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 성도의 세 가지 스타일 (마24:32-51)
요약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유형은 약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는 망각형으로 주님 오실 날에 대한 개념을 갖지 않고 세속에 취하여 사는 사람이다(마24:48-50).
다음은 도피형으로 변화산에서 초막을 짓고자 했던 제자들과 같은 사람들이다(마17:4, 마24:36).
다음은 준비형으로 주님 재림에 대한 임박한 마음으로 항상 깨어 믿음 준비와 맡겨진 사명에 충성하는 스타일이다(마24:44-47).
재림신앙은 우리에게 재림에 대한 대비와 아울러 성령 충만을 이루게 하는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온다.
강해
마태복음 24장은 주님께서 예루살렘 멸망과 재림의 징조를 설명해 주신 장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성경이 말씀한 대로 이 세상은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A.D.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은 멸망했고 주님이 예언하신 재림의 징조도 대부분 성취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신앙생활을 잘하며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재림을 맞을 성도들의 자세에 약 세 가지의 스타일이 있다는 점입니다.
1. 망각형의 신앙입니다.
48-50절에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망각형이라 합니다. 말세인 것을 망각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현실주의자들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말세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망각하고 현실에 취하고 탐닉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논 사고 밭 사는 일상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성경에서 본다면 롯의 사위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소돔성이 유황불로 심판 받을 때 모두 타졌습니다.
이들은 말세라는 말을 농담으로 여깁니다. 혹 남들이 말하는 말세란 말에 동의를 한다 하여도 말세를 준비하며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큰 후회가 될 것입니다. 분명 주님께서는 인자의 임할 때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마24:37-39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하셨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멸망당하고 나서야 깨닫지만 그땐 이미 늦습니다.
눅 16장의 음부에 간 부자가 이런 종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먹고 마시고 입고 놀고 이생에만 관심을 갖고 살았기에 천국의 삶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들이 먹고 마시고 돈 버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면 주님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육체주의, 향락주의, 쾌락주의, 정말 곤란합니다. 말세를 잊지 말고 준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2. 말세 신앙에는 도피형이 있습니다.
36절에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하셨습니다.
분명히 그 날은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시한부 종말론을 일으켜서 예수님 오실 날을 선포합니다. 안식교가 그 일을 제일 먼저 하였습니다. 안식교는 1844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모든 것을 다 처분하고 기다렸으나 오시지 않자 그 날 예수님이 하늘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신 날이라고 핑계를 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때야 지성소에 들어가셨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재림 불발 핑계 대다가 더 큰 이단설을 주장하고 만 것입니다.
다미선교회에서도 1992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고 했다가 큰 망신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신앙은 광신주의 신앙인입니다. 현실을 무시하고 미래의 주님 도래에만 광란하는 스타일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가정과 직장 다 버리고 땅 팔고 집 팔아 집단생활하며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두 사람이 메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했고, 또 두 사람이 받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했다고 삶의 현장에서 역사하셨음을 말씀하십니다.
변화산에서 영광의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가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자고 했을 때(마17:4)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래라” 대답하시기는커녕 대꾸조차 하지 않으시고 산에서 내려오십니다. 산 아래는 귀신 들린 아이가 있어 간질로 쓰러집니다. 주님을 그 아이를 고쳐주십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도피형도 망각형도 아닙니다. 그럼 어떤 형으로 살아야 옳을까요?
3. 준비하며 현실에 충성하는 준비형으로 살아야 합니다.
44-47절에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준비형입니다. 이 스타일은 충성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건전한 신앙입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곧 오실 것처럼 신앙준비 잘하면서도 맡은바 현실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노아 보세요. 히11:7에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노아가 신앙 준비 잘하고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가정을 소홀해서는 안 됩니다. 가정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현장입니다. 교회를 소홀히 해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기관입니다. 직장도 사업도 가사도 충실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산다고 좋은 신앙이 아닙니다. 교회에 있을 때 교회에 있고 현장에 있을 때 현장에 있는 사람이 잘 한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혹시 정당한 보수를 받지 못한다 해도 충실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보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몇 배로 받습니다. 정말이냐고요? 골3:22-24에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 가지고 맡은 바의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상 세 가지 형에서 우리는 어떤 형입니까? 결코 망각형도 도피형도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 오실 것을 믿고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며 충성하는 준비형의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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