말못할 기쁨으로 충만해지면서 제 인생에 드리웠던 그늘이 사라지며 모든 한과 원한등이 주님의 피땀에 씻기어 깨끗히 잊혀져 치유되는 희열을
맞보았습니다. 그 후 죽은 자를 방불케 했던 마비되었던 제 몸은 서서히 풀려왔고 비록 흔들리는 자세지만 가까스로 걸울 수 있었으며 입안에서 맴도는 소리일망정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떨리는 몸으로 일하면서 전도:
5년여를 아내가 야쿠르트를 배달하며 벌어온 수입으로 근근히 가게를 꾸려 나갔습니다. 그러나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창3:19)라고 하신 말씀에 가책이 되어 아직은 불편한 몸이지만 음침한 골방에서 뛰쳐나와 일터로 나갔습니다. 1982년부터 3년간은
신문 배달을 했으며 지금은 4년째 화장지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 7시까지 온 서울 시내를 흔들리고 떨리는 몸과 다리로 걸어서 2-3 층 상가 계단을 오르내리려면 숨이 차고 힘들지만 저는 항상 기쁨에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는 어렵고 힘들다는 뜻이지 안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떤 때는 화장지 꾸러미를 양손과 어깨에 감고 흔들거리며 두세 시간을 헤매어도 하나도 팔리지 않을 때는 낙심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럴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을 입으로 시인하여 능력을 얻습니다. "예수님" 이름만 불러도 기도가 되어, 예수님이 나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아신다고 하신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나서 요즘은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으로 외치며 "호흡의 기도"를 하면서 광림의 강단과 전도지와 함께 화장지를 팔러 다닙니다. 이제는 모든 열등감과 괴로움은 사라지고 판매실적도 좋아졌습니다.
주부 22% ˝결혼전부터 남편에 맞았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11일 창립 40주년 기념 심포지엄 「가정폭력,그 실상과 대책」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제기했다.상담소측이 지난 7월 가정내에서 구타당한 경험이 있는 여성 3백3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22.6%가 이미 결혼전부터 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결혼 후 폭행이 시작된 시기로는 결혼 1년이후가 39.3%로 가장 많았다.주된 폭행원인은 술마신후 트집을 잡아서(22.9%),남편의
열등감(17.5%),순종하지 않는다고(14.8%),남편의 성격이상(12.3%)순이었다.
주부 절반 이상 "가출 충동 느낀다"
우리나라 주부의 절반이상인 59%가 가출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있으며 미혼여성의 65%가 "결혼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결과는 주부의 가출을 다룬 영화 "박봉곤 가출사건"의 제작사인 영화세상이 서울 거주 여성 400명(기혼 200명, 미혼 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나타났다.
기혼여성중 결혼 생활에 대한 만족도(100점 만점)를 묻는 질문에는 48.5% 가50∼70점대에 몰렸으며 90점 이상의 점수를 준 주부는 4%에 불과했다.
기혼여성들은 특히 "남편이 자존심을 상하게 할때"(24.4%), "자신의 일을 포 기해야할때"(22.2%), "가사노동에 시달릴 때"(21.9%)의 순으로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것으로 집계됐다.
1996. 7. 4 한국일보 / 주부
주정꾼과 결혼한 여인
한 여자가 주정꾼을 남편으로 맞았다.
남편의 술 버릇을 고치기 위해 아내는 다음과 같은 계획을 짰다. 어느날 남편이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돌아오자 아내는 남편을 어깨에 메고 공동묘지로가 남편을 내려놓았다.남편의 술이 깰때쯤해서 아내는 다시 공동묘지로 가서 묘지의 철책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누구요?'
술 취한 남편이 물었다.
'죽은자에게 먹을것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오.'
아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남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리에겐 먹을것이 아니라 마실것이 필요하단 말이오. 목이 말라 죽은 나를 앞에 두고 먹을 것 얘기를 하다니!'
아내는 가슴을 치며 탄식했다.'이런 나쁜 술버릇을 고치려 한 것이 더 지독해지게 만들어 버렸네.
그래도 지금까지는 나쁜 버릇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건 아주 천성이로구만'
◈중국 소수민족의 결혼 풍속◈
한반도의 약 44배나 되는 광할한 중국 대륙에는 전체 인구의 약6%에 불과한 55개의 소수민족이 흩어져 살고 있다.중국 민족의 96%를 이루고 있는 한족과 수천 년 동안 전쟁을 벌여오면서 이들은 고유의 전통과 언어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결혼은 소수민족의 문화와 가치관을 짐작할 수있는 풍속이다.
서남지역에 널리 분포한 칭뽀족은 관리는 관리끼리,상인은 상인끼리,농민은 농민끼리,결혼해야 한다. 만냑 농민의 아들이 관리의 딸을 아내로 맞으려고하면 딸을 가진 부모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어야만 결혼을 할 수 있다.
남방지역의 미아오족,나씨족은 약탈혼 풍습이 있다. 신부의 부모는 딸을 납치해간 신랑이 맘에 들면 오색끈을 보내어 결혼을 허락한다는 의사를 표시하지만 성사가 되지 않을 경우엔 남자측은 처녀를 돌려보내고 돼지 두마리를 처녀집에 바쳐야 한다.
까오산족은 결혼식 날 신랑과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들이 신랑을 둘러싸고 신부집까지 뛰어가야 하는 풍속이 있다. 신부집이 아무리 멀어도 뛰어가야만 결혼이 이루어진다. 신부집에 도착한 신랑은 신부를 업고 마당을 두 바퀴 돌아내려놓고 신부의 손을 잡은다음 신방으로 함께 뛰어들어간다. 결혼식은 달리기로 시작해서 달리기로 끝나는 것이다.
서남지역에 사는 리족은 마을 어귀에 '팡쑤'라는 원두막을 짓고 결혼할 나이에 이른 처녀들은 이곳에서 살도록 하엿다. 어느 시기가 되면 총각들이 평소 마음에 둔 처녀가 사는 팡쑤 앞에서 코로 부는 코피리를 분다. 팡쑤속에 있는 아가씨가 막대기로 기둥을 두 번 치면 마음에 든다는 신호이고 계속 딱딱치면 싫다는 뜻이다 .
운남성 건창 지역의 와족은 철저한 모계가족제를 이루고 있다. 모든 재산은 여자에게만 상혹되며 결혼한 남자는 자기의 생활용구를 모두 처가에 가져와서 살야야 한다. 만약 이혼을 하게 되면 남자는 ㅁ가지 생활용품과 옷가지만 가지고 가야 한다. 와족과는 반대되는 풍속을 가진 민족은 중국대륙 서남지역에 거주하는 두릉족이다. 이들은 신부를 맞아들이는 것을 '푸마'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여자를 사온다는 뜻이다 이들 민족은 손과 발이 크고 발목이 가늘며 엉덩이가 큰여자를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여긴다 이러한 여자는 황소 10마리 값을 치루어야 결혼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집에 소가 세 마리 이상이면 아주 잘 사는 부잣집에 속해 소 한마리도 잦지 못한 청년은 평생 홀아비로 살아야 한다. 개방화 바람이 불어 이들 풍속들은 많이 개선되어 가고 있으나 아지도 이들 소수민족들은 그들의 옛풍습을 지키려 애쓰고 있다.
지혜로운 차선 (국민일보 1994.6.10)
요즘 대개의 도시 교회들에서 특이한 현상 하나를 보게 된다. 결혼적령기를넘어선 30대 독신 여자성도들이 눈에 띄게 많다는 것이다. 사회전반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교회안에서는 매우 두드러져 보인다. 교회학교에도,성가대에도,기관.단체에되 없는 곳이 없다. 당사자와 그 부모가 상당히 고민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아예 독신을 선언하기도 한다.
미국의 한 인디언부족은 그들의 딸이 성숙해지면 옥수수밭으로 데리고 가 인생 교육을 시킨다. 지정된 밭고랑에 서서 한번 내디딘 발걸음을 돌이키거나 한번 본 옥수수를 다시 보지 않고 지나가면서 제일 좋은 것을 따도록 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옥수수를 따지 못하고 밭고랑 끝에 와버리는 것이다.
그이유는 간단하다. 좋은 옥수수가 눈에 띄어도 다음에 더 좋은 옥수수가 나타날 것 같아 따지 않고 지나치다 결국은 못따고 빈 바구니가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인디언들은 그들의 딸에게 남편감을 잘 고르도록 교훈했다고 한다. 제일 좋고 이상적인 사람을 고르겠다고 하다가 혼기까지 놓친 이들의 경우가 바로 이런 예에 해당된다고 본다. 믿음안에서 자신과 함께할 만한 요소가 발견됐다면 과감히 선택할 필요가 있다. 이상적인 최선의 실현이 어럽다면 현실적인 차선의 수용이 오히려 낫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혜로운 차선이 무리한 최선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로마서 12:16).
아울러 교회는 결혼교실의 운영을 더욱 활발히 해 이들의 포기와 체념을 막고 결혼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陣家의 結婚式
중국 우화에 진가의 결혼식이라는게 있다. 진가에서 결혼잔치를 앞두고 가축 한 마리를 잡아야할 판이다.
그래서 거위를 잡고자 불러다 놓고 그 뜻을 전했더니
"나는 알을 낳습니다. 알을 낳지 못하는 수닭이 있지 않습니까?"하였다.
거위를 보내고 수닭을 불렀다.
"이래보여도 아침을 전하는 신성한 의무를 어김없이 해내고 있습니다. 먹고만 노는 양이 있지 않습니까?
양은 "그 추운 나는 것은 나의 털 덕분인 것을 잊고 계십니까? 개야말로 아무것도 주는 것이 없지 않습니까?"개에게 미룬다.
개가 불려와서는 "배은망덕한 놈같으니라구, 저(羊)를 늑대로부터 지켜주는 것이 누구인데! 말은 많이 먹는만큼 득이 없습니다."
말은 말대로 말이 있었다. "당신이 멀리갈 수 있는건 누구 덕택입니까? 같은 등이라고 해서 소등과는 다릅니다."
소는 "나 없으면 누가 밭을 갑니까? 놀고 살만 찌는 돼지가 적격입니다."
돼지는 "땅만 갈면 다인가요 땅을 걸우는걸 생각못하십니까?"
이렇게 따로따로 불러다가 나름대로의 주장을 듣고보니 어느 짐승도 잡을수 없음을 알게된다. 화가 치민 陣주인은 가축을 모두 불러 놓고 그렇다면 너희 모두를 잡아버릴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하인으로 하여금 칼을 갈게 했다.
이에 다급해진 짐승들은 가축회의를 갖고 진지하게 대화를 했다. 거위가 일어서서 "주인을 늦잠자게 해서는 안되니 수닭이 없어서는 안됩니다"하고 자신이 잡혀죽겠다고 자원했다. 수닭도 자신의 직책을 겸손하고 羊의 존재를 평가하는 식으로... 번갈아 돼지에 이르기까지 희생을 자원하였다.
이 가축회의를 지켜보던 陣주인은 눈물을 흘리며 잔치를 벌이지 않겠다하고 돌아섰다. 어느 짐승도 희생당하지 않게된 것이다.
이 우화는 몇가지 차원에서 오늘의 시국에 꼭 들어맞는 교훈을 암시하고 있다.
그 하나는 너나 할 것 없이 제나름의 명분이나 논리나 주장만으로 버티고 나간다면 너나 할 것 없이 그 모두가 파국에 빠져 버린다는 암시오
다른 하나는 위기일수록 서로 얼굴을 맞대어 대화로 임한다면 그 모두가 살아난다는 암시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우겨댈 때 파국이 오고 상대방의 주장을 수용할 때 모두 살아난다는 암시이기도하다.
'서서 싸우면 서로의 잘못만이 눈에 보이고 서서 싸우다가 앉아서 싸우면 내 잘못도 보이기 시작하고 앉아서 싸우다가 누워서 싸우면 네 잘한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우리 속담도 같은 이치다.
서로 등지고 파국으로 치닫는 지금의 政局이 陣家의 결혼식처럼 풀려나갔으면 싶다.<이규태코너>
질서의 파괴
한 남자가 결혼했다.그는 신혼여행이 끝나자 곧 사라졌다.그리고 몇 달후 나타났다.화를 내는 신부에게 그가 말했다.『왜 화를 내는거요.우리는분명히 결혼했고 사랑하는 사이잖소.생활비도 보냈는데 무엇이 불만이오』
한 어린이가 학교에 입학했다.그런데 이튿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가정방문한 교사에게 어머니가 말했다.『우리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돼요.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걸요』이렇듯 형식과 규칙을 무시하면 세상은난장판이 되고 말 것이다.
집안 보는 결혼풍습 유전병 예방 도움
[한겨레신문] 97.11.29 <이나미/신경정신과 원장>
심각한 조울증세로 신혼 초에 이혼한 뒤 혼자 살고 있는 50대 중년부인이 병원을 찾아왔다. 전 남편과 계모 밑에서 자란 자신의 딸이 자기와 비슷한 조울증세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내가 키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나와 같은 증세를 보일 수 있느냐며 안타까워 했다. 이렇게 환경적인 영향이 배제된 경우에도 유전적 소인 때문에 정신질환이 유전되어 고통을 겪는 경우가 가끔 있다.
과거에는 그저 막연한 가계도 연구를 통해 어떤 질환은 발현율이 몇 퍼센트라는 식의 통계를 내는 정도였는데 요즘에는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의 발전으로 갖가지 질환뿐 아니라 개인의 성격, 취향 등 정신적인 것까지도 유전적 소인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미 영화 <플라이>나 <멀티플리시티>같은 공상과학 영화에서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어내는 장면들이 등장하고 있다.
유전자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인간의 성격, 지능, 외모 등을 결정하는 유전자의 위치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정신과 영역에서는 경계형 인격장애, 충동 조절장해, 조울증 등 정서장애, 정신분열증 등에 유전자가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이런 연구의 고전적인 방법은 똑같은 유전자를 타고난 쌍둥이들이 환경 영향에 따라 어떤 형질의 변화를 거치느냐를 관찰하는 것이었고, 기껏해야 동물실험이었는데 요즘에는 유전자 시술을 통한 한층 적극적인 연구가 활발하다. 지금까지 확실하게 알려진 바로는 조울증, 비만증, 동성애 경향 등에 강한 유전적 영향이 있다 한다.
그러나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확실한 유전병 몇 개를 제외하고는 인간의 예민한 성격, 지능, 능력 등에 대해서는 결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데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다. 주위 환경에 복합적인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기 때문에 이를 전적으로 배제한 채 유전자만의 구실을 알아내기는 힘든 탓이다.
그러나 임상적으로는 유전적 배경을 알면 실제적인 도움을 받기도 한다. 똑같은 정신분열증이라도 정서장애의 가족력을 지녔다면 조금 치료가 쉽다. 상대가 폭발적 성격을 보이는데 그쪽 부모도 비슷한 인생을 걸었다고 해서 결혼결정을 다시 고려하도록 권유했던 적도 있다.
혼인은 인륜지대사라며 근본을 따졌던 우리 선조들의 태도는 때로 지나치게 경직된 방향으로 작용해서 젊은이들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유전학적으로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근친관계가 없는 동성동본끼리의 결혼은 과거의 편견과는 달리 유전병 발병 확률이 전혀 높지 않고, 어떤 성씨는 점잖고 어떤 성씨는 상스럽다는 식의 고정관념 또한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가짜 유전학이다.
현대 유전학의 발전은 예정조화설이냐 자유의지론이냐라는 중세의 해묵은 논쟁을 다시 불붙게 할지 모르겠다. 어떤 관점이건, 윤리나 철학이 뒷받침되지 않는 과학발전의 무한궤도에 의식없이 가담한다면 위험하고 무모하다는 점만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짝을 찾기 위한 3원칙
우리의 인생은 탐험(探險)여행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진 수많은 골짜기와 숲과 들판과 바다와 강을 탐험하며 일생을 살아갑니다.
탐험의 대상 가운데는 우리가 잠시 머물다 빠져나오는 골짜기가 있는가 하면 수 십년간에 걸쳐 그 누군가와 동행하여 함께 탐험해 가야하는 산맥(山脈)도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결혼'입니다.
'결혼생활'이라는 탐험지는 이성(異性)의 그 누군가를 '만남'으로써 시작되는, 우리 인생의 최대 탐험지중 하나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그 어떤 '사람(배우자)'은, {결혼생활}이라는 이 거대한 산맥을 우리 자신과 함게 탐험해 가야하는 파트너요 동료인 동시에, 이 산맥을 우리 자신과 더불어 형성하는 '환경'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어던 사람을 우리의 배우자로 만나야 하는가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는 미혼의 여러분이 짝(배우자)을 만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원칙 혹은 세 가지 단계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는 이 '세가지 원칙(단계)'을 설명드리고 위해 조금은 엉둥한 성경구절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엉뚱한'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 성경구절의 본질적 의미가 이 글의 경우와는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시고 이 글을 읽으시길 미리 부탁드립니다.
감히 인용하고자 하는 성경구절은 그 유명한 마태복음 7장 7절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
1. 구하십시오(Ask)!
가장 첫 단계는 '구하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요구하라, 요청하라' 입니다.
무엇을, 누구에게 요청하라는 것입니까? 두 말 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가 구할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요, 구할 내용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나와 가장 어울리는 짝'이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야고보4:2)
"집과 재산은 부모에게서 물려 받지만 슬기로운 아내는 주(여호와)께서 주시는 선물이다"(잠언19:14)
신중하면서도 총명한 아내(a porudent wife)는 하나님께서 친히 주시는 대상이라면, 마찬가지로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좋은 남편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아니겠습니까? '좋은 만남'은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친히 허락하시는 축복이요,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이 '좋은 만남'을 부탁해야 합니다. 아니 주님께선 오히려 '요구하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 이어 주님게선 말씀하십니다."악한 부모라도 자기 자식에겐 좋은 것으로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가 무엇을 구하면 좋은 것들로 많이 주시지 않겠스냐?"(마7:11)
좋은 배우자, 나와 꼭 맞는 배우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아버지께 요구해야 합니다. '요구'는 부탁보다 더 적극적인 태도입니다. 당당하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좋은 배우자와의 만남을 위해 하나님게 간절히 요청해 왔으며 결혼 자체를 간절히 사모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전혀 어떤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사람들이 많음은 어찌된 일일까요?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Yes(오냐, 여기있다)입니다. 두번째는, Wait(기다려라) 입니다. 구한 그것을 받을 준비가 아직 되어있지 못아였거나, 그 대상이 아직 '준비중.제작중'일 경우입니다. 그런데 세번째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No(안돼, 절대 줄 수 없어)라는 응답입니다. 이 세 번째가 문제입니다. 아니, 구하기만 하면 뭐든 다 주겠다고 약속해 놓으신 하나님께서 이러실 수도 있습니까?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한다고 우리가 원하는 그대로 언제나 응답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도 안 됩니다. 저희 내외가 아무리 두 살짜리 딸아이를 상랑한다고 해서 그 녀석이 40일 금식을 하며 "아빠, 저에게 세발자전거를 사주세요. 수륙양용에다 터보엔진을 장착해 주시고, 뒤에는 기관총과 105미리 대포를 달아주세요. 앞에는 적외선 투시경과 컴퓨터 자동운전 시스템을 설치해 주세요. 주실 줄 믿습니다. 믿씁니다."라고 제 아무리 빌고 빌어도 그 요구 안 들어 줍니다. 두 살 짜리에게 드런 것들이 왜 필요합니까? 그리고 그런 것을 요구하는 그 녀석의 꿍꿍이가 무엇입니까? 자기 딴에는 '최고로 멋진 선물'의 조건이 그런 것이겠지만 부모가 볼 땐 말도 안되는 내용인 것입니다.
'좋은 배우자'를 위해 하나님게 구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만한, 하나님 보시기에도 합당하고 기쁘실 내용들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 7절의 약속뿐만 아니라 다른 말씀들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너희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너희가 설령)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4:2∼3)
"우리가 그(예수)의 안에서 가지는 담대함이 이것이니, 곧 그의 뜻대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그가(우리의 그 간구를)들으심이라" (요한일서 5:14)
{기도는 구체적으로 하라}고 했다고 해서 이러는 사람들을 봅니다.
"오 주여, 이런 배우자를 주시옵소서. 키는 165cm, 몸무게 48kg, 기독교 신앙 장로님 집안의 셋째 딸로, 서울대나 이화여대를 B+학점 이상으로 졸업했으며, 몸매가 매력적이며, 천사처럼 착하고, 순종 잘하고 명랑하되 신중함을 잃지 않으며, 필요할 땐 용기도 있고 섬세살 줄 아는, 나하고는 세 살 차이의, 노래도 잘 하고 피아노도 잘 치고, 무용도 잘 하며, 신앙도 좋고, 쌍꺼풀 눈에다 흑진주 같은 눈동자를 가진, 매혹적인 입술에다 보기만 하여도 평생 변함없이 언제나 안아주고픈 얼굴, 엄마같은 관용과 여우같은 애교를 함께 지닌, 죽도록 오직 나만을 사랑하는 이런 여자를 만나게 해 주시옵소서. 오, 주여! 그 외에도 아직 50가지의 항목이 더 남았나이다. 무엇보다 병이 없어야겠으며, 뻐드렁니가 아니어야 하며, 말더듬이도 안 됩니다. 친구관계도 좋아야 하며...어쩌구저쩌구...주여어 ! 주여어! 믿씁니다. 이런 아내를 주실 줄 믿씁니다! 아멘!"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도 문제지만,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치는 사람도 문제입니다. '구체적으로 기도하라'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리고 기도 내용이 얼마나 분명하고 구체적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어떤 이유로'그런 것을 구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선 우리 기도의 동기와 목적을 살피십니다.
나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 원하는 대로 줬다간 복이 아니라 도리어 화(禍)가 될 기도는 우리가 40일 금식이 아니라 400일 금식기도를 해도 하나님께서 안 들어 주십니다. 목에 피를 토해가며 "믿-씁니다"를 절규해도 안 들어주십니다. 다라서 배우자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내용을 구하느냐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이러이러한 조건들이라야 정말 멋지고 행복한 결혼 생활이 될 것 같은데 하나님 보시기엔 전혀 그렇지 않을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찾는, 우리 자신에게 가장 적절하고 어울리는 짝'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가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포인트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맞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큰 홍수가 났습니다. 집이 다 잠기고 모든 것이 물에 더내려 가는데 한 기독교인이 지붕위에 겨우 대피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발 저를 구해 주십시오." 그때 저 쪽에선 빈 고무보트가 하나 떠내려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냐, 믿고 기도했으니가 하나님께서 친히 나를 구해주실 꺼야'라며 그 보트를 외면했습니다. 비가 더 많이 오자 물이 지붕 30cm를 남긴 높이까지 찼습니다. 이 기독교인은 더욱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오, 주여! 저를 구해 주시옵소서. 제발!" 바로 그때 구조 대원들이 탄 배 한 척이 다가와 "여보시오. 어서 올라 타시오. 이제 당신은 살았소"라고 사람들이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이 기독교인은 그들에게 외쳤습니다. "오, 아니요. 난 기독교인이요. 날 구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으니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나를 구해 주실꺼요. 말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소."
배에 올라타기를 계속 설들하던 사람들은 이 기독교인이 끝내 옮겨타지 않자 포기를 하고 다른 사람들을 구하러 떠나가 버렸습니다. 비가 더욱 많이 쏟아져내렸고 이제는 지붕도 물에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독교인은 더욱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여, 제발 저를 구해 주시옵소서. 믿습니다. 믿습니다." 바로 그 때 구조 헬리콥터 한 대가 머리 위로 날아왔고, 이어 구명 밧줄이 내려 왔습니다. 그러나 이 기독교인은 위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아니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구해 주실 것을 믿는 크리스챤이오. 이제 곧 하나님께서 나를 구해 주실꺼요. 다른 사람들이나 구하러 가시오. 어서!" 그리고는 다시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큰 물이 휘덮쳐 와 이 기독교인을 휩쓸어 버렸습니다. 그는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기독교인은 천국에 이르러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분노의 고함으로 항의했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무엇이든 간절히 구하면 다 들어주시겠다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건만 왜 하나님께선 저를 구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세상에 이런 법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거짓말장이십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엄히 말씀하였습니다. "네 이놈아, 무슨 소리냐? 네 기도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내가 너에게 빈 고무보트를 한 대 보냈고, 그 다음에는 구조선 한 척을, 나중에는 구조 헬기까지 네게 보냈스니라. 그런데 넌 그때마다 다 발로 걷어찼지 않았느냐? 도대체 넌 뭘 바랬더란 말이냐?"
이건 그저 우스개 소리입니다만, 실제로 이와 유사한 사태가 우리 결혼 문제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정말 꼭 맞는 짝을 우리에게 보내셨는데도, 기도와는 달리 머릿속으로 엉뚱한 또다른 욕심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그 짝을 발로 걷어차고 마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지금 하나님께 구하고 있는 항목들은 정말 우리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까? 아니면 그저 우리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들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구해야 할 배우자 조건들에 대해선 1992년 6월호에 상세히 말씀드린 바 있으므로 92년 합본을 참조하시고, 92년 합본이 없으신 분은 {낮해밤달}사무실로 요청하시면 92.6월호 내용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 첫 단계인 '구하라'의 영어 단어는 바로 'ASK'입니다. 'ASK'라는 이 단어는 물론 '요구하다, 요청하다'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단어의 최우선 의미는 바로 '묻다.물어보다'입니다. 따라서 이 첫 단계를 영어단어로 달리 해석하면 "물어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배우자 문제에 대해 계속 여쭈어 보는 일입니다. 어느 설교자는 "기도란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로 우리가 홀딱 반해서 죽어도 결혼해야겠다는 상대를 만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반드시 취해야 할 행동은 그 사람에 관해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사람은 어떠세요?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세요? 이 사람의 여러가지가 하나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행복한 결혼을 위해 제게 적합한 요소들인가요? 하나님 듯에 맞는 사람인가요? 제가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 모든 것들이 과연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가요? 제가 정말 그 사람의 인격과 가치관과 도덕심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건가요? 아니면 그저 겉모양에만 반한 건가요? 제가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이 내용들은 객관적인 건가요? 제가 너무 서두르는 것은 아닌가요? 제가 행여나 감정에 눈이 멀어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제가 단지 저의 '느낌'만을 의존하고 있진 않나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이기적인 기도를 하지 마십시오. 내가 원하는 배우자의 조건이나 기준만을 늘어놓는 기도는 이기적인 기도입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정말 멋지고 훌륭한 배우자를 만났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나 자신도 그 상대방에 걸맞는 수준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100점짜리 배우자를 주십사고 기도하십시오. 동시에 나 자신도 100점짜리 배우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나 자신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도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100점짜리 배우자가 눈이 비어서 40점짜리인 나를 선택해 놓고는 평생토록 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우울증이나 신경쇠약에 걸리지 않도록 말입니다. 가까운 도시에 {결혼예비학교}같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바쁜데 그딴것은 해서 뭐해?"하지 마시고 시간을 투자해서 자신을 준비시키고 훈련시키십시오. 우리의 영혼과 인격을 다듬고 아름답게 만드는 또 다른 노력도 하십시오.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 보다 우리 자신이 '좋은 배우자'가 되어주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그럼요, 더욱 중요합니다.
2. 찾으십시오(Look)!
이 두번째 단계를 말씀드려야 할 분들이 있을까요? 제발 찾지 말라고 해도 다들 눈네 불을 켜고 짝을 '찾아'헤매고 있으신데 말입니다. 그러나 혹 여러분 가운데 "내가 골방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만 하고 있으면 하나님게서 예비해 두신 짝이 어느날 내 방문을 열고 턱 들어와 장미곶다발을 내밀며 느닷없이 '나와 결혼해 주십시오'할꺼야"라시는 분들, 그리고 "나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누군가 백마를 타고 와서 나를 업어 갈꺼야"라시는 분들께는 이 말씀을 드립니다. 기도만 하지 마시고 일어 나십시오. 그리고 고개를 드십시오. 그리고 눈을 뜨고 둘러 보십시오. 건성으로 쓱 훑어보지 마시고, 첫 단계에서 하나님께 아뢰어 왔던 기도 제목들을 손에 들고 그 기도내용과 맞는 사람이 없는지 관심을 가지고 신중함으로 찾아 보십시오.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다들 알아서 잘 하시는 것들은 빼놓고, 미혼의 여러굽들에게 있어 잘 안되는 부분들만 두 세 가지 언급드리려 합니다.
첫째는, 너무 일찍 서둘러 짝을 찾으려 하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가끔 고등학생들로부터 {저희는 사랑에 빠졌어요. 너무나 서로를 사랑해요. 저희는 결혼을 약속했어요}라는 편지를 받습니다. 그러면 그만 머리카락이 하늘로 곤두서고 마음이 안절부절이며 눈 앞이 캄캄해 집니다. 오, 그들의 그 아름다운 '사랑'을 모욕하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사랑의 감정은 인정하지만 벌써 '결혼'운운하기엔 너무 이르다는 말입니다. 왜 너무 일찍 서둘러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서도 92년 6월호에서 설명을 드렸군요. 여하튼 20대 초반 이전에 너무 서둘러 짝을 찾으려 하거나 결정하는 것은 너무나 큰 위험성과 더불어 두 사람 모두에게도 여러가지에서 큰 손실입니다. 사회적인 면에서의 성수도나 개개인의 정신적, 인격적 성숙도를 감안할 때 적오도 남자는 25세 이상, 여자는 22세 이상이 서로의 배우자를 찾아 나서기에 적절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때론, 나이 자체가 너무 일러서가 아니라, 첫 데이트 이후에 결혼을 결정하기가지에 있어 너무 서두르는 것이 문제가 될 대가 있습니다. 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두 세 번 데이트를 해 보고는 그만 '결혼'을 결정하고 만 사람들입니다. 첫눈에 반해버린, 이글거리는 {에로스}의 불화살에 명중된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그 무엇인가에 쫓기는 사람들입니다. 여성들의 경우 스물 다섯의 나이는 고리에 불이 붙은 상황이라고 누군가 이야기했습니다.
'노처녀'라는 딱지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 지고 아무 우물에나 뛰어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위험합니다. 스콧 커비(Scott Kirby)는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 스물 다섯에 결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최악의 사건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나쁜 한 가지 일은, 나이 스물 다섯에 옳지 못한 사람과 결혼한 경우일 것이다." 이런 여러 상황에서 서두르지 않기란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어더한 이유로든 너무 서두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좋은 만남'을 놓칠 위험성이 굉장히 큽니다.
두번째 드릴 권면은, 할 수만 있다면 주위 가까운 곳에서 먼저 짝을 찾으시라는 것입니다. 확률적으로도 우리 가까운 곳에 우리의 짝이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어릴때부터 우리와 늘 함께 가까이에서 산 사람이거나 우리와 같은 지역의 사람일 것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산 사람이라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선 두 사람을 이끌어 가까이에다 두실 것입니다.
왜 이 말씀을 드리는지 아십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에서 작을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진면목이 이미 다 드러나 있습니다. 장점도 드러나 있는 반면 그들의
단점까지도 다 노출되어 있습니다. 한 교회나 같은 기독써클 안에서 오빠 누나 동생하며 지내는 사이들에게선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 일상적인 모임일 수록 의식적인 위장이 있을 가능성이 작습니다. 모르는 두 남녀가 만나 하는 데이트일 수록 의식적인 위장을 서로가 할 가능성이 열 갑절은 더 커집니다. 데이트를 하면서 누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려 하겠습니까? 그러나 가까이에서 머물던 사람들 사이에는 제 아무리 감추려 애썼더라도 온갖 다양한 상황속에서 그 사람의 기질과 성격과 가치관과 인격이 거의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습니까?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선 낯선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신비로움(?)과 설레임, 무언가 내가 바라는 더 나은 것들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 따위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평점은 낯선 사람의 경우보다 훨씬 야박합니다. 더우기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가슴 설레이는 활화산 같은 '연애'를 꿈꾸는 사람들에겐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보기엔 참 어울리는 짝인데도 정작 본인들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어 버립니다. 빈 고무보트가 아니라 대형 구조헬기를 놓치는 순간입니다. 서로가 말입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합니까? 저 멀리에 있는 그 누군가 백마를 탄 기사나 신데렐라를 찾아 헤매다가 언 낯선 사람을 만나 한 두 번 데이트를 해 보곤 흥분한 얼굴로 외쳐댑니다. "우와아! 심봤다. 드디어 내가 찾고 찾던 그 멋진 사람을 만났어! 끝내주는 사람이야! 오, 마이 갇! 할렐루야!" 한 두 달 뒤에 결혼날짜를 잡았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정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짝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도박'입니다. 확률이 대단히 낮은 도박입니다. 적어도 충분한 교제와 서로의 주변 사람들을 통한 객관적 검증을 거친 이우헤 결정한 결혼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결혼생활'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혼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로 다른 별세계가 펼쳐질 것이라 상상합니다. 물론 그 아름다운 환상을 깨트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환상은 실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릴 것은, 결혼생활은 안락한 새마을 열차를 타고 하는 기차여행이 아니라 울창한 숲과 깊은 강과 험난한 계곡과 가파르고 높은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산(山) 혹은 산맥(山脈)을 관통하는 탐험여행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건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결혼하게 될 배우자는 이 멋지고 스릴 넘치는-'결혼생활'이라는 산맥을 함께 탐험해 가야 할 유일한 동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배우자와 우리 자신은 바로 이 험난한 탐험지(산)를 이루는 환경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각자가 지니고 있는 성격이나 기질, 가치관, 습관, 가족관계, 친구관계, 직업, 정서적 배경이나 상처 등등이 바로 이 거대한 산을 이루는 정글이요, 계곡이며, 절벽이요, 강과 바위입니다. 거기다 두 사람 앞에는 또 다른 요소들로 이루어진 더욱 험난한 환경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 비중을 두고 점검해야 할 배우자 조건들이 분명 남다를 것입니다. 기차여행을 멋지게 할 동행자의 조건과, 탐험여행을 멋지게 할 동행자의 조건은 분명히 다릅니다.
아무 문제없는 꿈같은 기차여행을 위한 파트너에게 요구되는 최상의 조건들이, 정글숲과 골짜기와 동굴과 산악을 함께 탐험하기 위한 파트너에 있어선 거의 무가치한 조건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배우자를 고를 때 '탐험여행'의 파트너로서가 아니라 '기차여행'의 파트너로서의 조건들을 내걸고 사람들을 살핍니다. 정말 가치와 비중을 두고 점검해야 할 조건들은 뒷전으로 밀어놓고 엉뚱한 것들에 최우선적 비중을 두고 가장 큰 관심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겉으로 보여지는 매력과 좋은 점은 한 번만 만나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깊은 내면과 위장되지 않은 그 사람의 참 인격과 성품은 절대 하루 아침에 알아낼 수 없습니다. 여러 객관적인 상황에서 살펴 볼 기회가 없었던 낯선 사람과의 데이트에선 이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감춰진 부정적인 측면은 물론이려니와 심지어 이런 긴장된 데이트에선 우리 자신의 보다 긍정적인 장점을 제대로 보여 주기도 힘들 분더러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진짜 멋진 장점을 알아내는데도 대단히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저 서로가 '보여주기를 원하는 모습만' 혹은 '겨우 눈에 보여지는 부분만' 보거나 보여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혀 모르던 사람과의 데이트에는 많은 위험과 함정이 있습니다.
그에 비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간에는 이러한 모험성이나 도박성이 상대적으로 대단히 적습니다. 다만 너무 속속들이 잘 알기 때문에서 서로에 대한 설레임이나 신비감, 어떤 기대감이 없거나 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생활'이라는 탐험여행의 목적과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이러한 요소들(육체적인 매력, 감정적 설레임, 신비감 뭔지모를 기대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챌 줄 압니다. 이런 요소들은 결혼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아니, 어떤 경우는 3개월도 안되어) 안개처럼 다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것은 미처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던, 서로에 대한 진면목 뿐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남은 것은, 서로의실체에 대해 알아가면서 받는 경악과 충격과 혼란, 그리고 그건 것들에 서로를 적응시켜 가기위한 긴장된 신혼생활 3년 기간입니다.
왜 이런 과장된(?) 협박을 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이제 알것 다 알고 볼것 다 보아서 매력이나 설레임이나 신비감이라곤 거의 남아있지 않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결코 과소평가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권하기로는, 낯선(잘 모르던) 사람과의 데이트때 그 상대방ㅇ게 주는 점수보다 가까이에서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지켜볼 수 있는 사람에겐 적어도 30점∼50점 정도는 기본적으로 더 얹어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의식적으로 위장하거나 결정적인 단점들을 감출 수 있는 사람과, 누군가 관심을 가지고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자신의 실체를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는 사람에게 주는 점수도 달라야 공정한 게임이 되지 않나요? 네가 너무 편파적이었나요?
이렇게 답답해 하는 이유는,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정말 어울리는 멋진 배우자감인데도 엉뚱한 이유로 '아니다'라고 고개흔드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입니다. 하긴 머 결혼은 그 사람 본인들이 하는 거지 주위사람들이 하는가요?
어떤 사람은 자신의 결혼 문제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소극적인 성격이나 기질 때문일 수도 있고, 지금 처해있는 환경자체가 다양한 배우자 후보들과의 만남이 제한되거나 차단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위 사람들이 이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주님께선 명령하십니다.(갈라디아서 6:2)
"너희는 서로 짐을 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실천하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지도를 통하여 온 몸이 완전하게 서로 조화되고 각 지체가 그 기능대로 서로 도와서 온 몸(교회)이 건강하게 자라고 사랑으로 그 몸(교회)를 세우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에베소서4:16)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형제 자매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성의 배우자 후보감들과의 만남의 기회가 없거나 드문 지체들을 위한 만남의 장도 교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마련해 주어야겠습니다.
지금은 그럴 능력이나 여력이 없어서 그렇지, 할 수만 있다면 {낮해밤달}
이 낮이고 밤이고 일년 내내 이 '중매쟁이'노릇만 해도 보람되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아니,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짝을 지으시는데 왜 사람들이 나서서 노력해야 하느냐? 헷갈린다"고 하실수도 있겠군요. 이 부분은 나중에 다루지요.)
우리가 할 수 없는 영역은 하나님께 맡기는 수 밖에 업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해야 마땅합니다. 내가 눈을 감고 있거나 엉뚱한 색안경을 끼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짝을 우리 코 앞에 데려다 놓으셔도 우리는 그 짝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눈을 뜨십시오. 왜곡된 가치기준의 안경을 벗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찾으십시오!
저는 나이 서른 둘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갔습니다.(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거지요) 그 나이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멀리가 아니라 제 가까운 곳 주위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저는 어느 구석에서 항상 말없이 저를 지켜보고 서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벌써 3년째 거기 그 자리에서 저를 지켜보고 있었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녀가 바로 제 딸의 삼촌의 형수가 되었습니다. 저는 30여년 동안 경상도에서만 살았습니다. 제가 타지역 사람과 결혼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선 이 여인을 20년 동안 충청도에서 살게 하셨다가 6년 전에 그 낯선 대구땅으로 이끌어 놓으셨고, 마침내, '때가차매' 저와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인도하심입니다. 그러나 만약 제가 엿새만 더 눈을 감고 있었더라면 3년간이나 제 곁에서 기다렸던 구조헬기를 놓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제가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발견해 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저 망나니 딸아이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를 신뢰하신다면 믿음의 눈으로 짝을 찾으십시오. 엉뚱한 것을 쫓아 헤매던 눈을 씻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앗! 저... 저기에리가 차..찾고 찾던 그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이제 어..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대로 돌진해야 합니까? 아니면...
초혼은 하늘에 의해서, 재혼은 인간에 의해 맺어진다.
유태교에서는 이혼을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이혼이란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 그래도 이혼해야만 할 부부가 있다면 랍비를 찾아가 아무래도 원망할 수가 없다고 하여 랍비가 인정하면 이혼이 이루어진다.
결혼 - 정말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불행한 결혼이라고 단정되면 더 계속할 것이 못된다. 성공적인 결혼을 남자에게는 날개를 달아주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사람이 진정 잘어울리는 상대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오직 고독감을 떨쳐내기 위한 동반자를 구하기위해 결혼하고 있다.
유태인 남녀는 20대의 중반이 되면 결혼해야 한다고 배운다. 이것은 성경에 '낳고, 충만하게 하라'는 명령에 따르는 것이다.
결혼은 하나의 의무이다. 여섯 가지의 요소로 성립된 결혼은 첫째가 '애정'이고 나머지 다섯가지가 '신뢰'라고 한다.
결혼한 처음 3주일간은 서로 관찰하는 시기이고, 다음 3개월은 서로를 사랑하는 때이며, 다음 3년간은 싸움으로 보내며, 그 다음 30년은 서로 용서하며 보내는 시기라고 한다.
결혼을 더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혼자 사는 독신자는 마치 공작같이 보이고, 약혼한 사람은 사자의 행동같고, 결혼하고 나면 우마가 된다고 한다.그러므로 일단 결혼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최장, 최단의 결혼
이제까지 가장 오래 부부사이를 누려온 영국의 템루시 비카시 나리먼 경과 그 부인의 86년간 결혼 생활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동년배로서 1853년 불과 5세 꼬마 때 결혼,그 생활은 남편이 1940년 91세를 일기로 죽기까지 계속되었다.
가장 짧은 기록은 이렇다.
식을 올린지 불과 4시간만에 이혼한 일이다.
스웨덴에서의 기록으로서, 결혼 피로연 석상에서 신랑과 신부의 어머니가 사소한 말다툼을 벌였던 것이 화근이 되어 결혼식은 삽시간에 이혼식으로 바뀌어 버렸다고 한다.
프랑스,결혼보다 이혼이 많다
*** 여성 결혼-출산 고령화 추세...미혼출산 많아 인구는 증가 ***.
이혼과 독신 많기로 유명한 프랑스가 80년대초 이래 줄곧 이혼이 결혼을 앞지르고 있다.
프랑스 국립통계경제문제연구소(INSEE)는 8일 올 1월1일 기준으로 조사된 [인구변화] 발표를 통해 {94년 프랑스에선 25만4천쌍이 결혼, 20년전과 비교해 40%, 92년 대비로는 6%가 감소했다}며 {80년대초 이래 계속결혼수가 이혼수를 밑돌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들의 평균 결혼연령은 자꾸 늦어져 지난 73년 22.5세였던 것이92년 26.1세, 93년 26.4세로 집계됐다. 여성들의 출산연령도 갈수록 고령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10년전엔 평균 27.5세가 초산 연령이었으나 작년엔 서른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프랑스 여성들의 평균 출산수는 1인당 1.8명, 인구증가율 역시 0.5%에 근접, [안정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프랑스가 유럽에서 결혼율이 가장 낮으면서 동시에 미혼출산이 가장 높기 때문. 프랑스인들은 평균 35세가 넘도록 미혼상태의 동거(코아비타시옹)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
윗치만 니라는 유명한 성도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인에게 결혼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그 여인에게 요청하지 않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런데도 그 여인의 생각이 계속 그의 마음 속을 지배했습니다. 그는 그 여인과의 결혼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 모두 맡겼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는 우연히 다른 장소에서 그 여인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셔서 두번째 요청을 했습니다. 이때에 이 여인이 허락을 해서 10년 전에 사랑했던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께 헌신되지 않은 사람일 경우에 인간적인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10년간이나 계속해서 그 여인을 따라 다녔다고 합시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결혼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는 주의 뜻을 구하는 훈련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찼을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결혼을 하게 되어 아름다운 결혼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그는 후에 간증을 남겼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을 잘 살펴야 합니다.
한 총각의 구애
어느 한 총각이 한 처녀를 미칠 듯이 사랑하였다.
어느날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그는 밤늦게 연인의 집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처녀에게 날 좀 방 안에 들여 보내 달라고 청했다.
처녀가 물었다. " 당신은 누구신가요?" 그가 대답하였다. "나요." 그러자 방 안에서 처녀가 대답하였다. " 이 방은 너무 좁아요. 한 사람밖에 들어올 수가 없답니다. 가세요!"
그는 슬픔을 잊기 위해 세상을 떠돌아 다녔다. 그는 처녀가 왜 자기를 거절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 처녀도 자기를 사랑하는 게 분명한데도.
몇 년을 떠돌아 다니다가 마침내 한 가지 깨달은바가 있었다. 어느날 밤늦게 그는 다시 처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누구요?" 하고 안에서 처녀가 물었다. 그가 대답하였다. "당신입니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연인이 뛰쳐 나와 그를 껴안았다.
"당신을 오랬동안 기다렸어요."
<되새김>
세익스피어는 [불사조와 거북]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세계에서는 수(數)가 암살당했다.
사랑은 複數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영혼과 마음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찌니라"
한마디에 백 달러씩
잠15장
시대가 가치를 형성하고 가치관이 곧 인생관과 일치한다고 할때 그 시대정신은 가치판단의 규범과 기준의 근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시대가 날로 복잡하게 변화하는 금세기에 이제까지 소중하게 유지되고 존중되어 오던 것들이 그 가치를 상실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여러가지 면에서 결혼의 풍속도가 이 점을 여실히 보여주리라 믿는다. 결혼의 방법과 의식의 차이는 용인할 만한 문화적 요인에 의해 비롯된 것이나 결혼관에 대한 본질적 물음은 결국 가치관의 문제로 텍사스에 석유상으로 거부가된 어떤 청년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결혼식에 대하여 묘한 신경질적인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례를 맡을 목사님을 찾아가서 다짐을 받아내길, 결혼예배를 길게 하면 단 한푼도 못받을 줄알라고 했다.
드디어 결혼식 날 주례목사는 신부에게 [신랑을 따르겠는가?]신랑에게 [신부를 맞겠는가?] 하고 묻고는 그렇다면 [그렇게 하시오] 라고만 했다. 식후에 그 부자신랑이 흡족하여 목사에게 300달러를 주었단다.
한 마디에 백달러씩 받은 셈이다.
결혼에 대한 형식조차도 유지시키지 못할진대 결혼 의식을 통해 혼에 대한 깊은 성경적 깨우침이 가능하겠다는가? 가치는 돈도 아니고 또 지루한 의식을 생략하는 것도 아니며 바로 그 본질에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예배는 어떠한가?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고 기도하는 섬김의 본질에 충실하는가? 짧고 듣기 좋은 설교의 말 잔치나 인간관계의 유익에 필요한 사귐을 위해 헌금하는 것은 아닌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15:1)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고전 7:3-29; 엡 5:22-28, 31
젊은 부부가 자기들의 결혼 1주년을 축하하느라고 고급 음식점에 가는 길이었다. 차를 타고 중간쯤 갔을 때에 아내고 불평을 털어 놓았다.
"우리는 왜 이렇게 떨어져 앉아 있지요?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는 당신은 늘 가까이 앉았었는데...... ."
운전대에 앉아 있던 남편은 아내를 향하여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보, 나는 움직이지 않았는데...... ." 많은 경우에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두 사람은 반대 방향으로 이끌리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함께 계
속해서 앞으로 움직여 나아갈 때에 한하여 결혼이 함께 성장해 가는 길이 될 수 있다
행복한 결혼의 비결
앙드레 모아는 그의 저서 "행복한 결혼"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부부간의 대화는 외과수술처럼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부부는 정직이 지나쳐 애정까지 수술했고, 때문에 파탄을 일으켰다."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을 속박하지는 마라. 사랑을 당신네 두 영혼의 해변 사이에서 움직이는 바다가 되게 하라. 그리고 함께 서 있지만 너무 가까이 있지는 마라. 왜냐고? 성전의 기둥들은 서로 떨어져 서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에서는 자라지 못하니까."
현대에도 몰렉신에 자녀를?
"카쇼기"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돈벌이의 천재다.
재산 40억 달러, 자가용 제트 여객기 3대, 하루 용돈 28만 달러(약 2억원)하면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재산을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부족한 것일까? 그는 자신의 딸을 "아라비아의망난이" 라는 별명을 가진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 대령과 결혼시켰다.
사정을 알고보니 이 결혼이 성사되기 전에 리비아는 캬쇼기에게 하루 10만 배럴의 석유를 배럴당 싯가보다 3달러 싼 값으로 파는 계약을맺었다.
간단히 계산해도 하루 30만 달러(약 2억 1천만원) 이익을 캬소기는 보는 셈이다. 바꾸어 말하면 카쇼기는 하루에 2억 1천만원씩받고 딸을 카다피에게 팔았다는 애기도 된다.
정작 그 딸은 카다피를만난 일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혼인 축하전문
결혼식 피로연이 막 시작되었다. 주례자가 결혼을 축하하는 축장과 축전들을 낭독하고 있었다.
신부의 친한 친구가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돈이 많이 드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글자수를 줄이기 위해 성경의 장과 절을 적어 축전을 보내주기로 했다.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요한1서 4:18)" 불행하게도 전보치는 타자수가 그만 요한 1서의 1자를 빼먹고 말았다. 그래서 주례자는 "요한4:18"을 낭독했다. 모든 축하객들은 놀라 자빠지고 말았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회혼(回婚)
이 세상에서 자녀 가르치는 데 부모들이 가장 고달픈 나라가 우리 나라라고 한다. 옛날에도 부모 고달프기는 지금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를테면 `천자문(千字文)'가르칠 나이가 되면 아버지는 과거에 급제한 진사(進士)나 생원(生員)들을 찾아다니며 아이 가르칠 `천자문' 가운데 한 자 또는 넉 자씩을 써달라고해서 교본을 만드는 관습이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이 글재주를 옮겨받아 글을잘하고 급제할 줄 알았던 것이다.
외지에 돌아다니며 수백 명씩의 글을 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버이의 정성에 자극받아 글을 익히는 데 게으르지 않았을 것이요, 이렇게 하여 한 아이의 장래를 둔 친분(親分)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공동체를 천자문(千字門)이라 하였고, 이름난 명문댁의 천자문(千字門) 이되면 그것이 자랑과 영예가 되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공동체로 만인문 (萬人門)이라는 것도 있었다. 인생 경사(慶事) 가운데 최고의 경사가 회혼(回婚)을맞는 일이었다.
짝지은 지 60년 되는 결혼 회갑(回甲)인 것이다. 스무 살 안팎에 결혼하는 것이 관례이기에 회혼은 80 안팎에 맞게 되지만 짝지은 부부가 그 나이까지 장수하기란 드문 일이기에 서민의 회혼이면 그 고을 현감이나 목사(牧使)가 찾아가축수를 하고 양반이면 감사(監司)가, 당상(堂上) 벼슬이면 임금이 축의(祝儀)를 보냈을 만큼 큰 경사로 쳤다.
회혼의 잔치상 뒤에는 만인병(萬人屛)을 두르게끔 관습이 돼 있었는데 축수하는 수백 수천 명의 친필 이름을 쪽지로 만든 수십 겹의 병풍인 것이다. 이 만인병에 축수한 친필끼리 형성시킨 친분 공동체가 만인문인 것이다. 회혼의 노신랑이 높은 벼슬아치나 세도가라면 두말 할 나위가 없고 무명의 서민일지라도그 만인병에 이름을 올리면 장수한다 하여 몇백 리 밖에서 노부모를 업고 찾아와 이름을 적게 해달라고 청탁하는 효자도 적지 않았다 한다.
이 만인병을 둘러놓고 노부모가 시집 장가 갈 때 입은 복장 그대로 입고 혼례때 올렸던 합근례를 그대로 재연했다. 표주박을 둘로 잘라 만든 표주박 잔에다술을 담아 서로 입을 대고 동심일체를 다지는 혼례의 핵심 절차다. 혼례 때 쓴이 합근박은 청실 홍실로 장식하여 신방의 천장에 매달아두고 사랑과 금실을감시케 했던 것이다. 그 혼례 때 쓰던 합근박을 60 년 후에 꺼내어 다시 입을맞대는 회혼 합근의 감개는 무량에 무진했음직하다. 이 세상 어느 나라에도 이같은 낭만적인 사람의 예법은 없었을 것이다.
합근례가 끝나면 이제 자손들의 헌작이 잇따르는데 이미 회갑을 지난 할아버지일지라도 때때옷에 가랑이 터진 바지를 입고서 아기처럼 기어 들어가야 한다.어린 시절을 그렇게 재연시켜 회혼 노부모를 즐겁게 해드리는 너무나 인간적인절차가 있었던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가장 성대하게 베푼다는 결혼 50 돌의 금혼식(金婚式)에는 추억의 패물 하나씩 차고 나와 결혼 연대를 적은 케이크를 자르는 것이 고작인 것에 비해 얼마나 멋있는 회혼식인가. 지난주 원주(原州)에서 81 세의 한 노옹이65 명의 직계 자손 앞에서 전통 회혼례를 마련하였다 하여 사라져가는 이 미풍이 못내 아쉬워 적어 남기는 것이다.
회혼식 앞두고 이혼한 할머니
자식을 낳지 못한다며 지난 59년동안 구박을 받으면서도 결혼생활을 해온 할머니가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회혼식을 1년 앞두고 이혼소송을 낸 뒤 승소해 화제가 되었다.
18세때인 지난 1936년, 부모가 시키는대로 박종기씨와 결혼한 장숙자 할머니는 아이를 낳지 못해 남편의 온갖 냉대를 받아야했다. 여동생 딸을
입양하기도 했으나 끝까지 자신의 핏줄을 원한 남편이 지난 65년 “씨받이”를 얻어 딸을 낳아오자 이를 운명으로 알고 정성스럽게 길러왔다.
그런데 얼마전 남편 박씨가 출가하는 딸에게 결혼비용으로 3천2백만원을 몰래 주는 한편 장씨 명의로 된 1억 3천만원짜리 아파트도 딸에게 넘겨주겠다면서 장씨에게 집요하게 재산상속권 포기를 강요했다.
이를 참다못한 장씨가 지난 93년 8월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이번에 승소 판결을 받은 것이다.
사건을 맡았던 서울 가정법원 가사 3부는 지난 3월 10일 장씨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인뒤 “남편은 아내애게 3천5백만원 상당의 재산과 위자료 1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요즘 새로운 풍속도로 나타나는 “황혼이혼”이 전형적 사례라고도 할 수 있는 장할머니의 이번 이혼소송은 어느 면에서는 자식과 가족을 위해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전통적인 부부관계에 묶여 평생을 인내하며 살아온 많은 어머니들에게 용기를 준 사건이다.
영국교회 이혼식 집례한다.
영국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 버밍험에는 침례교, 감리교 등 여러 교단들의 교회가 있긴 하지만 이들 교회는 숫적으로 무너지고 있으며, 순복음 교회들만이 성장하고 있다. 예배와 말씀이 죽어가고 있지만, 순복음의 찬양과 영적인 모습이 살아 움직이니 다행이다. 그렇지만 안타까운 것은 사라지는 교회의 건물들이 술집으로, 사교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영국의 교회에서는 가정 중심의 소그룹운동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운동과 순복음 교회들을 중심으로 한 영적인 운동들이 영국교회를 살릴 수 있는 한가닥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문득문득 그 희망이 사그라져버리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다. 영국교회에 만연해 있는 인간 중심의 가치 때문이다. 그 한 예로 이혼예배를 본다. 현재 영국교회(영국성공회)에서는 목사님들이 교회안에서 부부들의 이혼식을 거행하는 예배가 유행하고 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성경이 금하는 이혼도
예배를 통해 할 때, 그에 의해 생기게 되는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면할 수 있을까 하는 어리석은 마음 때문이다.
영원한 연인
미국 제인즈빌에서 71년간 결혼생활해온 94세의 동갑내기 부부가 14일 같은 날에 숨졌다고 AFP통신이 17일 보도.이들 노부부는 젊었을 때 위스콘신州 제인즈빌 경영대학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나누다 결혼하게 되었는데죽기 전까지 손을 잡고 다니는 등 언제나 다정한 연인처럼 지내 지역에서화제가 되었다고.서로 사랑하며 지낸 이들 부부에게는 71년이 71일만큼이나짧게 느껴졌던 것이 아니었을까.어느 부부는 신혼여행에 갔다가 불화로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는데….
永遠히 그대만을 사랑한다는 말.
아름다운 女人을 향하여 "나는 영원히 그대만을 사랑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내가 있다. 여인들은 이 말을 들으면 황홀한 기분에 젖어들 것이다.그러나 이런 말을 들을 땐 순간적으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물속의 잉어가 맛좋은 낙시밥에 정신이 빼앗기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낚시꾼의 손에 걸려 한끼 매운탕거리로 변하기 십상이듯 이 때 자칫 잘못하면 정신나간 잉어꼴이 되겠기 때문이다.
생각을 한번 정리해 보자. 영원한 사랑이 이 땅에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이 땅엔 고정 불변한 것도 없고 영원한 것도 없다.
영원을 약속하는 바로 그 사람도 기껏 70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우주적인 시간, 즉 영원에 비하여 70년이란 실로 찰나에 지나지 않는 하루살이 목숨인데 어찌 감히 영원을 입에 담겠는가?
이치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永遠을 約束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 땅에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극히 초보적인 상식도 모르는 멍청이 이거나 아니면 그것을 알면서도 머리 빈 여인을 낚기 위한 수단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그 다음에도 있다.
"그대만을 사랑한다"는 약속도 한번 짚어 보아야 한다.
사랑이란 결코 단일 品目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사랑은 곧 삶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자녀들도 사랑하고, 친구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하고, 부모도 사랑해야 하는 게 인간의 삶이다. 그런데 어찌 그대만을 사랑하겠다는 것인지.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사람은 人間的인 삶을 拒否한 사람일 것이다.
하긴 나만을 사랑하는 인격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완전하신 하나님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 서푼짜리 인간이 이같이 엄청난 약속을 한단말인가?
원래 사랑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우난히 떠벌리는 사람치고 사랑의 사기꾼이 아닌 자가 몇이나 될까?
사랑의 본체가 되시는 예수님은 말없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향하신 그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롬5:8)
말없는 사랑의 예를 실 生活에서 하나 들어보자.
아들이 철길에서 위험한 狀況에 빠졌다고 가정해 보자.
기차는 달려오는데 그 엄마가 한가하게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말하노니 지금 당장 그곳에서 나오너라. 아니면 기차에 치여 죽고 만다."
라고 읊을 수 있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엄마는 말없이 무섭게 뛰어들어 아들을 철천지 원수 떠밀어 내듯 밀어 팽개치고 말것이다.
그녀의 생사는 그 다음의 문제가 될 뿐이다.
사랑은 그런것이다.
사랑은 말에 있지않고 또 언제나 달콤한 것도 아니다.
만약 사랑에 말에 있고 또 그것은 꿀같은 것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사람은 하루도 못가서 사랑의 쓴 맛때문에 고통을 당해야 할 것이다.
사랑은 전 인격적인 삶으로 표현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바로 아는 사람만이 참 사랑을 향유할 자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정과의 결혼식
안경을 쓴 70세의 할머니가 머리에 하얀 면사포를 둘렀다. 신부는식단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두 손은 영정을 쥐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 걸어갈 신랑도, 함께 기뻐할 가족과 친지도 없이 먼저 떠난 남편의 사진과 함께 한 48년만의 예식. 지난 22일 오후 7시 부산동구 범일동에서 있었던 김정숙 할머니의 뒤늦은 결혼식 장면이다.
할머니는 50년 함경북도 원산에서 장덕선씨와 약혼을 한 뒤 6·25전쟁이 나면서 함께 월남했고, 외아들과 함께 세식구가 단출한 가정을 꾸려 갔다.
{형편이 넉넉해지면 꼭 결혼식을 올립시다.}.
굳게 약속했던 남편은 그러나 83년 57세의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3년 뒤 아들마저 뒤를 따랐다. 의지할 친척조차 없는 할머니는 동사무소로부터 생계보조금을 받아 생활했다.
{저…, 남편없이 사진만 갖고도 결혼식을 할 수 있을까요?}.
김 할머니는 시민단체인 극일운동시민연합(의장 황백현)이 식을미뤄 온 부부들을 위해 무료로 합동결혼식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사정을 알렸다. 영정과의 결혼식은 그렇게 해서 열렸다.
{저 세상에 있는 남편도 기뻐할 겁니다….}.
함께 식을 올린 다른 세쌍의 부부와 하객들은 말끝을 잇지 못하는할머니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영혼결혼식 배우자 찾습니다"
1996. 5. 15 중앙일보 / 부모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삼풍붕괴사고대책본부에 지난달말부터 "처녀영혼"을 구한다는 이색 벽보가 나붙여 눈길을 끌고 있다. 죽은 막내 아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저세상에서라도 반드시 백년가약을 맺어주고 싶다는 간절한 내용의 벽보를 붙인 주인공은 지난 3월 18일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아들을 잃은 곽동표(72.서울구로구구로5동)씨.
이천 현대아파트 건설 공사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던 곽 씨의 4남 철석(25) 씨는 공사장에서 후진하던 포클레인에 깔려 숨졌다. 고교졸업후 군대를 제대한 지 1년 남짓한 때였다. 한창 나이 에 세상을 뜬 아들이 가엾어 영혼결혼이라도 꼭 시켜주고 싶었던 곽씨는 궁리끝에 삼풍붕괴사고로 숨진 사망자 가운데 처녀영혼들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사고대책본부를 찾아 희생자 가족을 소개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대책본부측이 사생활 침해등을 이 유로 거절하자 본부 입구에 벽보를 붙이고 매일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곽씨는 "남은 인생의 마지막 간절한 소원이 꼭 이뤄 졌으면 좋겠다"며 또다시 눈물지었다.
왕실 파경
고대 로마에서는 [짐을 챙겨 집을 나갈 것]이라는 통고만으로 이혼이성립됐었다. 따라서 지배층의 이혼도 다반사였다. 시저는 세번이나 결혼하고 있고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하기 위해 임신중인 아내옥타비아에 전격 이혼통고를 하고 있다.
오거스터스도, 네로도 세번의 이혼 챔피언들이다. 유럽에는 국왕 위에 교황이 군림하면서 이혼해서는 안된다는 기독교 교리가 발효, 유럽의국왕이 이혼하려면 교황의 허락없이 불가능하게 됐다.
여기에 영국에서 역사가 주목하는 이혼사건이 일어난다. 16세기초 헨리 8세는 왕비 캐더린의 시녀 앤 푸린에 반해 당시 교황인 클레멘스 7세에게 캐더린과의 이혼 허가를 신청했다. 허락받지 못하자 무력으로 국내에서 교황 산하의 교회와 승원 3천여개를 몰수하고 법왕의 권한을 축출했다.
그러고는 캐더린과 이혼을 하고 나서 앤 푸린과 결혼식을 올렸다. 이에 로마 교황은 헨리 8세를 파문하고 관계를 단절했으며, 국왕은 영국국교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우리 나라에서는 왕실은 고사하고 여염집에서도 칠거지악에 의한 축출은 있었어도 이혼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첩 아닌 본처를 또 하나 볼불가피한 경우가 있으면 임금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본 다른 한본처를 좌처 또는 좌부인이라 했다.
세조의 공신 홍윤성이나 학자 김종직의 아버지 김숙자 그리고 한말의대신 조중응이 임금의 윤허를 받고 좌처를 둔 극소수의 사람이다. 세종때 세자빈 김씨가 저주사건으로, 봉씨가 동성애사건으로 잇달아 축출당했는데 이혼이 아니라 여염에서도 해당이 되는 칠거지악으로 신중한 조정의 의론을 거치고 있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는 예상했던대로 다이애나빈과 이혼에 합의했다한다. 결혼 2년에 불화가 시작돼 15년만에 파경에 이른 것이다. 왕세자가 연상의 여인과 밀회한 것이 불화의 발단이요 작년 말 다이애나빈도홧김에 서방질하는 격으로 자신의 불륜을 공개 시인, 파경으로 줄달음친것이다.
동생 마거리트 공주와 맏딸 앤 왕녀의 이혼을 두고 상처를 입은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 며느리의 이혼을 막으려 애썼지만 한국의 칠거지악에도 해당되는 불륜을 공개 시인한 마당에 더 이상 붙잡아 둘 명분과 체면을 상실한 것일 게다.
이를 두고 세상의 언론들은 헨리 8세 이래의 충격이니 윈저공과 심프슨부인이 이룩한 세기의 사랑을 찰스 세자와 다이애나빈이 무너뜨렸느니,말이 많은 왕실 파경이다.
왕자님의 사랑
예전에 한 왕자님이 이었습니다.
그는 남의 나라로 공부를 하기 위하여 유학을 오게 되었는데, 자기가 왕자인것을 남들이 아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왕자이기 이전에 하나의 사람으로 남들이 보아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수행하여 온 하인과 수행원들에게 자기를 왕자로 부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검소한 옷차림과 행실로 사람들에게 자기가 왕자인 것을 감추었습니다.
세월이 얼마간 흐르고 왕자님은 그 도시에서 한 아가씨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무척이나 밝고 어여뿐 이 아가씨는 집이 가난해서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밤에는 남의 가게에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왕자는 그 아가씨를 너무나 좋아하게된 나머지 그 아가씨와 결혼을 하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왕자의 나라에는 한가지 법이 있었는데, 그것은 왕자는 꼭 공주나 귀족 의 가문하고만 결혼을 할 수 있다는 법이 었습니다. 왕자는 고민을 하다가 아버지인 왕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자기가 어떻게 이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결혼을 꼭 해야만 하는지,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 지를 정성껏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자님은 이 편지를 보내고도 자기가 사랑하는 아가씨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왕자인 것을 알고 이 아가씨가 마음으로 너무 부담을 가진 나머지 이전처럼 가깝게 지낼 수가 없을지 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자는 그저 하나의 친구로, 그리고 연인으로 아가씨가 자기를 대해주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한참을 왕으로부터 답장이 없어 왕자는 근심에 싸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드디어 편지가 왔는데, 그것은 절대 안된다는 낙심의 내용이었습니다.
왕자는 계속해서 아가씨를 만나 사랑을 나누며 드디어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왕자의 자리보다 이 여자를 더 사랑한다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왕자는 자기의 아버지인 왕에게 자기가 이제 더이상 왕자가 아니여도 좋다고, 자기는 왕자의 자리를 포기하고라도 이 여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다시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하인들과 수행원들을 불러모아 자기의 나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 후로 얼마 뒤에 그 나라에 왕자의 아버지인 왕이 온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왕자는 이미 그 아가씨와 결혼을 약속하고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왕자는 혹시라도 왕이 자기의 결혼식을 막기 위하여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습니 다.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던 왕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아가씨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 후에 왕이 왔습니다.
역시 왕은 곧 왕자를 자기가 있는 곳으로 불렀습니다. 왕자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주저하는 마음을 간신히 참으며 자기가 사랑하는 아가씨를 데리고 왕이 부르는 곳으로 갔습니다. 왕은 뜻밖에도 엄청나게 커다란 파티를 준비 하고 왕자를 맞아 주었습니다. 왕은 말했습니다.
"왕자야, 진실로 너의 말대로 그 아가씨가 너를 왕자인줄 모르고 사랑을 했는지, 아니면 네가 왕자이기 때문에 사랑을 했는지 아버지도 알고 싶었단다. 그리고 또한 네가 그 아가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알고 싶었고... 이제 너희 둘의 사랑이 진실 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아버지가 너를 위하여 왕명으로 나라의 법을 고치고 둘이서 결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마!"
이리하여 왕자와 아가씨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가 되었 습니다. ...
왕권보다, 그 무엇보다 우리들을 더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그 분은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위하여 아무 것도 없는 자가 되셨습니다. 우리를 부요케 하신 그 분의 가난함을 생각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외모.성적 매력에 이끌린 결혼은 위험
행복한 결혼을 위한 비결은 무엇일까. 근착 닛케이 우먼지는 뉴욕서 활동중인 저명한 결혼전문 정신분석의 바버라 모리슨의 '결혼을 앞둔 여성이 결혼의 안정성을 체크하는 요령'을 소개, 눈길을 끈다.
모리슨은 "집에서 가사를 전담하는 이른바 하우스 허즈번드 가 늘어나는 미국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의 이혼 위기는 여전히 전통적 가치관과 현대사회의 라이프스타일과의 괴리에서 온 다"고 말한다.
다음은 그가 들려주는 체크 포인트. 첫째, 왜 결혼하려 하는가를 자문할 것. 아이가 갖고 싶어서인지, 고독감을 이기기 위해서인지, 성적 욕구 때문인지, 부모나 주변의
압력 때문인지에 따라 적합한 배우자가 달라진다.
둘째, 직업세계에서 성공하고 싶은 여성이라면 자신의 일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배우자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단순히 남편이 가사나 육아를 나누어줄만한 사람인가에서 그치지 말고, 어떤 문제에 부딪쳤을 때 문제 해결 의지가 있는 편인가 아닌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 셋째, 결혼을 앞두고 문제가 생긴 커플은 반드시 두 사람이 함께
정신분석의를 찾아가 볼 것. 이때 남성이 기꺼이 상담을 받고자 한다
면 일단 가능성이 있지만 동행하기를 거부하는 남성은 결혼 여부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상담을 통해서도 갈등이 해소되지 않을 때는 '내가 왜 남성에게 끌렸는가'를 자문해 볼 것. 이성적인 판단보다
는 "아버지와 닮아 서"라든가 외모.성적 능력 등에 끌렸다면 결혼결정을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
요즘 결혼 풍속도
요즘은 결혼을 한다고 하면서도 사실 전적으로 서로 매이는 것 같지 않다. 어떤 분들은, 내가 외국에서 본 대로 둘이 결혼을 하되 딱 계약을 한다. 한달에 얼마씩 생활비로 내기로, 그래서 통장이 다섯개라고 한다. 각자 가지고 있는 것 두개씩, 둘이 공동으로 모아서 하나 가지고 있는 것. 왜 각자가 둘 가지고 있느냐 하면 하나는 얼마있다는 걸 서로 아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서로가 전혀 모르는 것이다. 이렇게 비밀구좌가 하나있고, 서로 얼마 있다는 걸 아는 게 있고, 그리고 둘이 합자해서 한 달 쓰는 평균을 딱 내서 한 통장에 넣어놓고 그것 가지고 쓴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가정은 충실히 지키는 한편으로 다른 누구를 만난다든가 하는 일에는 상관하지 말라는 약속 하에서 결혼을 한다. 그러니까 100% 전적으로 의존하는 게 아니고 몇 가지만 협쳐지는 것이다.
요즘 결혼식
1996. 5. 30 동아일보 / 결혼
어린 시절 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결혼식 얘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농촌에 살던 두 분 모두 10대 초반에 할아버지가 세살 아래였다. 아직 개구쟁이 티를 못벗은 꼬마신랑은 결혼식을 올리려 신부집에 갔으나 결혼식은 관심도 없었다. 함께 간 친구들과 어울려 나무 위에 올라가는 등 놀기에만 바빴다. 어른들이 겨우 달래 혼례는 치렀지만 의미는 전혀 몰랐다. 물론 두분은 그날 처음 상면했다. 약 80년 전인 그 시절에는 신혼여행이란
개념조차 없었다. 신부는 한 남자의 아내라기 보다 새 노동력으로 간주됐다. 집안일과 시부모 봉양은 당연했고 대가족제 아래 자기 자식과 시동생을 함께 키운 경우도 흔했다. 요즘처럼 조금 힘들면 친정으로 달려가 눈물을 보이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풍속도는 엄청나게 변했다. 특히 결혼식 모습의 백출과 해외신혼여행 선호는 오늘의 세태를 실감케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상대를 잘 모른채 결혼하는 것부터 거부한
다. 약혼여행을 하는 커플이 있는가 하면 약혼식은 안 올리더라도 비공식 여행을 다녀오는 커플이 적지않다. 일생을 동반해도 좋을 상대인지 타진해볼 수 있다는 것. 하기야 대철학자 플라톤도 2천여년 전 남녀가 결혼하고 나서 실망하지 않게 자유교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있다. 그러나 부모는 걱정을 안할 수없다. 예식장에서 야외로 나온 결혼식 신풍속은 고공 바다 속, 높은 산 비행기내 등 장소를 안가린다. 서울 정동극장에선
시내악단의 클래식 연주와 혼례를 결합한 '문화결혼식'을 했다고 화제다.
또 신혼여행지로 '제주도 시대는 이미 갔다. 너도나도 해외로 떠난다. 결혼식 전 야외 비디오 촬영은 기본이고 결혼식에만 수천만원을 쓰기도 한다. 개성도 좋지만 화려한 결혼식 뒤에는 부모들의 휜 허리가 있다.
위장 국제결혼의 성행
조선일보 : 96/01/29
중국거주 교포들에게 위장결혼을 알선하고 수백만원씩 받아 챙긴 위장결혼전문알선조직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 알선업자는 주로 한국에서 취업을 희망하는 중국교포여인들을 상대로 했다. 교포여인들은 이들 조직의 주선으로 국내 독신남자들과위장 결혼, 국내에 들어와 한국 국적을 얻은 뒤에는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지 않고 취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수백만원의 알선 수수료가 오고 갔다.
사실 위장 국제결혼사건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나라에만 있는 사기사건이 아니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훨씬 전부터 골치 아픈 사회문제가 돼있다. 위장국제결혼사기는 대부분 취업이나 이민을 위한 것으로 출입국이 매우 까다로운 데서비롯되고 있다. 과거 우리도 사는 형편이 어려웠던 한때 일부 분별없는 사람들이 미국 등으로 이민을 가기 위해 그랬고 일본에 취업길을 떠나기 위해 불법조직의 알선을 받기도 했다. 그런 불법행위를 교훈삼아 우리도 국제화시대에 대비한 법령개정등 관리체제를 정비해 놓았어야 했다.
현재 우리나라 남자가 외국 여자와 국제결혼을 했을 경우 필요한 서류를 갖춰 본인이나 제삼자 또는 우편으로 본적지에 신고만 하면 된다. 미국 여자와는 그곳 행정기관에서 발급한 혼인증서를, 일본의 경우는 혼인사실을 기재한 호적등본을 첨부해내면 우리 호적에 혼인등재가 된다. 중국 여자와의 결혼은 작년 12월부터 좀 엄해졌다. 먼저 남자의 호적등본과 급여액을 써넣은 재직증명 등을 주한중국대사관에 제출, 공증을 받아 중국에 있는 여자측에 보낸다. 여자측은 이를 갖고 그곳 공증처에 가서 초청장을 받아 신랑에게 보낸다. 신랑은 이 초청장으로 중국에 가서 혼례를 치르고 와 자신의 본적지에 신고를 하면 혼인 절차가 끝난다. 이 과정에서 서류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두 남녀의 사실혼 여부를 가리는 여과장치는 없다. 위장 알선조직이 각종 서류의 위조나 사실 은폐를 하려 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호주 일본 등은 국제결혼 신고를 받은 뒤 사실혼 여부를 철저히 점검하고 있다. 가령 3개월마다 거주지를 찾아가 조사를 한다든지 일정기간 관찰을 해 위장결혼이 아니라는 확신이 선 뒤에야 국적취득을 허용한다.
호적관서에 신고하는 것만으로 혼인사실이 인정돼 국적이 취득되는 지금의 우리관리체제로는 위장결혼범죄를 막을 수 없다. 국제결혼 관리체제의 정비를 서둘러 중국 교포여인들의 피해를 방지하고 사기의 여지를 줄이기 바란다.
유대인들의 삼단계 결혼
유대사람들은 결혼이 3단계로 이루어진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약혼, 정혼, 결혼이 있다. 약혼이라는 것은 당사자들과는 관계없이 부모가 정하는 것이다. 부모끼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벌써 서로의 아들, 딸을 결혼시키자고 약속을 해놓고 만다. 당사자들은 자라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제 정혼이 이루어진다. 부모들의 허락과 본인들의 생각이 합쳐져서 완전히 결혼하기로 약속이 된다. 이것이 정혼이다. 이 때에 바로 호족수속을 한다. 이제 법적 구속력이 작용을 한다. 만일에 그 기간에 가령 남편이 죽는다고 하면 색시는 처녀과부가 된다. 그만큼 정혼은 중요하다.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사회적으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다하게 된다. 이래서 성경에도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정혼한 사이인데 지금 호적하러 여행을 하게 되었다는 말씀이 있는 것이다. 정혼 기간은 일년이다. 그리고 뒤에는 결혼식을 하고 가정생활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정혼 기간에 마리아가 임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요셉은 자기가 자기를 안다. 요셉으로 볼 때는 이것이야말로 자기는 관계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마리아로 볼 때에도 요셉이 이것을 믿어주느냐 하는 것이다. 가차없이 끌려나가 죽게 되느냐, 요셉이 믿어주느냐였다. 성령으로 잉태되는 사건을 받아들이는 순간에 그녀는 엄청난 결단을 내려야 했다. 대 포기가 있어야 했다. 엄청난 희생을 각오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대단히 중요한 믿음이요 헌신이었다.
그래서 본문은 이렇게 말씀한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리고 마리아는 대답한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말이다.
그대만을 사랑한다는 말.
아름다운 女人을 향하여 "나는 영원히 그대만을 사랑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내가 있다. 여인들은 이 말을 들으면 황홀한 기분에 젖어들 것이다.그러나 이런 말을 들을 땐 순간적으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물속의 잉어가 맛좋은 낙시밥에 정신이 빼앗기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낚시꾼의 손에 걸려 한끼 매운탕거리로 변하기 십상이듯 이 때 자칫 잘못하면 정신나간 잉어꼴이 되겠기 때문이다.
생각을 한번 정리해 보자. 영원한 사랑이 이 땅에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이땅엔 고정 불변한 것도 없고 영원한 것도 없다.
영원을 약속하는 바로 그 사람도 기껏 70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우주적인 시간, 즉 영원에 비하여 70년이란 실로 찰나에 지나지 않는 하루살이 목숨인데 어찌 감히 영원을 입에 담겠는가?
이치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永遠을 約束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 땅에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극히 초보적인상식도 모르는 멍청이 이거나 아니면 그것을 알면서도 머리 빈 여인을 낚기 위한 수단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그 다음에도 있다.
"그대만을 사랑한다"는 약속도 한번 짚어 보아야 한다.
사랑이란 결코 단일 品目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사랑은 곧 삶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자녀들도 사랑하고, 친구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하고, 부모도 사랑해야 하는 게 인간의 삶이다. 그런데 어찌 그대만을 사랑하겠다는 것인지.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사람은 人間的인 삶을 拒否한 사람일 것이다.
하긴 나만을 사랑하는 인격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완전하신 하나님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 서푼짜리 인간이 이같이 엄청난 약속을 한단말인가?
원래 사랑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우난히 떠벌리는 사람치고 사랑의 사기꾼이 아닌 자가 몇이나 될까?
사랑의 본체가 되시는 예수님은 말없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향하신 그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롬5:8)
말없는 사랑의 예를 실 生活에서 하나 들어보자.
아들이 철길에서 위험한 狀況에 빠졌다고 가정해 보자.
기차는 달려오는데 그 엄마가 한가하게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말하노니 지금 당장 그곳에서 나오너라. 아니면 기차에 치여 죽고 만다."
라고 읊을 수 있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엄마는 말없이 무섭게 뛰어들어 아들을 철천지 원수 떠밀어 내듯 밀어 팽개치고 말것이다.
그녀의 생사는 그 다음의 문제가 될 뿐이다.
사랑은 그런것이다.
사랑은 말에 있지않고 또 언제나 달콤한 것도 아니다.
만약 사랑에 말에 있고 또 그것은 꿀같은 것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사람은 하루도 못가서 사랑의 쓴 맛때문에 고통을 당해야 할 것이다.
사랑은 전 인격적인 삶으로 표현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바로 아는 사람만이 참 사랑을 향유할 자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의식개혁] 결혼문화 달라져야 한다
[국민일보] 97.12.1<李康美 기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과소비관행중의 하나가 혼례문화다. 우리나라 신혼부부 한쌍의 평균 혼례비용은 7천5백만원이고 1년동안 45만여명이 결혼하면서 25조3천억원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최근 전국 1천2백가구를 대상으로 「혼례소비실태 및 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이는 미국의 4.8 배, 일본의 3.3배, 싱가포르의 7.3배에 달하는 수치다.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해마다 국민총생산의 6.5%, 국가 세출예산의 43%에 해당하는 25조원 이상을 결혼과 관련해 소비하고 있다는 통계다. 신혼부부 한쌍을 탄생시키는데 도시근로자 월 평균소득의 35배에 달하는 비용이 드는 셈이다.
그러나 실제로 드는 비용은 발표수치보다 훨씬 크다는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혼수장만, 예식장 사용료, 드레스, 신혼여행 등이 날로 고가화하는 추세여서 혼례에 필요한 경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추세다. 특히 신부쪽의 경우 과다한 혼수에다 예단, 지참금 등 혼사를 한번 치르고 나면 허리가 휘고 기둥뿌리가 뽑힌다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대부분이 호화·사치스럽다(86.6%)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렇게 된 주원인은 체면문화(74.5%), 과시적 사회풍조(51.1%), 물질만능사회풍조(31.3%)에 있다고 판단했으며 조사대상의 절대다수인 98.7%가 과다비용의 개선을 희망했다.
결혼문화원 신산철총무는“평생 한번인데 무리해도 괜찮다는 의식이 팽배, 빚을 져가며 호화혼수를 장만하고 있다”면서 “가정경제를 흔들어 놓는 호화,사치혼례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져 간소하고 내실있게 치르는 혼례문화정착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梨大의 旣婚총장
1922년 10월 18일 이화여고보의 6대 교장으로 취임한 아펜셀러는 학교가 언젠가는 한국여성에 의해 운영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모교애 재직중인 박인덕(朴仁德)을후계자로 점찍고 있었다.좀 더 큰 재목으로 키우기 위해 아펜셀러교장이 은밀하게 미국 웨슬리언대학에 유학을 주선하고 있던 중 박인덕은 스승의 뜻을 저버리고 한 부호(富豪)의 자제와 결혼했다.박인덕은 학교도 그만 두었고,아펜셀러는 그 꿈을 곧 박인덕의 3년 후배인 김활란 (金活蘭)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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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덕의 결혼생활은 불과 몇년만에 실패로 끝나고 미국에 건너가 생활하다가 60년대 중반 고국에 인덕실업학교를 설림하는등 "이화"와는 관련없는 삶을 살게되지만 그것이 "이화"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었던 첫번째 "사건"이었다. 5.16군사쿠데타직후인 61년 9월 혁명정부의 "교육에 관한 임시특례법"에 따라 김활란이 총장직을 물러날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자신의 조카이기도한 김정옥(金貞玉)등 몇몇이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으나 김활란은 이름조차 생소한 40세의 "처녀" 김옥길(金玉吉)을 후임자로 지명한 것이다.
79년 봄 김옥길이 총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공표했을 때 재단 이사회에서는 ″기혼총장″문제를 조심스럽게 논의했으나 김옥길은 "앞으로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아 정의숙(鄭義淑)을 천거했다. 김활란.김옥길과 같이 역시 "미혼의 독실한 신앙인"이란 공통점을 갖춘 것이다.
이대의 학칙은 ″미혼″을 총장이 되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으로 규정하지 않는다."외국인과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정도로만 제한을 두고있을 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미혼 이어야만 총장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보편화되기에까지 이른 까닭은 무엇일까.똑같은 여건에서라면 미혼여성이 기혼여성보다 학교를 위해 전력투구를 할 수 있고,우리의 전통적 가족제도와 사회 의식 속에서 기혼의 여성 총장은 여러가지 제약에 얽매이지 않겠느냐는 생각때문일 것이다.하지만 시대는 많이 달라졌고 그런 발상에서 탈피할 때도 됐다.
새 총장에 기혼여성이 선출된 것은 그런 점에서 1백10년의 역사를 쌓은 이화여대의 변모된 새모습이라 할만 하다.김옥길 전총장의 "언젠가는"이 다소 늦은 감도 없지 않다
이성교제와 결혼
결혼에 대한 가장 원론적이고 구체적인 지침을 주고 있는 것은 성경 말씀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하며 사랑을 나누고 친밀함을 나눌 대상으로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관리하고 다스릴 동역자로서 아담을 창조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서 독처하는 아담의 필요를 채워 주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원대한 계획들을 성취하기 위하여 아담의 돕는 배필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녀를 이끌어 아담에게로 안내하셨으며, 이것이 인간세계에 있어서 결혼 제도가 성립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이후로 하나님께서 "이러므로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 지로다.(창2:24)"라고 말씀하심으로서 결혼 제도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나타내셨다.
성에 대한 아시아의 전통적인 견해
☞ 이율배반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이라는 견해 : 다산과 정력은 축복으로 여겨졌다.
+-위험스럽고 악한 것이라는 견해 : 피해야 할 일로 간주되어 금기시 되었다.
☞ 다산의 축복을 염원하는 마음과 구원을 위한 수도의 과정으로서의 금욕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는 생각의 차이를 좁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맹자 : 인간의 불효막심한 죄 3가지 가운데 하나를 남자 후손을 남기지 못하여 대를 잇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간디 : 자녀 출산의 목적과 동떨어진 성적 연합은 "귀한 정력을 낭비하는 범죄"라고 확신했다. 또한 그가 말하기를 "자제하는 사람이 건강하며 장수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심지어 두통 같은 것조차 앓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는 결혼후 몇 년 동안의 결혼 생활을 한후 36세가 되어 일체의 성행위를 삼갔다고 한다.
오늘날 아시아의 젊은이들은 성에 대한 상이한 두 가지의 접근 방식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성행위를 통한 즐거움만을 강조하는 견해와 "자녀 출산"을 목적으로 하는 견해 사이의 견해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
성에 대한 성경적 견해
하나님 자신이 성을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체 및 인격구조 속에 성적 욕구와 잠재력을 함께 지으셨다는 말이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판단을 거스릴 수 없다.
성이라는 말 속에는 몇 가지 중요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신체적인 차이와 조화
상호 역할의 차별성
자녀 출산과 양육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이룸
성적 욕구와 충동
성행위를 통한 즐거움과 인격적인 연합
※ 이성에 대하여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은 "세속적인 것"도 "비영적인 것"도 아니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 위에서 언급한 성적인 행위들은 하나님께서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은밀하고 신비로운 축복이다.
이성 교제(DATE)
우리들이 지극히 영적이라고 생각하는 모임일수록 이성과의 교제에 대하여는 금욕주의적인 성향을 보여왔고 이것을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
많은 경우에 이성 교제와 결혼은 형제 자매들로 하여금 주님을 섬기는 일을 방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에 대한 보수적이고 금욕적인 견해는 겉으로 보기에 굉장한 그 무엇으로 비추어지기도 하지만 자연적인 성적 감정과 충동을 제거하는 데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골2:21-23)
이성 교제의 과거와 현재
과거 /
공자의 시경에 관해 언급하면서 제임스 레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젊은 사람, 특히 숙녀는 결혼이라는 일에 관여할 수 없다. 결혼은 그들의 부모가 모두 주선한다. 그들은 그저 부모님의 명령을 기다려 야만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고 그들의 욕구나 기호에 따라 충동적으로 결혼하게 되면 그들은 하늘의 도리를 위배한 것이며 운명의 법칙을 어긴 것이 된다."(시경1편)
우리 나라 : 남녀간의 연애는 불명예스럽고 죄악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어떤 경우에든지 연애 결혼은 불효로 여겨졌다. 이조 시대의 법은 자유연애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어겼을 시에는 엄한 형벌에 처했다.
현대 /
각자가 자신의 생의 동반자를 선택하는 것은 각 개인에게 주어진 권리요, 책임으로 인정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되었다.
바람직한 이성 교제
우리들은 배우자를 올바르게 선택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을 이루 기 위하여 이성 교제를 필요로 한다. 이성 교제는 결혼과 결부시키지 않고서라도 풍요로운 경험과 바람직한 인격 형성을 위하여 필요하다. 한 남성이 남성적 관점 이외에 여성적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며, 우리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성 교제의 단계
공동체 속에서의 이성 교제 : 개인대 개인, 커플대 커플이 아닌 공중 속에서의 만남을 말한다. 우리가 이성에 대하여 눈뜰 수 있고, 부담 없이 바라볼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교제할 수 있는 교제를 말한다. 한 자매가 여러 형제들의 특성을 비교하면서 바라볼 수 있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이성상을 그려볼 수도 있다. 이러한 교제는 이성에 대하여 지켜야할 기본적인 예의와 태도를 익히게 해주며, 개인적인 교제를 준비시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공동체 속에서의 이성 교제가 우리들에게 주는 가장 큰 유익은
하나님 안에서 이성을 보는 성숙한 견해를 키워 준다.
어디론가 발산하여야 하는 이성에 대한 감정들을 성급한 선택이 아닌 자연스런 인관 관계를 향해 발산할 수 있게 해준다.
이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예의를 알게 한다.
그룹과 그룹간의 이성 교제 :
일대일의 이성 교제가 아닌 둘 이상의 형제자 매들이 함께 만나서 교제를 갖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들은 특정한 이성에 대한 좀더 깊은 지식과 이해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교제의 장점은 생산적인 교제를 할 가능성이 많으며, 불필요한 긴장이나 무거운 분위기 대신 다양한 유머와 재치로서 서로를 기쁘게 하고 동역자로서의 면모와 팀웍, 멤버쉽을 키워갈 수 있다.
일대일의 이성 교제 :
교사선교회에서 언급되는 '이성교제'라는 말은 이 단계의 이성교제라고 이해하면 된다. 공동체 속에서와 소그룹 속에서의 충분한 교제의 과정을 거쳐온 형제자매가 결혼과 자신이 이루고자하는 가정을 내다보며 신중한 기도와 자신의 영적 리더들과의 충분한 상담을 거친 후 일대일 교제를 갖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분명하게 인식해야할 점은 "이성 교제의 시작이 결혼하겠다는 약속내지는 결심으로 시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데이트를 신청하는 것이 청혼을 하는 것과 같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혼을 내다보며 교제하는 것이지 그 사람과의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교사선교회는 일대일의 이성 교제에 있어서 지나치리만큼 신중한 정책을 취해오고 있다. 이러한 정책을 두고 그 이면에 있는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교사선교회 회원, 나아가 리더들까지도 그러한 정책을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굴레로 느끼기도 하는 듯 하다.
이 시점에서 교사선교회가 일대일 이성 교제에 대하여 지나치리 만큼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제자 훈련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논산훈련소 혹은 각 사단에서 운영하는 신병훈련소를 생각해 보자. 이성 친구와 손을 흔들며 작별하는 남성들을 흔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자 친구를 데리고 군대에 입대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한국 남성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사회에 사랑하는 이성 친구를 두고 신병 훈련을 받아야하는 신병의 훈련은 더없이 힘이든 것이다.
성경에서도 주님의 군사로 부름 받은 사람은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고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으며, 바울사도는 결혼하지 않은 자매들은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고민하지만 결혼한 자매들은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까를 먼저 생각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성경을 함께 봅시다. <마4:18-2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다. 예수님의 부름에 대하여 베드로와 안드레는 고기잡이 그물을 버려둔채 주님의 부름에 순종하여 즉시 주님을 좇았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어지는 말씀에 주님은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부르신다. 그들은 함께 하던 아버지와 생업의 터전인 고깃배를 버려두고 주님을 좇았다.
누가복음 9장에서는 상을 당한 제자가 그 아버지를 장사한 후 주님을 좇게해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요청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라는 것이었다. 또 다른 제자는 주님을 좇기 전에 가족을 먼저 작별케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요청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손에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다"는 것이었다.
주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고 그 길을 가는데 있어서는 치루어야할 대가가 있으며, 절제하고 헌신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는 말씀이다. 때로는 부모를 떠나야 하며, 때로는 생업의 터전을 포기해야 하며, 때로는 사랑하고 있는 사람, 또 때로는 일정 기간동안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해야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포기한다는 것은 "주님의 뜻을 좇기 위하여 자신의 귀한 것을 헌신한다는 뜻이다." 무가치한 것을 포기해 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참으로 중요하고 귀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시려는 고귀한 뜻이 더욱더 중요하기에 나의 것들을 차선으로 미룬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시각,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시각으로 이성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개인적인 이성 교제를 절제하자는 것이다.
미성숙한 사람일수록 많은 실수가 많다. 그러한 실수는 때때로 자신과 상대의 영혼 속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러한 실수로부터 지체들을 배려하고 보호하자는 것이다.
제자훈련을 충실히 행할 수 있는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교사선교회는 주님과 주님의 마음을 품은 리더들이 주님의 제자들을 양성하는 훈련장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훈련장이 각 개인들의 사생활들로 가득한 곳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회원들로 하여금 폭넓은 교제를 갖게 하자는 것이다.
개인적인 이성 교제가 시작되면 한 개인에게 많은 관심과 생각들이 집중될 수 밖에 없으므로 훈련 기간 중에는 개인적인 이성 교제를 주님께 헌신하자는 것이다.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디모데 후서2:22)"는 말씀은 이러한 뜻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제언 ///
공동체 안에서 이성간에 건전하고 자연스런 우정을 키워 가라.
함께 훈련받는 믿음의 친구들로서,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해나가는 동역자로서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이러한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형제와 자매의 적절한 역할과 태도를 배울 수 있으며, 개인적인 교제를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이성 교제를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배워야하는 기간 동안 하나님을 향하여 헌신(포기)하겠다는 각오를 하라.
자신의 경우가 아닌 지체들의 경우, 자신이 그의 영적 리더나 사랑으로 맺어진 동역자가 아니라면 지나친 관심과 판단을 삼가하라.
이성 교제를 헌신의 차원이 아닌 인내의 차원에서 다루는 사람은 다른 지체의 교제에 대하여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기 어렵다.
덕을 세우지 못하고 형제자매들을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리더들이 앞장서서 단속하고 절제시켜야 한다. ? 그렇다면 언제까지 헌신해야 하는가?
그가 주님께 배우는 일에 헌신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배우자를 향한 바른 관점과 방법으로 교제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시점까지이다. 그렇다면 그 시점은 구체적으로 언제가 되는 것인가?
일반적으로는 교대 재학시절까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의 특수한 상황과 형편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으며, 특히 자매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4학년 이후의 시점에서는 교제를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대한 판단은 그의 직계리더들과 당사자의 충분한 기도와 상담에 의하여 판단하며 교대 담당 간사의 동의가 있은후 개인적인 이성 교제를 시작하도록 한다.
개인적 이성 교제의 내용
주님의 제자라는 신분에 합당하다면 어떠한 교제라도 좋을 것이다.
서로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충분한 대화를 하라.
교제하고 있는 상대방 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들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는 서로를 보다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정보들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친구로서의 우정을 나눌 수 있는 활동들을 함께 하라.
스포츠, 영화, 독서, Q.T sharing 등을 함께 하면서 서로의 기호와 취미 등을 알고 함께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알아 가는 것은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젼과 이상을 함께 키워가라.
성격과 생활양식이 비슷하여 별 문제가 없는 커플이라고 할지라도 인생의 꿈과 목표가 다르다면 결국 다른 길로 걸어갈 수밖에 없고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연합보다는 분리되고 나누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반면 성격의 차이가 있고 생활습관이 조금 다르다고 할지라도 비젼이 같고 삶의 목표가 일치한다면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차이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연합되여져가게 될 것이다.
스킨쉽에 대한 이해에서 자라가라.
이성간에 나누는 스킨쉽은 의도적인 것 보다는 자연스럽고 서로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기뻐하시지 않고, 마음에 꺼려지는 스킨쉽에 대하여서는 언제든지 "안돼"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결혼 전에 나눌 수 있는 신체적인 접촉에 대하여 각종 신앙서적과 지도자들은 각기 조금씩 상이한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이것에 대하여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예화가 있다.
[예화] 대학을 입학하는 만호에게 만호의 아버지는 그 동안 만호를 위해 저축해온 50만원을 건네주셨다. "만호야, 너는 네가 필요로하는 곳에 이 돈을 쓸 수 있다. 그렇지만 만일 네가 이 돈 중에서 얼마가 되든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때까지 아끼고 보관할 수 있다면 내가 너에게 매달 그 남은 금액만큼을 주겠다." 이성간에 나눌 수 있는 스킨쉽을 통한 하나님의 축 복은 위에서 제시한 예에 매우 적합한 적용점입니다.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라면 결혼전의 스킨쉽을 절제할 줄 알 것입니다.
★ 어떤 수준의 스킨쉽이라도 결혼에 대한 서로간의 확신이 서기전에는 나누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자신과 상대를 보호해주는 길이다.
♣ 결혼전 성관계와 결혼에 관한 일반적인 견해 9가지
- 성결한 결혼을 간음이라는 죄로서 시작할 수 있다.
- 혼전 관계를 맺은 커플들은 그렇지 않는 커플들보다 결혼 전에 헤어질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
- 건전한 생각을 가진 형제자매라면 누구나 다른 누군가와 성관계를 맺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 순결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혼전 관계를 맺은 커플들은 그렇지 않은 커플들보다 결혼한 다음 이혼할 가능성이 더 많다.
- 순결하지 못한 사람들은 순결을 지킨 사람들보다 결혼후 간음을 행할 가 능성이 높다.
- 순결을 지키지 못한 여성들은 잘못된 짝과 결혼하도록 기만당할 가능성이 많다.
- 혼전 관계를 경험한 사람들은 결혼한 후에 이루어지는 온전한 성생활에 만족할 가능성이 적다.
- 혼전관계는 배우자를 향한 신뢰와 존경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 하나님 안에서 결혼한 아내와 남편이 아닌 이성과 성적인 관계를 갖는 실수를 한 경우에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했음을 분명하게 회개하고 그 길에서 돌이켜야 한다.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깨끗케 하심을 믿고 의지하여야 하며, 주님을 의지 하여야 한다.
회개한 이후의 미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범죄한 일의 결과로 나타나는 자기 영혼의 상처와 대인관계의 어려움은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에 의하여 회복될 수 있다. '마리아의 예를 보라'
교제하는 사람의 사회적, 물리적 환경에 대한 이해를 분명히 하라.
구 혼
구혼은 이성간에 충분한 교제의 시간을 갖고 난 이후에 있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며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이성교제에 있어서 교제하는 과정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분명한 확신에 근거한 것이어야 하며, 결혼을 약속하는 말이나 의식에는 분명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 또한 결혼에 대한 약속은 어느 일방의 확신에 의한 것이어서는 절대 안되며, 쌍방이 모두 결혼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한다.
♣ 바람직하지 못한 구혼
몇 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구혼의 모습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신중에 기도와 확신에 근거하지 않는 성급한 구혼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정지으며 다가가는 부담스런 구혼
- 어떤 신실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녀와 함께 하는 신실한 교회형제들 가운데 3명이 그 자매에게 구혼을
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결같았습 니다. "당신이 나와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 같아요. 전 그런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구혼하는 자리에서 상대의 응답을 요구하는 구혼
사회적인 환경(부모님, 영적 리더의 의견)을 고려하지 않는 구혼
♣ 바람직한 구혼
그리스도 안에서 바람직한 구혼은
충분한 교제에 의한 이해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다.
부모님과 영적 리더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터 위에서 이루어진다.
상대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며, 그의 뜻을 존중하는 태도를 취한다.
약 혼
약혼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형제 자매 사이에 결혼에 대하여 약속을 하는 말과 의식, 혹은 징표들을 포함한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약혼에서 결혼에 이르는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
♣ 약혼을 하기에 앞서서 교제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나누고 있는 사랑이 낭만적 연정인지 진정한 사랑인지를 확인하여야 한다.
☞ 낭만적 연정의 특성
즉각적이며,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한 눈에 반하였다고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성이 결핍되어 있다.
예) 경제적, 사회적으로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결혼부터 하자.
성급하고 지나친 스킨쉽을 요구한다.
한 사람이 같은 기간 내에 또 다른 사람과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자기 중심적이며 애정의 변화와 기복이 심하다.
항상 둘만 있으려는 성향이 강하다.
교제하는 그리스도인 커플은 둘이 있기를 갈망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과 절연하지 말아야 한다.
☞ "풋나기 사랑은 풋나기 사랑을 낳는다"(Puppy love leads to a dog's life.)
☞ 진정한 사랑은 깊고 풍부한 묵상과 생각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나며, 절대 일시적이지 않다. 그것은 자기중심적이기보다는 이타적인 것이며, 성급한 욕심보다는 미래를 바라보는 이상과 그것을 이루고자하는 준비하는 마음이 바탕을 이룬다. 이 사랑의 마음은 지극히 아름다운 이상의 세계를 꿈꾸지만 현실을 간과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이 사랑은 상대방을 향한 지극한 애정을 내포하고 있지만 상대를 소유하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나몰라라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드와잇 스몰] 이라는 분은 "그리스도인을 향한 기대"라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진정한 사랑으로 교제하고 있는 커플들은 단지 서로만을 바라보지 않는다. 둘이 함께 그들 주위의 더 커다란 생을 바라보며, 공동의 관심사를 넓히고 우정을 나누며 어떤 과업에 함께 도전한다. 그들은 인간이 성숙한 관계를 통해서 헤쳐 나가야 할 중요한 문제들에 함께 직면한다. 그들은 둘, 혹은 그 이상이 합쳐진 하나의 연합체로서 이 세상에서 책임있게 해야할 일들과 모든 문제들을 함께 바라본다."
♣ 결혼을 약속하기에 앞서서 던져보아야하는 중요한 질문 6가지
이 형제(자매)는 분명한 믿음의 확신(고후6:14-16)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젼을 가지고 있는가? 또한 그 비젼을 이루고자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그 비젼의 성격과 내용을 나의 삶에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 형제(자매)는 신체적으로 나와 조화를 이루는가?
나는 사람들 앞에서 그 형제(자매)와 함께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가?
이 형제(자매)는 지적으로 나와 조화를 이루는가?
함께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풍부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형제(자매)는 사회적으로 나와 조화를 이루는가?
이 부분은 절대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그 형제의 가정적 배경, 사회적 배경에 대해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하며, 가족들의 찬성과 축복이 있어야 한다.
이 형제(자매)는 내 아이의 아빠(엄마)가 되어도 좋겠는가?
이 형제(자매)는 성실하고 검소한가?
결 혼
실제적인 의문들
1. 이성교제에 대한 교사선교회의 지침은 모든 회원들에게 적용되는 것인가?
☞ 모든 회원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양육에 헌신하고 있거나 양육받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2. 교대에 입학하기 전부터 교제하고 있었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 결혼을 약속하였다거나 결혼에 대하여 두 사람이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소속된 양육 팀의 직계 리더들과 충분한 기도와 상담을 통화여 양육과 이성교제를 병행할 수 있을 것인지, 양육과 이성교제 두 가지 중에서 어느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정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정리된 내용에 대하여 최종적으로 간사의 동의를 얻도록 해야 합니다.
3. 일대일의 이성교제에 있어서 직계리더들과 아무런 의논이나 허락 없이 이성 교제를 시작했을 경우는 어떻게 되나요?
☞ 어린 영혼들의 경우에는 있을 수 있는 실수로 인정하고 양육팀 내에서 양육하는 과정을 통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정되어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교사선교회의 책임있는 리더들로서 그러한 실수가 있어질 경우에는 리더직을 회수하거나 근신할 수 있는 징계를 받게 될 것입니다.
4. 선교회 밖의 형제자매와 개인적인 교제를 시작하는 것도 동일한 적용을 받게 됩니까?
☞ 물론입니다. 일대일 이성교제를 헌신한다는 것은 제자훈련에 헌신하고자하는 사람들이 제자들이 그물을 버려두고, 부모와 가족을 버려두고 주님을 좇았던 것처럼 우리들이 즐겨 헌신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믿습니다.
5. 이성교제는 하지 않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일정기산 후의 교제를 약속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일정기간동안 이성교제를 주님 앞에서 헌신하고 자 한다면 그런 조급한 약속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약속은 이성에 대하여 끌리는 마음의 심지에 불을 당겨 놓고 내 마음은 주님께만 헌신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약속은 머지않아 당신에게 벗기 어려운 올무가 되어서 당신을 괴롭힐 것입니다.
6. 리더와 간사님이 허락한 교제는 정말 자유롭게 해도 되는 것입니까?
☞ 물론입니다. 최대한의 축복과 성원을 보낼 것입니다. 단 다른 지체들에게 혹여 어려움을 주게 되는 경우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경우에는 스스로 절제할 줄 아는 성숙함이 필요할 것입니다.
7. 리더와 간사님이 허락한 교제는 공동체 앞에 공개된 후 진행되어야 합니까?
☞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당사자들의 상황과 의사를 존중하여 비밀에 붙일 수도 있으며 가장 바람직한 때에 지체들에게 알려서 축하를 해줄 수도 있습니다.
8. 다른 팀의 사례를 가지고 우리팀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나요?
☞ 없습니다. 각 양육팀 내에서의 직계리더들과 당사자, 그리고 간사님이 함께 내린 결정은 그 독립성(개별성)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9. 교제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그것을 리더와 간사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과정을 예를 든다면?
예를 들어) 광철형제가 광순이라는 자매에 대하여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갖게 되고 그 마음의 깊이가 더해가고 있다면 먼저는 그 문제를 하나님께 들고가서 일차적으로 응답을 구합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서도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없을 때에는 자신의 양육리더에게 그 문제를 들고가서 구체적인 상담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 분명히 할 점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이성에서 먼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다 이야기한후 리더를 찾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리더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에게 통보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리더와 충분한 기도와 상담을 거친후 직계리더들이 이성교제를 시작하는 것에 대하여 찬성하는 쪽으로 결정이 나면 이 결정을 가지고 간사님을 찾아가 상담하고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주의할 점은 이 때까지는 교제하고자하는 이성간에 구체적인 애정의 표현이나 약속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솝.주정꾼과 결혼한 여인
한 여자가 주정꾼을 남편으로 맞았다.
남편의 술 버릇을 고치기 위해 아내는 다음과 같은 계획을 짰다.
어느날 남편이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돌아오자 아내는 남편을 어깨에 메고 공동묘지로 가 남편을 내려 놓았다.
남편의 술이 깰때쯤해서 아내는 다시 공동묘지로 가서 묘지의 철책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누구요?'
술 취한 남편이 물었다.
'죽은자에게 먹을것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오.'
아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남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리에겐 먹을것이 아니라 마실것이 필요하단 말이오.
목이 말라 죽은 나를 앞에 두고 먹을 것 얘기를 하다니!'아내는 가슴을 치며 탄식했다.
'이런 나쁜 술버릇을 고치려 한 것이 더 지독해지게 만들어 버렸네.
그래도 지금까지는 나쁜 버릇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건 아주 천성이로구만'
이혼 재결합
1966년 미국 배우 아트 카니는 26년간 함께 살아 온 아내 진과 이혼했다.
두 사람은 각각 재혼했지만, 얼마 후 두 사람 다 두 번째 배우자와 헤어졌다.
카니의 말에 따르면 1979년 어느 봄 날 그는 진이 살고 있는 옛 집에 불쑥찾아갔단다. "나는 문을 똑똑 두드리고, '여보, 돌아왔오. 오늘 저녁 식사는뭐요?' 하고 말했지요, 그러자 진이 '어서 들어오세요' 하더군요."
카니 부부는 재결합해서 잘 살았다.부부란 이런 것이다. 울고불고 싸우는 경우도 있기야 하겠지만 가정속에서
하나님이 맺어준 끈은 결코 인간이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편 혹은 아내와의 끈이 헝클어진 듯 보이는가? 당신이 먼저 상대방의 문을 두르려라. 또, 상대방이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 곧 대답하라. "어서 들어오세요"라고.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부부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 아내를 까닭없이 괴롭히지 말라. 그 녀의 눈물방울을 하나님께서 세고계시니까(탈무드)
이혼시대
19세기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평생 독신이었다.하지만 그는 결혼의 본질이 무엇인가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결혼은 자기권리는 절반으로 하고 의무는 배(倍)로 걸머지는 일이다."
미국은 이혼대국이다. 부부 두쌍중 한쌍이 이혼하고,아이들 세명중 한명이 혈연(血緣 )의 부모와 살지 않는다.미국에선 "무과실법"에 따라 배우자가 별 하자(瑕疵)가없어도 어느 한쪽이 이혼할 의사
가 있으면 이혼할 수 있다.일부에선 무과실법을 "가정을 파괴하고 결혼의 신성함을 더럽히는 법률적 테러"라고 혹평한다.미시간주(州)는 최근 무과실법 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법정에서 이혼의 불가피성을 증명하도록 함으로써 이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은 지난 94년 이혼건수가 19만5천1백15건으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인구1천명당 이혼율도 1.57로 지난 83,84년 이혼 붐에 이어 제2차 이혼 붐을 이뤘다.특히 결혼생활 20년 이상된 숙년(熟年)이혼이 전체의 16%를 넘었다. 미혼화(未婚化)현상도 두드러진다.지난 75-90년 미혼율은 남자 1.5배,여자 2배로 증가했다.50세 시점에서 결혼경험이 전혀 없는 생애미혼도 전체의 9%를 차지한다. 우리나라도 최근 이혼이 급속히 늘고 있다.지난 70년 한해 1만건 수준이던 것이 94년 6만5천8백40건으로 늘었다.인구 1천명당 이혼율도 70년 0.64에서94년 1.94로 높아졌다.숙년이혼 비율도 85년 4.7%에서 94년 7.9%로 높아 지고 있다.특기할 것은 배우자 부정으로 인한 이혼은 주춤한 대신 배우자로부터의 부당한 대우로 인한 이혼이 늘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편부모(偏父母)가정이 1백만 가구를 넘는다.이중 편부가정의 7할,편모가정의 19%가 이혼,배우자 가출 등 가정불화 때문이다.
요즘 우리사회에선 이혼이 일반화하고 있다."즐거운 이혼","억압으로부터의 탈출" 등 이혼을 미화하는 분위기마저 있다.이혼은 개인적 선택행위다.그러나 그 선택의결과는 사회적으로 나타난다.사회의 최소 단위인 가족의 파괴는 바로 사회의 파괴로 연결된다.권리는 줄이고 의무는 키우는 극기(克己)와 절제야말로 건강한 가정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혼과 자녀
[한겨레신문] 97.12.06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알 듯, 웬만큼 먹고 살만해야 사랑이나 결혼도 훨씬 수월하다. 저임금, 고실업 시대가 오게 되면 모르긴 몰라도 파탄나는 집이 적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자식을 위해 일생의 모든 것을 희생했던 전후세대와는 달리 요즘은 이혼을 매우 쉽게 생각한다. 물론 너무나 심각한 성격장애로 자녀들도 괴로움을 당하거나 구타 등 폭력을 가하는 배우자라면 헤어지는 쪽이 자녀들에게도 훨씬 낫다. 그러나 조금만 참고 이해하면 극복할 수 있는 갈등도 너무나 빨리 포기하고 이혼해 버리면 당사자도 당사자이지만 자녀들이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기도 한다.
정신의학자 델데인은 이런 이혼 자녀들의 심리상태를 다음과 같이 분류해 기술해 놓았다. 우선 유아의 경우는 부모들이 자신들의 갈등에만 너무 집착하여 자녀들에게 소홀히 할 수 있으며, 또 갑작스럽게 어머니와 헤어지는 경우 모성박탈 때문에 자라지도 않고 웃지도 않는 유아 우울상태를 관찰할 수 있다고 했다.
걸음마 시기에는 분리독립과 자발성을 획득해야 하는데 갑작스럽 게 부모가 사라져서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되면 우울증과 분리불안이 심하게 될 수 있다고 한다. 또 아주 낯선 사람이 아이를 돌보게 되면 이 때문에 상황이 더욱 꼬여 무조건 `싫어 싫어' 하는 식으로 반항하거나 퇴행하기도 한다.
학령전기, 즉 오이디푸스 시기에는 부모에 대한 적개심이 매우 강해져서 고집을 부리거나 자신 때문에 부모가 헤어진 것이라고 오해하여 자기학대 경향이 생길 수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기쯤이라면 분노, 공포감, 외로움 등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매우 애를 쓰지만 학교 성적이 떨어지고 신체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 부모이혼으로 비뚤어진 웃형제가 동생을 못살게 군다면 상황이 더 나빠지기도 한다(영화 <필링 미네소타>처럼). 자녀가 사춘기에 이르렀을 때 이혼 후 곧장 새 상대를 만나 집에 데려오거나 한다면 자녀들도 성적 일탈행동을 보이고 폭력적인 경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기왕에 어쩔 수 없이 결정하게된 이혼이라면 자녀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해주어야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는다. 우선은 자녀들이 정체성 확립에 흔들림이 없도록 배우자에 대해 비난만 하기보다는 아이들이 납득할 수 있게 사실대로 설명해 주는 것이 좋다. 또 대가족을 잘 활용한다면 아이들의 상실감도 덜할 것이다. 그러나 조부모 역시 자신들의 깊은 상처가 덧나서 해묵은 문제를 자꾸 들쑤신다면 같이 살지 않는게 좋다.
법원에서는 양육권을 줄 때 재혼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이기도 하는데 이는 항상 옳은 결정은 아니다. 계부, 계모라도 잘만하면 자녀들의 훌륭한 부모 노릇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결손가정이라는 딱지를 붙여 아이들을 소외시키는 것도 큰 문제다. 부모가 포기한 죄없는 자녀들은 사실 사회구성원인 우리들의 책임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혼자녀 돌보기는 개인적인 차원 이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의 의지와 하나님의 뜻
나는 27살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있으면서 어려나라들을 다니며 전도자로서, 선교사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 나는 독신으로 있는 것이 너무나 싫었고 결혼하기를 원했었다.
파리의 에펠 탑 꼭대기에 서서 파리전경을 내려다 볼 때였다. 그 광경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워 누군가에게 이 아름다운 정경을 말해주려고 돌아봤지만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 내가 혼자라는 것을 절감했다.
성경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때 나는 고린도전서 7장에서 바울이 독신으로 지내는 것도 하나님의 은사라고 말한 구절을 발견했다. 나는 그때 진심으로 하나님이 내겐 그 은사를 주시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나는 사역자에게 있어서 아내는 꼭 필요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고 주위에는 언제나 매력적인 후보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다시 이 말씀을 보면서 아마도 하나님께서 내 삶을 향해 주신 부르심을 위해 내가 독신으로 있기를 원하시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결혼하고자 하는 나의 권리를 하나님의 제단 위에 올려 놓았다. "좋습니다. 만약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저는 결혼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나님께 말씀드렸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했을 때 내 안에 새로운 자유함이 생겨났다. 나는 더이상 '물색하는'일에 사로잡히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내게 하라고 하신 일을 전심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몇 개월 후에 하나님께서 부르신 일을 계속해서 순종하고 있을 때,캘리포니아 레드우드 시에서 젊고 발랄한 금발의 아가씨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 그녀도 또한 결혼하고자 하는 마음을 하나님의 제단에 올려 놓은 후였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우리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신 것이다.
이부일처는 천칙
한 때, 1927년경, 중국에 있어서 좌익 공산주의가 성행한 때, 가정생활의파괴를 외치는 자가 있어서, 가정 생활은 자본주의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하여, 난혼주의(亂婚主義)를 주장한 일도 있었던 듯합니다. 그러나 베를린대학의 생물학 교수 알파-데스는 동물사회학범론을 저술하여 하등동물에서고등동물에 이르기까지, 일부일처가 원칙인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물론초식성으로 발굽이 있는 유제류(有蹄類)의 일부에 있어서는 일부다처제의경향을 가진 것도 있지만, 이것은 육식동물의 희생이 되는 채식 동물에 한해
서 있는 것으로서, 결코 보편적 현상이 아닌 것을 그는 실증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의인원류(擬人猿類)인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등의 고등원숭이류는 모두 일부일처이고, 마카크(짧은 꼬리 원숭이)같은 소원(小猿)들사이에서만 일부다처가 행해져 있다고 하는 것을 그는 보고 하고 있습니다.
핀란드 인류학자, 사회학자인 웨스타 마-크같은 이는 동물학적 연구가불충분하여 난혼(亂婚)을 원시인류의 현상(형태)처럼 기재하고 있지만, 그의결혼진화론은 생물학적 기초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조류들 사이에 있어서의 놀라운 일부일처의 제도는 전조류의 90% 이상으로보편화돼있고, 일생을 통한 아름다운 사랑의 결합을 보이는 것이 많은것입니다. 인구 증식의 원리에서 생각해도 일부일처의 경우가 최대 또는최속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곧 계신이 나옵니다.일부 일처는 천칙입니다(창1:27-, 2:22-25).
파렴치한 행위
세겜은 야곱의 딸 딤나를 연모하고, 깊히 사랑했읍니다. 그리고 아내로서맛고자 결혼을 요청했읍니다. 하지만 그전에 세겜은 이미 디나를 끌어들여강간하여 욕되게 하였으므로, 디나의 형제들은 격분하여 간계를 꾸몄습니다.
그 결과 세겜과 그 일족은 습격되어 약탈되고, 남자는 모두 학살되었읍니다.
세겜은 결혼의 순서와 절조를 지키지 않고, 욕망에 잡혀 전부를 빼앗기고말았읍니다. 한 사람의 파렴치한 행위가 일족을 멸하는 동기로 되었읍니다.
가증스러운 결과로 된 것입니다. 이 간계는 결코 올바른 행위는 아닙니다.
아버지 야곱은 그래서 탄식하고 있읍니다. 하지만, 이러한 간계가 꾸며져야 할 정도로 순결은 중시되고, 존중되었읍니다. 하나님 아래서는 오늘도마찬가지입니다. 정당한 정식 결혼이 맺어지기 전에 절조를 잃는 때, 그결과는 대개의 경우, 축복이 아니라, 파괴되고, 서로 중상하며, 몸을 멸시하는 원인이 됩니다. 순결은 하나님께서 주신 올바른 결혼의 전제입니다.
"자녀들의 교육비-생활비는 재산분할 대상안돼"
부부의 이혼시 자녀들의 생활비나 교육비는 재산분할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6부(재판장 황인행부장판사)는 9일 이모씨(46.여)가 남편 김모씨(53)를 상대로 낸 이혼및 재산분할 청구소송에서 이들 부부의 이혼을 허락한뒤 "이씨와 김씨의 공동재산 1억원중 자녀생활비 및 교육비로 사용된 1천만원을 제외한 9천만원을 각각 4천5백만원씩 분할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가정이 파탄지경에 이르러 이들 부부가 별거생활에 들어간뒤 부부공동으로 모은 재산중 1천만원을 부인 이씨가 남편 김씨의 허락없이 무단 사용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그러나 이씨가 이 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부부가 공동으로 부담해야할 자녀생활비와 교육비로 사용한 만큼 남편 김씨는 이 부분에 대해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씨는 지난 70년 김씨와 결혼,3딸을 두었으나 남편이 공직생활을 마감한뒤인 지난 88년 이후 부인의 부정을 의심하며 폭행 또는 협박을 일삼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딸들과 집을 나와 별거에 들어갔다.
별거에 들어간 이씨는 이혼소송을 제기, 지난해 11월 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았으나 남편이 항소, 소송이 장기화되면서 재산중 1천만원을 남편 허락없이 자녀 생활비와 교육비로 사용했으나 이에 대해 남편 김씨가 '1천만원 역시 공동재산인 만큼 나눠야한다'며 분할을 요구했던 것.
자식이 결혼할 때는 신부에게 혼인 증서를 주고, 어머니에게
는 이연장을 주어야만 한다.
유태인의 지혜가 오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때문인지,유태인을 가리켜 공
리적인 민족이라고 한다.
유태인은 결혼하면 가족이 한 집에서 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부모들은
신혼부부가 새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한 지붕 밑에서 사는 것
은 좋지 않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잘 화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한
편이 나쁘고 옳고가 아니라, 그저 잘 화합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이다.
이 세상사에는 '왜?'하고 반문해서 안 되는 일도 많다. 물은 위에서 아래
로 흐른다는 따위의 관습과 같은 것이다.
'한 집안에서 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사는 것은 한 자루 속에 두 마리의
고양이를 넣은 것과 같다'는 속담도 있다. 물론 이것은 남자의 경우에서 본
시각이지만, 웃음을 금할 수가 없다. '아담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운아였
다. 시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이다'라는 속담도 있는 것이다.
부부. 결혼
여자 고무신은 왜 왼쪽 오른쪽 구별이 없을까. 그 이유는 "사위가 왔을 때 얼른 신을 신고 달려나가기 위해서"라고 한 싱거운 사위가 말했다. 그 우스갯소리를 들으면 사위를 반기는 장모의 푸짐한 환영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든가 "사위에
겐 씨암탉이라도 잡아 준다"는 등의 옛 말은 장모의 사위 대접이 얼마나 극진했는지를 말해 준다.
"사위는 백년 손님"이란 말도 있다. 사위란 세월이 흘러도 항상 어려운 존재란 뜻이다. 딸의 인생을 사위에게 맡겨야 했던 시절, 융숭한 사위 대접에는 "내 딸에게 잘 해 달라"는 애틋한 당부가 담겨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런 풍속이 많이 바뀌어 장모의 눈치를 보는 사위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위에게 씨암탉을 잡아주면서 은근히 딸을 부탁하던 장모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딸의 부부관계에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어머니의 힘이 강해지고 있는데, 강한 어머니들은 자기 가족뿐 아니라 사위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대개 한 두자녀를 낳아서 금이야 옥이야 키운 어머니들은 딸이 결혼하여 조금이라도 부당한 일을 당하면 참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시대를 잘못 만나 억울한 시집살이를 했지만, 너는 그렇게 살지 말아라.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런 일을 당한단 말이야"라고 팔을 걷고 나서는 어머니가 많다.
"앞날이 벌써 노랗다면 아이 낳기전에 헤어져야 한다"고 결단을 촉구하는 어머니도 적지 않다. "그런 일로 헤어지다니 무슨 소리냐"고 야단치는 어머니는 줄어 들고, 헤어질바엔 빨리 헤어지라는 어머니는 늘어나고 있다. 이혼까지 부추기지는 않더라도 사사건건 간섭하는 장모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위들이 많고, 장모의 언사가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결혼할때는 시어머니가 어떤 사람인가 못지않게 장모의 인품을 알아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딸은 대개 어머니를 닮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모가 유난스러우면 좋지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신혼부부들은 서로 적
응하느라고 대부분 갈등을 겪는데, 친정어머니가 갈등을 확대시키는 쪽으로 개입할 수도 있다는 경계의 소리다. 시어머니든 장모든 아들과 딸의 인생에 너무개입하려는 것이 요즘 부모들의 병폐다. 자녀들의 전 생활을 어머니가 주도하며 공부시키던 습관을
계속 이어가서는 안된다. 한평생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미숙한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키워갈 수는 없다. 행복은 어머니가 줄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는 자녀로부터, 자녀는 어머니로부터 좀 더 독립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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