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주의 구원론 (엡1:13-14) 설교유형 - 변증설교 요약 안식교에서는 예수를 믿어도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의 구원의 완전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구원의 진리가 아니다. 성경은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강조한다(롬3:20). 그들은 믿음의 행위와 율법의 행위를 구별하지 못하고 얻은 구원이 율법 행위에 의해 유지된다고 하나 율법주의는 도리어 은혜에서 떨어지는 길이다(히6:1-10). 자기 행위에 의존하여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는 믿음이라면 어찌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없겠는가? 설교 역사를 보면 인간 사이에서 구원을 얻으려는 여러 가지 방법이 주장되었습니다. 그 중에 두드러진 것 하나가 율법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으로 구원 얻으려 하는 일에 대하여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롬3:20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했습니다. 갈2:16에도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한 마디로 율법으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안식교는 율법주의 구원관을 가졌습니다. 그들도 믿음으로 얻는 의를 말하고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는 주장하며 자신들은 결코 율법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율법주의 구원론을 가졌다고 말하는 이유는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알파 항상 이게 문제입니다. 더 문제는 예수=알파라는 공식입니다. 아것은 다원주의로서 예수 말고도 다른 것으로도 구원을 받는다는 잘못된 주장입니다. 그럼 안식교가 율법주의 구원관을 가졌다는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먼저, 안식교는 인간이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안식교는 품성변화가 이루어져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완전히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안식교는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서 얻은 구원이 마지막 날까지 율법준수를 통하여 비로소 유지된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 뿐 아니라 안식교는 심지어 폐한 바 된 모세율법의 규례들 예를 들면 음식이나 토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으로는 구원 받지 못하고 오직 은혜로만 되는 것이라고 변함없이 증거합니다. 그러나 안식교에서는 고전9:27의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한다는 구절을 가지고 율법준수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본문의 전후문맥을 보면 이 글은 이기기를 다투는 자에 대한 글로서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상 문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버림에 있어서 영원한 버림과 일시적 징계적인 버림과는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영원한 버림은 없고 징계적 버림 역시 그렇게 느낄 뿐이지 도리어 하나님의 연단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에 복음 외에 율법준수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갈라디아주의나 다름이 없습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들에게 다른 복음은 없다고 말하면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런 안식교의 모습은 마치 복음을 접한 사람들이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려했던 사람들과 동일한 예가 됩니다. 그 사람들에게 주어진 말씀이 히브리서 6장입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6:4-6) 했습니다. 즉 그런 행동은 그들 주장처럼 구원을 유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길입니다. 히 6장은 문맥을 보면 중생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예외의 적용임을 볼 때 역시 중생한 참 백성은 버림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예대로 생각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인간이란 얼마나 귀한 존재든지 한 번 자녀로 태어나면 건강하든 그렇지 못하든 잘 생겼든 그렇지 못하든 키우는 것이 도리 아닙니까? 그런데 하물며 중생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버림이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안식교에서는 약2:20-26을 가지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에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 행함과 율법 행함을 구별하지 못하는 오해를 저질렀습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의 행함과 안식교가 강조하는 율법 행함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가령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주신다는 것을 믿었기에 말씀 따라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한 것은 믿음의 행위이지 율법행위가 아닙니다. 만약 율법 행위로 보면 이 일은 오히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위배하는 행위입니다. 이처럼 믿음 행위와 율법 행위는 천지 차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와 비슷한 라합 등의 이야기 약 2장에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행위를 율법 행위로 이야기해서 율법 구원을 이야기 합니다. 이런 율법주의는 안식교 자체의 글에도 나타납니다. 안식교는 율법주의 교리를 고수하다가 1870-1880년대의 와그너와 존스를 통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교리를 받아들여 율법주의적인 경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스스로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그 이전에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교리조차 없었던 사교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안식교는 그 율법의 껍질을 다 벗지 못한 율법주의 신앙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안식교 말대로 얻은 구원이 상실될 수 있을까요? 안식교인들은 예수 믿으면서도 그들이 받은 구원이 불안전하여 항상 상실할까 불안해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육식도 멀리하고 철저히 율법준수에 노력합니다. 그러다가 넘어지면 나는 구원을 받지 못했구나 낙심합니다. 그러니 구원의 감격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진짜 구원을 받은 것이라면 한 번 얻은 구원은 결코 상실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제 말인가 성경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요10:28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바울도 롬8:35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했고, 고전1:8에는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했고, 엡4:30에도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오늘 본문 엡1:13에도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했고, 벧전1:5에도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다” 했으며, 히10:14에서는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 하셨고, 유1:1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했습니다.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이 견인의 은총을 어찌 다 언급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영생이라는 용어 개념 자체가 구원이 상실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속죄함을 얻고 얻은 구원의 생명은 곧 영생입니다. 다시 죽는 생명은 영생이 아닙니다. 믿고 영생을 얻은 자가 구원을 상실한다면 그 구원이 어찌 영생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확신이 없는 자라면 그는 아직 구원을 얻지 못한 자가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예수도 믿지만 율법의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했다가 낭패를 당하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예수님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알파를 이야기함은 곧 예수님의 구원의 완전성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 외에 다른 구원이 없음을 확신하시고 비 진리에 미혹 받지 않는 신실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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