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감사의 노래 본문 : 시138:1-8
맥추절(Wheat Harvest, 출23:1-17)은 이스라엘 3대 절기(무교절, 맥추절, 수장절) 중 하나인데, 유월절 후 50일 만에 지키는 명절(오순절, 칠칠절)로 애굽의 종이 되었던 때를 기억하는 감사 절기였습니다.
Ⅰ. 감사는 찬송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구약에서 감사는 찬송과 같은 말입니다. 감사를 드리는 사람이나 감사하는 물질, 심지어 감사하는 인간의 태도보다는 감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더 중요합니다. 감사의 동기가 하나님께 있고, 감사의 이유가 하나님의 편에 있습니다. 시편에 나타난 감사 시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여호와라는 신의 이름을 밝혀서 감사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분명히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신앙고백이 명백합니다.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2) 시인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과 신실하심에 감사합니다.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7) 우리는 히브리인들의 놀라운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의 형편과 생활환경이 작년보다 더 괴로워졌고 국가사정이 더 악화된 것만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감사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의 표준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모든 역경과 고난 속에서 가장 좋은 것 주심을 믿는 마음에는 감사가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고 진리와 자유와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 영적 축복을 생각할 때 우리는 가난과 역경, 불안과 고달픈 삶 속에서도, 암담하고 지루하고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감사와 찬송을 할 수 있습니다.
Ⅱ. 감사는 고백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모든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1) 신들 앞에서란 여섯 가지 정도의 뜻이 있습니다. ①엘로힘(복수명사) 즉, 하나님 자신을 말합니다. ②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③천사들 앞에서(욥1:6) ④왕들 앞에서(시82:6, 요10:35) ⑤거짓 신들, 우상들 앞에서 ⑥왕, 사사, 권력자들 앞에서. 만인이 보는 앞에서 여호와께만 마음을 다해 감사와 찬송을 하겠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고백함 없이 감사는 없고 감사가 없이 찬양은 없습니다. 찬양 없는 고백도 없습니다. 어거스틴의 <참회록>을 <고백록>이라고도 합니다. 그 책에는 지은 죄를 회개한 것도 있지만 어거스틴이라는 한 인간의 출생, 성장, 실패, 성취 등 한 인간의 존재 전부가 솔직하게 고백되어 있습니다. 고백한다는 말은 인간의 삶 전부에서 가지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부를 고백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다’고 했습니다.(고전15:10) 감사의 기본정신은 무엇을 받았으니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받지 않았다고 해도 나라는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뜻이 있으셔서 내 생명을 오늘도 연장하고 계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이 고백을 하는 사람은 자기 생의 사명감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생의 보람, 가치, 목적,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삶 전체를 바치지 아니하고 내 삶의 목적과 사명감이 뒤따르지 않는 감사는 참 감사가 아닙니다. 나 같은 인간을 선택해 주신 구원은총을 감사할 때 내 삶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감사도 예물에 집중되지 않고 신앙고백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감사하자.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3) 이 응답은 기도자가 특별한 사람이거나 그의 기도에 신통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인자하시고 성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감사절에 우리가 받은 것보다 여호와께 감사합시다. 그의 인자와 성실하심을 고백하고 찬양해야겠습니다.
2. 여호와를 공개적으로 찬양하자. 여호와의 이름과 말씀을 모든 이름 위에 드높여야 합니다. 열국의 왕들도 여호와를 찬양케 되었으니 더욱 감사가 넘칩니다.
3. 여호와의 신실하심을 찬양하자. 낮은 자, 겸손한 자를 살피시는 여호와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구원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과거의 은복뿐 아니라 미래에 받을 복도 감사합시다
감사하는 사람이 받는 은총 역대하 20:21~23
맹자는 君者三樂 이라 하여 사람이 즐거울 때가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부모 형제가 병고 없이 지내는 것이 첫째 낙이요, 둘째 낙은 하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것이며, 셋째 낙은 천하에 영특한 재사들을 제자로 교육 할 수 있는 일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즐거움이 있으십니까? 세계적인 문호 ‘버나드 쇼우’ 는 자기에게는 두 가지의 비극이 있다고 말하면서 첫째는 자기 마음의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많은데 이것이 비극이며, 둘째 비극은 자기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때에도 절망하는 것이 비극이라고 했습니다. 즉, 소원대로 되었는데 만족함이나 감사가 없는 것이 비극이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면 이는 귀한 축복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을 보세요. 당연히 감사할 조건이 많은데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감사할 수밖에 없는데도 오히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 좋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어렵고 힘들어 감사할 수 없는 형편임에도 불만을 갖거나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골로새서 2:7절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은 사람 즉, 구원 얻은 사람은 감사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 3:15절 평강을 위하여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감사 하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감사하는 자가 됩시다.
감사하는 자에게는 은총을 입혀주십니다.
1.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해집니다.
값없이 얻는 행복이 있습니다. 날마다 감사하면서 살아보세요. 행복해집니다. 제2차대전후에 여객기 한대가 승객을 태우고 가다가 갑자기 엔진 고장이 났습니다. 조종사는 최선을 다해보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승객들에게 뛰어내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승객들은 뛰어내리지 않습니다. 겁나니까요. 한참 고민하던 조종사가 지혜를 짜내어 맨 먼저 독일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히틀러의 명령이니 뛰어내리라 그랬더니 하이 히틀러라고 하면서 뛰어내렸습니다. 다음 일본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천왕 폐하의 명령이니 뛰어내려라. 그랬더니 쇼데스가 하고 뛰어내렸습니다. 이제 미국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미합중국은 민주국가입니다. 다수결의 원칙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랬더니 Yes 그러면서 뛰어내렸습니다. 이제 한국 사람이 남아 있습니다. 조종사는 가까이 와서 귀에 대고 뭐라 뭐라 하였더니 한국 사람은 고개를 끄덕 끄덕 알았어요. 그러면서 뛰어 내리더랍니다. 귀에 대고 뭐라 하였는고 하면 뛰어내리는데 공짜요. 그 말을 했답니다. 공짜면 죽어도 좋다는 말입니다. 행복은 공짜입니다. 단, 감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감사할 때에 지난날의 고난은 잊을 수가 있습니다. ‘윌리엄 로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성인은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감사한다는 것은 만족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나는 행복한가? 지금의 삶의 현장에서 만족하게 살고있다면 행복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만족이 없다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행복은 복과 다릅니다. 복은 소유함으로 얻는 것입니다. 행복은 누리는 것입니다. 좋은 음식은 가지고 있는데 맛있게 먹을 수 없다면 행복이 아닙니다. 무엇을 먹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건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좋은 주택, 고급침대가 있어도 잠 못 이루는 고민이 있다면 행복은 아닙니다.
행복한 가정은 예쁜 아내 잘생긴 남편이 같이 사는 것만으로 보장이 안 됩니다. 부부가 같이 만족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야 행복한 가정입니다.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행복을 논할 수 없습니다. 잔칫집은 음식으로만 하는 게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 기쁨으로 만족하게 살면 매일 잔치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 만들기 가족수칙 25가지를 어느 신문에 기록했는데 내용인즉 1) 가족이 함께 식사하라 2) 식탁에서는 밥 맛나는 이야기만 하라 자녀들의 성적이야기나 남의 이야기 돈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 중요한 게 있습니다. 식사 후에 잘 먹었다라고 인사하라. 4) 주말마다 마루 캠핑을 하라. 가족이 주말에는 마루에서 같이 잠을 자라는 것입니다. 다 실천 못해도 꼭 시행해야 할게 있습니다. 서로가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신앙생활도 교회에 대하여 자기 자신이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은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분은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독립문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게 된 것을 너무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분은 보면서 저분이 무엇을 알고 계시네. 행복한 신앙생활 하는 것을 축하합니다 라고 속으로 말해주었습니다. 바울이 옥중에 있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빌 4:11)고 하였습니다. 어떤 경우에서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을 배웠다는 말입니다. 감사가 있는 곳은 천국이요, 불평이 있는 곳은 지옥입니다. 우리는 지옥 같은 현실도 천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감사하고 살아갑시다.
2. 감사할 때 더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파스칼’이라는 철학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세 가지 인간으로 나누었습니다. 첫째, 하나님과 무관한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탐구하는 자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믿음의 관계를 맺는 사람은 풍성하게 삽니다. 감사할 줄 압니다. 하나님은 더 큰 축복을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감사의 그릇에 부어 주신 답니다. 불평의 그릇을 가지고 와서 축복을 담으려고 한다면 잘못 계산한 것입니다. 왜 더 큰 은혜와 축복을 주시나요?
1) 은혜를 잊지 않는 믿음이 있기에 축복하십니다.
감사는 은혜를 은혜로 알 때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같습니다. 생명을 구했으니 전에 가지고 있던 내 보따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미 보따리는 물 속에 빠졌어요. 건질 수 없게 되었으니 목숨을 건진건만 해도 고맙고 고맙다고 생각할 줄 모른다는 말입니다. 어떤 믿음의 사람이 투병생활을 6년 동안 했답니다. 모든 이들이 다 죽는다고 했는데 살았습니다. 물론 몸은 연약해졌습니다. 마음속에 다짐을 합니다. 내가 살아있는 것만으로 얼마나 감사한가 산소 호흡기를 안달고도 숨쉬며 의식이 있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 감사하겠노라. 나를 살려주신 것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솟아나도록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더욱 건강하게 되더랍니다. 우리는 건강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알고 믿고 살게 되었습니다. 자꾸 감사하면서 삽시다.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여러분 헬렌 켈러 여사를 아실 겁니다. 그는 삼중고의 장애자입니다.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귀는 들리지 않습니다.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어느 기자가 물었답니다. 이런 육체적 고통과 함께 일생을 살아왔는데 혹 하나님께 대하여 원망해 본 일은 없으십니까?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기를 하나님을 원망하기는요. 제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헤아리는 것만도 시간이 없는데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할 시간도 부족한데 어찌 원망할 시간이 있겠어요.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 말하기를 “나의 일생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라고 하면서 눈을 감았답니다. 우리는 욥기를 봅니다. 1장을 볼 때에 보통 사람들 같으면 원망은 하지 않을지라도 어떻게 감사하겠는가? 의문이 듭니다. 일곱 가지 재난을 만났어도 하나님께 감사 한 욥은 욥기 42장 10절에서 갑절의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감사의 그릇에 축복을 담아주신 답니다. 감사는 축복입니다. 감사하면서 준비하신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3. 감사는 승리를 가져옵니다. (대하 20:~)
대하 20:~을 보면 모압과 암몬 연합군이 침략해 왔습니다. 여호사밧 은 오벳에돔의 둘째 아들로 다윗 왕 때 문지기였는데 그가 왕이 되었습니다. 위기에 처하였을 때 그는 기도하였습니다.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찬양하고 감사하였습니다. 감사할 때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려움에서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때에 하나님이 복병을 예비해 두셨고 여호사밧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감사가 승리를 가져옵니다. 감사하고 얻은 축복과 승리가 우리의 간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느 성도가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교회에서 심방 와서 찬송 부르고 기도하여 줍니다. 그 성도에게 환상이 보입니다. 마귀가 나타나서 같이 찬송도 하고 기도도 하는데 마귀도 같이 따라서 하더랍니다. 잠시 후에 감사하는 기도를 하는데 감사는 따라서 하지 못하더랍니다. 그렇구나. 마귀가 다른 것은 흉내내는데 감사는 못하는구나. 그래서 그는 자꾸 감사 감사의 기도를 하였답니다. 그랬더니 신속하게 치유되었습니다. 이후에 그 성도는 자꾸 감사하는 신자가 되었답니다. 왜 우리 마음에 절망이 찾아옵니까?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언제 마음에 우울한 생각에 잠기게 되나요? 감사 없이 살기 때문입니다. 자꾸 감사하여 보세요. 마음에 유쾌함이 따라 옵니다. 시편 50: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여기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감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됩시다. 감사하면 그 순간은 아름다워집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은혜롭게 보입니다. 감사할 때에 감사를 불러옵니다. 자꾸 감사할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감사합시다. 감사하면 축복이 옵니다.
** 어떻게 감사할까요? **
1. 중심으로 감사하여야 합니다.
입으로 지나가는 말로 하는 감사는 감사가 아닙니다. 인사조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목사님 식사하셨습니까? 안 했는데요. 그러면 같이 식사할까요? 그건 인사의 말입니다. 그래 같이 식사하러 갑시다. 따라 간다면 그건 눈치 코치도 없는 주책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을 들었고 우리는 감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여 기도합니다. 그런데 중심으로 하는 감사는 많지 못합니다. 옛날 공자가 말하기를 오악( ��을 용서하던가? 등한이 여기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오악 즉 다섯 가지 악이란 무엇인가? 첫째, 만사에 빈틈이 없고 시치미를 딱 떼면서 간악 수를 쓰는 자라 하였습니다.
둘째, 공정치 아니한 일을 하면서 겉으로 공정한 듯 처리하는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셋째는 전부 거짓말투성인데 워낙 구변이 좋아서 진실인 것처럼 떠드는 것 넷째, 속으로는 음흉한 악당이면서 기억력이 좋아 아는 것이 많아 여러 사람을 홀리는 사람, 다섯째는 못된 일을 하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하는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악인이라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같은 중심이 신앙이어야 합니다.
제2차 대전 가장 긴밤 등을 집필한 작가 코넬이어스 라이언은 5년간 암으로 투병하면서 매일 아침 감격스러운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좋은 날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렇게 아픈 고통 중에서 매일 감사하는 남편을 지켜보던 그의 아내가 물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감사하냐? 고 그때 그는 말하기를 새 날을 맞는 다섯 가지가 감사하다고 말하더랍니다. 하나는 사랑하는 당신을 다시 보게 됨을 감사하구요. 다음은 가족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고, 셋째는 병들어 눕기 전에 작품을 탈고한 것이 감사한 일이구요. 넷째는 병마와 싸울 힘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사하는 것은 주님이 지금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라고 말하더랍니다. 이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마음으로부터 감사하는 게 진정한 감사입니다.
2. 범사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범사라는 말은 “어떤 형편에서라도” 라는 뜻이 있습니다. 좋은 형편은 물론 감사하는 거지만 좋지 못한 상황에서도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라는 뜻이 있습니다. 자녀가 결혼식 하고 감사하였다면 장례를 치루고 슬픔 중에서도 감사하는 게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일과 사업이 잘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이 왔을 때에 감사하여야 하듯이 실패하고 어려움이 있어도 감사하여야 범사에 감사인 것입니다. 작은 일이건 큰일이건 일을 시작할 때에도 감사하고 일을 마쳤을 때에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는 “어떤 일이 일어났더라도” 라는 뜻입니다.
큰 것에 대하여만 감사하는 게 아니라 사소한 일부터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에는 큰 것이 생겨서 크게 감사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커다란 기적을 체험하여서 감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매일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을 인하여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즉시 감사하여야 합니다. 감사하면 더 좋은 일이 생겨납니다. 슬픔 중에서 감사하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에게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하신다고 한 것 같이 기쁜 일 좋은 일이 더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 ‘휘테’ 라는 설교가가 있습니다. 그는 매주일 설교할 때마다 그 주간에 있었던 일 중에 꼭 한 가지를 감사의 조건을 찾아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한 번은 그 지역에 큰 태풍이 불어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주일에 성도들이 교회에 왔습니다. 오늘은 감사하는 말을 못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난 주간과 같은 최악의 태풍이 항상 있지 않다는 것을 감사합니다 라고 하더랍니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현명한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훌륭하게 길렀습니다. 오늘같이 특별한 과외 공부를 시킨 게 아닙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평소에 감사를 가르쳤습니다. 무조건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살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세 가지를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는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저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하여라. 다음은 원망하는 사람과 같이 있지 말라. 주변의 친구이든 어른이든 원망하는 사람이 보이면 즉시 관계를 멀리하라. 셋째는 감사하는 사람과 친하라.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말도 전염되고 취미도 전염됩니다. 충성도 전염되어야 합니다. 그들과 같이 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부모의 교육을 받은 자녀들이 세계의 일등국민이 되고 무서운 유대인이 되는 것입니다.
3. 최선을 다하여 감사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감사 방법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였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의무적인 신앙 억지로 하는 감사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함으로 하는 감사가 멋지고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전심전력을 다하여 감사합시다. 입으로 감사합니다. 자꾸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생활습관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배 드려도 최선을 다하여 경건하게 드려야 합니다. 기도를 해도 전심전력으로 해야 합니다. 주께서 돌봐주십니다. 봉사도 그러합니다. 대충 대충 하는 게 아닙니다. 철저하게 합니다. 꼼꼼하게 하는 것입니다. 힘껏 감사합시다. 그러므로 감사로 행복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감사할 때에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됩니다. 더 큰 은혜를 받고 더 큰 감사를 합시다. 감사로 승리합시다. 맥추감사절만 감사하는 게 아니라 날마다 감사의 날이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 아멘 ~
감사하며 찬양하라 시 105:1-11
오늘은 한국 교회가 지키는 맥추 감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명령하신 감사의 절기를 정하고 지키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훈련과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주시는 특별한 은혜의 제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생활 속에서 감사를 느끼고 감사를 표현하는 데는 특별한 신앙적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감사의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시105:1). 사람들의 감사 생활은 사람과 사람을 상대로 하고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해서 감사를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말하는 감사는 사람 사이 관계에서 오는 감사가 아닙니다. 내게 얼마나 유익이 되었고 즐거움과 기쁨이 되었느냐에 대한 자기 욕구와 이해에서 오는 감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받은 것을 믿고 하나님을 향하여 드리는 감사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결과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우리가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는 감사의 찬양을 드리고 감사의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감사의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믿음이 없이는 진정한 감사의 찬양을 드리거나 진정한 감사를 하나님께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감사의 대상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감사 노래를 불러야합니다(시105:2).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하고 찬양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졸라대는 노래가 아닙니다. 이것은 이미 은혜와 축복을 받은 사람이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라는 것입니다. 간청과 간구를 위해서 부르짖는 기도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사랑과 그 모든 것을 받은 것과 응답된 것을 감사해서 감사를 하나님께 표현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노래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때 모든 것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목소리로만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악기를 들고 찬양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인격을 높여 드리며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에 대하여 감사해야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이미 내려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해야합니다(시105:5,6).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내려주신 은혜에 대하여 감사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시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주신 은혜에 감사하면 이제 새로운 은혜가 다시 오게 됩니다. 그러나 불평하거나 슬퍼하면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사랑에 감동하고 주신 축복에 감동하여 하나님을 찬양 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은 지나간 은혜뿐만 아니라 다시 오는 은혜를 믿고 은혜로 충만한 삶을 사십시오. 그래서 감사함으로 그도 할 때 하나님께서는 응답해 주십니다. 또한 감사를 하게 되면 힘든 일이 즐거움이 됩니다. 인색하던 사람들이 희생적으로 일하게 됩니다. 싫증나던 일이 감사함으로 일하게 됩니다. 감사하는 곳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쁨이 생깁니다. 만족이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새로운 은혜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 어음과 같습니다. 이 성경이야 말로 하나님의 약속의 보배창고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감사하세요.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뻐하세요. 이 약속을 붙들고 희망을 가지세요.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어두움을 물러갈 것입니다. 절망은 소망으로 바뀔 것입니다. 눈물은 웃음으로 바뀔 것입니다. 두려움은 담대함으로 바뀔 것입니다.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아야합니다. 은혜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입과 말과 노래와 물질로 하나님께 풍성하고 넘치게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목 : 맥추절 본문 : 레 23:15-22
우리의 삶에서 인생의 진정한 기쁨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인생의 기쁨은 무엇인가 얻는 것, 가지는 데에서 온다고 보통 생각합니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가질 때에 기쁨이 있고, 내가 누리고 싶은 것을 누릴 때에 기쁨이 있다고 보통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럴 때에 기쁨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잠시 잠깐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처음에 그것을 얻을 때의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보다 더 영속적인, 오래 가는, 끝까지 없어지지 않는 그러한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심지어 세상의 쾌락은 그것을 맛보면 맛볼수록 그 뒤에 더 깊은 고통의 나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술과 담배와 마약, 이런 것들이 쾌락 아닙니까?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 있습니다.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것들, 설탕도 있지요? 지방이라는 것도 사실 우리에게 맛을 주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나치게 탐닉하다 보면 결국 그 뒤에 우리에게 고통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그러한 세상적 기쁨과 즐거움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보다 더 오래가는, 영원한 그러한 즐거움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그러한 면을 우리가 천국에서 누리겠지만, 천국가기 전에 이 세상에서도 우리에게 누릴 수 있도록 장치한 것이 바로 절기들입니다. 절기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우리가 기쁠 수 있고 천국을 누릴 수 있고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지내는 맥추감사절도 사실은 기쁨의 상징이 되는 절기입니다. 요즘엔 절기, 특히 맥추감사절의 의미가 많이 퇴색해 있지만, 점점 더 앞으로 이 감사절의 의미를 추수감사절처럼 살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절기가 옛날에는 아주 다양하게 여러 가지 면에서 행사로서 지켜져 왔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저 절기 헌금만 내는 날로 변질된 것을 보고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모든 예배가 오직 설교 위주, 가르침 위주, 이러한 교훈적 예배 위주의 성격으로 가다보니까 그 외의 모든 우리의 상징적인 행위들이 전부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이 바로 맥추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오순절이라고도 하고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니까 유월절 이후에 50번째 되는 날이 오순절이고 칠칠절입니다. 실질적인 날짜로 계산하면 6월 정도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수확기에 맞추어서 특정한 주일을 정하다 보니 바로 오늘이 맥추감사절로 지키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맥추절하면 말의 의미에서 이미 나왔듯이 보리를 수확하고 나서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 맥추감사주일이나 추수감사주일, 이 모든 것이 농사의 달력에 맞추어서 지키는 것입니다. 많은 수확이 있은 뒤에, 그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드리는 감사 절기가 바로 맥추절과 추수절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추수감사절보다는 보다 더 성경적 의미가 강한 것이 맥추절입니다. 맥추절은 누룩 있는 떡을 해서 하나님께 드리고 또한 먹습니다. 여기 비해서 유월절 직후부터 지키는 무교절에는 누룩 없는 떡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즐거움의 상징은 누룩 있는 떡입니다. 누룩 없는 떡을 먹는다는 것은 그 즐거움을 제하고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누룩 없는 떡을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맥추절 자체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소산을 즐기며 기쁨을 서로 나누며 감사하는 때입니다. 그와 동시에 이것을 나만 즐기는 것이 아니고 함께 즐긴다는 개념으로 나와 있습니다. 함께 불쌍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오히려 남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키는 때, 바로 이것이 맥추감사절입니다. 그래서 그 면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봅시다. 제일 먼저 맥추감사절은 먼저 여러분의 마음으로 감사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보통 하나님께 감사의 헌금으로 드린다, 연보를 드린다 할 때에 감사주일만 오면 스트레스 쌓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를 드려야 하나? 목사님도 새로 오셨는데, 많이 드리자니 조금 더 아플 것 같고, 조금 드리자니 눈치가 보이고.’ 이래저래 스트레스 쌓이는 것이 맥추감사주일입니까? 그런데 원래 감사주일의 참된 의미는 나를 희생시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헌신할 때에 그런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 나를 죽이고 쳐서 내가 손해되더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지.’ 이런 방향으로 여러분이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전혀 그러한 면으로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꾸 하나님께 연보를 드리라, 감사를 하라,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만 즐겁고, 우리 즐겁지 않은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하는 그 심령 중에 오히려 내 기쁨이 커지는 것을 여러분이 경험 해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천국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진정한 안식을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위해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이상하게 내 것을 하나님께 더욱 드리면 드릴수록 내 속에 은혜가 넘치는 것을 체험합니다. 생명의 하나님과 하나 됨을 더욱 체험하는 순간들이 있단 말입니다. 그리하여서 하나님께 진정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삶이 어떠한 형태이든지 간에 감사하는 사람만이 삶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 적극적인 자세, 이것이 내 모든 환경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에서부터 옵니다. 그래서 끝없이 계속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감사를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감사가 습관화되다보니까 점점 진정한 마음의 감사가 우리의 이해로도 오게 된단 말입니다. 제가 한 사람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청주에 사는 권용수씨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원래 소아마비로 두 발을 못 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목발을 짚고 다녔는데, 초등학교 졸업 후에 집안이 어려워서 양복점에 취직을 했습니다. 양복점에서 하루 종일 앉아서만 일을 하다보니까 다음에는 목발로도 짚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두 발이 약해져서 완전히 앉은뱅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병든 아버지와 착하기만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 그리고 어린 두 동생이 있는 어려운 집안의 장남이었습니다. 도저히 이대로는 삶을 살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혼자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재활원에 있으면서 전자제품 조립공장에 다녔습니다. 조립공장에서 계속해서 일을 하면서 집안을 살리고 자기는 계속 공부를 해서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대입검정고시를 합격했습니다. 대입검정고시를 합격한 뒤에 시계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고향인 경북 예천에 돌아가서 요한당이라는 시계방을 차렸습니다. 그러다가 동생이 하나하나 충북대에 합격을 했습니다. 예천과 충북대가 있는 청주에 두 집 살림을 할 수 없어서 아예 청주로 이사를 했습니다. 거기에서도 변두리에 요한당이라는 시계점을 차리고 또 근처에 사글세방을 얻어서 온 식구가 거기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사는 동안에 지금의 아내도 만났습니다. 그 아내도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었습니다.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의 이름도 요한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쯤 되면 바로 이 권용수씨라는 사람이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겠죠? 모든 게 다 요한이에요. 그러면서 점점 그 사업이 번창해서 두 동생을 분가를 시키고 부모님에게는 원래 고향인 농촌에서 사실 수 있도록 전답도 사드리고, 자기 자신은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4천만 원을 들여서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도 설치해 주었습니다. 지금 현재 그는 30여명의 장애인을 고용한 회사의 사장입니다. 이분이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었을까요? 보통의 사람이면 처음부터 절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보통의 사람이면 그 찌든 삶 때문에 삶을 포기했을 지도 모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이 비록 소아마비의 삶이었고, 가난에 찌든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삶이었고, 어린 두 동생을 계속해서 돌볼 수밖에 없는 삶, 아내를 만났어도 아내도 장애인인 그런 삶이었지만, 그의 삶이 힘을 낼 수 있는 근원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인생을 극복하고 승리하고, 마침내 번성할 수 있는 축복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에 진정 승리하는 삶의 출발점은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는 삶, 내 환경이 어떻든지 관계없이, 여러분의 현재의 삶에서 어떠한 문제가 있든지 관계없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 이것이 필요합니다. 감사를 통해서 인생을 보는 면이 바뀝니다. 인생을 보다 긍정적으로 보게 되고 인생을 보다 적극적으로 보게 되고 오히려 어려움에서 일어날 때마다 더 큰 삶의 희열과 기쁨을 누리게 된단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환란을 당해봤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어려움을 당해봤습니까? 참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속에 살아보십시오.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서 ‘아, 헌금한다’ 이 생각 말고라도 정말 내게 주신 모든 삶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있는 감사가 표현되는 연보여야만 합니다. 억지로 드리는 것이 아니고. 그럴 때 하나님께서 맥추절을 주신 진정한 의미가 여러분의 인생과 여러분의 삶에 다시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권용수씨가 어느 누구보다도 그 인생에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맥추감사절은 그러한 면, 하나님 앞에서 감사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때 입니다. 두 번째는 맥추감사주일은 나보다 못한 사람, 내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 이 사람들을 생각하는 때가 바로 하나님 앞에 감사할 때입니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면 바로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남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오직 불쌍한 인생들이 자기 인생의 문제에만 집중해서 생각할 때에 남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부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관계에 많은 문제가 있는 가정들을 들여다보면, 각각 남편과 아내가 전부 자기만 생각합니다. 자기중심적으로만 되어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마음 바닥 속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없을 때, 어떤 환경에든지 그 사람의 삶과 그 사람의 인생, 그 사람의 가정, 절대로 천국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천국은 감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환경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느냐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인생길을 가고 있느냐 그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많은 능력을 가졌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남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서 감사절 날, 누구보다도 남을 생각할 수 있는 때, 감사가 넘치게 되면 불쌍한 사람들이 드디어 보이게 되는 바로 그러한 때란 말입니다. 감사할 때 비로소 내 마음도 넉넉해지기 시작합니다. 그 마음이 넉넉해질 때 비로소 삶의 기쁨이 있습니다. 세 번째, 맥추감사절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때라고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합쳐져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때입니다. “내가 네 하나님 여호와가 아니냐,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 계속해서 하나님이 이야기 하십니다. ‘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란 말 속에 특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6장에 보면 “나는 여호와니라” 하는 말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그러면서 너희 선조들에게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는 내 이름을 여호와로 알리지 아니하였고,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만 알렸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엘 샤다이 하나님, 하나님께서 하나님 스스로를 소개할 때마다 여호와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때에 와서 비로소 하나님이 “나는 여호와로다” 이야기 하십니다. 그 뒤로 출애굽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행한 뒤에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정한 명령을 하실 때마다 언제나 하나님은 “나는 여호와로다” 라는 말을 거듭해서 이야기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경험해봐야 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 이스라엘 백성은 “나는 여호와로다” 이 말 자체에서 여호와가 누구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한 뒤에 계속해서 “나는 여호와로다” 하면 아, 나를 이렇게 구원하신 그 하나님! 하고 생각이 든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여호와로다는 말이 계속해서 출애굽 때부터 나왔고 선지서를 보면“나는 여호와로다” 라는 말이 제일 많이 나옵니다. 저는 채규현입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저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얼마나 많이 아십니까? 아직은 두 달 밖에 안됐습니다. 두 달 전에 여러분들이 채규현이란 사람을 얼마나 많이 이해했습니까? 거의 몰랐거든요. 그러나 “제 이름이 채규현입니다” 할 때 두 달 만큼 이해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십년 뒤에 채규현 목사라 하면 십년의 여러분과의 삶을 통해서 저를 알게 됩니다. 그때 제가 누구인지 이야기한다면 바로 여러분과 십년 있었던 그 모든 삶이 집약되어서, 아, 우리 목사님! 이렇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바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 그 자체에는 특별한 이름이 그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여호와라는 그 이름 속에, 제일 먼저 출애굽사건에서 “나는 여호와로다” 이야기 하신 뒤에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특정한 일, 특히 구원의 일을 하시면서 계속 여호와라는 그 하나님의 이름 속에 의미를 담아갑니다. 지금 여기서도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다” 하실 때는 내가 너를 구원한 하나님이 아니냐, 이 뜻이 있습니다. 성경의 하나님,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신 하나님이 바로 여러분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아닙니까? 맥추절을 지키라는 하나님이 바로 여러분을 사랑하신 하나님 아닙니까? 그 하나님이 여러분께 감사절을 지키며 감사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믿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다.” 이 말의 의미를 여러분이 모든 삶에서 경험하고 있냐는 말입니다. 오늘 절기를 지키면서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감사를 통해서 나를 살리시고 나를 구원하시고 내게 생명주신 그 하나님을 우리가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불쌍한 자를, 불쌍한 나를 생각하신 그 하나님께서 모든 다른 불쌍한 자도 생각하시는 그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인정하고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하나님을 느끼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떠한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 진정 그러한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그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여러분은 먼저 물론 성경을 먼저 읽어야 되겠죠. 그러나 실제 삶에 순종하는 행위 하나하나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감사는 나와 하나님이 하나 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내가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도 내가 하나님의 입장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모든 말씀을 지키는 진정한 이유는 그 말씀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님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진정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순간이 내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바로 그때입니다. 언제 부모님의 마음을 제일 많이 이해합니까? 아무리 자식들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언제 가장 근접하게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느냐 하면 바로 내가 자식을 키울 때, 내가 자식을 키우면서 처음에 애를 낳고 밤새도록 울고 자지 않는 아이들을 달래면서 고통스러워하면서 ‘나도 어려서 우리 부모님이 나를 이렇게 키웠겠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플 때 정신없이 등에 업고 병원으로 달리면서 ‘내가 아팠을 때 우리 부모님도 내게 이렇게 했겠구나’ 하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처음 학교 갈 때의 그 감격스러움, 그걸 느끼면서 ‘우리 부모님도 내가 학교 갈 때 그렇게 느꼈겠구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어려운 시험을 잘 치르고 합격하는 순간에 그 감격, 자식의 감격보다 부모 되었을 때의 감격이 더 크다는 사실을 내가 부모 되어서 자식이 합격할 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부모가 되는 순간에 부모님의 마음을 제일 많이 이해하거든요.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히려 내게 있는 것을 하나님께 더욱 드릴 때, 내 삶에 주름이 져가며 드릴 때,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내 주변의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도울 때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인생 속에 더욱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은혜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절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을 상기하는 날, 다시 한 번 느끼고 누리는 날입니다. 여러분의 오늘 삶에서 다시 한번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드립시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구합시다. 하나님의 참된 은혜와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옆 사람과 함께 인사합시다.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삽시다. 참된 감사가 여러분의 삶 속에 있기를 바랍니다.”
맥추절에 기억할 네 동사(動詞) 본문 : 신 16:9~17
맥추절에 기억할 네 동사(動詞) 본문 : 신 16:9~17 9 칠주를 계수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주를 계수하여 10 네 하나님 여호 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 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 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 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13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 한 후에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 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15 네 하나님 여호 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 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 전히 즐거워할지니라 16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 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서론)
어느 날 사냥꾼이 사냥을 나갔습니다. 그 날은 저녁 무렵이 다 되도록 아무 것도 얻 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냥꾼은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 다. 그런데 전방 10m 앞에 커다란 물체가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곰이었 습니다. 사냥꾼은 속으로 ‘오호, 아무 것도 사냥을 못 하는 줄 알았는데 수지맞게 되 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총을 겨누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헌데 총이 고장이 났는지 발사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사냥꾼은 도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도망을 치다가 그만 낭떠러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냥꾼이 살아날 방법은 없어 보 입니다. 이 때 사냥꾼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제가 죽게 되었습니다. 저 곰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 주셔서 저에게 자비를 베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자 곰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사냥꾼은 자신 의 기도가 응답된 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헌데 곰의 기도 내용을 듣고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곰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 지, 제가 오늘 하루 종일 굶었는데 맛있는 만찬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감사하는 데 있습니다. 예화에서 곰도 감사하지 않습니까? 오늘 은 맥추감사주일로 감사하는 날입니다. ‘맥’자는 ‘보리 맥麥’자입니다. ‘추’자 는 ‘가을 추秋’자입니다. ‘맥추’라는 뜻은 ‘보리 가을’입니다. 뜻이 이상하죠? 그래서 ‘추’자의 다른 뜻인 ‘결실할 추’자로 해석해야 합니다. 따라서 ‘맥추’ 란 ‘보리를 결실하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유대인의 3대 절기가 있습니다. 무교절과 맥추절과 장막절입니다. 맥추절은 칠칠절이 라고도 하고, 장막절은 초막절이라고도 합니다. 신명기 16장 16절에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택하신 곳은 예루살렘입니다. 고로 이스라엘 남자들은 일 년에 세 번 하나님을 꼭 뵈어야 합 니다. 아무리 먼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자기 얼굴을 뵈어야 하 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중요한 규례입니다.
Ⅰ. 맥추절의 의미
1. 맥추절의 세 이름 그렇다면 칠칠절이라고도 하는 맥추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맥추절에 관해서는 여 러 가지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첫 번째 이름은 ‘맥추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이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시기도 하고, 메추라기를 보내주시기도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 리농사를 짓기도 했습니다. 보리를 수확해서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 이 맥추절입니다. 두 번째 이름은 ‘칠칠절’입니다. 보리를 추수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7주 동안 추 수를 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이날을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순’자는 ‘열흘 순旬’자입니다. 오순절은 50일 째 지키는 절기라는 말입니다. 초실절 다음 날로부터 계산을 해서 50 일 째 되는 날이 칠칠절이요, 맥추절이기 때문에 이 날을 다른 이름으로 오순절이라 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가 지금 맥추감사절을 지키고 있다는 것 은 구약의 3대 절기 가운데 하나인 맥추절의 의미를 계승해서 지키고 있다는 뜻입니 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1년에 두 번 특별감사헌금을 드리고 있습니다. 한 번은 ‘맥추감사절’이고, 다른 하나는 ‘추수감사절’입니다. 맥추감사절은 보리 추수가 완성되는 7월에 드리는 것이고, 추수감사절은 쌀 추수가 완성되는 11월에 드리는 것입 니다. 그러므로 맥추감사절이라고 하는 것은 1년 12개월 중에 6개월 동안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것을 감사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추수감사절은 나머지 6개 월을 축복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맥추감사절은 단순히 보리를 추수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요? “나는 보리와 아무 상 관없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맥추감사절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 니다.
2. 맥추절의 다른 두 의미 시내산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포함한 율법을 받습니다. 이때가 애굽에서 나온 지 50일 째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순절은 모세가 하나님께 율법을 받은 날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왜 중요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는 그저 노예 집단에 불과했 습니다. 이 집단이 율법을 받게 됨으로써 국가로서의 법률과 조직을 갖게 된 것입니 다. 때문에 오순절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보리를 추수한다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이 하나의 국가로서의 형태를 갖춘 ‘이스라엘 건국 기념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 다. 이것이 신약 시대에 와서는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요? 맥추절, 칠칠절, 혹은 오순절 에 이르러서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 매 성령이 기도하고 있는 120문도에게 강림하셨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 로 오순절에 이르러서 성도의 모임인 교회가 성령을 받게 됨으로 완전한 교회로 탄생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의 맥추절은 ‘교회의 탄생일, 교회의 생일’이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맥추감사절은 11월에 있는 추수감사절보다도 의미 가 훨씬 큰 것입니다.
Ⅱ. 맥추절의 네 동사 그렇다면 우리가 맥추감사절을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 등장한 네 가지 동사를 가지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지키라(Celebrate) 첫 번째 동사는 ‘지키라’라는 것입니다. 10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 을 지키되”, 13절에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14절에 “절기를 지킬 때에는”, 15절에 “여호와 앞에서 절 기를 지키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맥추감사절을 맞이해서 우리가 할 첫 번째 일은 지 키는 것입니다. Celebrate라는 뜻은 ‘경축하다, 의식을 거행하다, 찬양하다, 덕을 기 리다’라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맥추감사주일을 무관심하게 지내지 말고 하나 님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축하면서 감사와 찬양과 축제의 날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감사하고 찬양해야 될지 잘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들은 시편 136편을 몇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시편 136편에는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라는 구절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여러분의 입술의 언어로 찬양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살면서 원망, 불평거리가 왜 없겠습니까? 시비, 다툼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오늘은 이런 것들을 뒤로 하고 감사와 축하하는 마음을 가지시고 지내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드리라(Give) 두 번째 동사는 ‘드리고’입니다. 10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 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 고”, 16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17절에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 건을 드릴지니라”라고 했습니다. 맥추감사주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날입니다. 하나님 께 헌물을 드리는 원리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울 때 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가서 도움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복과 도움을 받고 난 이 후에는 하나님의 은혜도 잊고, 사람들의 도움도 잊습니다. 배은망덕하기 쉬운 것이 인 간입니다. 때문에 모세는 신명기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조하고 또 강조하 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신명기 6장 10절에서 1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 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 고” 때문에 우리가 1년에 두 차례의 절기를 만들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의 식적으로라도 하나님께 감사의 표시를 드리는 것이 인간이 빠지기 쉬운 배은망덕에 대 한 치료책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드릴 때는 내게 주신 복을 기억하고 드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의 힘을 헤아려 드리는 것’입니다. 10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라고 했습니다. ‘헤아린다’는 것은 ‘비율에 맞게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민수기 28장 26절과 27절 에 칠칠절에 드려야 할 예물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수송아지 둘과 수양 하나와 일년 된 수양 일곱, 그리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태워드리는 소제를 드리는 것입니 다. 잘 사는 사람은 송아지를, 그보다 못한 사람은 양을,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를, 극 빈한 사람은 밀가루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극빈자에게 “송아지를 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부자가 밀가루를 가지고 나올 때 “잘했다!”고 하시 지 않습니다. 아무도 공수로 여호와 앞에 나오지 말되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복의 비 율대로, 드릴 수 있는 힘에 따라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 48절에 예수님 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 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세 번째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헌금을 강요받아서 할 수 없 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원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의 말씀은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 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했습니다. 고 린도후서 8장 1절에서 3절에서도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를 칭찬합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맥추감사절기는 하나님께 받은 복을 기억하고, 그 비율대로 자원하는 마음 으로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3. 즐거워하라(Rejoice) 세 번째 동사는 ‘즐거워하라’입니다. 11절을 같이 봅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 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 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지니라”, 14절에는 “함께 열락하라”, 15절에는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즐거워할 장소가 어디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 고 택하신 곳’에서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예루살렘에 와서 즐거워하라는 말씀입니 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즐거운 마음으로 즐거워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혼자 즐거워하지 말고 함께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 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라”고 하셨 습니다. 남녀노소,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모든 사람이 즐거워하는 날이 맥추감사절 인 것입니다. 인도에 힌두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썬다싱이라는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 이 어느 추운 겨울 날 동료 수도사와 함께 산을 넘어 수도원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가 던 길에 한 사람이 병이 들어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함께 가던 수도가 “저렇 게 죽는 것은 저 사람의 운명이니까 저 사람에게 맡기고 우리는 갈 길을 갑시다.”라 고 말합니다. 하지만 썬다싱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로 이 길을 지나가게 하신 것은 저 사람을 도우라고 하는 부르심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고 그 사람을 업었습니다. 자신도 힘이 없고 배가 고픈데도 말입니다. 산을 넘는데 너무 힘이 듭니 다. 땀을 뻘뻘 흘리며, 죽을 고생을 다해서 수도원 가까이에 왔습니다. ‘이젠 살았구 나.’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데 무엇인가가 발에 걸리는 것입니다. 보니까 앞서 가 던 수도사였습니다. 혼자 가다가 너무 추운 나머지 얼어 죽었던 것입니다. 이 후에 썬 다싱에게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할 때면 이렇게 대 답을 했습니다. “내가 함께 지고 가야 될 짐이 없을 때 나는 가장 어려웠습니다.” 우리에게 함께 지고가야 할 어려운 짐이 있습니까?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 사 람이 없으면 우리도 죽는다는 것을 썬다싱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짐을 함께 지고 갈 때 내 체온도 따뜻해지고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의 정신은 ‘인 간들이 함께 사는 세상에서 함께 즐거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즐거워해야 합니까? 15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 에서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 라.” 복 주신 것을 인하여 즐거워하라고 했습니까, 복 주실 것을 인하여 즐거워하라 고 했습니까? 복 주실 것을 인하여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미래형입니다. ‘6개월을 뒤돌아봐도 감사할 것도, 기뻐할 것도 없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기뻐하라는 것 입니다. 앞으로 복 주실 것을 인해서 말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도 ‘The Lord God will bless you in all your harvest and all the work of your hands’라고 되어 있 습니다. 미래에 축복이 올 것을 믿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맥추감사절에 기억할 세 번째 동사의 의미는 ‘거룩한 곳에서 함께 가야 될 사람들과 미래에 복 주실 것을 믿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4. 기억하라(Remember) 마지막 네 번째 동사는 ‘Remember,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너는 애 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우리가 왜 맥추감사주 일에 감사해야 합니까? 우리가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것의 신약적인 의미는 ‘우리가 마귀로부터, 멸망으로부터, 지옥으로부터, 죄로부터 해방되고 죄사함 받아서 천국 가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 이 구원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은 생각할 때마다 감사할 일입니다. 우리의 외양간에 소가 없고, 논밭에 식물이 없고, 무화과나무에 소출이 없을지라도 기본 구원을 받은 것만 생각해도 늘 감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결론) 우리는 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됩니다. 맥추감사주일은 다른 날이 아닙 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탄생시키신 교회의 생일입니다. 또한 6개월 동안 축복해 주 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이 날에 네 가지 동사를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첫째 동사는 ‘지키라, Celebrate’, 두 번째 동사는 ‘드리라, Give’, 세 번째 동사 는 ‘즐거워하라, Rejoice’, 네 번째 동사는 ‘기억하라, Remember’입니다. 그래서 전반 6개월에 축복해 주신 것을 인하여 감사하고, 후반 6개월에는 더 축복을 받아서 더 많은 감사가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맥추절의 현대적 의미 성경본문 : 출 34 : 21 ~ 24
오늘은 맥추절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3가지 절기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나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절의 현대적 의미를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맥추절은 칠칠절(출 23:16), 초실절(출 34:22), 오순절이라고 불렀습니다.
현대의 가장 큰 비극은 감사를 잊고 사는 것입니다.
요즈음 바이러스에 의한 독감이 많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독감의 종류도 많고, 한번 걸리면 얼마나 오랫동안 고통을 줍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있습니다. 그것은 불평, 불만의 바이러스입니다. 바로 이 불평과 불만의 바이러스에 걸리면 누구나 예외없이 다 불행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는 점점 각박해갑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적 상태를 진단해보면서 요즈음 유행하는 불만 바이러스를 치유하기 위해서 맥추감사절의 현대적 의미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불만 바이러스에서 치유함을 받아 날마다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다섯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왜 감사해야하는가? (2) 감사란 무엇인가? (3) 감사의 결과는 무엇인가? (4) 어떻게 감사할 것인가? (5) 맥추절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인가?
1. 왜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가?
감사해야 할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1)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구약에서는 출애굽 사건을 구원의 역사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구약에서 가장 큰 구원의 사건은 바로 이 출애굽 사건입니다. 신약의 십자가 사건의 모형이요, 그림자요, 예표입니다. 놀라운 것은 민수기 11장 4절을 보면 출애굽 당시에 강제 노동에 시달리던 이방인들의 일부도 함께 출애굽에 참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6장 31절에 보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기초하기 때문에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죄의 종이던 우리들을 의의 종으로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롬 6:17-18). 나 하나뿐 아니라 우리의 온 가족을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이유는 감사가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기도 하지만 심지어 역경과 환난 속에서도 감사합니다.
(예 화) 미국에서 [홀리데이 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중요한 휴양지에 가면 어디나 홀리데이 인이 있습니다. 홀리데이 인의 주인인 월리스 존슨은 제재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였습니다. 그런데 나이 40이 되었을 때에 소장이 너는 해고라는 통고를 받았습니다. 낙담이 되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불황기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존슨은 건축기술을 이용해서 돈을 벌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5년 만에 수백만불의 재산을 가진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예 화) 저는 이런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왜 저는 좋은 교회, 목회자를 대접할 줄 알고, 순종을 잘하는 교회에서 목회하도록 하지 않고 항상 문제 있는 교회로 보내주십니까? 그런데 제게 주신 응답은 네 자신이 문제가 많은 목사가 아니냐? 그러니 너에게는 문제가 많은 교회가 맞느니라.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좋은 교회가 있지만 그러나 그런 교회에는 네가 자격미달이기 때문에 안 된다 라는 응답이었습니다. 혹 여러분들 교회가 마음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교회가 부족하고 모자라기에 저와 여러분들이 이 교회에 교인이 될 수 있고 목사가 될 수 있는 것을 기억하시면서 오히려 저와 함께 감사할 수 있기 바랍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와 이김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죽음에 대해서 이기게 하시고, 세상에 대해서 이기게 하시고, 자신을 이기게 하신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주셨고, 또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주시고, 죄를 용서하여 주셨고, 양식을 주시고, 은사를 주시고, 자녀를 주시고, 직업을 주시고, 심지어 병을 고쳐주셨고.....
2. 그러면 감사란 무엇인가?
오늘 우리는 감사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감사란 무엇인가? 감사를 영어로 thank라고 하는데 이 말은 think란 말과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감사란 생각하는데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고 계시는가?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하신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서 받은 복을 생각하고 또 앞으로 주실 것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의 사랑을 깨달아 보답할 마음이 생겨집니다. 이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이 감사는 최고의 미덕입니다.
그러나 감사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베풀어준 것들을 생각하면서 그 고마움을 표현할 때 이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표현이 없는 감사는 참 감사가 아닙니다.
감사는 먼저 입으로 표현하고, 다음은 행동으로 표현하고, 물질로 표현하고, 섬김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준비한 추수감사 헌금은 바로 감사의 표현입니다. 빈손으로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3. 감사의 결과는 무엇인가?
감사하면 가장 중요한 것이 기적이 일어납니다. 왜 감사할 때에 기적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감사는 생명을 충만케 해주는 묘약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우리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주고, 축복을 받을 그릇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스펄존은 이런 시를 썼습니다. “별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하면 달빛을 주실 것이요 달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하면 햇빛을 주실 것이요 햇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하면 햇빛이 필요 없는 천국을 주실 것이다”라고.
성경에 보면 감사함으로 일어난 수많은 기적들이 있습니다.
(1) 요나의 경우 큰 물고기 속에 들어갔을 때에 감사하므로 고기 뱃속에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2) 하박국의 경우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오니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박국 선지자가 불평에서 변하여 감사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사슴 발과 같이 높은 곳에 다니는 귀한 축복과 사명을 감당케 했습니다.
(3) 옥중에 바울의 경우 두아디라에서 전도하여 귀신을 쫓아냈으나 점치는 여자로 돈벌던 주님이 고발하여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감사하고 찬송할 때에 지진이 일어나면서 착고는 풀리고, 쇠고랑은 끊어지고 간수는 회개하고 옥문은 열리고, 법관들은 빌립보 교회를 시작하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4. 감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른 말로 말하면 감사하는 자의 삶은 어떤 것인가?
(1) 먼저 위에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삽니다.
왜 긍정적으로 생각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고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생활관은 철저한 긍정주의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장 18절에 보면 “하나님은 미쁘시니라...예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고 했습니다.
(예 화) 어떤 왕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 내용은 이빨이 하나하나씩 다 빠져나가는 꿈이었습니다. 유명한 해몽자들을 불러서 해석하게 하였습니다. 어떤 해몽자가 해석하기를 친척 하나하나씩 죽고 나중에는 임금하나만 남는다고 해석을 했습니다. 화가 난 임금은 그 해몽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온 해몽자는 집안의 모든 사람보다 더 장수할 길조라고 해몽을 했습니다. 알고 보면 똑같은 내용이지만 그러나 한 사람은 부정적으로 해석을 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긍정적으로 해석을 한 것만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느냐 아니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변합니다. 성경의 생활관은 철저한 긍정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기도를 쉬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입니다. 사랑은 항상 대화를 요구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무엇이 찬양입니까? 곡조 있는 기도가 바로 찬양입니다. 이 찬양과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항상 찬양과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3) 남에게 주며 섬기는 삶을 살아갑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삭개오가 그랬습니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토색한 것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주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다음은 막달라 마리아가 그랬습니다. 죄인인 자신을 구원해주신 주님께 감사의 표현으로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부었을 때에 주님은 그녀에게 부활의 주님을 최초로 뵈올 수 있는 축복의 기적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남에게 베풀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모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베풀 줄을 모를 때가 참 많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돈처럼 돌고 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감사함으로 기적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4) 예물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고린도후서 9장 11-12절에 보면 너그럽게 연보함은 저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돈을 번다는 것을 얼마나 어렵고 힘이 듭니까? 그러나 그런 수고를 통해서 번 돈을 주여 감사합니다, 하고 바치는 것이 바로 감사의 참된 표현입니다.
5. 그러면 맥추감사절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감사를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본래의 자리인 감사의 생활로 들어가게 하고, 참 기쁨과 행복을 회복하여 줍니다.
맺는 말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감사는 성도의 표징입니다. 반대로 불만과 불평은 불신자의 표징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은혜를 잊는 건망증이 우리로 하여금 감사를 잊게 하는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이번 맥추감사주일을 통해서 불평과 원망의 바이러스 병이 치유되고, 감사가 회복되어져서 참으로 기쁨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목 : 첫 열매를 손에 들고 본문 : 출애굽기 23:14-19
독일 어느 교회 돌판에 새겨져 있는 시(詩)라고 하는데.. 이런 시(詩)가 있습니다
주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 날 주님이라 하면서도 따르지 않고 너희 날 빛이라 하면서도 우러르지 않고 너희 날 길이라 하면서도 걷지 않고 너희 날 삶이라 하면서도 의지하지 않고 너희 날 슬기라 하면서도 배우지 않고 너희 날 깨끗하다 하면서도 사랑하지 않고 너희 날 부하다 하면서도 구하지 않고 너희 날 영원이라 하면서도 찾지 않고 너희 날 어질다 하면서도 오지 않고 너희 날 존귀하다 하면서도 섬기지 않고 너희 날 강하다 하면서도 존경하지 않고 너희 날 의롭다 하면서도 두려워 않느니 그런즉 너희들 너희를 꾸짖어도 나를 탓하지 말라
이 시는 교회 마당에 새겨진 시이고... 교회 다니는 분들이 보라고 쓴 시이기에... 이 시를 듣는 순간.. 뭔가.. 가슴이 찡-하는 그것을 다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부드럽게 말하지 않고... 아주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로마서 1:21-23).
이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알고.. 그 은혜와 그 은총, 그 은택 속에 살아온 자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않고 사는!!.. 그런 사람들이 누구냐? - 바로 우리들..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은 아주 의미가 있는 말씀입니다. 14절입니다.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찌니라!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피조물인 인간들이 어떤 존재인가를... 자신들을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구출하고... 홍해도 갈라 구원하신...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감사 드리며 찬양 드리는.. 그런 존재인지 아닌지를.. 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제는 강제적으로!! 적어도 일년에 3차례 정도는.. 절기를 지켜야 한다!!.... 이렇게... 명령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3차례의 절기 중 오늘 우리가 지키려는 맥추절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16절입니다.
맥추절(麥秋節)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간단합니다! 첫 열매이기 때문에 감사하고.. 그래서 또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19절에서는 첫 열매에 대하여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찌니라.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나... 첫 열매가 갖는 의미는 아주 지대한데... 하나님은 그 지대하다고 생각하는 첫 열매를... 당신에게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후엔.. 어떻게 하시느냐? 하나님은 그렇게 첫 열매를 자신에게 바친 사람이나 민족 위엔... 특별한 복을 내려 주셔서... 지경도 넓혀 주시고.. 이웃 나라가 염탐치도 못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출애굽기 34:24)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약속이며 축복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나라란... 그 면적이 우리나라 남한의 1/3.5 밖에 안되는 나라지만 그 작은 면적이 남북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어서 비록 국토는 작지만 그 작은 국토 안에 다양한 기후가 존재하는데... 그 다양한 기후 중에 가장 특징적인 기후.. 대표적인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입니다.
이 지중해성 기후라는 것은 우리 나라 기후와는 달리.. 거의 정반대라고 보면 좋을 듯 한데 겨울철은 우리나라처럼 건조한 계절이 아니라.. 비가 오는 계절, 우기(雨期, 11-4월)이고 여름철은 우리나라처럼 장마의 계절이 아니라.. 비가 오지않는 건기(乾期, 5-10월)로서 여름철에는 사막에서 건조하고 뜨거운 동풍(東風)이 불어와 건조할 수 밖에 없고 겨울철에는 지중해에서 습한 바닷바람인 서풍(西風)이 불어와 비가 많이 올 수 밖에 없는 이런 기후입니다.
게다가... 식물을 재배하는 토양도 보면... 우리나라의 비옥한 토양과는 달리... 거의 대부분의 토양이 석회암으로 된 토양인데... 이런 토양에서 자랄 수 있는 작물은... 밀이나 보리, 그리고 포도 정도..입니다.
그런데... 맥추절이란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추수한 첫 열매를 바치라는 절기로서..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렇게!!... 어렵고 힘든 여건 속에서 추수한 첫 열매를 바쳐라!! 이렇게 말씀하시는가 하면... 첫 열매는 거룩히 구별된 것이기에... 그것이 생산되도록 가능하게 하시고 또 그 첫 열매를 인간에게 주시면서 거룩히 구별하여 주신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첫 열매... 그 자체가 거룩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첫 열매도.. 겉으로 보거나 내용적으로 보면.. 일반적인 여타 열매와 다를바 없습니다. 그렇지만 첫 열매가 다른 열매와 다른 것은.. 의미적으로 볼 때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열매와 달리... 그 구별됨이 의미적으로 볼 때... 거룩히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땅의 처음 익은 열매를 남에게 주지도 못하리니 이는 나 여호와에게... 거룩히 구별한 것임이니라(에스겔 48:14).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로마서 11:16).
무슨 말입니까?
모든 것의 처음 것!! 첫 열매, 첫 생산, 첫 봉급, 첫 작품, 첫 아이.. 이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이 거룩히 구별한 것이기에... 이것을 알고 구별하라...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그렇게 모든 첫 열매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일 뿐만 아니라 거룩하게 구별된 것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게 거룩하게 구별된 첫 열매는 반드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의 토지 소산의 처음 익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찌며 (출애굽기 34:26)
너는 너의 추수한 것과 너의 짜낸 즙을 드리기에 더디게 말찌며 너의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찌며(출애굽기 22:2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언 3:9-10)
자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렇게 생각하고 계시고 또 말씀하고 계시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가?...
여리고성 사건을 보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만난 첫 장벽이... 여리고 성이었는데 이 여리고 첫 장벽을 정복하고 나서 얻어지는 모든 전리품은 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첫 장벽을 이기게 하셔서 그 성을 주신 하나님이 그 첫 수확을 거룩하게 구별하였을 뿐 아니라... 그래서 바치라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뭐.. 전리품.. 그런 것이 없어서 그렇게 명하신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건 속에서.. 모든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은택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여호수아 6:15-19).
제 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번 도니 성을 일곱번 돌기는 그날 뿐이었더라 일곱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찌니라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취한 다음 그 모든 전리품은 하나도 가지지 않고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물론 가지고 싶은 것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그 처음 소득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거룩히 구별한 것이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바치라 명하신 것임을 알았기에!! 그들은 가지지 않았고 다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 재물에 눈이 어두웠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치지 않았습니다. 전리품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감춘 것입니다.
까짓거... 이런것 쯤 하나... 바치지 않는다고 해서 뭐 어려운 일이 생길까... 이랬겠지만... 그러나... "혹시" 하는 것이 그에게는 "역시"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가만 계시지 않았습니다!! 손을 보셨습니다!! 그 상세한 내용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의 역사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이런 맥락 속에서 맥추절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오늘이라고 하는 이 싯점에서 지난 날을 돌이켜 봅시다. 지난 한주간, 지난 반년동안, 아니 지나온 나날들... 생각해 보면 전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내가 살아왔으며.. 내가 노력했으며.. 내가 내가 내가 힘쓰고 애쓰며 살아왔지만... 돌이켜 보면 전적으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요 은총이요 은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이 거룩한 자리에 앉아 있으며, 예배하며 찬송하는 것이 아닙니까?
특히 지난 날.. 가슴 졸이며 노력하며 얻었던 모든 첫 소득이나 첫 열매들을 생각해 보면 이것도 물론... 우리의 노력이 들어가기는 들어갔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맥추절의 의미, 맥추절의 교훈은... 과거를 잊지 않고 추억하되.. 그 결과는 반드시 하나님께 감사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와 그 역사 속에서 행동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을 보면 그들은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하나님이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어 해방되었고 광야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 구름기둥 불기둥이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맛보았고 이런 과정을 통과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정착했을때.. 물론 처음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그 은총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았지만 얼마가지 못하여 감사는 커녕 불평과 불만, 원망 속에 사는.. 그런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무지몽매한 출애굽 제2세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신명기 16:12). 물론 맥추절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과거!! 종되었던 시절.. 그때 그 어려웠던 그 시절을 생각하며.. 결코 하나님의 은혜와 그 은총을 잊지 말고!! 그러한 자세로 맥추절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사건들과 말씀들을 통해... 맥추절은 왜 있으며... 맥추절은 어떤 정신으로 지켜야 하는지 그 의미를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는데... 오늘 본문 16절..처럼 우리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첫 열매를 거두었기 때문에... 맥추절을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첫 열매가 거룩히 구별된 것이기에 맥추절을 지며야 하며 또 출애굽 제2세대에 다시 말씀하시고 교육한 내용을 통해 배운 바 처럼... 지나온 과거, 힘들고 어려웠던 종되었던 시절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맥추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맥추절에 감사하는 자의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첫 열매 첫 소득의 봉헌과 함께 반드시 따라야 할 것, 아니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사실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감사하는 마음!!
감사라고 하는 것이... 은혜를 받은 자가... 은혜를 베푼 자에게 보답하는 행위로서 은혜 받은 자가 또다른 보답을 기대하며 보답하는 것이 아닌!! 순수한 자세로 보답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일찐대... 맥추절의 정신 또한...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점을 또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맥추절에 바치라는 그 첫 열매란 반드시... 크고 달고 맛있고 아름다운 것만 바쳐야 하는가? 또 첫 소득, 첫 열매만... 다 하나님의 것인가? 여러분은 이 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가능하면... 크고 달고 맛있고 아름다우면 좋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다 할찌라도.. 첫 열매라면!! 다 하나님의 것이며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점을 간과한다면... 못된 사람들 중에는 첫 소득 첫 열매에 흠집을 가해... 그것이 비록 하나님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답지도 못하고... 맛도 없다.. 하면서 하나님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착취할 가능성도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무슨 말씀입니까?...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첫번째 열매도 감사하고... 두번째 열매도 감사하고... 세번째 열매도 감사하며... 크고 달고 맛있고 아름다운 것도 감사하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고...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며...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신앙이란.. 참 신앙이란!!... 모든 상황... 모든 여건 속에서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한다면.. 참신앙은 아닙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누가 신앙이 좋다!! 그는 예수를 잘 믿는 것 같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며 칭찬하지만 정말 그가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인지.. 그의 신앙이 정말 훌륭한지는 모르는 것인데.. 그의 신앙의 수준, 신앙의 내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는... 그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감사의 내용과 감사의 수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그가 정말 잘믿는 그리스도인이고... 그의 신앙이 정말 훌륭하다면 그는... 모든 상황.. 모든 사건 속에서도 불평 불만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고 또 항상 감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렇지 않고!!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 보고.. 신앙이 좋다... 예수를 잘믿는다!! 아무리 이렇게 말할찌라도.. 그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것이 형편이 좋을 때만 그렇고.. 그렇지 않고... 형편이 점점 어려워지고.. 몸도 아프고.. 되는 일도 없고... 심지어 열심히 믿고 꾸준히 기도하는데도 불구하고 더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때론 점점 더 욥처럼 죽을지경에 이르게 되면.. 신앙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고.. 하면서 낙망하거나 절망하게 된다면... 어찌 그런 신앙을 좋은 신앙... 그 사람을 예수 잘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믿는 신앙이란 무엇이냐... 이것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해 볼 수 있겠습니다.
참 신앙.. 좋은 신앙.. 잘 믿는 신앙이란 모든 상황.. 어떤 상황 속에서도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이 될 때 그 신앙을 가리켜 참 신앙.. 좋은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제가 언젠가 이 강단에서 인용한 것 같은데 오늘 한번더 인용하고픈 시가 있습니다. 이 시는 시인이며 목사님이신 안산제일교회 고훈 목사님의 시로서 그는 목회하다 암에 걸려 투병하면서도... 신앙에 흔들림 없고... 자세에 흐트러짐 없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는 좋다
고훈
내가 암병이라면 모든 환자들의 친구가 되어 좋다. 내가 치료된다면 그들에게 또한 희망이 되어 좋다. 치료되지 않는다면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수 있어 좋다.
내가 암병이 아니라면 모든 사랑하는 사람에게 근심되지 않아 좋다.
나는 이 일로 내 인생을 돌아보며 단 한 번 위대한 결단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음을 감사할 수 있어 나는 언제나 이래도 저래도 좋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윌리암 로우(William Law)라고 하는 사람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세계 최대의 성자는 기도를 많이 한 사람도 아니고.. 금식을 많이 한 사람도 아니며.. 자선을 많이 베푼 사람도 아니라...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정말.. 귀한 말씀입니다.
누가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입니까? 누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간 사람입니까?
누구나 다 예수님을 잘 믿고 싶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싶겠는데... 오늘 맥추절을 맞이하여 깊이 생각할 것은... 예수님을 잘 믿는 것...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까지 감사할 수 있으며 무엇까지 감사할 수 있는가.. 하는!!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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